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완으로 끝난 ‘SK의 실험’

2011.03.01 21:26

인천정유 인수 위해 팔았던 본사 사옥 재매입

SK가 옛 인천정유(현 SK에너지 인천공장) 인수자금 마련을 위해 팔았던 서울 서린동 본사 사옥을 재매입한다.

2005년 당시 “부동산 자산을 현금으로 굴려 수익을 창출하겠다”며 자산 유동화를 시도한 SK의 파격적인 실험이 원점으로 돌아온 셈이다. 본사 매각 대금으로 사들인 인천정유는 비싼 돈을 들인 데다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다.

SK그룹은 1일 서린동 본사 사옥을 약 5500억원에 재매입하기로 하고 건물주인 뱅크오브아메리카(BoA)메릴린치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SK는 2005년 인천정유 인수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이 건물을 4500억원에 팔았다.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

서울 서린동 SK그룹 본사 사옥.

SK는 본사 사옥을 사들이기 위해 부동산펀드를 조성했다. 계열사인 SK(주)와 SK이노베이션이 60%를 출자하고 국민연금이 남은 지분을 투자하는 방식이다. 5년 뒤 펀드 만기가 돌아오면 SK그룹이 우선매수권을 갖되 연간 200억원에 달하는 건물 임대료는 수익으로 분배하는 구조다.

서린동 사옥은 SK그룹의 역사가 고스란히 녹아 있는 상징적인 건물이다. 고 최종현 회장은 흩어져 있던 SK 계열사를 한곳으로 모으기 위해 1999년 지상 35층의 본사 건물을 신축했다. 이 건물 35층엔 선대 회장들의 흉상이 자리잡고 있다.

SK는 6년 만에 본사 사옥을 되찾았지만 그동안 건물값이 오른 데다 임대료를 합쳐 2000억원가량의 돈을 썼다. 본사 사옥을 팔아 3조400억원에 인수한 인천정유는 기대한 만큼의 수익을 내지 못해 6년간 그룹이 ‘셋방살이’를 해온 보람을 찾기 어렵게 됐다.

2005년 당시 본사 사옥을 팔아 회사 운영자금으로 쓴다는 SK의 발상은 파격적이었다. 대부분의 대기업들은 부동산 투자로 재미를 봐온 데다 기업의 상징인 본사 사옥을 파는 것을 터부시했다.

외국 MBA를 거친 최태원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막대한 부동산 자산을 그대로 묵히는 것보다 자산으로 활용해 더 큰 수익을 내면 되지 않느냐”는 생각이었다. 부동산이 연간 5%가량 오른다면 이를 판 돈으로 더 많은 수익을 올리면 된다는 계산인 셈이다.

SK는 본사를 팔 때 매각 후 건물을 그대로 빌려 쓰는 ‘세일즈 앤 리스(sales and lease)’ 방식을 택했다. 본사 매각에 따른 직원들의 상실감을 고려한 것이다.

인천정유 인수 직후 세계 경제위기가 찾아오면서 SK의 파격적인 실험은 고비를 만났다. 당초 석유제품 수요가 급상승하던 중국 시장을 바라보고 생산거점 및 현지화 전초기지로 인천정유를 인수했지만 예상만큼 실적이 좋지 않았다. 원유가격 상승으로 정제마진이 줄면서 고도화설비 투자가 안돼 있는 인천정유의 수익성은 내리막길을 걸었다. 지난해 6월까지 마치기로 한 고도화설비 투자도 2016년까지 미뤄진 상태다. 인천정유는 현재 44%의 가동률을 보이고 있다. 시장에서는 인천정유 매각설이 나돌기도 했지만 SK 측은 이를 부인했다.

정유업계의 한 관계자는 “SK가 당시로서는 생각하기 어려운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냈지만 때가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SK 관계자는 “인천정유 인수자금을 외부 차입으로 해결할 경우 신용도 하락에 따른 막대한 손실이 예상돼 본사 매각을 결정했다”면서 “본사 사옥 재매입은 매각 당시 예정됐던 수순”이라고 말했다. 또 “인천정유도 화학제품 시장이 호황이라 꾸준히 이익을 내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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