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제3세계 사회학연구소 소장

2014.04.07 21:34
제네바 | 글 안희경 재미 저널리스트·사진 안선영 사진작가

식량 남아도는데 굶어 죽는 아이들… 이들은 암살 당하는 겁니다

기아 고통, 열등해서가 아니라 구조적 착취에 무력한 탓입니다

인도의 벽돌 공장에서는 여남은 살 안팎의 사내아이들이 무릎이 갈리도록 온종일 벽돌을 나른다. 말라위의 담배농장에서도 대여섯살 여자아이까지 맨손으로 담뱃잎과 씨름하고 있다. 그 아이들의 몸엔 먼지와 화학약품이 배어들고 미처 자라기도 전에 관절이 녹아내리며 뼈와 면역 체계마저 무너진다. 듣기조차 버거운 아동 노동 실태이다. 1억6800만의 어린이들이 노동에 시달린다. 해마다 630만명의 어린아이들은 5살이 되기 전에 굶어 죽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굶어 죽지 않고 살아남으려면 착취당할 기회라도 있어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일부 경제학자들마저 공식적으로 동의한다.

이 아이들을 죽음 아니면 착취 상황으로 떠민 것은 부패한 정권, 무능한 정권이다. 그들의 부패와 무능은 초국적 거대기업과 손을 잡고 있다. 부패와 무능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유지할 수 있는 이유는 국가 경제의 근간인 토지와 자원 그리고 국민마저 내주고 끌어들인 해외기업의 투자와 외채 때문이다. 거대기업이 가져가는 이윤 덩어리에는 하청기업의 몫과 그 아래에서 연명하는 영세기업의 부스러기 몫까지 얽혀 있다. 그 속에서 제일 마지막 사다리에 있는 개인들은 하루를 더 버틸 음식이 없어 죽어간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아마르티아 센은 아동 노동은 현대판 노예제라고 규정했다. 교육받을 기회, 육체와 정신을 성장시킬 기회를 빼앗긴 채 정부의 규제 없는 세상에 버려진 아이는 평생을 노예처럼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들의 부모가 살아가는 그 인생처럼. 세네갈, 방글라데시, 온두라스, 아이티를 막론하고 지구를 가로지르는 개발도상국가에서는 다수 인구가 가난의 굴레에서 저임금 노동으로 분노하며 살고 있다. 그들의 노동은 설탕이 되고 옷이 되고 연료가 되어 우리에게로 온다. 우리가 소비하는 재화를 바탕으로 거대기업이 이윤을 얻기에 우리는 사려 깊은 소비로나마 자본의 질주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지난 1월 캄보디아 봉제 노동자들의 시위를 통해 저임금 착취가 알려지자 스웨덴 기업인 H&M은 최저임금을 인상하겠다고 발표했다. 우즈베키스탄의 면화 생산 아동 노동 역시 소비자에게 알려지면서 근절되었다. 물건과 더불어 이미지를 소비하는 현대사회이기에 개인의 각성은 힘을 갖는다.

세계화된 자본이 권력을 휘두르는 우리 시대, 전체 인구의 12%가 기아로 내몰리고 있기 때문에 집단적 깨달음은 더욱 절실하다. 오늘 ‘문명, 그 길을 묻다’에서는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를 만난다. 그는 오늘날의 기아를 일상적 대량학살이라 명명했고, 이 문제의 핵심이 초국가적 기업들 간의 경쟁에 있다고 집어냈다.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이사회 부대표이기도 한 장 지글러 교수와의 만남은 2월17일 스위스 제네바대학에서 이뤄졌다. 당시 긴박하게 흘러가던 시리아 상황 때문에 인터뷰 일정이 급작스레 변경되었다. 유엔 회원국을 설득하고 오바마 정부의 결단을 촉구하여 시리아에 구호식량을 전달하고자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이 장 지글러 교수를 발제자로 베를린 회의에 초청했기 때문이다. 베를린에서 돌아오자마자 갖게 된 인터뷰 자리에서 한국인에게 전하고자 하는 그의 메시지는 분명했고 열정 또한 뜨거웠다.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는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 아래에서 ‘암살’에 가까운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시민의식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는 “약육강식의 세계 질서 아래에서 ‘암살’에 가까운 기아가 발생하고 있다”면서 “시민의식으로 이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지구의 식량·재화 절반 이상 세계 500대 회사가 좌지우지
그들의 식량 투기·이윤창출에 쌀값 63% 오르고 밀값 두 배 껑충
기아는 구조의 문제이자 초국적 기업의 일상적 대량학살

