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3월 벚꽃이 우울했던 당신에게, ‘재연결’을 처방합니다

2021.05.15 06:00 입력 2021.05.16 14:05 수정

기후위기를 마주하며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바로 지금, 이 길로 넘어가라’고 알려주는 신호등은 없다. 고통을 행동에너지로 옮기는 길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을 도와주는 ‘재연결 작업’에 참여한 이다예, 조민지, 박시호씨(왼쪽부터)가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길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나란히 건너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기후위기를 마주하며 느끼는 부정적 감정은 어떻게 넘어서야 할까. ‘바로 지금, 이 길로 넘어가라’고 알려주는 신호등은 없다. 고통을 행동에너지로 옮기는 길은 자기 안에서 찾아야 한다. 이 과정을 도와주는 ‘재연결 작업’에 참여한 이다예, 조민지, 박시호씨(왼쪽부터)가 지난 9일 서울 중구 정동길의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나란히 건너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꽃을 보는 게 슬픈 일이 될 줄 몰랐다. 4월에 피던 동네 벚꽃이 3월에 피었다. 서울에선 지난 100년 사이 가장 개화가 빨랐다고 했다. ‘봄의 전령’이 언젠가부터 ‘기후위기의 전령’이 됐다. “아름다운 장면인데 기쁘지가 않고, 우울했습니다. 사람들이 사진 찍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니 더 힘들고요. 꽃을 보며 이런 마음을 느껴야 한다는 게 슬펐어요.”

하모씨는 지역에서 생태적 삶을 모색하는 활동가다. 포장재 없는 채소와 중고 물품을 사고, 친구들과 밭을 가꾼다. 무력감은 시시때때로 덮친다. 지난해 이상기후로 텃밭 토마토가 쩍쩍 갈라졌다. 열심히 한다고 하는데, 변화는 더디다. 노년의 세상은 상상이 안 간다. ‘나는, 그리고 사랑하는 존재들은 무사할까.’ 미래를 내다보는 게 의미 없는 일 같다.

기후위기는 해롭다. 지구 생명체들의 물리적인 면을 무너뜨리는 것과 함께 인간의 정신을 마모시킨다. 일회용품 안 쓰기를 실천하다가 ‘이런다고 뭐가 바뀔까’ 회의감에 빠져본 사람부터, 환경단체 활동가와 학자까지 크고 작은 무력감과 불안을 느낀 이들이 적지 않다.

해외에선 10여년 전부터 ‘생태불안(eco anxiety)’ ‘기후슬픔(climate grief)’ 등의 용어를 붙인 연구가 활발하다. 무력감, 슬픔, 분노, 불안, 절망 등 기후위기가 정신건강에 주는 부정적 영향에 주목한다. 한국에선 ‘기후우울’이라는 용어로 해석하는데, 관련 연구는 아직 드물다. ‘우울’이라는 용어를 쓴다고 해서 치료가 필요한 ‘병’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환경운동가들은 말한다. 생존에 위협을 느낀 존재들의 당연한 반응으로 본다.

무력감과 고통을 넘어가는 데는 지렛대가 필요하다. 환경운동 시민단체인 녹색연합은 ‘알수록 답답하고, 차라리 눈을 감고 싶고, 지쳐버린’ 사람들을 위해 지난 6일부터 ‘재연결 작업’을 시작했다. 50여년 전 미국의 생태철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조애나 메이시가 만든 작업이다. “나와 세상이 서로 연결돼 있음을 다시 인식”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고통을 ‘세상과 함께 괴로워하는 능력’으로 바라보는 게 특징이다. 기후우울을 넘어 ‘재연결’을 꿈꾸는 이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픈 지구를 위한 노력의 무력함…그 아픔을 오히려 에너지로 삼았죠”

그래픽 | 성덕환 기자

그래픽 | 성덕환 기자

이해·치유받고 싶은 마음에
자연과 인간의 끊어진 고리를 다시 잇는
‘재연결 작업’에 참여한 활동가들

지난 6일 저녁, 화상회의 플랫폼 ‘줌’에 접속한 ‘파도’(활동명)가 조용히 눈물을 흘렸다. 녹색연합 ‘재연결 작업’의 첫날 참여를 위해 접속한 참이었다. 화면에선 재연결 작업 창안자인 조애나 메이시가 작업의 의미를 설명하는 짧은 영상이 나왔다.

