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가장 많은 새를 관찰해야 우승하는 탐조대회…올해는 새가 눈에 띄게 적은 이유

2022.05.02 16:16 입력 2022.05.02 17:05 수정

강화 빅버드레이스(BBR)에 참가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인천 강화도 도장1리 마을회관 인근에서 새를 관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강화 빅버드레이스(BBR)에 참가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인천 강화도 도장1리 마을회관 인근에서 새를 관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고요한 경쟁이 시작됐다. 24시간 동안 가장 많은 종의 자연 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팀이 우승한다. 새를 보려면 사람들은 침묵을 지켜야 한다. “꽥꽥” 흰뺨검둥오리가 머리 위를 맴돈다. “삑삑삑” 뿅망치 소리처럼 높은 오색딱다구리의 소리도 들린다. 지금껏 보지 못한 새의 소리라도 들리면 탐조인들의 시선은 고정된다.

자연 상태의 새를 관찰하는 탐조 대회 ‘2022 강화빅버드레이스(BBR)’가 인천 강화군에서 지난달 30일~지난 1일 열렸다. 올해로 6회째를 맞는 대회에는 경쟁부문에 3~4명씩 한 팀으로 총 18팀이 참여해 ‘탐조왕’을 가려낸다. 24시간 동안 가장 많은 종의 사진을 찍어 시민 참여 기반 갯벌생태계 감시 플랫폼 ‘갯벌키퍼스’에 올리는 팀이 우승을 거머쥔다. ‘많이보새’, ‘찾아보새’, ‘눈깜짝할새’, ‘조별과제’ 등 새 관련 이름을 붙인 팀들이 참여했다. ‘서울외새’ 팀과 지난 1일 동행하며 새를 관찰하는 사람들을 관찰했다.

강화 빅버드레이스에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관찰한 되지빠귀. 되지빠귀는 여름에 한국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이 되면 중국 남부 등에서 월동을 한다. 서울의새 제공

강화 빅버드레이스에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관찰한 되지빠귀. 되지빠귀는 여름에 한국에서 번식을 하고 겨울이 되면 중국 남부 등에서 월동을 한다. 서울의새 제공

■새에게 가는 속도 ‘시속 1㎞’

“새들이 소리를 가장 많이 지를 수 있는 시간”인 오전 5시쯤 ‘서울외새’는 강화 전등사로 길을 나섰다. 이날은 바다새를 관찰했던 전날과 겹치지 않게 산새를 보기 위한 경로를 짰다. 전등사를 고른 이유는 많은 사람들이 절을 찾을 석가탄신일을 앞두고 새들이 사람 눈에 띄지 않는 깊숙한 곳까지 이동하기 전에 새들을 보기 위해서였다.

탐조의 원칙 중 하나는 ‘시속 1㎞’다. 오전 8시쯤부터 도장1리 마을회관 인근 야산에서 서울외새 팀은 천천히 움직이며 새들의 소리를 들었다. 느린 속도로 조심스럽게 발걸음을 옮겨야 새들이 놀라 도망가지 않는다. 이들과 함께 속도를 늦추고 귀를 기울이자 ‘새소리’의 향연이 펼쳐졌다. 찌르레기, 흰뺨검둥오리, 큰부리까마귀, 오색딱다구리 등의 새들은 저마다의 울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진아 서울의새 대표는 “이렇게 천천히 가니 우리는 한 시간을 봐도 1㎞ 밖에 못 움직인다”고 말했다.

강화 빅버드레이스(BBR)에 참가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인천 강화도 도장1리 마을회관 인근에서 새의 소리를 담기 위해 마이크를 위로 향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강화 빅버드레이스(BBR)에 참가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인천 강화도 도장1리 마을회관 인근에서 새의 소리를 담기 위해 마이크를 위로 향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강화 빅버드레이스에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관찰한 천연기념물 원앙. 원앙은 전국 산간에서 번식하는 텃새로 주로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이동하는 봄·가을에 볼 수 있다. 서울의새 제공

강화 빅버드레이스에서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관찰한 천연기념물 원앙. 원앙은 전국 산간에서 번식하는 텃새로 주로 겨울을 나려는 무리들이 이동하는 봄·가을에 볼 수 있다. 서울의새 제공

‘시속 1㎞’의 원칙은 차량 안에서 탐조를 할 때도 지켜졌다. 탐조지 인근까지는 시속 50㎞를 유지하던 차량 속도도 탐조지에 다다르면 거북이처럼 느려졌다. 탐조 장소에 다다르자 서울외새 팀원들은 각자 맡은 창문으로 달라붙었다. 4명의 팀원은 각각 운전, 우측 탐조, 좌측 탐조, 기록의 역할을 했다. 이들의 목표는 대회 주최 측에서 발견시 2점을 주기로 한 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인 노랑부리저어새를 찾는 것이었다. 저어새류의 새가 보이면 일제히 쌍안경으로 부리를 살폈다.

