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SNS 플랫폼 장치’ 가상 대담

2014.04.04 21:20 입력 2014.04.04 21:27 수정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현대 정보자본주의에서는 수많은 장치가 가동되고 있다. 구글, 페이스북 등 인터넷 세상의 거대 서비스 플랫폼은 이용자들의 활동을 자동으로 수취하고 이용자를 감시, 추적하는 장치이다. 이러한 서비스 플랫폼 장치는 과거와 다른 방식으로 가치를 증식하고 축적을 담당한다. 현대 정보자본주의에서는 장치가 증식되고 대규모로 축적되는 동시에 그 장치 자체가 자본주의적 가치 증식과 축적을 위한 자동 기계로 작동하고 있다. 이제 푸코, 들뢰즈, 아감벤이 만나 장치 개념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 플랫폼에 적용할 수 있는가를 보여줄 것이다. 푸코가 <감시와 처벌>을 통해 규율적인 장치의 기능에 대한 구체적 분석에 기여했다면, 들뢰즈는 장치에 대한 철학적 분석틀을 제시한다. 한편 아감벤은 ‘세속적 장치론’을 통해 인터넷 세상에 장치 개념을 적용하는 실마리를 탐색하고 있다. 다음은 이들 세 학자의 가상 대담을 녹취한 것이다.

1. ‘장치’(apparatus) 개념과 SNS 플랫폼

아감벤= “나는 지금 이 자본주의적 발전의 최종 단계를 장치들의 거대한 축적과 증식으로 정의합니다. (…) 일찍이 푸코 선생이 <감시와 처벌>에서 보여준 감옥이라는 감시 장치의 개념은 이제 아주 넓은 범위로 확장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치의 개념과 적용 대상을 감옥이라는 틀에서 확장하여 인터넷 세상에도 적용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장치란 무엇인가>를 통해 장치 개념을 더욱 일반화하여 제시하였습니다. 나는 생명체의 몸짓, 행동, 의견, 담론을 포획하거나 지도, 규정, 차단, 주도, 제어, 보장하는 능력을 지닌 모든 것을 장치라고 부르기를 제안합니다.(아감벤, <장치란 무엇인가>, 난장, 33쪽)”

푸코= 인터넷 세상을 지배하는 구글, 페이스북, 네이버 등의 거대 인터넷 서비스 회사들은 부를 생산하는 방식과 관계, 사람들이 서로 사회관계를 만들거나 운동하는 방식, 사람과 사물과의 관계, 그리고 권력관계를 바꾸었습니다.

아감벤= 나는 당신의 개념을 일상영역으로 더욱 확장하기를 제안합니다. 그래서 장치의 세속화를 주장하는 겁니다. “장치들을 세속화하는 문제 즉 장치들 안에 포획되고 분리됐던 것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돌리는 문제는 그만큼 긴급한 사안입니다. 이 문제를 짊어진 자들이 주체화 과정이나 장치들에 개입할 수 있게 되고 통치될 수 없는 것에 빛을 비추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문제는 올바르게 제기될 것입니다.(아감벤, 같은 책, 48쪽)” 세속화는 민주화이기도 하고 대중화이기도 합니다. 일부 엘리트들이 이용하던 장치에 대중 모두가 접근 가능하게 된 사태에 주목하자는 겁니다. 나는 장치론이 단지 분석 수단을 확장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일상에서의 실천 형태를 마련하기 원합니다. 나는 이것을 ‘장치의 세속화’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장치의 세속화는 특정 지배 세력에게 귀속된 장치를 일반 대중이 접근하여 그들의 전유물로 활용함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실천적 장치정치학을 통해 SNS 플랫폼을 수동적인 도구가 아니라 대중이 전유하고 변화시킬 수 있는 장치로 파악하자는 겁니다.

들뢰즈= 그런 접근은 자칫 장치에 대한 실체적 전제 때문에 잘못된 길로 나갈 우려가 있습니다. 장치는 실체가 아니라 관계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장악하거나 이용할 실체가 아니라 그 속에서 착취와 피착취, 감시와 피감시, 지배와 피지배가 이루어지는 배열이자 관계입니다.

아감벤= 나는 장치에 대한 저항과 개입 등 실천적인 차원이 갖는 중요성에 주목합니다. 내가 말하는 장치에는 푸코 선생이 제시한 감옥, 정신병원, 학교, 공장, 규율, 법적 조치 등 권력과 접속된 것들뿐만 아니라 펜, 글쓰기, 문학, 철학, 농업, 담배, 인터넷 서핑, 컴퓨터, 휴대전화도 포함됩니다.

들뢰즈= 인터넷 세상의 기업이 제공하는 서비스 플랫폼이란 또 다른 ‘포획장치’에서 벗어날 기획을 도모하고 장치 내부의 배열을 바꾸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야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기계 장치를 권력과 자본의 지배가 이루어지는 기계가 아니라 공짜 서비스 설비 정도로 본다는 데 문제가 있습니다. 다시 강조하는데 대중은 장치를 실체로 봅니다. 그래서는 장치 안의 지배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게 됩니다.

