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생태학, 인간과 자연의 공존 : 김종철과 최재천

2014.01.12 17:06 입력 2014.01.12 22:45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자연 존중의 양심으로 ‘생태’ 일궈낸 김종철

통섭적 상상력으로 재미와 성찰을 준 최재천

생태학(ecology)이란 말을 만든 이는 독일의 생물학자 에른스트 헤켈이다. 생물들이 서로 환경을 형성하고 결합하면서 어떻게 살아가는지를 다루는 생물학의 한 분야다. 오늘날 생태학은 자연과학은 물론 인문사회과학에도 두루 쓰인다. 인간, 사회와 함께 세계를 구성하는 제3의 영역인 환경으로서 자연의 중요성이 높아져 왔기 때문이다.

영문학자 김종철과 생물학자 최재천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한 생태학 사상가다. 김종철은 자연의 존중을 강조한 반면,  최재천은 동물의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영문학자 김종철과 생물학자 최재천은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한 생태학 사상가다. 김종철은 자연의 존중을 강조한 반면, 최재천은 동물의 세계에 대한 폭넓은 이해를 통해 과학의 대중화에 앞장서고 있다. | 경향신문 자료사진

▲ 김종철
20여년 ‘녹색평론’ 내며 현대사회 지속불가능 경고
연대·협력 새 삶의 방식 추구

▲ 최재천
경이로운 동물의 세계 통해 현실·생명 돌아볼 계기 마련
지구적 관점의 사유 자극

■ 생태학이란 무엇인가

환경을 중시해야 할 이유는 여럿이다. 가장 주목할 것은 자연의 경고다. 이렇게 환경을 경시하고 파괴해간다면 결국 ‘자연의 복수’를 불러들이게 된다. 대기·수질·토양 오염은 물론 지구온난화나 생물다양성 감소 등은 그 복수의 사전 경고라 할 만하다.

어떤 개념이든 시간이 흐르면서 의미가 변화하기 마련인데, 생태학도 마찬가지다. 인간·사회·자연의 관계를 다루는 최근의 생태학은 분명한 규범적 지향을 갖는다. 무엇보다 생산형태는 물론 기술·문화·생활양식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사회관계와 세계관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때 환경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문사회과학에서 생태학은 ‘심층생태학’ ‘사회생태학’ ‘정치생태학’으로 분화되면서 발전해 왔다. 심층생태학이 환경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사유 방식의 근본적 전환을 역설한다면, 사회생태학은 의식 변화와 제도 개선을 동시에 강조한다. 정치생태학의 경우 자본주의 생산 및 소비체제의 급진적 개혁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아르네 네스, 머레이 북친, 앙드레 고르가 심층생태학, 사회생태학, 정치생태학을 각각 대변한다.

우리 사회에서 생태학적 계몽을 주도한 이들로는 재야의 사상가 장일순, 물리학자 장회익, 정치학자 문순홍, 그리고 환경운동가 최열 등을 들 수 있다. 더불어 환경운동연합과 녹색연합 등 시민단체 역시 환경위기를 경고하고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강조해 왔다. 이제 나는 두 생태학 사상가를 다루고자 한다. 영문학자 김종철과 생물학자 최재천이 그들이다.

■ 김종철, 인문적 상상력의 생태학

김종철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왼쪽 사진)와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김종철의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왼쪽 사진)와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막스 베버가 학자의 ‘신념윤리’와 정치가의 ‘책임윤리’를 구별했듯이, 사상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옳고 그름의 신념윤리다. 옳고 그름은 진리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우리 사회에서 이 신념윤리에 가장 충실한 사상가를 꼽으라면 나는 김종철을 떠올린다. 문학평론가에서 생태학자로의 긴 지적 여정에서 그와 함께한 것은 자연의 존중이라는 양심이었다.

