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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 되찾은 동물, 고심 끝의 방생…동물은 보냈어도 걱정은 보내지 못했다

2019.09.05 20:46 입력 2019.09.05 20:48 수정
이준석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 재활관리사

재활을 거쳐 야생으로 방생되는 어린 너구리가 케이지에서 나오고 있다.

재활을 거쳐 야생으로 방생되는 어린 너구리가 케이지에서 나오고 있다.

장마도, 태풍도 지나간 여름의 끝자락에 한풀 꺾인 더위만이 남았습니다. 야생에서도 여름과 함께 번식기의 끝이 보입니다. 가끔 번식을 늦게 시작했거나, 2차 번식으로 태어난 어린 동물들이 구조되긴 하지만 6, 7월에 비해 현저하게 어린 동물의 조난이 줄어들었습니다. 몇 주 전까지 충남야생동물구조센터의 가장 바쁜 업무가 조난당한 야생동물의 구조였다면 요즘은 구조한 야생동물의 재활과 방생입니다. 여름에 구조된 수많은 야생동물들이 무사히 치료를 끝마치고 재활을 거쳐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전선에 충돌해 날개와 다리가 부러진 가마우지와 괭이갈매기 등 많은 동물들이 오랜 치료와 재활을 끝마치고 야생으로 돌아갈 날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많은 어린 동물들이 무럭무럭 자라 차례대로 야생으로 돌아가고 있습니다.

구조했던 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순간이 야생동물 구조센터의 직원으로서 가장 뿌듯하고 가슴 벅찬 듯합니다. 무사히 성장해 야생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오랜 기간 치료와 재활을 거쳐 야생으로 뛰쳐나가는 모습은 언제 봐도 아름답고 가슴 벅찬 장면이죠. 하지만 모든 방생이 가슴 벅차고 행복한 순간인 것은 아닙니다. 야생동물구조센터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방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집니다. 야생동물을 야생으로 돌려보내는 것은 상자를 열어 내보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올바르지 못한 방생은 오랜 시간 진행된 치료와 재활을 물거품으로 만드는, 책임감 없는 유기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많은 것을 고민해야 합니다.

우선 해당 동물이 야생으로 돌아갈 수 있는 상태인지 점검이 필요합니다. 조류에겐 당연히 비행이 가장 중요합니다. 직선으로 원활하게 비행이 가능한지, 장애물을 피할 수 있는지, 정확하게 착지가 가능한지, 비행의 높이와 속력까지 많은 것을 평가해야 합니다. 비행 외에도 시력에 문제는 없는지, 맹금류의 경우 사냥을 위해 발을 사용하는 데 문제는 없는지, 물새의 경우 헤엄과 잠수의 가능 여부 등 종마다 다른 평가항목이 있습니다. 포유류도 마찬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고라니의 경우 달리는 데 문제가 없는지, 높이 뛰어올라 무사히 착지할 수 있는지 등을 살펴봅니다. 어린 동물은 성장 상태, 사람에 대한 경계심, 스스로 먹이를 구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유심히 살펴봐야 하는 요소입니다.

야생에서의 삶에는 다양한 변수가 있고 워낙에 많은 위험이 있기 때문에 방생 전 꼼꼼한 확인이 필수입니다. 평가의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개체마다 필요한 평가들을 진행하지만 이러한 평가들이 늘 정확하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평가가 이루어지는 공간이 야생과 동일하지 못한 점, 오랜 시간을 들여 평가를 진행하기엔 현실적으로 부족한 시간과 인력에다 이 모든 것들이 이뤄지더라도 야생의 변수를 고려한다면 정확한 판단은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방생하는 개체마다 GPS 추적장치를 부착해 방생 후의 생존을 확인할 수 있다면 판단이 훨씬 정확하고 수월해지겠지만, 이 또한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이러한 판단이 더욱 부담스러운 이유는 방생할 수 없는 야생동물에겐 안락사라는 결말밖에 남지 않기 때문입니다.

[기고]건강 되찾은 동물, 고심 끝의 방생…동물은 보냈어도 걱정은 보내지 못했다

오랜 판단 끝에 방생이 결정되었다면 언제, 어디서 방생을 진행할지 고민해야 합니다. 언제 구조돼 얼마나 오랜 기간 치료를 받았는지, 구조한 현장의 주변 환경과 방생할 동물의 생태적 특성까지 고려해 방생 시기와 장소를 결정하게 되는데 수많은 농경지, 전선, 도로, 농수로 등으로 인해 서식지가 쪼개지고 쪼개져 조류든, 포유류든 마음 편히 방생할 장소가 많지 않습니다. 특히나 포유류의 방생은 정말 어렵습니다. 구조센터에서 주로 구조하는 포유류는 고라니와 너구리입니다. 두 종 모두 사람들에게, 특히 농민들에게 환영받는 동물은 아닙니다. 그렇기에 인가를 피해, 농경지를 피해, 깊고 깊은 산속으로 사람들의 눈을 피해 방생하느라 늘 마음을 졸입니다.

고심 끝에 방생을 하지만 여전히 마음 한편에 자리 잡은 걱정은 사라지질 않습니다. 삶과 죽음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지만 야생의 삶은 더욱 죽음과 가깝게 여겨집니다. 먹이를 구하지 못하진 않겠지, 다시 어미를 만날 수 있을까, 산을 내려가지만 않았으면, 날씨가 나빠지는데 별 탈 없겠지. 오늘도 동물은 떠나보냈지만 끝나지 않는 걱정을 떨쳐내지 못한 채 산을 내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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