“세상을 향한 고통을 존중하는 일을 통해 우리가 확실하게 지구와 연결돼 있다는 걸 알게 될 거예요. ‘내가 세상과 함께 아파할 수 있구나. 나에게 그런 힘이 있었어. 나는 정말 큰 존재이구나’. (그렇게 인식하고 나면) 무엇도 나를 멈추지 못합니다.”

설명을 듣는 순간 울컥했다. 대학 때부터 환경운동 동아리를 만들어 활동하면서 자주 절망해왔다. 큰 소리로 외쳐도, 세상은 들어주지 않는 것 같았다. ‘세상을 바꿀 수 없겠구나. 이러다 내가 먼저 부러지고 말겠구나’ 싶어 활동을 중단했다. “내가 지구를 생각하며 느끼는 고통을 받아들이게 하고, 그 고통을 긍정하는 얘기를 들으니 눈물이 났어요. 마음앓이 해온 시간들을 이해받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이날부터 시작된 재연결 작업에는 그를 포함한 15명이 참여한다. 조애나 메이시가 1970년대에 창안한 이후, 세계 곳곳에서 작업이 진행돼왔다. 메이시는 달라이 라마, 틱낫한 스님 등의 지지를 받아 온 미국의 생태철학자이자 환경운동가다.

재연결 작업이 한국에 소개된 지는 몇 년 안 됐다. 작업의 골자는 여러 존재와 연결된 자신을 확인하면서, 자연과 인간의 끊어진 고리를 다시 잇는 것이다. 메이시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생명으로 돌아가기>에 과정이 자세히 소개돼 있는데, 고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은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이 모든 것(환경문제)은 우리가 자신을 이웃과 세상 만물로부터 분리된 존재로 여기며 오랫동안 살아온 데서 연유한다. 궁극적인 활로는 ‘인간중심주의’라는 자폐적인 세계관에서 해방되는 데 있음이 틀림없다.”

통상은 오프라인에서 만나 2박3일 정도 진행한다. 코로나19를 고려해 이번엔 일주일에 한 번씩 5주 동안 화상회의 플랫폼에서 만난다. 기후활동가인 정혜선씨가 녹색연합 활동가인 이다예씨와 함께 안내자로 나섰다.

■나의 울음

‘결국 인간이 사라져야 지구가 깨끗해질까’
‘막지도 못할 것을 막겠다고 하고 있나’ 자책하다 우울

참가자들은 각자 다른 경로로 환경문제를 인식하고, 또 좌절을 경험했다. 환경 관련 시민단체나 교육활동을 하는 이들이 다수 포함돼 있다. 활동하는 방식도, 자신이 느낀 ‘기후우울’의 양상과 정도도 다르지만 여러 번 마음이 무너졌던 경험을 공유했다.

박시호(활동명)씨는 공연예술단체를 운영한다. 6년차 다이버이기도 하다. 물속에서 고래를 만나고 싶어 다이빙을 시작했다. 2019년, 죽은 고래 기사가 많았다. 3월 필리핀, 4월 이탈리아, 12월 스코틀랜드 해변에 떠밀려 온 죽은 고래들의 배 속에선 인간이 만든 쓰레기가 많게는 100㎏까지 쏟아졌다. 매번 짓고 부수는 무대, 공연의상과 분장 도구…. 창작활동 중 나오는 쓰레기에 죄책감이 들었다. “셰익스피어, 체호프 얘기를 잠깐 내려놓고 지금은 코 밑까지 닥친 미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고개를 끄덕인 예술가들을 모아 환경을 생각하는 창작자들의 모임 ‘지구숨숨’을 꾸렸다. 해양환경에 대한 고민을 두 어린이가 고래 배 속에 들어가 쓰레기와 이야기를 나누는 라디오극 <요나 이야기>에 담아냈다.

때로는 힘이 빠진다. “인스타그램이 환경 관련 친구들로 채워지니까 ‘제2공항 짓는다’ ‘산 허물어 대규모 태양광 건설한다’ 같은 피드를 계속 보게 돼요. 아무리 반대해도 끝날 것 같지 않고, 무력감을 느끼죠. ‘모르고 살았으면 좋았을까’ ‘결국 인간이 사라져야 지구가 깨끗해지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으로 치닫게 될 때도 있고요.”