안희경 = 유엔 최초의 식량조사관으로서 기아 퇴치, 난민 구조에 전념하셨습니다. 지금도 사회학자로서 기아문제의 본질을 알리는데 앞장서고 계시는데요. 외국인들이 부자나라라고 부르는 한국인에게 기아 문제는 인도적으로 도움을 베푸는 선행 차원으로 다가옵니다.

지글러 = 기아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5초마다 10살 이하의 어린이가 못 먹어 죽어갑니다. 매일 기아로 5만7000명이 죽어요. 세계 71억 인구 중에서 8억4200만명이 기아 상태입니다. 유엔식량기구(FAO) 발표에 의하면 오늘날의 농업 시스템에서 생산되는 식량은 일일 성인 기준 2200칼로리로 120억 인구가 먹고살 수 있는 양이라고 합니다. 지금보다 인구가 2배 가까이 늘어난다 해도 배고픈 사람이 생겨서는 안 될 생산량이죠. 오늘날 객관적으로 보면 식량 부족은 없는데 어린이들이 죽고 있어요. 아이들은 암살당하는 겁니다. 살인자는 동족을 잡아먹는 식인적인 세계 질서이고요. 작년에 7000만명이 이런 저런 이유로 죽었는데 그 가운데 2700만명이 기아로 죽었어요. 기아와 영양 실조가 주요 사망 사유가 된 겁니다. 이는 일상적인 대량 학살입니다. 인간이 저지르는 살육이에요.

안 = 기아는 대부분 특정지역에서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않고 계속됩니다. 그래서 아프리카인들은 왜 그렇게 게으르고 아이를 많이 낳아 비극을 자초하느냐는 시선도 실제 있습니다.

지글러 = 대부분 희생자는 아시아에서 나옵니다. 5억5300만명이 심각하고 영구적인 영양실조 상태죠. 아시아에 인구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희생자 비율은 아프리카가 35.2%로 제일 심각합니다. 한국은 식량주권을 획득한 나라라서 필요한 식량을 수입으로 완벽하게 확보하는데 유엔 194개 주권국 가운데 121개국은 식량주권이 없어요. 생산하지도 못하고 사오지도 못하는 형편입니다. 왜일까요? 약육강식의 세계질서 아래 있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세계은행 보고를 보면 세계 500대 회사가 지구에서 생산되는 모든 쌀, 재화, 자본 등등의 52.8%를 좌지우지한다고 합니다. 그들은 노동조합, 국가, 다른 사회적 관리로부터 완전하게 벗어나 면책 특권을 누려요. 과거에 어느 교황도, 황제도 갖지 못했던 대단한 권력으로 그들이 세계의 주인이죠. 그들은 기술적으로 능력이 넘치고 생산적이며 전천후인데, 그 기술을 오로지 이윤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만 씁니다.

안 = 기업의 목표는 이윤입니다. 그 이윤에 기대어 살아가는 노동가족이 있고 그들 기업의 경제활동에 의지하는 국가경제가 있습니다.

