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열전
2024.01.03 06:00 입력 2024.01.17 10:10 수정

(1) 오파비니아

캄브리아기 폭발 시기에 등장했다가 멸종된 오파비니아의 화석(사진 위)과 복원된 이미지. UC 버클리 고생물 박물관 홈페이지

캄브리아기 폭발 시기에 등장했다가 멸종된 오파비니아의 화석(사진 위)과 복원된 이미지. UC 버클리 고생물 박물관 홈페이지

다음 중 코끼리 코를 가리키는 영어 단어로 가장 적당한 것은?

① nose ② schnozzle ③ proboscis ④ trunk

①번 노즈가 정답이라면 이 퀴즈는 내지도 않았을 것이다. ②번 슈노즐은 우수꽝스러울 정도로 과장된 코를 말한다. 피에로에게 어울리는 말이다. ③번 프로보시스는 길고 가느다란 코를 말한다. 나비나 모기처럼 먹이를 먹는 데 사용하는 튜브 모양의 입 부분을 가리키는 말이다. 코 역할을 하지 못해도 곤충이나 해양 생물에게 달린 길고 유연한 부속물을 뜻하기도 한다. 개미핥기와 코끼리 코를 칭하는 데도 가끔 쓰인다. 하지만 정답은 ④번 트렁크다. 코끼리의 코는 일반적으로 트렁크라고 부른다. 코끼리의 독특하고 뚜렷한 특징인 트렁크는 놀라운 범위의 움직임과 기능을 보여준다. 코와 윗입술이 연장된 부분인 트렁크는 숨쉬고 냄새 맡고 만지고 잡고 소리내는 등 매우 다양한 기능을 하는 부속 기관이다.

과학 연재를 어처구니없게 영어 퀴즈로 시작한 까닭은 코에 해당하는 단어가 중요한 동물로 문을 열기 때문이다. 오늘의 주인공은 오파비니아. 학명은 오파비니아 레갈리스 월콧(Opabinia regalis Walcott). 대문자로 시작하는 오파비니아는 속명이며 소문자로 시작하는 레갈리스는 종명, 그리고 끝에 대문자로 시작하는 월콧은 명명자다. 오파비니아 레갈리스라는 학명을 붙인 사람이다.

우리는 종-속-과-목-강-문-계라는 체계에 익숙하다. 하지만 이런 분류 체계는 현대 분류학에서는 별다른 의미가 없다. 최근 몇년 동안 한국에서 가장 많이 팔린 과학책인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하는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 도대체 지구에는 더 이상 어류라고 뭉뚱그려서 이야기할 수 있는 범주는 없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얘기냐고? 다음 퀴즈를 풀면 명확해진다.

다음 중 허파로 호흡하는 물고기 폐어와 가장 가까운 동물을 고르시오.

① 연어 ② 개구리 ③ 광어 ④ 소

현대 과학자들이 분류법으로 사용하는 분기학에 따르면 답은 ④번 소다. 뭐라고? 폐어는 (개구리와 소처럼) 허파로 호흡하고 (소처럼) 오랜 시간 동안 물 밖에서 활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의 모티브가 된 <자연에 이름 붙이기>의 저자는 우리가 감각으로 우리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움벨트(환경이라는 뜻의 독일어)를 느껴본다면 “물고기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을 거라고 한다. 물론 내게는 물고기가 존재한다.

이름이 중요하다. 사람의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 있지만 생명의 학명에는 정보가 담겨 있다. 티라노사우르스 렉스는 폭군 도마뱀이라는 뜻이고, 트리케라톱스는 뿔 세 개 달린 얼굴이라는 뜻이며, 코레아노케라톱스 화성엔시스는 화성시에서 발견된 한국 뿔공룡이라는 뜻이다. 이름에서 그 생명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오파비니아 리갈리스는 무슨 뜻일까? 오파빈 지역에서 발견된 왕이란 뜻이다.

