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마키아벨리의 ‘디지털 군주론’

2014.04.11 20:59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사자의 ‘힘’과 여우의 ‘꾀’로 e정글을 지배하라

1513년 나는 로렌초 데 메디치에게 내 책 <군주론>을 바쳤다. “인민의 본질을 완전히 이해하려면 군주가 되어야 하고, 군주의 본질을 온전히 알려면 보통 시민이 되어야 하는 것(마키아벨리, <군주론>, 펭귄클래식코리아, 34쪽)”처럼 이제 나는 디지털 군주의 입장에서 피용자와 이용자를 바라보고, 또한 이용자의 관점에서 디지털 군주를 논해 보겠다. 부디 높은 데 계시는 한국의 디지털 군주들께서도 이 작은 선물을 보내는 뜻을 살펴 받아주시기 바란다. 이 짧은 글에서 인터넷 세상의 디지털 군주국에는 어떤 종류가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유지되는지, 그리고 디지털 군주에게는 어떤 덕과 자질이 요구되는지를 논하려 한다. 나는 500년 전 이탈리아에서 행했듯 디지털 왕국의 군주가 어떻게 생각하고 행동해야 권력을 유지할 수 있는가에 관해 허망한 이론이 아니라 구체적인 방법과 수단을 알려주리다.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4) 마키아벨리의 ‘디지털 군주론’

1. 디지털 군주국과 혁신

“과거와 현재를 통틀어 인간의 삶을 지배한 모든 국가, 모든 영지는 공화국 아니면 군주국이었다.(37쪽)” 디지털 왕국도 예외가 아니다. 디지털 왕국은 한 가문이 오랫동안 지배하는 세습 군주국과 신생 군주국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군주국과 공화국을 결합한 트위터나 페이스북 같은 과도적 모양을 띤 SNS 나라들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의 삼성은 대표적인 세습 디지털 군주국이다. 세습 디지털 왕국에서는 산업시대에 기업의 틀을 이룩한 창업 1세가 2세에게 왕권을 이양하고, 이제 3세가 권력을 인계받을 준비를 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와 애플, 아마존은 창업자의 권력과 카리스마에 의해 지배되는 전형적인 신흥 디지털 군주국인 데 반해 구글이나 페이스북은 신흥 디지털 왕국이지만 시민군주국이나 공화국적 면모도 띠고 있다. 이 중 가장 역사가 오래된 마이크로소프트 왕국은 작은 왕국이나 공화국을 병합하면서 성장한 군주국이다. 이들 정복 군주는 여러 디지털 소왕국들을 침탈하여 영토를 넓히고 이용자 인구를 불려 지배력을 확장해왔다. 아마존이나 구글 같은 신흥국도 정복욕에 불타기는 마찬가지다. 구글은 유튜브 소왕국을 병합했고 아마존은 워싱턴포스트 종이 신문 왕국을 합병했다. 이들 나라의 군주는 흔히 돈의 무력으로 영토를 얻고 때로는 운으로, 그리고 아주 가끔 자신의 능력으로 그것을 얻는다. 성공한 디지털 군주는 돈을 잘 운용하는 자와 ‘운’(fortuna)을 ‘덕과 능력’(virtu)으로 수용하여 새로운 영토를 획득하는 자와 ‘피할 수 없는 필연의 시대적 요구’(necessita)를 잘 활용하는 자로 나뉜다. 그중 으뜸은 시대의 필연적 요구를 자신의 능력으로 개척하는 군주일 것이다.

무릇 세상이 조용할 때 시대가 뒤바뀌는 법이다. 그러니 바다가 고요할 때 폭풍을 예상하고 태평성대일 때 변혁의 기틀을 예비해야 한다. 무사안일로 좋은 세월을 지내다 보면 역경이 닥칠 때 저항 한번 못하고 망한다. 운명의 습격에 대처하는 유일한 방책은 자신의 덕과 능력을 기르는 일이다. 운명의 여신은 너그럽게도 우리가 하는 일의 절반만을 주재하고 다른 절반은 우리 자신이 결정하도록 남겨둔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오늘 흥했다가 내일 아침 망하는 일이 다반사다. 운에 의지하는 회사는 그 운세가 바뀔 때 망한다. 천하의 잡스도 운과 자신이 내린 정책 사이에서 천국과 지옥을 오간 군주였다. “운은 가변적인 반면 인간은 처신이 완고하기 때문에, 운과 정책이 일치하면 인간은 흥하고 충돌하면 망한다.(150쪽)” 이것이 오랜 경험 끝에 내가 내린 결론이다. 그래서 디지털 군주에게는 시대가 몰고 오는 불가피성을 미리 읽는 예지와 정확한 정세 판단이 요구된다. 디지털 왕국의 군주는 자신의 성격을 바꾸어 운명과 맞설 줄 알아야 한다. 경고 없이 다가오는 운명의 수레바퀴를 피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도망가는 길밖에 없다. 그래서 디지털 군주들은 혁신이란 초고속정을 타고 운보다 빨리 앞으로 달려 나간다.

