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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하고 유별난 새 ‘은신의 고수’ 호사도요를 소개합니다

2019.09.05 20:44 입력 2019.09.05 20:48 수정
한동욱 PGA에코다양성연구소 소장

천연기념물 호사도요. 에코코리아 제공

천연기념물 호사도요. 에코코리아 제공

요즘 말로 내가 가장 ‘최애(가장 사랑)’하는 새를 꼽으라고 한다면 호사도요다. 왜냐하면 습지를 연구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초보 시절 처음 내 손으로 구조했던 새이기 때문이다. 당시 호사도요는 날개뼈가 그물에 걸려 부러져 있었고, 탈진한 상태였다. 그 작은 생명체를 처음 감싸 안았을 때 사람보다 높아 유난히 따듯하게 느껴지는 체온과 불안, 고통에 떠는 가벼운 전율이 그대로 내 몸에 전해져 왔다. 그때의 경험이 나를 생명보전활동으로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항습지에서 호사도요를 만난 것은 2004년 초여름 기운이 완연하던 때였다. 아침에 군 장교로부터 다급한 연락이 왔다. 병사들이 물골을 수색하다가 다친 새를 발견했는데 아직 살아 있다는 것이다. 급히 한강하구교사모임의 박병삼 선생님과 장항통문으로 가서 새를 받았는데 아직까지 장항습지에서 발견된 적이 없는 호사도요였다.

호사도요는 희귀하고, 습성이 유별나 동물행동학계에선 꽤 유명한 녀석으로, 지금은 천연기념물이지만 당시엔 보호종이 아니었다. 조류 연구자들의 큰형님이었던 고 김수일 한국교원대 교수께 연락을 드렸다. 급한 대로 이러저러한 조치를 취하라고 일러주셨다. 그리고 일반 동물병원에서는 치료할 수 없을 테니 대학원생을 보내겠다고 하셨다.

호사도요는 교원대로 옮겨졌고 하루가 지나 살리지 못해 미안하다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 목소리 너머로 안타까움이 물씬 묻어 나왔고, 애써주셔서 감사하다고 오히려 위로의 말씀을 드렸다. ‘역시 마음이 따뜻한 조류학자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 교수께서 박제로 만들어 학생들 교육에 활용하자고 하셔서 흔쾌히 그러자 했다. 며칠 후 호사도요의 위 내용물을 전해오셨는데, 모래 몇 조각과 씨앗 한두 개가 전부였다. 먹이활동을 거의 하지 못하고 그물에 걸려 고생을 했을 것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짠했다. 그렇게 장항습지의 호사도요는 교원대 황새생태연구원 한쪽에 자리를 잡았다.

호사도요는 수컷의 자식사랑으로 유명하다. 보통 새들은 암컷이 알을 품고 새끼를 키우거나 암수가 번갈아 가면서 새끼를 키우는데 호사도요는 수컷 혼자 육아를 하는, 요즘 말로 ‘아빠 독박 육아족’이다. 반대로 암컷들은 일정한 영역을 가지고 여러 마리의 수컷과 짝을 맺으며 알을 낳으면 나 홀로 훌훌 떠난다. 이른바 일처다부제다.

깃털 색깔도 다른 새들과 달리 수컷보다 암컷이 화려한데 호사도요란 이름도 암컷의 화려한 번식깃을 보고 붙여진 이름이다. 이에 비해 수컷은 평범함 그 자체로 수수한 깃털을 가졌다. 수컷이 혼자 알을 품고 포식자의 눈을 피해 숨어야 하니 눈에 잘 띄지 않는 깃털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습지식물이나 벼가 자라는 논, 미나리꽝 등에 들어앉아 있는 수컷을 찾기란 그래서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암수의 몸 색깔이 뒤바뀐 것처럼 성 역할도 반대다. 조류는 흔히 수컷이 화려한 깃털로 암컷을 유혹하지만 호사도요는 암컷이 수컷을 유혹한다. 암컷의 깃털은 수컷들의 선택을 받기 위해 화려하게 진화했다. 호사도요의 성 역할은 초기 인류의 일처다부제와 유사한 혼인구조를 가지고 있어 충분한 연구 가치가 있다. 그러나 워낙 은신의 고수들이라 둥지를 찾기도 쉽지 않고, 개체 수도 많지 않아 연구자들의 접근이 쉽지 않았다. 기록에 의하면 국내에서 호사도요는 1887년 9월 처음 확인됐다. 그러나 이후 호사도요는 2000년에 와서야 서산 천수만에서 다시 발견됐다. 낙동강 하구, 고창, 강화 등지에서 관찰되고 있지만 아직도 그 생태는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 있다.

[기고]희귀하고 유별난 새 ‘은신의 고수’ 호사도요를 소개합니다

한강 하구 장항습지의 맹렬했던 태양빛도 늙어간다. 이맘때쯤이면 습관적으로 장항습지로 들어오는 물골을 둘러본다. 조수간만의 차이에 의해 물이 드나드는 것이니 갯골이란 표현이 맞겠지만 짠물보다는 거의 민물에 가까우니 물골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어민들은 해마다 장마 전후면 물골에 그물을 치고 밀물에 버드나무숲으로 들어오는 뱀장어를 잡았다. 물골은 버드나무숲에게는 동맥과 같아서 우리 몸에 산소를 공급해 주듯 습지에 물을 공급하여 생기를 불어넣어 주는 핏줄이다. 이 핏줄을 따라 많은 물고기와 새와 게와 식물들이 더불어 살아간다. 뭇 생명들이 오가는 곳인 만큼 혹시나 호사도요처럼 뜻밖의 피해자가 생기지 않을까 늘 조심스럽다. 올해는 물골에서 건강한 호사도요를 만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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