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귀여움의 이면은 지배와 통제…‘펫’은 애정과 지배의 조합

2018.11.15 21:25 입력 2018.11.15 21:29 수정

우리는 왜 귀여움에 열광하는가?

[전문가의 세계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 (10) 귀여움의 이면은 지배와 통제…‘펫’은 애정과 지배의 조합

나는 귀엽다, 고로 존재한다
-냥카르트

나의 사전엔 귀여움밖에 없다
-냥폴레옹

만국의 고양이들이여 단결하라
-냥마르크스

이뿐 아니다,
장도리 만화의 ‘냥도리’도 있다

“권력은 귀여움에서 나온다”

올여름 나를 박장대소하게 한 이미지가 있다.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그 그림은 인민복을 입고 인민군 모자를 쓴 고양이의 모습을 익살스럽게 그린 것으로, 밑에는 다음과 같은 문구가 쓰여 있었다. “권력은 귀여움에서 나온다. 냐옹쩌둥.”

누가 봐도 중국의 지도자 마오쩌둥과 그의 유명한 말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를 고양이 버전으로 패러디한 그 그림은 한 역사적 인물이 풍기는 진지함을 참을 수 없는 빵터짐으로 날려버린다. 이후 나는 ‘냥카르트’(“나는 귀엽다. 고로 존재한다”), ‘냥폴레옹’(“나의 사전엔 귀여움밖에 없다”), ‘냥마르크스’(“만국의 고양이들이여 단결하라”)를 보게 되었고, 다시 미친 사람처럼 박장대소했으며, 이 우스꽝스러운 연속 패러디의 주인공이 시사만화 ‘장도리’에 출연하는 고양이 캐릭터 ‘냥도리’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 인터넷에서 셀러브리티가 된 ‘그럼피 캣’. 원래 이름이 타르다르 소스(Tardar Sauce)인 이 암컷 고양이는 2012년 9월 처음 소셜미디어 레딧에 소개된 뒤 특유의 부루퉁한 표정 덕에 인기를 끌다 미 3대 방송인 NBC, CBS, ABC 전파를 타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위키피디아

미국 인터넷에서 셀러브리티가 된 ‘그럼피 캣’. 원래 이름이 타르다르 소스(Tardar Sauce)인 이 암컷 고양이는 2012년 9월 처음 소셜미디어 레딧에 소개된 뒤 특유의 부루퉁한 표정 덕에 인기를 끌다 미 3대 방송인 NBC, CBS, ABC 전파를 타면서 더욱더 유명해졌다. 위키피디아

“권력은 귀여움에서 나온다.” 내게 이 말은 특히 기시감이 들게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한동안 날적이처럼 사용하던 블로그에 가보니 5년 전 가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별로 유쾌하지 않은 상태로 집에 왔는데, 마마우가 온갖 귀여움으로 무장을 하고 문 앞에서 맞이한다. 한순간 마음이 사르르 녹는 느낌. 귀여움에는 권력관계와 연관된 무엇이 있다”고. 마마우는 같이 사는 고양이 이름이고, 이 고양이가 그 존재 자체로서 어떻게 내 기분을 바꾸고 나를 무장해제시켰는지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고 싶었으리라.

귀여움의 권력, 또는 귀엽다고 느껴지는 존재가 가진 힘. 언젠가부터 해외 사회관계망서비스(SNS) 공간에 돌아다니는 ‘귀여움 과부하’(cuteness overload)라는 말이 있다. 이 말이 재현하는 이미지들은 보통 새끼 고양이, 강아지 또는 판다일 때가 많으며, 이 사진들은 인터넷과 SNS에서 꾸준히 발전해온 이른바 ‘귀여움의 문화’의 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속에서 마루, 그럼피 캣, 크림 히어로즈 등의 수많은 ‘동물 셀러브리티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생겨나고 있으며, 국내에선 예를 들어 고양이를 직접 키우지는 않지만 고양이와 고양이 캐릭터를 담은 이미지 또는 동영상을 즐겨보고 고양이 유튜버를 구독하는 ‘냥덕’, ‘랜선집사’ 등의 신조어들이 등장했다.