푸코= 인터넷이나 휴대전화는 분명히 현재의 사회 상황을 주도하는 장치임에 분명합니다. 그런 면에서 아감벤 선생의 문제의식에 동의합니다. 그러나 담배까지 장치라고 하시니 조금 황당하기도 하네요. 뭐, 철학은 좀 황당해야 제맛이니까 상관없습니다만, 나도 장치 실체론에는 반대합니다. 그러면 장치로서의 SNS 플랫폼 문제를 좀 더 따져봅시다.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3) ‘SNS 플랫폼 장치’ 가상 대담

2. SNS 플랫폼 장치

푸코= SNS 플랫폼 장치는 일단 이용자 활동을 전개할 수 있는 인터페이스를 제공하기 때문에 그것은 일차적으로 이용자 활동장치입니다. 두 번째로 그것은 이용자 활동결과물을 수집하고 수취하는 장치이고, 세 번째로는 그런 이용자 활동 결과물들이 만들어지는 과정에 대한 메타 데이터들을 갖고 이용자를 추적하고 포획하는 장치입니다. 구글, 페이스북 등 거대 서비스 회사가 제공하는 플랫폼 장치에는 이 세 가지 기능이 통합되어 있습니다. 비록 이용자들이 의식하지 못하지만 이런 통합적 기능이 플랫폼 장치의 숨은 핵심입니다.

아감벤= 구글이나 네이버, 페이스북, 트위터 등의 서비스 플랫폼은 인터넷 세상을 돌아가게 만드는 대표적인 장치입니다. 산업자본주의 시대의 굴뚝 공장이 대표적인 축적 장치인 것처럼 인터넷 세상의 서비스 플랫폼은 현대 정보자본주의의 축적이 이루어지는 사회적 공장 장치이지요.

들뢰즈= 나는 여전히 장치라는 실체보다 그 안의 배열과 그에 따른 관계에 주목합니다. 우리는 구글, 페이스북, 트위터, 네이버 플랫폼에서 어떤 생산관계, 권력관계, 지식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나를 밝혀내야 합니다. 정보자본주의의 대표적인 장치인 서비스 플랫폼에서 그런 관계들이 형성되는 요소들이 어떻게 배열되어 있는가를 장치와 기계라는 개념을 활용해서 분석해내야지요.

푸코= 장치는 장치 소유자 혹은 고안자가 원하는 바를 얻기 위한 전략적인 수단입니다. 그래서 장치를 둘러싸고 불균등한 힘관계가 조성됩니다. 서비스 플랫폼 장치를 매개로 만들어지는 지식관계, 권력관계, 생산관계는 비대칭적입니다. 이용자는 자신의 활동 결과물을 서비스 플랫폼에 넘겨줌으로써 자신에 대한 지식과 정보 또한 부지불식간에 양도합니다. 이러한 비대칭적인 지식관계는 통제하고 통제당하는 권력관계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이런 관계를 추동하는 핵심적 동력은 플랫폼에서 만들어지는 기업과 이용자의 간접화된 생산관계에서 나옵니다.

들뢰즈= 맞습니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인터넷 세상의 서비스 플랫폼이란 장치를 고정된 실체가 아니라 이용자와 기업 간의 관계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청와대 위를 날아다니면서 사진을 찍는 무인정찰기는 우리가 말하는 장치가 아닙니다. 그런 것은 실체이지 관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푸코= “나는 장치가 그 본성상 전략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장치는 힘관계에 대한 조작이며, 그런 힘관계에 대한 합리적이고 계획적인 개입입니다. 이렇게 개입하는 까닭은 힘관계를 특정한 방향으로 발전시키거나 혹은 봉쇄하면서, 힘관계를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안정시켜 사용하기 위해서입니다.”

아감벤= 플랫폼 제공자와 플랫폼 이용자 간에도 그런 불균등한 힘관계가 놓여 있다는 의미겠지요?

푸코= 물론입니다. “장치에는 늘 권력의 작동이 기입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거기서 생겨나고 또 그것을 조건짓기도 하는 지식의 한 가지 또는 여러 제한과 연결됩니다. 지식의 여러 유형을 지탱하고, 또 그것에 의해 지탱되는 힘관계의 전략들, 바로 이것이 장치입니다.(푸코, <권력과 지식>, 나남, 236쪽)”

3. 가시성과 눈에 보이지 않는 것

푸코= 내가 <감시와 처벌>에서 감옥 장치를 분석하면서 주목했던 중요한 개념은 ‘가시성’(visibility)입니다. 나는 판옵티콘에서 빛의 배분에 따라 지식과 권력의 비대칭적인 관계가 이루어진다고 말했지요. 그런 감시 장치로서의 판옵티콘을 플랫폼에 적용시켜 봅시다. 원형 감옥에서는 눈으로 보는 가시성에 따른 권력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니까 감시하는 쪽은 안 보이고 빛의 배분에 의해서 감시당하는 쪽은 가시적으로 드러납니다. 인터넷 서비스 플랫폼과 장치에서는 프로그램과 데이터의 비가시성을 중심으로 권력관계가 만들어집니다. 이용자의 눈에는 인터페이스를 통한 서비스만 보이고 자신을 포획하고 감시하는 권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들뢰즈= 그런데 19세기 감옥 장치와 달리 현대의 빅데이터 기반 장치에서는 가시성과 비가시성을 매개하는 것이 빛이 아니고 코드가 되는 거죠. 알고리즘 혹은 비트가 감옥에서의 빛의 배분 역할을 대신하지요.