사람의 이름에는 부모의 소망이 담겨있고, 생명의 학명엔 정보가 숨어있다
주요 동물 문이 출연한 캄브리아기의 폭발 시기, 오파빈 지역에서 발견된 왕이란 뜻을 가진 오파비니아 리갈리
머리 위 자루눈으로 먹이를 포착, 튜브처럼 생긴 코로 사냥을 하고, 부채꼴 꼬리로 해저를 유영했다

삼엽충은 3억년을 살았는데…아쉽다, 기괴하게 생겼지만 멋진 생명체였던 너의 ‘멸문’이

캐나다 브리티시 컬럼비아 주의 요호 국립공원에는 오파빈이라는 지역이 있고 여기에는 버제스 셰일 층이라는 화석지가 있다. 사암이 모래가 굳어져 만들어진 암석이라면 이암은 진흙이 굳어져서 만들어진 암석이다. 셰일은 이암의 일종이다. 사암과 이암은 모두 구성물이 쌓여서 만들어졌다고 해서 퇴적암이다. 모래와 흙이 쌓이는 동안 생물의 유해도 그 안에 갇히게 된다. 그래서 화석들은 화산 작용으로 생긴 화산암이나 열과 압력으로 성질이 바뀐 변성암이 아니라 모래, 흙, 자갈 등이 쌓인 퇴적암에서 주로 발견되기 마련이다.

오파비니아는 생명체가 급격히 다양해진 캄브리아기 폭발 시기에 등장했다. 캄브리아기는 고생대의 첫 번째 시대로 약 5억4100만년 전에 시작한다. 46억년 지구의 역사, 38억년 생명의 역사를 고려하면 바로 최근이다. 캄브리아는 고래를 뜻하는 라틴어다. 고래는 6500만년 전에야 나타났으니 캄브리아기에는 고래 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그런데 왜 캄브리아기일까? 찰스 다윈에게 지질학을 가르친 현대 지질학의 창시자 애덤 세지윅 목사가 자신이 발굴한 영국 웨일스 지방의 지층에 이름을 붙일 때 웨일스(Wales)라는 지역명을 쓰고 싶었는데 하필 웨일스가 고래라는 뜻이었을 뿐이다.

캄브리아기는 찰스 다윈에게 골칫거리였다. 그는 <종의 기원>의 9장 ‘지질학적 기록의 불완전성에 대하여’에서 (1판에서는 실루리아기로 썼다가 6판부터 바꾼) 캄브리아기 폭발은 자신의 진화론이 직면한 주요 난제 중 하나라고 인정한다.

캄브리아기 폭발이라고 불리는 갑작스러운 생명체 증식 사건은 자연선택을 통해 생명이 분화하려면 긴 시간이 필요하며, 진화는 작고 지속적인 변화를 통한 점진적으로 일어난다는 자신의 관점과 모순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윈은 화석 기록은 결국 초기 및 과도기적 형태의 발견으로 채워질 것이라고 주장했으며, 이러한 예측은 이후의 화석 발견과 캄브리아기 이전 생명체에 대한 이해의 진전으로 여러 측면에서 실현됐다.)

만약에 스킨스쿠버가 오파비니아와 마주친다면 아무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가장 큰 표본도 코를 제외한 몸통 길이가 7㎝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감탄할 것이다. 오파비니아는 멋진 생명체이기 때문이다.

오파비니아는 외계 생명체처럼 보일 정도로 기괴한 신체 구조를 가졌다. 머리 위쪽으로 송이버섯처럼 튀어나온 자루눈이 다섯 개가 있다. 앞쪽 열에 두 개, 뒤쪽 열에 세 개. 다섯 개의 눈 덕분에 오파비니아는 놀라운 시야를 확보하고 다양한 각도에서 먹이 또는 포식자를 감지할 수 있었다.

과학자들은 오파비니아가 눈으로 다른 동물의 움직임을 감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색을 구분하고 자외선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도 갖추고 있었을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런 특별한 시각 시스템은 오파비니아가 고대 해양 환경에서 살아가는 데 커다란 이점을 제공했을 것이다.

오파비니아의 몸통은 길쭉하며 15개의 분절로 되어 있고 각 분절에는 측면을 따라 일련의 날개 같은 엽(葉)이 있다. 삼엽충의 바로 그 엽이다. 이파리처럼 생긴 부속물이다. 오파비니아는 엽을 이용해 해저를 따라 헤엄치거나 기어다닐 수 있었을 것이다. 몸은 부채꼴 모양의 꼬리로 끝났는데, 꼬리는 조향 및 균형 장치로 쓰였을 것이다.

오파비니아의 가장 큰 매력은 바로 코에 있다. 오파비니아가 살던 시대에 모든 생명은 바다에 살았다. 그러니 그 코로 숨을 쉬지는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nose’는 아니다. 긴 튜브처럼 생긴 길쭉한 부속물 끝부분에는 뭔가를 잡을 수 있게 생긴 집게발이 달려 있다.

