멸종열전
2024.01.17 06:00 입력 2024.01.17 10:10 수정 이정모

(2) 고생대 거대 두족류 카메로케라스

오르도비스기를 거쳐 그 다음 시대인 실루리아기에 슬며시 사라진 카메로케라스. 크고 길죽한 원뿔모양의 껍질 길이만 7~12m에 달하는 오소콘의 대표선수 였다.

오르도비스기를 거쳐 그 다음 시대인 실루리아기에 슬며시 사라진 카메로케라스. 크고 길죽한 원뿔모양의 껍질 길이만 7~12m에 달하는 오소콘의 대표선수 였다.

전 세계에 가장 많은 지점을 가진 카페는 아마도 별다방이라고 불리는 바로 그 카페일 것이다. 별다방의 실제 이름은 ‘스타벅(Starbuck)’이라는 사내 이름에서 왔다. 실존 인물은 아니고 최근 어느 정치 신인이 중학생에게 선물한 책이라고 해서 다시 화제가 된 허먼 멜빌의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1등 항해사다. 그렇다면 모비딕은 뭘까? 모비(moby)는 ‘큰’이라는 뜻이고 딕(dick)은 남성의 그것을 말하는데 소설에서는 알비노 향고래의 이름이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로비 천장에는 향고래 모형이 매달려 있는데 몸체가 흰색은 아니지만 머리 부분에서 흰색 상처를 많이 볼 수 있다. 대왕오징어와 결투하면서 얻은 상처를 표현한 것이다. 아니 오징어가 얼마나 크다고 고래 머리를 휘감고 싸운다는 말인가? 충분히 크다.

대왕오징어(Architeuthis dux·아르키테우티스 둑스)는 지구에서 가장 큰 두족류다. 다리 길이까지 포함하면 수컷은 10m, 암컷은 13m까지 자란다. 상처 남은 결투 끝에 대왕오징어를 잡아먹은 향고래 위장에서 발견된 대왕오징어 주둥이를 바탕으로 추정해보면 몸통 길이만도 2.3~3m에 달한다. 살아 있다면 체중은 300~500㎏에 달할 것이다(참고로 우리가 맥줏집에서 안주로 먹는 오징어는 대왕오징어가 아니라 훔볼트오징어로 다리 포함 몸길이 1.5m, 체중 50㎏에 불과(!)하다).

그런데 궁금하다. 대왕오징어는 단단한 외골격도 없는데 어떻게 이렇게 커질 수 있을까? 일단 바닷속에서는 몸이 아주 커질 수 있다. 수중 환경이 제공하는 부력이 있기 때문이다(가수 윤도현이 흰수염고래라고 부르는 대왕고래가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시라). 오징어도 부력 덕분에 중력의 제약 없이 육상동물보다 훨씬 커질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심해생물들은 일반적으로 얕은 바다에 사는 친척종보다 거대화하는 경향이 있다.

게다가 외골격이 없는 것은 단점이 아니라 오히려 장점일 수 있다. 외골격이 있는 생물은 성장하기 위해 반복해서 탈피해야 하며 탈피할 때마다 몸집이 계단형으로 커진다. 하지만 오징어는 외골격이 없기 때문에 지속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고생대 거대 두족류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고생대에 두족류가 처음 등장했을 때는 캄브리아기이지만 본격적으로 다양해진 때는 4억8830만~4억4370만년 전의 오르도비스기다. 직전 시기인 캄브리아기가 생명 다양성이 폭발한 시기라면, 오르도비스기는 대규모 생물 다양화, 즉 전체 시기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생명 다양성이 증가한 시기다(오르도비스라는 시기 이름은 영국 웨일스의 고대 부족명 오르도비세스에서 왔다).

고생대와 중생대 두족류는 모두 단단한 껍데기를 가지고 있었다. 껍데기의 형태는 크게 세 가지다. 갈퀴처럼 껍데기가 굽은 형태, 돌돌 말린 형태, 그리고 곧은 원뿔 모양. 같은 공통 조상에서 비롯되었지만 각기 다른 진화의 길을 걸은 결과다. 돌돌 말린 형태의 두족류 껍데기는 (조개는 아니고 오히려 오징어에 훨씬 가까운) 앵무조개에 여전히 남아 있지만 곧은 원뿔 모양의 껍데기를 가진 두족류는 더 이상 볼 수 없다. 또 대부분의 현생 두족류는 아예 단단한 껍데기가 없다. 왜 그럴까?

카메로케라스와 인간의 크기 비교 개념도.

카메로케라스와 인간의 크기 비교 개념도.