푸코= 그 코드에 대한 접근 불가능성 혹은 독해 불능이 이용자들을 무력하게 만듭니다. 일반인은 프로그램과 데이터베이스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이용자가 설혹 그것에 접근할 수 있더라도 소프트웨어나 데이터를 독해하거나 그것이 어떤 일을 수행하는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까 이용자는 소프트웨어와 데이터가 작동한 결과인 유저 인터페이스에서의 ‘가시성’에만 갇혀 있습니다. 그들은 원 소스에 대한 접근 불가능과 독해 불능 때문에 플랫폼 장치가 수행하는 수탈과 축적, 포섭과 추적 작용의 핵심을 못 보는 거지요.

들뢰즈= 서비스 이용자들은 자기의 데이터가 서비스 제공자인 기업에 의해 어떻게 수취되고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모르는 거죠. 그리고 자기의 활동 결과물 비트가 다른 이용자들의 비트와 뒤섞이고 적분되는 과정도 알 수 없지요. 물론 그 다음에 그것이 기업의 수익물로 변형되는 과정도 알 수 없습니다. 이런 전체 과정이 모두 인터넷 세상에서 이루어지는 비가시성의 영역에 속합니다.

4. 장치와 실천

아감벤= “장치들을 세속화하는 문제 즉 장치들 안에 포획되고 분리됐던 것을 공통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돌리는 문제는 그만큼 긴급한 사안입니다. 이 문제를 짊어진 자들이 주체화 과정이나 장치들에 개입할 수 있게 되고 통치될 수 없는 것에 빛을 비추게 될 때에야 비로소 이 문제는 올바르게 제기될 것입니다.(아감벤, 같은 책, 48쪽)”

푸코= 좋은 이야기입니다만 아쉽게도 그런 생각은 그냥 당신의 바람에 그칠지도 모릅니다. 현실은 그 반대의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지 않습니까? 서비스 플랫폼 장치의 세속화보다 지배의 세속화가 훨씬 더 광범위하게 이루어지고 있지 않나요? 그것은 이용자 활동이 이루어지는 공간에서는 가시성과 발화성에 입각하여 이용자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촉진하고 그들의 힘과 주체화를 강화하는 것처럼 작동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는 이용자들의 활동 결과물을 수취하고, 그들의 활동을 추적하고 통제합니다.

들뢰즈= 맞습니다. 소프트웨어는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것은 비가시성의 영역에 속하지요. 소프트웨어의 언어는 입을 통해 소리로 말해지지 않습니다. 그것은 인간이 인간에게 건네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명령어의 집합으로서 무자비하게 실행만을 담당하는 조건부 명령의 집합체일 뿐입니다.

푸코= 그러나 자동화된 플랫폼 서비스에서 이용자가 벗어날 길은 사실 별로 없습니다. 왜냐하면 서비스 플랫폼 자체가 이용자에게 활동 공간과 편의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용자들은 공짜 서비스를 즐기는 대신에 그들의 식별 정보와 활동 결과물, 이용 흔적을 서비스 제공자에게 아무 저항 없이 넘겨줍니다. 서비스 플랫폼의 이러한 모순적 속성이 서비스 플랫폼에 대한 이용자의 자발적 저항을 어렵게 만듭니다.

아감벤= 이용자가 인터페이스 수준이나 데이터 활용 영역에 개입하고 참여할 방법이나 도구가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플랫폼에 대한 외부로부터의 해킹이나 장치로부터 ‘물러서기’나 ‘이용거부’를 통해 플랫폼을 무력화시킬 가능성은 존재합니다.

들뢰즈= ‘권력이 힘들의 관계’이고 모든 힘들의 관계가 하나의 ‘권력관계’라면, 모든 힘들은 언제나 특정한 권력관계입니다. 내가 주장하는 실천적 장치학은 “어떤 빛과 언어의 조건 아래서, 나는 무엇을 알 수 있으며 무엇을 보고 언표할 수 있는가?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으며, 나는 어떤 권력을 요구할 수 있고 또 어떤 저항으로 맞설 수 있는가. 나는 어떻게 존재할 수 있는가(들뢰즈, <푸코>, 동문선, 172쪽)”를 따져 물음으로써 장치에 의한 지배를 수동적으로 감내하지 않고 제도화된 권력의 선분과 완성된 지식의 선을 전복하는 일입니다.

푸코= 어쨌든 이용자의 데이터를 전유하고 이용자를 감시하며 이용자를 수단으로 내모는 플랫폼 체제를 극복할 주체는 이용자 이외의 다른 누구도 될 수 없습니다. 허망한 결론이지만 빅데이터 시대의 이용자 운동은 이처럼 너무도 명백하고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는 데서 출발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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