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컵 모아 태산’…미반환 보증금이 1000억원을 넘을 거라고?

2018.05.27 14:54 입력 2018.05.27 18:01 수정

[배문규의 에코와치]‘빈컵 모아 태산’…미반환 보증금이 1000억원을 넘을 거라고?

10년 전 사라졌던 컵보증금제도가 내년에 다시 시행된다. 커피전문점이나 패스트푸드점에서 일회용컵에 음료를 마실 때 보증금을 냈다가, 가까운 매장에 빈 컵을 가져가면 돌려받게 하겠다고 환경부가 발표했다. 문제는 컵이 얼마나 회수되고 재활용될 것이냐다. 보증금이 너무 작으면 소비자들이 찾아가지 않아 재활용 실효성이 떨어지고 보증금만 쌓일 수도 있다.

맥주병, 소주병같은 유리병을 반납하고 돈을 받는 ‘빈용기보증금 제도’가 이미 시행되고 있는데 빈병의 경우 회수율과 재사용율이 높은데도 불구하고 이미 400억원 넘는 ‘미반환 보증금’이 쌓여 있다. 일회용컵의 경우 자칫 연간 1000억원 넘는 돈이 쌓일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지만, 미반환 보증금은 반대다. 돈이 쌓이지 않게 소비자들을 움직이고, 부득이하게 모인 돈은 투명하게 관리해 친환경 정책에 활용하는 것이 관건이다.

■ 보증금의 ‘적정 액수’는?

환경부는 지난달 재활용쓰레기 종합 대책을 발표했고, 지난 24일에는 전국 주요 커피전문점·패스트푸드 업체 21곳과 자발적 협약을 다시 맺어 일회용컵 줄이기에 나섰다. 소비자들이 쉽게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은 두 가지다. 텀블러를 쓰면 음료값을 깎아준다는 것, 그리고 일회용컵을 쓸 때 보증금을 내야한다는 것이다. 혜택과 부담을 동시에 줌으로써 일회용컵 사용량 자체를 줄이고, 한번 쓰인 일회용컵의 재활용율을 높이겠다는 의도다.

보증금 액수는 현재 100원(소주병)과 130원(맥주병)인 빈용기보증금에 준해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보증금이 적으면 되돌려받지 않는 이들이 많을 것이고, 보증금이 크면 당장 커피값이 올라간 것처럼 보일 것이기 때문에 업체들이 저항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컵 반환을 늘리려면 금액을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2002년부터 시행됐다가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폐지된 일회용컵보증금 제도는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시민들이 음료를 산 매장에만 컵을 반납할 수 있었기 때문에 불편했으며 50~100원의 보증금으로는 일회용컵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기엔 역부족이었다.

영국은 올해부터 일회용컵에 400원 가량의 ‘라테 부담금’을 매기고 있다. 소비자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아닌, 일종의 환경세다. 일각에선 할인혜택같은 ‘당근’보다 당장의 부담을 늘리는 ‘채찍’이 쓰레기 줄이기에 더 효과적이라고 말한다.

■ 안 찾아간 병값·컵값 쌓이면

2015년 커피전문점의 일회용컵 사용량은 61억개였다. 환경부와 협약을 체결해온 업체들만 기준으로 삼은 것이며, 영세 커피전문점이나 가정 내 일회용컵 사용량은 뺀 숫자다. 정부의 목표는 이를 2022년 40억개로 줄이는 것이다. 2016년 환경부가 국회에 낸 자료를 보면 협약업체들의 일회용컵 회수율은 70% 안팎이다.

빈병 회수율 97%에 비교하면 저조하다. 빈용기(병)보증금제도는 1985년 도입돼 이미 완전히 자리잡았다. 소비자들이 직접 매장에 가져다주지 않아도 음식점이나 가정 분리수거로 회수된다. 빈병은 세척해 재사용하기도 쉽다. 반면 일회용컵은 그 형태 그대로 다시 쓸 수 없고, 가공해 재활용해야 한다. 유통시키는 브랜드도 다양하다. 회수된들 재활용률은 8%에 불과하다.

빈병은 회수율이 매우 높은데도 미반환 보증금이 쌓이고 있다. 개개인에겐 푼돈이지만 쌓이면 수백억원이다. 더불어민주당 강병원 의원실이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서 받은 ‘연도별 미반환보증금 현황’ 자료를 보면 2012년 94억원이던 ‘주인 없는 빈병값’은 계속 늘어 올해엔 410억원이 남아 있다. 전년에 쌓인 돈을 이듬해에 활용하는 구조인데, 최근 몇년 새 탄산소주가 대유행하고 지난해 보증금을 올리면서 미반환금이 크게 늘었다.

회수율이 높은데도 수백억원이 쌓이는 것은 한국인들이 ‘술고래’여서다. 국내에서 유통되는 유리병은 연간 50억병인데 소주병이 30억병, 맥주병이 18억병 정도다. 50억병의 보증금 중 소비자들이 찾아가지 않는 3%의 액수를 병당 100원으로만 잡아도 150억원에 달하는 미반환 보증금이 해마다 발생하는 것이다. 일회용컵은 사용량이 병보다 많은데다 회수율은 떨어질 것이 뻔하다. 대략 60억개에 100원씩 매기고 보증금 반환율(일회용컵 회수율)이 70%에 그칠 때 무려 1800억원이 쌓이게 된다.

■ 모인 돈은 어디에 쓸까

빈병 미반환 보증금은 2015년까지 음료업체들이 주도한 한국용기순환협회가 관리했다. 관련규정이 명확하지 않아 상여금과 업무추진비 등으로도 일부를 썼고, 그러다가 감사원 감사에서 적발됐다. 협회는 해산됐고 보증금 관리 업무는 이듬해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로 넘어갔다.

연내 관련 법령이 개정되면 일회용컵 미반환 보증금도 이 기구에서 맡을 가능성이 높다. 손병용 환경부 자원재활용과 서기관은 “이미 이 센터가 관리 중인 빈용기보증금과 성격이 비슷하고 관련규정도 있다”고 설명했다. 환경부는 또 소비자들이 같은 브랜드의 어느 매장에나 반납할 수 있도록 해 회수율을 높이는 방안을 업체들과 협의 중이다.

미반환 보증금은 자원재활용법에 따라 회수 홍보와 연구·개발, 빈용기 보관, 수집소 설치·지원 등에 쓰게 돼 있다. 하지만 내년에 컵보증금이 되살아나면 1000억원 넘게 쌓일 수 있다. 액수가 커진만큼 재활용품 관리나 홍보를 넘어 적극적으로 친환경 정책 사업에 써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무인회수대를 만들자는 제안도 있지만 여수호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 팀장은 “생산자들이 부담해야 할 일을 소비자들의 돈으로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마땅한 방안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강병원 의원은 “최우선 과제는 회수율을 높이는 것이지만, 환경부와 관련업계가 쌓인 돈을 생산적으로 쓸 방안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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