조민지씨는 일반 직장에 다니다가 4년 전 비영리단체인 아름다운가게 활동가로 방향을 틀었다. 환경 등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보통’으로 생각하는 사람들과 일을 하고 싶었다고 했다. 주기적으로 자책감이 찾아온다. 2019년 성공적인 기후위기 대응사례로 꼽히는 영국 토트네스 전환마을에 방문했을 즈음이다. “탄소를 엄청나게 쓰는 비행기를 타고 온 게 맞는 행동인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어요. 많은 것을 바꾸지 못하고 있다는 자책도요.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것을 누가 바라는가’ 생각해보다가도, 종종 자책하는 상태로 돌아가곤 합니다.”

이다예씨는 녹색연합에서 일한 지 1년6개월쯤 됐다. 지난해 재연결 작업을 경험한 뒤, 이번에 공동안내자로 나섰다. 활동가가 되기 전 스스로 ‘암흑기’라 할 정도의 시간을 보냈다. 유럽으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며 동물권과 귀농에 관심이 많아졌다. 귀국 뒤엔 우울감이 덮쳤다. “주변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고 저만 혼자 변해서 많이 우울했어요. 할 수 있는 것도 없어 보였고요.” 진로 고민에 기후위기로 인한 불확실성이 더해졌다. “세상이 10~20년 뒤에도 온전할 거라고 장담할 수 없으니, 미래를 그리기 어려웠어요. 그래도 뭔가 해보려고, 녹색연합 면접을 봤어요. 면접 후 돌아가던 길에 지구가 티핑포인트(급변점)를 넘었다는 기사를 읽었어요. ‘막지도 못할 것을 막겠다고 활동가가 되려 하는구나’ 싶어서 울면서 집에 갔어요. 암흑기였죠.”

활동가를 향한 정형화된 시선과 자각은 종종 죄책감을 불러온다. 조씨는 “환경단체 등 비영리단체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쏟을 수 있는 에너지는 한정적일 수밖에 없는데 ‘너는 활동가이니까’라며 온갖 활동을 하는 사람으로 대하는 것이 힘들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내가 이런 생각을 가져도 되나’라고 돌아보게 된다”고 말했다.

이번 재연결 작업을 주로 이끄는 기후활동가 정혜선씨는 “이런 감정들에 ‘기후우울’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작업은 의미가 있다”면서도 “위협을 느끼는 생명체의 건강한 반응이기 때문에 병리작용은 아니다. 오히려 고통을 느끼지 못하거나 피하려는 ‘무감각’이 더 위험하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환경운동 전면에 선 이들의 마음을 살피는 일이 필요하다고 본다. “저 스스로도 얼마 전까지 ‘기후위기’라는 단어가 꼴도 보기 싫고 부담스럽게 느껴지곤 했어요. 많은 활동가들이 이런 감정을 느끼면서도, 소리내어 말하기 어렵습니다. 듣고 싶어하지 않는 말을 듣게 하려고 앞장서는 청소년·청년 활동가들의 속이 어떨지 걱정되고 마음이 많이 쓰입니다.”

연결되고 싶은 마음, 이해받고 싶은 마음, 치유받고 싶은 마음, 다른 이들에게 확장하고픈 마음 등이 재연결 작업의 문을 두드리게 했다. 하모씨는 “1~2년 전부터 주변에 재연결 작업을 경험한 친구들이 생겨서 관심이 있었다”며 “고통을 바라보는 법과 지구와 연결되는 경험을 통해 힘을 받고 싶어 신청하게 됐다”고 말했다.

