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없는 자세로 학술이론 인용

2004.10.06 18:17

경향신문 창간 58주년 기념기획의 일환으로 마련된 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특별대담은 지난 3일 동교동 ‘김대중도서관’ 5층 접견실에서 진행됐다. 추석연휴에 답변할 내용을 준비했다는 김전대통령은 자신의 생각을 꼼꼼히 직접 정리한 ‘국정노트’를 들고 와 대담에 응했다. 부인 이희호 여사도 예고없이 동석, 1시간30분 동안 꼬박 자리를 지켰다.

김전대통령은 김지영 편집국장과 장화경 정치부장 등 대담팀을 맞아 경향신문에 대한 진한 애정을 표시했다. 1960년대 민주당 신파시절 경향신문과 맺은 인연을 설명한 뒤 김전대통령은 “아침에 신문을 다 볼 수 없어서 경향신문만 추려서 읽어본다”면서 “좋은 신문 만드느라 애쓰는데, 앞으로도 더욱 잘 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대담에 들어가자 김전대통령은 예의 현직 때의 ‘빈틈없는’ 모습으로 되돌아갔다. 각종 수치와 석학들의 이론을 줄줄이 인용했다. “한 연구소의 추계에 따르면 향후 9년간 우리가 개성공단에서 1천억달러를, 북한은 90억달러를 이득 본다고 예상했고…”, ‘앨빈 토플러’ ‘시카고대 루커스 교수’ 등등.

김전대통령은 1시간이 지날 즈음 “차 한잔 마시고 합시다”라며 ‘타임’을 선언했다. ‘강의’를 시작하면 시계를 쳐다보지 않고도 1시간만에 끝맺곤 하던 ‘대통령 김대중’의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미국의 대북정책을 언급할 때는 ‘야당 총재 DJ’를 보는 듯했다. 미·소의 한반도 분단 책임론을 거론한 김전대통령은 “북한은 원초적 인권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원초적 인권’은 “굶어 죽게 된 사람이 밥을 먹을 권리”라고 정의하면서 “원초적 인권을 제일 도와주고 있는 것은 한국”이라고 했다. 햇볕정책에 대한 자부이자 노무현 대통령의 대미외교를 감안한 측면지원의 의지로 읽혔다.

정치·경제 등 국내 현안에 대한 질의가 나오자 예상대로 애써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국내문제는 얘기 안하려고 한다. 다음 기회에 하자”고 했다. 그러면서 “(국내문제를) 얘기하려면 구체적 얘기를 해야 독자가 알아듣는데 그런 얘기를 하다보면 ‘잘한다’ ‘못한다’를 빼놓을 수 없고 그렇게 되면 정치개입 소리를 듣게 된다”고 부연했다.

대담 내내 김전대통령의 표정은 밝았고, 혈색도 좋아 보였다. 김전대통령은 “사람들을 하루 몇번씩 만날 때가 있고, 아니면 책을 읽고, 자서전 준비도 하고 있다”고 근황을 설명했다. 측근은 “요즘도 책을 끼고 살다시피 해 이여사가 ‘건강을 해친다’며 빼앗을 정도”라고 전했다.

김전대통령은 약화된 신장기능 때문에 ‘신장 투석’을 계속하고 있다. 측근은 “지난해 ‘심혈관 조형술’ 시술 후 결과가 좋고 회복이 빨라 지금은 건강에 아무런 이상이 없다”고 말했다.

〈김봉선기자 bs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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