국내 고양이 유튜브 채널 1위인 ‘크림 히어로즈’의 한 장면. 7마리 고양이의 일상을 다룬 방송으로, 구독자수가 183만여명이다. 크림 히어로즈 동영상 갈무리

국내 고양이 유튜브 채널 1위인 ‘크림 히어로즈’의 한 장면. 7마리 고양이의 일상을 다룬 방송으로, 구독자수가 183만여명이다. 크림 히어로즈 동영상 갈무리

■귀여움의 생산

어떤 대상이 ‘귀엽다’는 것은 그 대상을 보는 주체로 하여금 따뜻함과 무해함, 또 보살펴주고 싶은 욕구를 불러일으킨다는 것을 뜻한다. 콘라트 로렌츠라는 오스트리아의 동물행동학자는 이른바 귀여움의 신체적 특성들을 본격적으로 논한 것으로 유명하다. 성인들로 하여금 돌보고 싶다는 욕구를 자극하는 인간 및 비인간 대상의 외형적 특징은 큰 눈, 튀어나온 이마, 몸에 비해 큰 머리, 짧고 통통한 발과 손, 둥근 체형, 둥근 뺨 그리고 몸의 투박한 움직임 등으로 요약된다.

흥미롭게도 로렌츠는 실험대상자들이 때로는 귀엽게 보이도록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대상들에게 실제 살아있는 대상들보다 더 즉각적으로 반응했음을 이야기한다. 동시에 그는 귀여움의 신체적 특징들에 반응하는 것은 그것이 반드시 본능이어서라기보다는 학습을 통한 선별적 강화의 결과라고 말한다. 이렇게 ‘귀여움의 본능’ 또는 ‘귀여움의 자연’을 강조할 때마다 그 분야의 대표적 전문가로 종종 소환되는 로렌츠 자신이 정작 ‘학습’이라는 사회적·문화적 요소를 강조했다는 사실은 우리로 하여금 귀여움이란 진정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사회·문화적으로 실행되는가라는 물음으로 이끈다

[전문가의 세계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 (10) 귀여움의 이면은 지배와 통제…‘펫’은 애정과 지배의 조합

귀여움의 사회·문화적 실천을 이야기할 때 대표적으로 거론되는 것이 바로 캐릭터 산업이다. 그중 가장 고전적 캐릭터인 디즈니의 미키마우스의 진화과정을 보면 초기에는 단지 직립보행을 하는, 의인화된 쥐에 불과했던 이 캐릭터가 점점 더 로렌츠가 언급한 귀여움의 신체적 특징들을 과장되게 구현하는 모습으로 바뀌어갔음을 알 수 있다. 원래는 그다지 ‘귀엽지 않았던’ 미키마우스는 점점 더 ‘어린아이와 같은’ 모습을 하게 되고, 그럼으로써 점점 더 소비자의 반응을 자극하고 시장에서 더 많이 팔리는 캐릭터가 되었다. 여기서 우리는 귀여움의 문화를 추동하는 것이 철저히 신체적 요소도, 철저히 정서적 요소도, 더 나아가 철저히 상업적 요소도 아닌 세 가지 영역들의 복잡한 어울림이었음을 알게 된다.

캐릭터 산업이 미키마우스와 같이 인간도 비인간도 아닌 하이브리드적 귀여움의 생산에 집중해왔다면, 애완동물 또는 반려동물 산업은 실제 동물들 속에서 귀여움 또는 ‘사랑스러움’의 특질들을 발현시키는 것에 열을 올렸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서구에서 100여년 전 시작된 브리딩 산업이다. 이 산업의 결과 현재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다양한 ‘품종개’들은 지난 100년 동안 현저히 다른 모습을 갖게 되었다. 개, 고양이 등의 대표적인 애완동물들의 역사는 사실상 그들의 외형과 성질을 그들과 함께 사는 인간들의 입장에서 최대한 매력적이고, 사랑스럽고, 귀엽게 바꾸는 과정과 개입들로 점철되어 있다. 초기의 반려동물 애호가들이 동시에 반려동물 브리더들이었다는 사실은 의미심장하다. 살아있는 동물에서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을 창출하는 작업은 선택적 교배, 유전자 조작에서 이차적 개입으로서의 외과적 수술을 아우른다.

[전문가의 세계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 (10) 귀여움의 이면은 지배와 통제…‘펫’은 애정과 지배의 조합

■귀여움의 소비?