■지구의 울음

“울컥하고 답답한 감정,
내 울음 아닌 나와 연결된
지구의 울음이라 생각…
자연과 깊이 닿아 있는 사람이
아픔 안 느끼면 이상한 거죠”

정혜선씨는 앞서 영국과 호주 안내자를 통해 재연결 작업을 경험해봤다. 그는 기후우울을 다루는 강연을 할 때 틱낫한 스님의 “내 안에서 땅(지구)이 우는 소리를 듣는 게 중요하다”는 말을 자주 인용한다. 그 역시 기후위기를 알게 되면서 공포와 불안, 무력감 등을 느꼈다. 2016년 덴마크 성인 대안학교에서 기후위기를 처음 공부했다. 2018년 유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협의체(IPCC)에서 발표한 ‘지구 온난화 1.5도 특별보고서’에 충격을 받았다. 인류 생존을 위해 1.5도 이내로 기온 상승을 억제해야 하는데, 지금처럼 가다간 1.5도 상승까지 12년 정도밖에 남지 않았다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다. 몇 년에 걸쳐 수많은 전문가가 ‘합의’한 숫자로, 보수적이라는 평가도 있다.

그의 충격과 무관하게 사회는 대전환에 나서지 않았다. “소름끼치는 침묵”을 보며 마음이 자주 꺾였다. 그런 때면 ‘땅이 우는 소리’라는 말을 떠올렸다. “울컥하고 답답한 감정이 단순히 나의 울음이 아니라 나와 연결된 지구와 땅과 하늘의 울음일 거란 생각을 했어요. 자연과 깊이 닿아있는 사람이 아픔을 느끼지 않으면 이상한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재연결 작업의 핵심은 이런 ‘연결성’을 돌아보게 하는 데 있다. 작업은 크게 4단계로 구성된다. ‘고마움으로 시작하기 → 세상에 대한 고통 존중하기 → 새로운 눈으로 보기 → 앞으로 나아가기’의 과정이다. 4단계에서 다시 1단계로 돌아가는 나선형 순환을 이룬다.

“반려동물, 숲밭의 생명…‘연결의 경험’ 떠올리면 헤쳐나갈 수 있어요”

그래픽  | 현재호 기자

그래픽 | 현재호 기자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은’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 준 사람은’…
주변의 고마운 존재 돌아보며 굳은 마음 ‘밭갈이’

생태철학과 불교철학이 밑바탕에 깔렸지만, 교리나 이념을 내세운 작업은 아니다. 작업은 누구나 활용해볼 수 있도록 구체적으로 짜였다. 문제를 한 방에 해결할 만병통치약이나 청사진, 지구 생명을 제때 구할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은 없다. “그런 보장이 가능했다면 굳이 노력할 필요도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각자 스스로를 들여다보게 한다.

각 단계는 일방적 강의가 아닌, 여러 참여 활동으로 구성된다. 첫 단계인 ‘고마움으로 시작하기’에선 주변의 고마운 존재를 돌아보게 하는 활동을 한다. 지난 6일 저녁 첫 시간에는 ‘고마움으로 시작하기’가 일부 진행됐다. 빈 칸이 있는 3개의 열린 문장을 각자 생각한 뒤, 3명씩 작은 그룹으로 쪼개져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내가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은 __입니다’ ‘어렸을 때 즐거움을 느꼈던 장소는 __ 입니다’ ‘내가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 사람은 __입니다’ 등의 문장이다.

하씨는 ‘살아있다고 느낀 순간’으로 얼마 전 치른 ‘시농제’를 말했다. ‘숲밭’(숲의 생태를 본뜬 밭)을 함께 일구는 친구들과 한 해 농사를 시작하며 기원하는 자리였다. “땅 아래 미생물, 나무 위의 새, 밭의 작물과 나무 같은 모든 존재들에게 감사하면서 ‘앞으로 자주 오가며 시끄럽게 할 거야. 잘 부탁한다’고 얘기하는 자리였어요. 악기를 연주하고 춤을 추며 밭을 한 바퀴 돌았어요. 생의 감각이 살아난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박씨는 ‘소중한 사람임을 느끼게 해준 사람’을 ‘존재’로 바꿔 답했다고 전했다. “저에게 고마운 존재는 고양이였거든요. 단체 운영 외에도 환경책 읽기 북클럽 호스트, 지구를 걱정하는 이들을 연결하는 온라인 카페 ‘지구별숨숨마을’ 이장 등을 맡고 있어요. 스스로 ‘지치면 안 돼, 기대에 부응해야지’라는 책임감이 계속 생겨요. 같이 사는 고양이 두 마리는 저에게 아무 기대 없이 본능에 따른 행동들을 하는데, 그걸 바라만 보고 있어도 따뜻한 위로가 돼요.”

