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의 보배’ 로스해 지키려면 사람을 막아라

2019.09.05 20:44 입력 2019.09.05 20:48 수정

한·일 및 남극의 해양보호구역에 관한 국제 워크숍

2018년 1월 남극 애드미럴티만의 아델리펭귄과 젠투펭귄 서식지 모습. 왼쪽에는 과학자들이 설치해놓은 관찰 카메라가 보인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2018년 1월 남극 애드미럴티만의 아델리펭귄과 젠투펭귄 서식지 모습. 왼쪽에는 과학자들이 설치해놓은 관찰 카메라가 보인다. 미국 해양대기청(NOAA) 제공

3년 전부터 어업 활동 제한하면서
어업자원 증가 ‘스필오버 효과’ 입증
국내선 구역 지정만 하고 남획 계속

한국, 남극서 크릴 어획 세계 2위
조업 이익만 좇지 말고 보호 나서야

아델리펭귄의 38%, 황제펭귄의 26%, 웨들바다표범의 45%, 범고래의 50%. 남극을 상징하는 동물들의 세계 전체 개체 수 중 남극 로스해(Ross Sea) 안에 서식하는 비율이다. 서식 비율이 높다보니 전문가들은 로스해를 잘 보전하는 것이 곧 이들 동물 보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고 평가한다.

로스해는 뉴질랜드에서 남쪽 방향에 있으며 남극 대륙 안쪽으로 깊숙이 들어가 있는 바다이다. 남극 바다 중에서도 인간의 영향을 비교적 덜 받아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으로 꼽히는 곳이기도 하다.

로스해는 이들 동물의 서식 비율만 봐도 엄정한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전할 필요가 있는 지역이다. 그러나 실제 국제사회가 로스해를 해양보호구역(Marine Protected Area·MPA)으로 지정해 어업활동을 제한하기 시작한 것은 불과 3년 전 일이다.

‘남극의 보배’ 로스해 지키려면 사람을 막아라

남극해양생물자원보존위원회(CCAMLR)에 참여하고 있는 세계 25개국은 2016년 10월 로스해를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는 데 합의했다. 이후 CCAMLR 회의에서는 웨들해, 남극반도 주변 등도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하자는 제안이 제기됐지만 일부 회원국들의 반대로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CCAMLR에서 이들 제안이 통과되지 못한 이유는 바로 남극 주변 바다에서 크릴, 이빨고기 등을 어획하고 있는 국가들의 반대 때문이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로스해에 대한 보전조치를 강화해야 한다는 권고안이 나온 1997년부터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나서야 로스해가 해양보호구역으로 지정된 것 역시 남극에서 활발히 조업을 하고 있는 국가들의 해양보호구역 반대 때문이었다.

지난달 28일 서울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한국, 일본 및 남극의 해양보호구역에 관한 국제 워크숍’에서는 공해상의 세계 최대 면적인 해양보호구역으로 꼽히는 남극 로스해 해양보호구역의 현황과 한국·일본의 해양보호구역 현황, 한국·미국의 로스해 연구 현황 등을 공유하고, 남극의 해양보호구역 지정의 효과, 추가적인 해양보호구역 지정 움직임 등에 대한 토론이 이뤄졌다.

국내외 환경단체와 전문가 등이 참석한 이 워크숍은 국회 오영훈·이상돈 의원과 시민환경연구소, 환경운동연합, 남극보호연합(ASOC) 등이 공동 주최했다.

이날 워크숍에서는 특히 남극 로스해의 해양보호구역을 지정한 뒤의 ‘스필오버(spillover·넘침) 효과’도 언급됐다. 과학자들은 보호구역 내에서 조업이 금지되면서 증가한 물고기들이 주변 지역으로 이동해 주변 지역의 어업자원을 증가시키는 효과를 스필오버 효과라고 부른다. 국내에는 아직 덜 알려져 있지만 해양보호구역 지정이 해당 지역의 생물다양성을 높일 뿐 아니라, 주변 지역의 물고기 개체 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쳐 결과적으로 어업에도 도움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으로도 증명된 사실이다.

로스해에 서식하는 이빨고기.

로스해에 서식하는 이빨고기.

남극보호연합 클레어 크리스천 사무총장은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해양보호구역으로부터 비보호구역에 물고기들이 이동하는 스필오버 효과에 대한 연구 결과가 다수 존재한다”고 말했다. 그는 “해양보호구역이 광범위한 지역에 걸쳐 지정돼 있고, 강한 규제를 적용해 금어를 실시하고, 이 같은 규제가 충분히 오랜 기간 유지하는 경우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지고, 물고기 개체 수도 크게 증가하는 등의 효과를 나타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지정한 해양보호구역이 28개 존재하지만 대부분 지역에서 어민들의 조업이 계속 이뤄지고 있는 국내에서는 특히 스필오버 효과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내 연안은 치어까지 잡아들이는 남획으로 인해 어족 자원량이 빠르게 감소하고 있는 상태다.

과학자들은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바다에서 현재와 같은 수산자원 남획이 계속될 경우 2050년에는 식탁 위에 생선이 올라오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이미 실효성이 증명된 스필오버 효과를 국내에서도 실현하기 위해서는 바다 생태계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지역들에서 조업을 강하게 제한할 필요가 있다.

또 워크숍에서는 한국이 남극의 해양보호구역 지정에 있어 지금까지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보다 적극적으로 보호구역 지정을 추진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구의벗 일본지부의 랜디 헬튼은 “한국은 남극에서 노르웨이 다음으로 크릴을 많이 어획하는 나라로, 연간 어획량이 5만t에 달하는 만큼 남극 보전에 있어서도 책임이 크다”고 말했다. 크릴은 외형이 작은 새우를 닮은 동물플랑크톤으로 남극 생태계 먹이사슬에서 가장 아래인 식물플랑크톤 바로 위에 위치한 생물이다.

김은희 시민환경연구소 연구위원은 “한국은 불과 몇 년 전 남극해에서 불법조업으로 국제적 망신을 당한 바 있고, 2017년에도 CCAMLR의 보존 조치를 심각하게 위반한 업체가 있었지만 해당 업체의 불법어획물 판매를 방치하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위원은 “한국이 모범적인 원양어업국가가 되려면 조업의 이익만을 추구할 것이 아니라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잘 보전하는 국제적 논의에서도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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