지글러 = 자, 어떻게 이윤경쟁으로 그렇게 많은 어린이들을 매일 죽이는지 그 살인 메커니즘을 알려줄게요. 첫째, 식량에 대한 주식 거래 투기가 있는데 이는 완벽하게 합법입니다.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후 한국을 포함한 큰 헤지펀드들이 금융 증권 거래에서 원자재 증권 거래로 옮겨갔습니다. 식량에 투기해서 천문학적인 이윤을 만들었어요. 밀, 옥수수, 쌀이 식량소비의 75%를 차지하는 주식이니까 거기에 투기한 거죠. 그 결과 쌀값이 5년 새 63% 올랐어요. 톤당 밀값은 두 배가 됐고요. 이렇게 되면 빈민거주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충분한 열량을 섭취할 수 없게 됩니다. 세계은행이 조사하길 세계 도시 거주 인구 38억명 중에서 10억명이 슬럼에 산다고 합니다. 유엔은 이들을 ‘비공식 거주민’이라고 부르는데요. 파키스탄 카라치,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페루 리마 등등에 있는 슬럼들은 아주 열악하죠. 그래서 큰 은행이 합법적 투기로 이윤을 만들면 거기 사는 어린이들은 죽어요. 제가 본 일화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페루의 쌀 저장고에서 해질녘부터 자정까지 있었는데, 어머니들의 긴 행렬이 이어졌어요. 예, 쌀 사러 온 엄마들입니다.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죠.

안 = 밤까지요?

지글러 = 한밤중까지요. 그 엄마들 중에 1㎏이나 아니면 비닐봉지 반이라도 채워 가는 이를 못 봤어요. 작은 플라스틱 컵을 가져와서는 겨우 한 컵만 삽니다. 그리고 집에 가서 불을 지피고 물이 끓으면 거기에 쌀을 붓는 거죠. 생각해 봐요. 그 흥건한 쌀죽으로 아이들이 다음날 하루를 더 사는 거예요. 시름시름 죽는 거죠. 첫번째 요인인 식량 증권 투기가 책임져야 하는 일입니다. 이는 사람이 만든 거예요. 두번째 메커니즘은 외채입니다. 아프리카에는 54개 나라가 있고 농업 국가들인데, 그들 중 다수가 매우 좋은 토양을 갖고 있고 매우 훌륭한 농부들이 매우 오래된 문명을 일궈왔어요. 말리의 밤바라족처럼요. 그런데, 작년에 모든 나라들이 아시아로부터 식량을 수입했습니다. 240억달러어치의 식량을 수입했죠. 값이 오를 대로 올라있는 상황인데도 세네갈은 쌀 소비의 70%를 수입에 의존합니다. 말리도 60~65%를 필리핀, 태국, 베트남에서 사와야 하고요.

안 = 농사를 짓는데도 그렇습니까?

지글러 = 농사… 아프리카의 37개 국가는 오로지 농사만 짓는 국가들입니다. 하지만 생산성이 극히 낮습니다. 예를 들어 전쟁이 없고 가뭄이 없다고 치면, 이런 경우는 정말 매우 드문데요, 그럴 때 아프리카의 1㏊당 밀 수확이 600~700㎏이에요. 유럽은 1만㎏이고요. 아프리카 농부들이 미국이나 프랑스 농부보다 일을 덜 해서도, 덜 능숙해서도 아닙니다. 미국과 유럽 농부들은 국가 지원을 받습니다. 도로 설비도 좋고 관개시설에 종자도 선별되고 트랙터 같은 농기구와 살충제도 풍부하죠. 보험도 있어요. 하지만 아프리카 국가들은 다릅니다. 대부분 과도한 부채에 시달리고 이자를 갚아야 하지요. 모두 돈으로 지불해야 합니다. 그래서 국제조직은 아프리카 농업을 산업화시켰습니다. 수출해서 돈을 벌게 하죠. 그럼 이자를 거둬갈 수 있으니까요. 말리는 면화를 수출하고 세네갈은 땅콩을 수출해요.