그동안 융성했던 디지털 왕국 중에 혁신을 전면에 내세우지 않는 나라는 하나도 없었다. 스티브 잡스의 혁신은 기존에 없는 것을 만들어내는 창조였으며 오래된 것을 뛰어넘는 새로움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창조는 곧장 경쟁에 직면하게 되고 수성을 위해 지속적으로 새로움을 만들어내야 하는 ‘혁신자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그는 죽기 전에 애플 왕국이 낡은 패러다임에 매달릴 위험이 있다고 경고하였다. 구글 왕국의 혁신관은 이와 조금 다르다. 에릭 슈미트 회장은 “우리의 전략은 경쟁하지 않는 것이다”라고 밝혔다. 경쟁하지 않고 혁신으로 앞서 나가 새로운 시장을 만들고 항상 선두에 서겠다는 말인데, 이는 신흥 시민군주국으로서 적합한 목표 설정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아마존 왕국의 군주 제프 베조스는 매우 독특한 혁신관을 보여준다. 그의 혁신관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 하나를 소개한다. “나는 앞으로 10년 동안에 어떤 변화가 이루어지리라고 예측하십니까?라는 질문을 자주 받는다. 재미있지만 식상한 질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앞으로 10년 동안 바뀌지 않을 것은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하지 않는다. 이 두 질문 중에서 두 번째가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둘째 질문은 앞으로 예측 가능한 정보를 가지고 비즈니스 전략을 수립할 수 있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더 낮은 가격과 더 빠른 배송, 더 많은 선택을 원한다. 앞으로 10년 동안 이 전제는 바뀌지 않을 것이다. 누구도 이런 상상을 하지는 않을 거다. ‘이봐 베조스, 나 아마존이 참 좋은데 값을 지금보다 더 비싸게 치르면 좋겠어. 난 아마존이 참 좋은데 아마존은 배송이 너무 빨라.’ 우리는 이 불변하는 전제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에 10년이 지나도 헛고생은 아닐 것이다. 시간이 지나도 불변하는 것이 무엇인지 찾아내어 그곳에 시간을 많이 투자해야 한다.” 대부분의 디지털 왕국이 앞으로 달려가는 기술 혁신관에 매달려 있을 때 베조스는 거꾸로 뒤로 달려가 ‘고객 제일’ 혁신관을 만들었다.

2. 아마존 왕국의 베조스

그런 베조스가 스티브 잡스 사후 인터넷 세상의 최고 군주로 떠오르고 있다. 그는 아마존 책장사를 하면서 일찍이 ‘빅데이터’를 활용하였고 클라우드 컴퓨팅 사업을 다른 왕국에 앞서 실행하였다. 그는 사업 초기부터 물질과 정보를 서로 엮으면서 인터넷 세상을 현실 세계와 연결하였다. 물질 없는 인터넷 세상의 허무맹랑함을 깨치고 있던 그는 소비자들의 활동을 차곡차곡 축적하였다. 그래서 그는 항상 소비자에게 봉사하는 일을 왕국의 제일 목표로 삼았다. 베조스는 아마존의 성장 요인으로 ‘고객 중심’, ‘장기적 안목’, ‘창조’를 꼽는다. 그중에서 아마존의 최고 가치는 ‘고객 중심’이다. 아마존 왕국은 온라인 쇼핑의 불편한 점을 제거하고 제품과 서비스를 고객에게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전달하였다. 결국 베조스는 전자상거래 업계의 맹주가 되었고 대중의 소비 스타일을 완전히 바꿔버렸다.