김종철은 1947년 경상남도 함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에서 영문학을 공부했고, 영남대 등에서 영문학을 가르쳤다. 1970~1980년대 대표적인 문학평론가였던 그가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 것은 1991년 격월간지 ‘녹색평론’을 창간한 일이었다. 올해 초 통권 134호를 낸 ‘녹색평론’의 발행인이자 편집인을 맡아오면서 생태학 담론을 주도해 왔다.

2008년 출간한 <비판적 상상력을 위하여>는 그가 이제까지 ‘녹색평론’에 쓴 서문들을 모은 것이다. 이 책은 <시적 인간과 생태적 인간> <간디의 물레> <땅의 옹호>와 함께 김종철이 추구해 온 인문적 상상력의 생태학을 유감없이 보여준다.

“오늘날 (…) 전대미문의 생태학적 재난은 (…) 서구적 산업문명에 내재한 논리의 필연적 결과로서의 사회적·인간적·자연적 위기라는 사실을 명확히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며, “이것은 (…) 사람이 삶을 영위하는 올바른 방식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를 근본적으로 성찰할 것을 요구”한다는, 1991년 창간호를 위해 쓴 서문은 2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유효하다. 아니 오히려 더 빛을 발하고 있다는 게 정확한 평가다.

이 책은 삼풍백화점 붕괴, 외환위기와 IMF 사태, 황우석 사건과 생명공학,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에 이르기까지 민주화 시대 우리 사회를 달궜던 주요 이슈들을 검토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그는 “물신주의의 일방적 위세 속에서 (…) ‘근대의 어둠’은 훨씬 더 깊어졌다”고 엄중히 경고한다.

김종철의 생태학은 심층생태학에 가깝다. 하지만 사회생태학과 정치생태학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가 제시하는 대안은 협동의 공동체, 상부상조의 사회관계, 연대와 협력에 기반한 호혜적 경제, 생태적 생활의 조직화다. 얼핏 보면 너무 이상적인 전략으로 비칠지 모른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면 현재의 생산과 소비 체제가 정작 지속불가능한 시스템이라는 점에서 그의 생태학적 계몽은 큰 울림을 갖는다.

김종철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다. 무위당 장일순이다. 장일순은 환경과 생명의 소중함을 선구적으로 일깨워준 사상가였다. 김종철은 한국적 생태학을 모색한 장일순의 사상적 적자(適者)이며, 이제는 자신이 우리 생태사상을 대표한다. 사상가에겐 두 그룹의 독자가 있다. 현재의 독자들뿐만 아니라 미래의 독자들에게까지 생태학적 계몽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김종철은 우리 사회에선 드문 미래지향적 사상가다.

■ 최재천, 통섭적 상상력의 생태학

‘사상의 풍경’을 연재하면서 미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는 이들은 자연과학자들이다. 아이작 뉴턴에서 알버트 아인슈타인까지, 찰스 다윈에서 에드워드 윌슨까지, 그리고 칼 포퍼에서 토마스 쿤까지의 과학사상은 서구 모더니티를 이끌어온 원동력이었다. 개인적인 공부를 돌아보더라도 김용준, 장회익, 이필렬과 같은 자연과학자들의 담론은 내게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이들과 함께 주목해 온 자연과학자는 최재천이다.

최재천은 두 가지 점에서 이채로운 생물학자다. 첫째, 그는 세계적인 동물학자다. 에드워드 윌슨과 함께 열대우림을 누비며 동물행동학을 공부한 그는 민벌레 등 곤충들에 대해 세계적 권위를 갖고 있고 미국곤충학회의 젊은 과학자상 등을 받았다. 둘째, 그는 인문사회과학 소양이 뛰어난 자연과학자다. 학문뿐만 아니라 산업 등 다른 영역에서도 통섭(consilienc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데에는 그의 공헌이 절대적이다.