아프리카 남수단 나이얼에서 한 가족이 세계식량계획(WFP)이 제공한 식용유를 나누고 있다. 만성적 기아에 시달려온 남수단 주민들은 내전까지 겹쳐 풀뿌리로 연명하는 일도 많다. | AP연합뉴스

아프리카 남수단 나이얼에서 한 가족이 세계식량계획(WFP)이 제공한 식용유를 나누고 있다. 만성적 기아에 시달려온 남수단 주민들은 내전까지 겹쳐 풀뿌리로 연명하는 일도 많다. | AP연합뉴스

▲ 빈국 정부 비호 업은 기업들 노동자가 된 농민을 또 착취
한국 회사들도 자유롭지 않아… 우리도 누구도 될 수 있는 신세
노동운동으로 역사를 바꾼 한국민들이 변화를 이끌어주길

안 = 결국 밥과 반찬거리를 재배하던 소규모 영농은 무너지고 모든 영양소는 돈을 주고 사서 보충해야 하니 영양실조 상태로 내몰리게 되는 거군요. 면을 뜯어 먹을 수도, 땅콩만으로 허기를 채울 수도 없으니까요.

지글러 = 없죠. 그 땅콩은 프랑스 식용유 회사로 수출되는 겁니다. 이렇게 만들어내는 돈은 국제통화기금(IMF)이 이자로 거둬가요. 대부분의 아프리카 나라들, 또 방글라데시와 온두라스가 큰 빚을 지고 있습니다. 아프리카 나라들이 농업에 투자하는 돈은 전년 예산의 4% 정도인데, 이는 아무것도 없다는 거죠. 한국은 아마도 20~25% 정도일 겁니다. 블랙 아프리카, 그러니까 사하라 사막 이남은 오로지 3%의 토양만 관개시설이 되어 있어요. 그래서 기후 변화가 생기면 타격이 큽니다. 기후 이변은 짧은 기간에 더욱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뿔이라고 불리는 케냐, 에티오피아, 에리트리아, 지부티, 소말리아가 5년 동안 가뭄으로 고통받고 있어요. 거기는 너무나 가난해서 외국에서 식량을 사올 돈도 없습니다. 인도적 구조에 의존하는데요. 기가 막힐 정도입니다. 세계에서 가장 큰 피난보호소가 있는 곳이 케냐 북부 다바예요. 아프리카의 뿔에서 피난 온 사람들이 거기에 50만명이 있는데도 매일 몰려옵니다. 세계식량프로그램 직원들이 아침마다 하는 일은 찾아온 사람들을 사바나로 돌려보내는 것이에요. 100가족은 돌려보냅니다. 음식이 부족해서죠. 그러면 그 사람들은 초원에서 죽어갑니다. 그 나라 정부가 부패했든 아니든, 이자 내고 나면 농업에 투자할 돈이 없습니다. 세번째 살인 메커니즘은 농산물 덤핑입니다. 유럽연합(EU)에는 28개국 4억8000만명이 소속돼 있어요. 아프리카로 식량을 매우 값싸게 수출합니다. 오늘날 아프리카의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농산물은 프랑스, 그리스, 스페인, 독일 등에서 나온 야채, 과일, 닭뿐이에요. 아프리카 제품의 반값입니다. 다카르를 예로 들면, 여기가 서부 아프리카에서 제일 큰 도시인데 아프리카 농부들은 부인과 아이들 할 것 없이 모두 살갗이 타들어 가듯 내리쬐는 태양 아래서 노예처럼 매일 10시간씩 일해요. 그러고도 생존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음식도 얻지 못합니다. EU의 위원회가 얼마나 위선적인지 알 수 있죠. 음흉하게 내부에서 덤핑을 조직해 자국의 이윤을 챙기니까 아프리카 지역 농사는 가격경쟁이 안돼 파괴되고 그들 유랑 농부는 사막을 넘어 바다로 가서 유럽 변경에 모이게 됩니다.

안 = 유럽의 하층민을 이루며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아프리카 노동자들이 그런 과정을 거쳐 유입되는 것이군요. 가난해도 결정권을 가진 각 나라에 정부가 있을 텐데요. 정부는 무엇을 합니까?