과학자들은 오파비니아가 이 코를 이용해서 해저를 뒤집어 먹이를 찾고 작은 동물을 잡았을 것이라고 믿는다. 코는 구부러질 수 있어서 입에 먹이를 넣어 줄 수 있었다. (사실 오파비니아의 경우 코보다는 주둥이가 더 적절할 수 있는데 주둥이가 먹이를 입에 가져다준다고 하면 확실히 어색하다.)

오파비니아의 톱니형 둥근 입은 특이하게도 머리 아래, 몸통 아래쪽에서 뒤쪽을 향하고 있었다. 이 위치는 코의 기능과 결합하여 매우 특수한 먹이 섭취 방식을 암시한다. 이렇게 자세히 알 수 있는 까닭은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보존된 화석이 다양한 각도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아래쪽이 남아 있는 화석에는 눈이 보이지 않으며 위쪽이 남은 화석은 입이 보이지 않는다.

1912년 고생물학자 찰스 월콧이 버지스 셰일에서 최초로 오파비니아 표본을 포함한 수많은 화석을 발견했다. 하지만 1970년대 이르러서야 오파비니아는 과학계에서 폭넓은 관심과 재조명을 받았다. 이러한 새로운 관심은 케임브리지 대학이 주도한 버지스 셰일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버지스 셰일 화석을 철저히 재조사한 영국 고생물학자 해리 위팅턴과 그의 동료들의 연구 덕분이었다.

오파비니아가 진화 생물학에서 중요한 이유는 대부분의 주요 동물 문이 출현한 급격한 진화 발전 시기인 캄브리아기 폭발에 대한 이해에 기여했기 때문이다. 오파비니아의 기괴한 해부학적 구조는 캄브리아기에 발생한 광범위한 형태학적 실험을 보여주며, 진화 역사에서 단순한 생물에서 복잡한 생물로 선형적으로 발전한다는 개념에 도전한다. 오파비니아는 캄브리아기에 지구를 가득 채웠던 진화론적 기이한 경이의 증거로 자주 인용되며, 다양한 생명체와 초기 생태계의 복잡성을 보여준다.

과학자들은 오파비니아와 다른 캄브리아기 유기체를 연구하면서 체형의 다양화, 생태학적 상호작용, 발달 과정의 진화적 중요성 등 동물의 초기 진화에 대한 통찰력을 얻게 되었다. 오파비니아의 발견과 후속 분석은 고생물학 분야에 크게 기여했으며, 지구 생명체의 진화에 관한 이론에 계속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오파비니아의 독특한 신체적 특성은 지구 초기 동물이 다양하고 실험적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우주 어딘가에는 아마도 오파비니아와 비슷한 멋진 생명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구에는 오파비니아처럼 멋진 생명체는 이제 없다. 그렇다면 마지막 퀴즈.

오파비니아의 집게 달린 코를 영어로 뭐라고 불러야 할까?

① nose ② schnozzle ③ proboscis ④ trunk

정답은 ③번 프로보시스다. 과학자들은 논문에 그렇게 쓴다. 그 이유는 첫 번째 퀴즈 설명에서 찾을 수 있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 오파비니아의 코의 기능은 트렁크에 가깝다. (그래도 프로보시스라고 하자.) 이렇게 멋지고 다양한 기능이 있는 코를 갖춘 오파비니아지만 친척 하나 남기지 못하고 사라진 것을 보면 기능의 다양성이 생존의 열쇠는 아닌 것 같다.

캄브리아기의 가장 유명하고 널리 퍼진 생명은 삼엽충이다. 삼엽충은 다양한 해양 환경에서 3억년이나 바글대며 살았다. 삼엽충은 딱딱한 껍질에 분절된 생물이다. 갑옷을 입은 흔한 삼엽충에 비해 오파비니아는 부드러운 몸체를 가지고 있었으며 다양한 분포를 보이지 않는다. 작은 생태적 틈새에 살다가 그 어떤 친척 종도 남기지 못한 채 사라지고 말았다. 그래서 한때 과학자들은 오파비니아를 독립된 문으로 나누기도 했다.

종-속-과-목-강-문-계에서 문은 설계도에 해당한다. 동물 설계도 하나가 사라졌다는 뜻이다. 오파비니아의 멸종은 어쩌면 멸문일지도 모른다.

▶필자 이정모

[멸종열전]매력적인 코를 가진 너, 친척 하나쯤 남겨두지 그랬니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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