참가자들은 자신의 경험을 말하는 동시에, 다른 사람들이 말하는 고마운 존재들에 귀를 기울였다. 3시간가량의 첫 과정을 경험한 이들은 각자 작은 의미들을 발견해갔다. 실망과 좌절을 반복하며 굳어진 마음을 다시 들여다보게 됐다는 얘기를 여럿이 들려줬다.

“다른 분들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간 무던하게 생각했던 것들을 환기하게 됐어요. 너무 딱딱하게 굳어 있으면 아무리 내리쳐도 바뀌지 않잖아요. 굳어진 마음에 ‘밭갈이’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를 정말 살아있게 하는 게 무엇인지, 감사한 게 무엇인지 꼽아본 것도 도움이 됐습니다.”(조민지씨)

처음 안내자가 돼본 이씨 역시 ‘무뎌짐’과 ‘깨어남’을 말했다. “지난 1년간 활동을 하며 굉장히 무뎌졌어요. 일하면서 환경 관련 정책의사결정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계속 보거든요. 그러면 정말 세상은 안 바뀌는 것 같아요. 어느 순간부터는 그런 말을 봐도 아무런 감정이 느껴지지 않더라고요. 특히 지난해 긴 장마 이후로 그랬어요. 재연결 작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감각을 깨우는 중인 것 같아요. 둔감해진 세포를 다시 깨우는 느낌이 들었어요.”

안내자인 정씨는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고 감사하는 법을 아는 게 기본이기 때문”이라고 첫 단계의 의미를 설명했다. “우리가 이 땅에 온 생명이라는 이유로 거저 받은 것이 많습니다. 삶을 살아볼 기회, 꽃과 새를 보는 시간 등을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 받았죠. 자본주의는 대가 없이 받은 것을 계속 잊게 합니다. 생명으로서 거저 받은 고마운 존재들을 자각하면, 많은 게 다시 보일 수 있어요. 감사는 내가 단단히 뿌리내릴 수 있게 하는 것이면서 실은 매우 ‘혁명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고통 바라보기

5-2 ‘재연결 작업’에 참여한 조민지, 박시호, 이다예씨(왼쪽부터)가 ‘열린 문장’을 채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윤중 기자

5-2 ‘재연결 작업’에 참여한 조민지, 박시호, 이다예씨(왼쪽부터)가 ‘열린 문장’을 채운 손팻말을 들고 있다. 강윤중 기자

‘지금 가장 가슴 아픈 얘기는’…
세상에서 느끼는 고통을 표현하며
서로 연결돼 있다는 증거 인식

고마움을 돌아본 뒤에는 두 번째 단계로 고통을 바라본다. 세상에 대한 자신의 고통을 존중하면서, 이를 ‘세상과 함께 괴로워하는 능력’으로 인식하게 하는 단계라고 했다. 기후위기 때문에 느끼는 고통을 서로가 연결돼 있다는 증거, 그럼으로써 행동하게 하는 힘으로 받아들이게 하는 것이 목적이다.

이 때문에 14가지 참여 활동 중에는 자신이 느끼는 고통을 거리낌 없이 표현하게 하는 활동이 많다. 가령 듣기만 해도 진절머리가 나는 소식은 무엇인지, 지금의 세상을 살며 가장 가슴 아픈 얘기는 무엇인지, 그런 때 느끼는 고통을 어떻게 피하려 하는지 등의 질문을 던지고 표현하도록 한다.

사라지는 존재들을 돌아보는 활동도 포함된다. ‘애도의 돌무덤’이라는 프로그램은 이제 사라지고 없는 장소나 존재를 상징하는 물건을 모아놓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나누며 고별하는 활동이다. ‘사라져가는 벗에게’는 멸종위기에 놓인 생물 종을 하나씩 호명하도록 한다. 죄책감보다는 유일무이한 종의 아름다움을 기리면서 슬픔을 해소하는 데 방점을 둔다. 여기엔 메이시가 쓴 동명의 시도 활용된다.