농부들이 트랙터로 밭을 갈면 흙 사이로 드러난 미꾸라지 등을 먹기 위해 새들이 찾아온다. “발구지 같은 앤데 쟤” 탐조 종료 시간을 30분쯤 남기고 차 안이 소란스러워졌다. 운전을 맡은 황원관씨가 지금까지 보지 못한 ‘발구지’를 찾은 순간이었다. 혹여나 문 닫는 소리에 새가 달아날까 문도 닫지 않고 차에서 내린 이들은 결국 발구지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새를 찾아 전날 77.528㎞, 이날 51.64㎞를 이동한 ‘서울외새’ 팀의 여정은 오전11시, 발구지를 끝으로 막을 내렸다.

강화 빅버드레이스(BBR)에 참가한 ‘서울외새’ 팀이 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인근에서 지난 1일 망원경에 휴대폰을 장착해 발구지를 관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강화 빅버드레이스(BBR)에 참가한 ‘서울외새’ 팀이 인천 강화군 선원면 지산리 인근에서 지난 1일 망원경에 휴대폰을 장착해 발구지를 관찰하고 있다. 강한들 기자

강화 빅버드레이스 도중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발견한 발구지. 발구지는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나그네새로 물이 괴어 있는 곳이나 개울·늪지 등에 산다. 서울의새 제공

강화 빅버드레이스 도중 ‘서울외새’ 팀이 지난 1일 발견한 발구지. 발구지는 한국에서 흔하지 않은 나그네새로 물이 괴어 있는 곳이나 개울·늪지 등에 산다. 서울의새 제공

■“탐조인에게 올해는 곡소리 나는 해”

강화도는 숲, 농경지, 해안, 갯벌 등의 생태계가 한 공간에 모여있어 다양한 새를 관찰할 수 있는 탐조지다. 특히 4~5월은 한국을 들러 북쪽에서 가는 나그네새, 번식을 하기 위해 한국을 찾는 여름 철새, 월동을 마치고 아직 떠나지 않은 겨울 철새, 한국에 머물며 생활하는 텃새를 모두 볼 수 있는 시기다.

그럼에도 올해는 탐조인들에게 ‘곡소리 나는 해’라고 한다. 지금은 탐조인들이 섬 탐조에 나서는 시기인데, 섬에 새가 없다는 것이다. 보통 2박3일간 100여종 이상의 새를 관측한다는 목표를 설정하고 들어가는 탐조인들이, 올해는 4월 중순 흑산도에서도 75종 정도 밖에 보지 못했을 정도다. 2014년부터 탐조를 본격 시작한 이진아 대표도 “짧은 탐조 경력으로 봐도 다른 게 느껴진다”며 “올해는 정말 특이하게 새가 없다. 아직 안 왔을 수도 있고, 개체 수가 줄었나 하는 걱정스런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강화 빅버드레이스 도중 ‘서울외새’ 팀이 지난달 30일 발견한 천연기념물 제361호 노랑부리백로. 노랑부리백로는 서해안 무인도서에서 번식하는 국제적 보호조류다. 서울의새 제공

강화 빅버드레이스 도중 ‘서울외새’ 팀이 지난달 30일 발견한 천연기념물 제361호 노랑부리백로. 노랑부리백로는 서해안 무인도서에서 번식하는 국제적 보호조류다. 서울의새 제공

강화 빅버드레이스에서 ‘서울외새’ 팀이 지난달 30일 관찰한 청다리도요. 서울의새 제공

강화 빅버드레이스에서 ‘서울외새’ 팀이 지난달 30일 관찰한 청다리도요. 서울의새 제공

이기섭 한국물새네트워크 상임이사는 새가 줄어든 이유에 기후변화의 영향도 있을 수 있다고 짚었다. 이 상임이사는 “수천㎞를 날아와 허기진 상태에서 도착을 했는데 기온 변화가 심해서 곤충이 없다면 새들은 목숨을 잃을 수 있다”며 “올해처럼 너무 더웠다 추웠다를 반복하는 등 기온 변화가 심하면 새들에게는 목숨이 왔다갔다 할 정도로 상당히 위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탐조 대회는 일종의 새 ‘센서스(총조사)’로 기능할 수도 있다. 탐조인들이 찍어 올리는 사진은 매년 대회를 하면서 축적되고, 강화도 새들의 변화 추이를 살펴볼 수 있게 된다. 대회를 주최한 강화탐조클럽의 정용훈 고문은 “사진을 찍어서 업로드 하면 관측이 데이터화 된다. 새 센서스(총조사)가 된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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