지글러 = 그 정부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아요. 아프리카 정부뿐 아니라 아시아, 남아메리카 정부들도 같습니다. 방글라데시에 갔을 때입니다. 거기에는 서구 다국적 기업들의 하청을 받아 운영되는 한국과 대만 봉제공장들이 많습니다. 잊지 못할 한 가족이 있었죠. 두 살, 네 살, 다섯 살, 여섯 살 아이와 엄마가 맑은 눈으로 나를 뚫어져라 응시했습니다. 절박한 처지였던 거예요. 릭샤를 끌던 애들 아빠가 죽고 봉제공장에 다니던 엄마마저 해고됐습니다. 방글라데시 공장들은 주로 여성을 고용해서 법정최저임금을 밑도는 한 달에 겨우 12유로만 줍니다. 위생규정도 안 지키고 노조설립도 금지하고 주문량이 줄면 가차 없이 해고하는 식이죠. 아이들 엄마가 다니는 봉제공장 건물이 붕괴되는 사고가 일어났습니다. 회사는 즉시 직원을 모두 해고했고 방글라데시 정부는 끝내 희생자 숫자를 발표하지 않았어요. 결국 그 엄마는 보상도, 식량프로그램 지원도 받을 수 없는 상태로 내몰리게 됐습니다. 그 가족은 언뜻 봐도 영양실조가 위험수위라는 것을 알 수 있었죠. 그들 정부는 자기 국민들의 고통을 살피기보다 외국 기업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의존합니다.

안 = 세계적인 인권운동가인 반다나 시바 선생을 만났을 때 한국의 포스코가 인도에서 광산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지역주민들이 저항하자 경찰이 동원돼 여성과 어린이한테까지 폭력을 행사했고 농민이 죽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한국에서는 주목받지 못했던 일이라 저뿐 아니라 독자들도 경악했죠.

지글러 = 아프리카에도 가혹한 상황이 발생하고 있어요. 많은 한국 회사들이 있습니다. 대우로지스틱스는 마다가스카르의 비옥한 토양 100만㏊, 그 나라 영토의 반을 99년 동안 임대하기로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부패한 권력가가 비밀리에 진행한 건데 서구 언론에 현대판 식민지 침략으로 보도되면서 국민들이 들고일어나 정권이 바뀐 일이 있었습니다. 초국적 기업들의 경쟁 구도에 한국 회사들도 있는 거죠. 지역 농부들은 쫓겨나고 생산물도 지역이 아닌 다른 곳으로 수출되는 공장식 산업이 됩니다. 초국적 기업들은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개발을 할 수 있어요. 노동력도 그렇게 착취하며 천문학적인 이윤을 만듭니다. 그 시스템을 바로 식인적 세계질서라고 부르는 겁니다.

안 = 한국에서도 힘이 없어 당하는 서러운 일들이 많습니다. 하지만 차마 한국이라면 하기 힘든 일이 버젓이 외국에서 벌어질 때 남의 일로 치부하기에는 경제개발 과정에서 우리가 겪어온 일들이 어제처럼 생생합니다. 더 많은 한국의 소비자들이 실상을 알면 변화를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글러 = 네. 이 인터뷰를 보는 분들이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알았으면 좋겠습니다. 기아에 허덕이는 이들은 결코 문명이 없어서, 열등해서가 아닙니다. 그들은 모두 훌륭한 농부였고 가정을 책임져온 부모들이었습니다. 인간의 탐욕이 만든 시스템의 희생자일 뿐입니다. 그런 부모에게서 태어나는 것 또한 그저 우연이고요. 만약에 당신 아들이 브라질 북부 사탕수수 자르는 아버지한테서 태어났다면 배 속에는 벌레가 있고 매일 멀건 죽만 먹을 겁니다. 영양 부족으로 뇌도 제대로 발달하지 못할 거예요. 5살까지 음식을 충분하게 섭취하지 못하면 뇌로 영양이 가지 못해 정상적인 발달이 안됩니다. 평생 장애를 갖고 살 수밖에 없죠. 당신 아들과 브라질 북부의 소작농 아들 사이의 차이는 그냥 태어난 운이 다른 것뿐입니다. 우리가 왜 그 아이들까지 돌봐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그 아이가 바로 우리 자신이 될 수도 있었다고 말하고 싶어요. 그 아이와 한국에 사는 아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없어요. 사람들은 ‘강인한 의지가 있으면 생존하는 거고 나약하면 죽어야 한다’고도 하지요. 하지만 우리에게 모든 사람은 평등하다는 시민의식이 있다면 이 말이 얼마나 인종차별적이고 우생주의적인 위험한 사고인지 알 겁니다. 우리는 함께 도와야 합니다.