원뿔 모양 껍데기가진 두족류 사라져
따뜻한 지구에서 탄생 후 맞은 빙하기
해수면이 낮아지며 급격한 환경변화

비정상적 상황에서 불리한 큰 동물
해양 생물 중 가장 큰 카메로케라스
잡아먹힐 위험 없지만 사냥에 장애

현생 생물 중 남아있는 외골격 두족류
커 봐야 멜론 정도 크기인 앵무조개 뿐
작고 유연한 생물이 가진 경쟁력이다

곧은 원뿔 모양의 껍데기를 가진 두족류를 오소콘 혹은 직각석이라고 부른다. ‘곧은’ 또는 ‘직각’이라는 뜻의 오르토스(orthos)와 원뿔이라는 뜻의 콘(cone)에서 왔다. 우리말 직각석은 ‘곧은 돌’이라는 뜻이다.

오르도비스기 바다에는 다양한 종류의 오소콘이 살고 있었다. 작은 오소콘은 단단한 껍데기, 즉 소라 크기가 3㎝ 미만이었지만 그 길이가 7~12m에 달하는 것도 있었다. 오르도비스기 바다에서 가장 큰 동물이었던 카메로케라스(Cameroceras)와 엔도케라스(Endoceras)가 그것이다. 각각 ‘방(camera)이 있는 뿔(cera)’과 ‘내부 뿔’이라는 뜻이다. 소라 길이가 7~12m에 달했으니 가히 오소콘의 대표 선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대표 선수 생활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엔도케라스는 오르도비스기를 넘기지 못했고 카메로케라스도 그다음 시대인 실루리아기에 슬며시 사라졌다. 왜 그랬을까?

첫 번째 이유는 그 누구도 저항할 수 없는 기후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오르도비스기는 대체로 따뜻한 기후로 시작되었다. 극지방에도 만년설이 없을 정도였다. 당연히 해수면은 높아진다. 이런 기후가 2500만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런데 후기에 들어서면서 지구가 급속히 냉각되기 시작했다. 전 지구가 얼음덩어리가 되었을 정도다. 과학자들은 이때 지구를 눈덩이(snowball) 지구라고 부른다.

그 결과 해수면이 낮아졌다. 바다의 평균 깊이가 4㎞나 되는데 해수면이 조금 낮아졌다고 뭐가 문제겠는가 하겠지만 정말 큰 문제다. 깊은 바다는 생명이 살 만한 곳이 아니다. 압력도 세고 빛도 잘 안 들어온다. 그렇다고 해수면에서만 헤엄치면서 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알을 낳으면 깊이 가라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해양생물은 대륙붕이라고 하는 얕은 바다에 산다. 대륙붕의 깊이가 200m였는데 해수면이 낮아져서 100m가 되었다고 해보자. 살 수 있는 바다의 절대 부피가 줄어들었다. 30평짜리 아파트에 열 명이 어렵사리 살았는데 갑자기 아파트가 15평으로 줄었다고 생각해 보라.

정상 상황에서는 큰 동물이 유리하지만 비정상 상황에서는 큰 동물이 불리하다. 환경이 급격하게 변하면 항상 커다란 동물이 불리하다. 작은 동물은 먹이가 많이 줄지 않는데 큰 동물은 먹이가 크게 준다. 많이 먹어야 하는데 먹을 게 없기 때문이다. 먹이 서식지가 크게 줄고 동료들 사이의 경쟁이 커지면서 결국 먹을 게 없어졌다.

기후변화는 오소콘이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돌돌 말린 껍데기를 가진 앵무조개는 여태 살아 있는데 오소콘은 사라졌다. 돌돌 말린 껍데기와 곧은 껍데기 차이에서 그 멸종의 이유를 찾아야 한다. 멸종이란 결국 짝짓기를 하지 못해 후손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인데, 짝짓기가 어려운 이유는 개체가 줄어서 짝과 마주치기 어렵기 때문이다. 왜 개체가 줄까? 강력한 포식자가 등장해서 많이 잡아먹히든지 아니면 먹을 게 없어졌기 때문이다.

앗, 그렇다면 돌돌 말린 형태의 두족류와 오소콘의 차이는 무엇일까? 강력한 포식자가 등장했을까? 카메로케라스와 엔도케라스는 오르도비스기 해양생물 가운데 가장 컸다. 게다가 단단한 껍데기까지 갖추고 있다. 포식자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먹을 게 없었을까? 이것도 아니다. 먹이는 충분했다. 주 먹이인 삼엽충은 고생대가 끝날 때까지 3억년 동안 바닷속에 바글바글 살았다.

카메로케라스와 엔도케라스는 과학자들이 아직도 헷갈려 한다. 한때 카메로케라스라고 분류했던 것들을 요즘은 엔도케라스로 분류하기도 한다. 예전 책을 보면 카메로케라스가 훨씬 큰 것으로 나오지만 요즘은 그것들이 사실은 엔도케라스라고 주장하는 과학자들이 많다. 이유가 있다. 껍데기 질감만 다르고 해부학적 측면에서 구별하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두족류는 연체동물이다. 연한 살은 화석이 되지 않는다. 단단한 껍대기, 그러니까 소라 부분만 화석이 된다.