위에서도 말했지만 어떤 대상이 귀엽다는 인식은 따뜻함과 무해함이라는 감정, 돌보고 싶다는 욕구와 동시적으로 일어난다. 이와 같은 심리적 효과는 근본적으로 비대등한 관계를 전제로 한다. 즉 어떤 대상이 귀엽고 사랑스럽다는 느낌은 그 대상과 주체 사이에 존재하는 힘의 차이 속에서 본질적으로 가능해진다. 따라서 귀여움의 이면에는 언제나 지배와 통제가 도사리고 있다. 언젠가 이 연재에서 소개한 적이 있는 지리학자 이푸 투안은 펫의 역사에서 애정과 사랑이 지배와 통제와 반대되고 모순되는 것이기는커녕 뒤엉켜 존재하였음을 지적한다.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귀여움이라는 감정은
살펴주고 싶은 욕망을 포함하며
학습되어지는 것이다
미키도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애정은 지배의 반대를 의미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은 부드러운 지배, 즉 인간의 얼굴을 한 지배일 뿐이다. 지배는 잔혹하며 착취로 이루어진 어떤 것, 그 안에 애착이란 요소가 전혀 있어 보이지 않는다. … 하지만, 지배와 애정이 조합되어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펫이다.”

여기서 지배와 통제는 본질적으로 애정, 즐거움, 유희라는 감정과 상태와 구분되지 않는다. 또는, 애정은 지배를 부드러운 것, 받아들일 수 있는 무엇으로 변형시킨다.

그리고 바로 이 맥락에서 우리는 현대사회에서 더욱더 확장되고 있는 ‘귀여움’의 소비와 그 문화정치에 대해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인터넷과 SNS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인간, 비인간, 또는 하이브리드 형식의 귀여움들에 사람들은 왜 열광하고 또 이를 소비하게 되는 것일까? 예를 들어, 실제로 동물과 함께 사는 대신에 그 귀여움만을 취하는 냥덕, 랜선집사 등의 문화적 현상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왜 하필 이 시대에 수많은 동물 셀러브리티들과 그들의 추종자들이 등장하게 된 것일까? 적어도 본능, 유전자, 진화라는 생물학적 결정론으로부터 이 질문들에 대한 충분한 답을 찾기는 어려워 보인다.

■당연히 귀여운 것은 없을지도

몇 해 전 어느 학회에서의 일이다. 한국의 동물복지란 주제의 세션이 열렸는데, 총 세 개의 발표 중 두 개가 ‘길고양이’에 관한 것이었다. 발표와 토론이 끝난 후, 청중에서 ‘왜 지금 고양이가 그토록 이슈인가’라는 질문이 나왔고, 한 발표자의 즉각적인 대답은 “(그야) 귀여우니까요”였다. 예상대로 이 답변은 모든 이의 동의를 얻는 데 실패했다. 그건 아닌 것 같다는 반응들이 여기저기서 목격되었기 때문이다. 그 반응들은 반드시 고양이가 귀엽지 않아서라기보다는 질문에 대한 답변으로서 그의 답변이 뭔가 충분하지 않은 것 같다고 말하는 듯했다.

애완동물 ‘브리딩 산업’
동물들은 사람들을 위해
사람들에 의해 만들어진다

이처럼 귀여움의 이면에는
지배와 통제가 도사리고 있다
그러나, 시대에 따라
미키가 달라진 것처럼
애증의 한계점은 움직이는 것

한국 사회에서 지금 그토록 귀여움의 아이콘이 되어버린 고양이라는 동물은 불과 이십년 전만 해도 ‘혐오’의 아이콘이었다. 길고양이가 예전에는 ‘도둑고양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는 사실은 고양이 자체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급작스럽게 변했음을 방증한다. 한국 고양이의 갑작스러운 신분 상승에서 우리는 애정과 혐오, 귀여움과 징그러움 사이의 한계점이 고정된 것이 아닌 항상 움직이는 것, 필연적인 것이 아닌 우연적인 것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인공적 귀여움의 최대치를 보여준다는 큐피인형과 처음 만들어졌을 때 어린아이들을 울릴 것으로 염려된 E.T.의 차이는 눈에 보이는 것만큼 크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필자 전의령

[전문가의 세계 - 전의령의 동물이야기] (10) 귀여움의 이면은 지배와 통제…‘펫’은 애정과 지배의 조합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채플힐) 인류학과에서 한국의 시민사회가 이주와 다문화에 대해 담론화하는 방식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신)자유주의 통치성, 반다문화와 우익 포퓰리즘, 동물과 생정치에 관한 논문들을 써왔으며,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연결되어 있다는 인류학적 믿음 하나로 다양한 연구 주제를 밀어붙이고 있다. 현재 전북대 고고문화인류학과 조교수로 강의와 연구를 병행 중이며, 전주와 파주를 오가며 세 마리의 고양이와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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