집없는 中企의 설움

2003.07.01 18:15

반도체장비나 실리콘, 세라믹 등에 1.3㎜ 이하의 구멍을 뚫을 수 있는 초정밀 드릴링머신을 개발한 경기 시화공단의 (주)나노엠티는 최근 공장 증설을 서두르고 있다. 독일·일본제품보다 품질이 뛰어나고 값도 3분의 1에 불과해 주문이 늘고 있지만 150평짜리 임대 공장에서는 주문량을 맞추기 어렵기 때문이다.

회사측은 올들어 수도권 지역 공단들을 둘러봤지만 마땅한 곳이 없어 이래저래 고민이다. 이 회사 김병찬 사장은 “공장도 좁고 임대료가 계속 오르는 바람에 공장을 짓기 위해 500평짜리 땅을 찾는 데 쉽지 않다”면서 “값이 싸면 입지가 안 좋고 어쩌다 마음에 들면 예상보다 값이 너무 비싸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고 털어놨다.

최근 수도권에서 공장용지 절대 부족으로 땅값이 오르고 공장 임대료도 상승, 인력과 자금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기업들의 어려움이 크다. 경기침체와 경영난으로 공장을 매각하거나 빌려주는 중소기업도 늘고 있지만, 기본적인 수요를 대지 못하는 형편이다. 한쪽에서 사업을 포기하는 동안 다른 한쪽에서는 공장을 지으려 해도 마땅한 땅이 없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서울 금천구 서울디지털산업단지(옛 구로공단)의 공장용지 값은 1년전만 해도 평당 4백만~5백만원이었으나 최근 6백만~7백만원으로 올랐다. 목 좋은 곳은 평당 8백만원을 호가한다. 경기 시화공단과 반월공단, 인천 남동공단의 공장부지도 평당 2백만원선으로 지난해보다 20% 가까이 올랐다. 경기 김포의 상마지방산업단지는 신도시 발표 이후 값이 크게 올랐다. 2년전엔 평당 50만원이었으나 80만~1백만원선으로 뛰었다.

공장 임대료도 평당 보증금 20만원에 월세 2만원선으로 20~30% 올라 시화·반월공단 같은 국가산업단지와 비슷한 수준이다. 500평 공장을 빌리려면 보증금 1억원에 연 1억2천만원의 세를 내야 한다.

지난해 분양한 경기 화성시 마도공단의 분양가는 평당 40만원선이었다. 그러나 올 4월 분양한 화성의 발안공단 분양가는 평당 53만원으로 올랐다. 수도권이지만 국가산업단지가 아닌 지방산업단지로 교통여건이 그리 좋지 않은데도 ‘떴다방’까지 출현하는 등 분양열기가 대단했다.

공장용지 값이 오르는 것은 수도권에 더이상 공장을 지을 만한 부지가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입지가 괜찮은 수도권 공단마다 임대공장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국산업단지공단도 올 1월말 현재 국가공단 입주 기업의 36.2%가 임대공장이며 임대공장이 계속 증가하는 추세라고 밝혔다.

중소기업진흥공단 협동화사업팀 이한철 부장은 “수도권에서 2년 동안 국가산업단지 등 공장용지의 대규모 공급이 거의 없었고, 올해부터 중소기업 공장이 주로 들어가는 계획관리지역(옛 준농림지역)에서는 3,000평 미만을 공장용지로 바꿀 수 없도록 법이 개정됐다”고 말했다. 그는 “수요는 있는데 공급이 따라가지 못하니 수도권의 공장용지 값이나 임대료가 구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이렇다보니 중소기업의 불만만 커지고 있다. 공장지을 곳을 구하지 못해 시설투자도 제대로 못하고, 공장을 빌리면 임대료가 만만치 않아 제품 값을 올릴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경기 시흥시의 임대공장에 입주했던 특수강제조업체 (주)대창테크는 최근 뛰는 임대료 걱정에 몇개 업체와 공동으로 어렵게 김포 상마공단에 공장을 마련했다.

김복식 사장은 “임대공장에서는 언제 옮겨야 할지 모르기 때문에 시설투자도 과감히 못하고 은행도 담보능력이 없다며 대출을 꺼린다”면서 “주위의 기업인들은 거의 자기공장을 갖고 싶어하지만 값이 비싸 엄두를 내지 못한 채 울며겨자먹기로 올라가는 임대료 부담하기에 급급하다”고 전했다.

시화공단의 (주)DDD는 몇 년째 공장용지 분양을 받지 못해 임대공장으로 운영하다가 최근 협력업체를 따라 충남 아산에 자기 공장을 마련했다.

이 회사 이탁식 이사는 “임대료가 오르면 사업확장이나 시설투자를 미룰 수밖에 없는데도 기업들이 수도권 공단을 고집하는 것은 물류비나 협력업체와의 관계, 인력 수급 등에서 경쟁력이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박재현기자 parkjh@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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