카메로케라스와 엔도케라스는 너무 커서 뜨지 못하고 바다 밑바닥에 굴러다녔다고 생각하는 과학자도 있지만 터무니없다. 그렇다면 배와 잠수함은 어떻게 다니겠는가? 오소콘의 소라에서 연한 살이 차지하는 부분은 6분의 1 정도다. 소라의 나머지 부분은 격막으로 나뉜 작은 방으로 되어 있다. 이 방에 바닷물이 들어 있다. 바닷물의 양을 조절해서 물 안에서 떠오르거나 가라앉는 것을 조절할 수 있다. 그리고 원뿔 중앙에는 사이펀이 있어서 추진력을 얻는다.

혹시 큰 덩치 때문에 날렵한 삼엽충을 잡아먹기 힘들었을까? 이럴 때는 현생 동물을 봐야 한다. 대왕오징어 역시 크다. 하지만 날렵하게 헤엄친다. 고도로 근육화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사이펀을 통해 물을 내뿜어 이동하는 아주 효율적인 제트 추진 시스템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 점은 카메로케라스와 엔도케라스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곧은 소라가 너무 크다. 삼엽충이 방향을 바꿀 때 따라서 방향을 바꿀 수 없으니 쉽게 추적할 수 없다. 먹이 삼엽충은 오소콘에 적응하고 있는데 오소콘은 몸을 바꾸지 못한 것이다.

고생대 두족류 가운데 직선 형태의 외골격을 가진 것들은 결국 다 사라진다. 생태계의 빈자리는 다른 생명이 차지하기 마련. 그 자리를 암모나이트가 차지하기 시작한다. 암모나이트는 오소콘과 같은 공통 조상에서 비롯되어 다른 진화 경로를 걸은 두족류 계통이다. 암모나이트는 덩치가 작고 최고 포식자가 아니다. 하지만 암모나이트의 코일형 껍데기는 부력 조절과 이동성이라는 점에서 오소콘보다 유리했다.

현생 생물 가운데도 여전히 외골격이 있는 두족류가 있다. 앵무조개(Nautilus·나우틸루스)가 바로 그것. 사과나 배, 또는 멜론 정도의 크기다. 앵무조개가 암모나이트와 비슷하게 생기기는 했지만 공통 조상에서 비롯되어 다른 진화의 길을 걸은 생물이다. 암모나이트는 공룡과 함께 사라졌지만 앵무조개는 지금도 존재한다. 캄브리아기에 등장해 아직도 존재한다고 해서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린다. 하지만 캄브리아기에 살던 종이 아직까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바퀴벌레와 은행나무, 투구게, 실러캔스처럼 살아 있는 화석이라고 불리는 모든 생물도 마찬가지다. 속이나 과가 남아 있다는 뜻이지 종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오르도비스기 바다에서 최고 포식자였던 카메로케라스와 엔도케라스는 결국 곧은 소라 때문에 멸종했다고 봐야 한다. 작고 유연한 두족류가 훨씬 유리하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대왕오징어보다 작은 오징어들이 훨씬 살기 좋다.

내가 거대 두족류에게 관심을 갖게 된 것은 향고래가 모티브가 된 <모비딕> 때문이었다. 굳이 정치 신인의 추천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모비딕>은 읽을 만한 책이다. 책 분량의 절반은 고래를 설명한다. 소설보다는 고래학 책에 가깝다. 참, 모비딕 리더십을 칭송하는 걸 보면 좀 민망하다. 모비딕을 쫓는 에이해브 선장을 따른 모든 선원은 소설의 화자인 어린 선원 이슈메일을 제외하고는 모두 죽었다. 동족을 죽이는 포경선에 저항하던 모비딕도 죽는다. 그렇다면 모비딕 리더십이란 무엇일까? 자연사에서 배우시라.

▶ 필자 이정모

[멸종열전]아무리 크고 멋있어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면 죽는다


여섯 번째 대멸종을 맞고 있는 인류가 조금이라도 더 지속 가능하려면 지난 멸종 사건에서 배워야 한다고 믿는다. 연세대학교와 같은 대학원에서 생화학을 공부하고 독일 본대학교에서 유기화학을 연구했지만, 박사는 아니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서울시립과학관, 국립과천과학관에서 일했으며 현재는 대중의 과학화를 위한 저술과 강연, 방송 활동을 하고 있다. <과학이 가르쳐준 것들> <과학관으로 온 엉뚱한 질문들> <살아 보니, 진화> <달력과 권력> <공생 멸종 진화>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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