“섬개개비, 코르시카산 호랑나비, 큰뿔야생양, 인도비단뱀, 짖는원숭이, 향유고래, 흰긴수염고래/ 고래 형제여, 우리에게 남은 이 시간 동안 나를 저 깊이 데려가다오. 우리 어머니 대양의 깊은 곳에서 나는 한때 아가미로 숨 쉬고 지느러미로 헤엄쳤으니. 아주 먼 옛날 바다의 소금이 아직도 내 눈물에 흐르는구나. 이제 눈물로는 부족하니 노래가 좋겠다. 내 마음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이 벅찬 슬픔에, 내 목이 버텨낼 수 없을 만큼 이 격한 분노에 맞는 노래가 좋겠다.”(‘사라져가는 벗에게’ 중에서)

다음으로는 3단계인 ‘새로운 눈으로 보기’로 나아간다. 여러 존재와 연결돼 있음을 이해한 뒤에, 새로운 관계를 생각해보도록 하는 ‘전환 단계’라고 했다. 자신뿐 아니라 반대 의견을 가진 사람, 우리의 선택으로 영향을 받는 비인간 존재들과 미래 세대 등의 입장을 고루 생각하게 하는 프로그램 등으로 구성된다. 이어 마지막 단계인 ‘앞으로 나아가기’에서 일상에서 자신이 해나갈 역할을 찾는다. 앞으로 지켜나갈 다섯 가지 정도의 약속을 스스로 만들고, 작은 서약식을 하는 활동 등이다. 안내자들은 당장 시작할 수 있는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약속들을 담을 것을 추천한다.

■우리는 연결돼 있다

비인간 존재·미래 세대 등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고
일상서 해나갈 역할 찾아 서약…
기후우울을 넘는 ‘재연결’ 4단계

기후우울을 넘어서는 데 ‘재연결 작업’이 유일한 해법은 아니다. 참가자들은 이미 주기적으로 덮쳐온 기후우울을 여러 방식으로 건너왔다. 때로는 다른 사람의 말이, 때로는 주변의 생명들이 무너진 마음들을 보듬었다. ‘연결된 세상’은 이미 곁에 있었다.

‘연극을 하지 않는 게 지구에 도움되는 것 아닐까, 모두가 활동가가 돼야 하는 건 아닐까’ 고민하던 박씨는 “사람들이 잠시 멈춰서 생각할 수 있도록 해주는 게 창작자들의 역할”이라는 누군가의 말을 듣고 마음을 다잡았다. 비행기를 타고 전환마을을 찾은 데 죄책감을 느낀 조씨는 “네가 하는 활동의 근본 목적을 돌아봐라. 자신의 탓으로 돌리기보다 더 큰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죄책감에서 벗어났다. 이씨는 주말마다 시간을 보내는 숲밭, 거리의 나무 등 여전히 아름다운 존재들을 보며 힘을 얻곤 한다.

오는 6월 재연결 작업 과정이 끝나면, 자신이 어떻게 변화하게 될지 이들도 확신하지 못한다. 정책과 기업, 사회를 굴리는 시스템이 획기적으로 변하지 않는 한, 언제고 슬픔과 무력감을 다시 마주하게 된다는 것도 안다. 다만 이들은 그런 마음이 찾아왔을 때 헤쳐나갈 수 있는 ‘또 하나의 가능성’을 위해, 좀 더 단단한 연결의 경험을 얻어가고 싶다고 했다.

기후위기 앞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나아가는 힘 얻게 돼

“무력감을 덜 느끼기 위해 재연결 작업에 참여하게 됐어요. 다 마치고 난 뒤에는 ‘역시 할 수 있는 게 없어’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로 나아가고 싶어요. 이 모든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가능성은 아직 있고, 이런 사람들이 있고, 아직 감사할 것들이 있으니 해볼 수 있다는 마음을 갖게 되길 바라고 있습니다.”(박시호씨)

조직에서 활동가 ‘공육’(함께 배워나가기)을 맡고 있는 조씨는 “마음이 지쳤을 때 시도해볼 수 있는 또 다른 도구, 또 다른 무기로서 가져갈 수 있을 거라는 기대가 있다”며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해 보면서 확장해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기후위기를 맞닥뜨린 존재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물었다. 하씨는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이런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모든 존재가 무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직접 해보세요>