안 = 왜 라틴아메리카에서 백인 지도자가 더 많이 나오는지 설명해주네요. 두뇌개발이 온전히 이뤄지기 어려운 생활조건과 신체발달 기회도 얻기 힘든 영양 상태에서 계급은 세습될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습니다.

지글러 = 그럼요. 그리고 저는 한국 노동자들의 운동에 매우 깊은 감화를 받았습니다. 일본이 점령하던 1910년부터 1945년까지 한국은 모조리 수탈당했어요. 다시 북한의 공격을 받았고 200만명을 잃었습니다. 그 후 남한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죠. 그리고 독재 정부까지 이어집니다. 하지만 한국 노동조합은 매우 강했습니다. 자유를 위한 싸움… 그 독재를 깼어요. 이것이 내가 한국 노동운동, 학생운동에 존경을 표하는 이유입니다. 이는 매우 중요한 예입니다. 한국 역사는 세계사에 선례를 남겼어요. 많은 사람들에게 외국의 공격과 점령 그리고 독재에 대항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습니다. 그런 힘을 이제는 초국적 기업들의 이윤추구 경쟁을 막아내는 데 모은다면, 한국인들은 또 하나의 세계사적 선례를 남기는 게 됩니다. 저는 해내리라 믿습니다.

▲ 장 지글러
저서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로 기아 관점을 바꿔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오른쪽)가 안희경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 지글러 제네바대 교수(오른쪽)가 안희경씨와 인터뷰하고 있다.

장 지글러(Jean Ziegler·80)는 스위스 제네바대학 교수이자 그가 직접 설립한 제3세계 사회학 연구소가 있는 프랑스 소르본대학 명예교수다. 또한 유엔인권위원회 자문이사회 부대표로 재직하고 있다. 그는 2000년 유엔인권위원회의 첫 번째 식량특별조사관으로 위촉되었고, 그 이전인 1981년부터 1999년까지는 스위스 연방의회 사회민주당 소속 의원으로 활동했다. 국제법 분야에서 인정받는 학자이자 실증적 사회학자로서 인도적 관점에서 빈곤과 사회구조의 관계에 대한 글을 발표해왔다.

그는 필자에게 책을 쓰는 이유는 그 책이 무기가 돼 세계 기아를 유발하는 구조를 무너뜨리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초국적 기업들과 신자유주의 체제를 공고히 하는 국제기구들로부터 위협과 공격을 받으면서도 그는 용감하게 폭로를 계속해왔다. 저서로는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탐욕의 시대> <굶주리는 세계, 어떻게 구할 것인가?> <빼앗긴 대지의 꿈> 등이 있다.

지글러 교수는 또 ‘식량권’(http://www.righttofood.org) 활동의 하나로 노마퇴치에 앞장선다. 노마는 어린이들이 영양부족으로 면역체계가 약화되면서 입안에 생기는 아구창을 시작으로 발병하는데, 항생제 값 3달러가 없어 치료받지 못하면 광대뼈와 코가 무너지고 볼에 구멍이 뚫리며 결국 죽음에 이르게 된다. 그는 한국인의 지원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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