최재천은 1954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났다. 서울대와 미국 하버드대에서 동물학을 공부했다. 하버드대·미시간대·서울대에서 동물학을 가르쳤고, 현재 이화여대 석좌교수를 지내며 국립생태원장을 맡고 있다. 그를 우리 사회에 널리 알린 것은 기념비적인 저작 <개미 제국의 발견>이다. 고도의 분업에서 치열한 권력투쟁에 이르기까지 그가 펼쳐 보인 개미의 세계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그가 펴낸 베스트셀러들 중 내가 특히 주목한 두 책은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 <다윈 지능>이다. 앞의 책은 동물행동학에 관한 한국교육방송(EBS) 연속 강의를 바탕으로 한 저작이고, 뒤의 책은 다윈 탄생 200주년을 맞이해 다윈 진화론과 그 발전과정을 다루기 위해 포털 네이버에 연재한 글들에 기반한 저작이다.

<최재천의 인간과 동물>(2007)은 재미와 사고와 성찰을 동시에 안겨준다. 인간 사회와 다름없는 동물들의 세계는 재미를, 그 동물들의 세계로부터 우리 현실을 돌아보는 사고를, 나아가 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을 선사하는 책이다. 그동안 생태학을 인문사회과학적 틀 안에서 생각해 온 내게 그 영역을 자연과학에까지 확장시켜 준 저작이다.

생태학에 대한 최재천의 기여는 두 가지다. 첫째, 인간보다 지구를 더 오래 지켜온 동물들의 세계에 대한 넓고 깊은 이해를 제공한다. 협애한 인간 중심의 관점을 넘어서 보편적 생물의 관점, 지구적 존재의 관점에서 자연에 대한 창의적이며 융합적인 사유를 자극한다. 둘째, ‘과학의 대중화’다. 생태학이 더욱 풍성해지기 위해선 자연을 존중하는 동시에 과학적으로 사고하는 게 중요한데, 그는 과학의 대중화는 물론 ‘대중의 과학화’에 모범을 보이고 있다.

생태학의 두 축은 인간과 자연이다. 바람직한 생태학은 인간과학과 자연과학이 만나야 한다. 최재천의 또 다른 관심사인 기후 문제의 경우, 기후 변화에 대한 정확한 자연과학적 이해와 탄소배출권 배분 등에 대한 사회과학적 정책이 결합할 때 올바른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 통섭이란 자연과학과 인문학, 사회과학을 통합한다는 의미다. 최재천은 자연과학과 인문사회과학의 가교를 놓으려는 우리 사회 최초의 범학문적 통섭의 학자임에 분명하다.

■ 생태학의 미래

환경위기의 진단에 대해선 견해가 엇갈린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을 지지하는 이들은 더 이상 환경파괴가 이뤄져서는 안된다고 주장하는 반면, 비외른 롬보르의 <회의적 환경주의자>에 공감하는 이들은 환경위기론의 지나친 과장을 우려한다. 나는 대체로 카슨의 견해를 지지한다. 현재의 환경위기는 과거와는 다른 위기다. 과거의 위기가 자연의 순환에 내재된 위기였다면, 현재의 위기는 문명이 가져온 자기 파괴의 위기이자 인류 생존의 위기다.

위기의 환경을 구출하기 위해선 두 가지가 중요하다. 첫째, 기후변화 대책을 포함해 지구 환경을 보호하려는 제도적 실천이 이뤄져야 한다. 환경파괴적 산업구조와 기술체계가 유지되는 한 환경 보호를 위한 노력은 결국 미봉책에 머물고 만다. 지구 환경이 처한 현실을 객관적으로 인식하고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구조적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

둘째, 환경을 대하는 태도 및 사고방식의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시키고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한 환경위기는 해결될 수 없다. 자연과 인간이 하나의 생물권을 이루는 동등한 존재라는 생태학적 자기계몽이 더없이 중요한 이유다.

환경은 우리 세대만의 것이 아니다. 다음 세대와 그 다음 세대의 자산이고, 지구 위에 살아 있는 모든 존재들의 공유물이기도 하다. 환경을 보호하고 생명을 존중하는 생태학은 낭만적 충동이 아니라 축복받은 행성 지구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필요조건이다. 이러한 생태학적 계몽으로 가는 길에 김종철과 최재천의 메시지는 매우 중요한 사상적 나침판이 될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