 환경운동 시민단체 녹색연합이 진행 중인 ‘재연결 작업’은 기후위기에 무력감을 느껴 본 사람들이 시도해 볼 수 있는 프로그램입니다. 미국의 생태철학자이자 환경운동가인 조애나 메이시가 50여년 전 만든 작업입니다.
 작업의 골자는 ‘나와 다른 존재’, ‘인간과 지구’가 서로 연결돼 있다는 것을 다시 인식하게 하는 것입니다. 크게 ‘고마움으로 시작하기 → 세상에 대한 고통 존중하기 → 새로운 눈으로 보기 → 앞으로 나아가기’의 4단계를 거칩니다.
 4단계의 핵심을 정혜선 기후활동가의 감수를 받아 정리했습니다. 메이시가 공동저자로 참여한 <생명으로 돌아가기>를 참고했습니다. 통상 2박3일 걸리는 재연결 작업을 1~2시간 일정으로 압축한 안입니다. 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공간에서 따로, 또 같이 해보세요.

■1단계 - 고마움으로 시작하기
 파괴와 비극을 마주해 두렵고 지칠 때, 마음의 중심을 잡는 첫 단계입니다.

 -아래 문장을 채워보세요.
 “최근에 자연의 경이로움을 느낀 순간은 ____이다.”
 “어렸을 때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장소는 ____이다.”
 “나 자신이 소중한 존재라는 걸 깨닫게 해준 사람은 ___이다.”
 “지금 이 시대에 태어나 살아볼 수 있어서 감사한 점은 ___이다”

■2단계 - 세상에 대한 고통 존중하기
 고통을 인정하면서 우리에게 세상과 함께 괴로워하는 능력이 있음을 인식하는 단계입니다.

 -아래 문장을 채워보세요.
 “자연 세계에서 벌어지는 일 가운데 특히나 마음이 아픈 것은 ___이다.”
 “이 모든 것에 대해 항상 느끼는 감정은 ___이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듣고/생각하고 싶지 않다. ___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러한 감정을 피하기 위해 사용하는 방법은 ___이다.”

 -‘사라져가는 벗’들을 불러주세요.
 멸종위기에 놓인 생물종의 목록을 하나씩 읽습니다. 사라지는 것들을 호명할 때마다, 이를 기리는 소리를 냅니다. 종이나 북, 손뼉을 쳐도 좋습니다. 죄책감의 시간이 아니라, 유일무이한 종의 아름다움과 지혜를 기리는 시간이 되도록 합니다.

■3단계 - 새로운 눈으로 보기
 우리가 모든 존재와 연결돼 있음을 이해하고, 새로운 관계를 맺는 전환 단계입니다.

 -네 가지 목소리로 ‘넓어지는 원’을 경험해보세요.
 세상의 고통을 야기하는 사안 중 관심있는 것을 택해 자신의 의견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석탄화력발전소가 없어져야 하는가’ 같은 데 대한 의견을 말할 수 있습니다. 이제 반대자가 되어 말해 봅니다. 다음으로, 이 상황에 영향을 받는 ‘인간 외의 생명체’로서 말해 봅니다. 마지막으로 이 사안으로 영향을 받게 될 미래 인간의 목소리로 말합니다. 네 가지 목소리를 낼 때 모두 ‘나’라는 주어를 사용합니다. 다른 존재의 견해를 상상하면서 자신과 사람들 내면의 관용을 느껴봅니다.

■4단계 - 앞으로 나아가기
 다시 시작될 일상을 바꿔 대전환에 참여하는 단계

 - 다섯 가지 서약
 마음을 다잡아도 수많은 이유로 흐트러지기 쉽습니다. 자신이 지켜나갈 다섯 가지 정도를 정해 스스로에게 서약해보세요. 당장 내일, 일주일 안에, 혹은 한 달 안에 할 수 있는 구체적인 약속이 좋습니다. 간단한 ‘서약식’을 하며 거듭난 자신을 축하해 주세요.

■다시 1단계로
 4단계는 나선형 순환구조입니다. 재연결 작업 이후에도 언제든 고통과 무기력을 마주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면 더 넓고 깊어진 자신을 경험하며 고마움으로 돌아가 새로운 여정을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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