최근 그는 유통 혁신을 가져올 특송 배달 계획을 발표했다. 아마존은 작년 말에 무인항공기 드론이 2.3㎏의 짐을 싣고 16㎞ 떨어진 지점에 물건을 배송하는 ‘아마존 프라임 에어서비스’를 선보였다. 이 또한 고객을 위한 혁신적 처방이다. 그의 혁신은 이처럼 고객만족이란 변하지 않는 목표를 위한 것이다. 때마침 한국에서는 추락한 무인기 몇 대가 발견되어 난리법석을 떨었다. 예의 정치평론가라는 작자들이 종편에 나와서 그 무인기가 북한의 적정기술을 이용한 무기라고 치켜세우는가 하면, 엉성하기 짝이 없는 넝마 비행기가 원하는 목표 지점에 폭탄을 떨어뜨릴 수도 있다고 오두방정을 떨어댔다. 아마존 드론이 물건을 배달하려고 서울 사방을 날아다니는 일은 아예 꿈도 꾸지 말아야 한다. 북한이 향후 아마존 드론을 몇 대 구입하여 서울시내 서너 군데에만 쓰레기를 배달해도 대한민국의 기능은 완전히 정지될 것이다.

아마존 왕국의 베조스는 내가 군주론에서 말한 바를 디지털 시대에 가장 잘 적용하는 인물이다. 그는 “자비하지 말고 잔인하라”는 내 규율을 아주 잘 지키고 있다. 종업원에게 사랑받기보다는 대중이 군주를 무서워하는 게 안전하다. 부하들은 군주를 무서워해야 하고 대중은 군주를 경외해야 한다. 직원들이 군주를 존경하기보다는 두려워하도록 만들어라. 이것은 잡스도 즐겨 쓰던 방식이다. 그래서 ‘이상한 나라’의 여왕처럼 툭하면 “저 놈의 목을 따라”고 명령한다. 그의 사전에 고객제일주의는 있어도 직원제일주의는 없다. 아마존 왕국의 베조스는 마이크로소프트 왕국의 빌 게이츠와 달리 사회에 기부도 별로 하지 않고 지역사회 발전을 위한 투자도 하지 않는다. 그러나 괜찮다. 그런 점이 그를 유능한 디지털 군주로 만들기 때문이다.

3. 구글 시민군주국과 페이스북 공화국

구글은 검색 알고리즘 하나로 이용자의 지지를 받아 급성장한 왕국이다. 이용자에게 배반당하지 않는 한 시민왕국의 군주 권력은 확고하게 유지될 수 있다. 구글이 시민군주국인 이유는 그 왕국이 이용자들의 활동과 지지로 지탱되기 때문이다. 군주는 이용자의 우정을 얻어야 한다. 구글은 창업자와 최고경영자, 회장이 경영을 나눠 맡으면서 원로회 비슷한 지배 체제를 갖추고 있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개발한 ‘페이지랭크’라는 알고리즘이 구글을 인터넷 세상 최고의 검색 왕국으로 키우는 실마리를 제공했지만 구글 왕국의 사업적 성공을 이끈 사람은 에릭 슈미트다. 슈미트는 삶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방향’이라고 말한다. 그는 속도는 느리지만 구글이 방향을 잃지 않도록 왕국의 균형을 잡아주었다.

그는 조직원들 뒤를 따라다니며 필요할 때 힘을 실어주는 ‘그림자 리더십’의 대명사다. 슈미트는 잡스나 베조스와 달리 사람들을 포용하는 리더십을 갖추고 있다. 그는 잘난 체하지 않으면서 온화한 인품을 보여주는 현자에 가깝다. 그뿐만 아니라 비판적인 질문을 슬쩍 비켜나가는 노련함도 갖추고 있다. 그는 생김새와 달리 여우의 기지를 겸비하고 있다. 슈미트는 뻔뻔스럽게도 “만약 당신의 프라이버시가 새나갔다면 그것은 구글에 잘못이 있는 게 아니라 최초에 그것을 누설한 당신의 잘못”이라고 말한다.

“위엄을 이룬 군주는 약속을 가벼이 하고 간교함으로 사람들을 속이는 법을 알며 공허한 원칙들에 얽매인 자들을 이긴 사람들이다. 무릇 군주는 인간의 법과 짐승의 힘을 결합해야 한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윤색하는 방법을 깨치고 있어야 하며 탁월한 거짓말쟁이와 사기꾼이 되는 법을 알아야 한다.(113쪽)” 대중은 단순무지하고 목전의 이익에 급급하여 사기꾼에게 기만당할 준비가 되어 있다. 그러니 군주는 결정적일 때 대중과 맺은 약속 어기기를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며, 사기를 치더라도 신의와 약속을 중시하는 정직한 군주처럼 보이게 해야 한다. 당신의 입은 대중에게 자비롭고 다정하고 정직하게 보여야 한다. 그러나 당신의 손은 그 반대 행위를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

이용자 대중은 군주의 숨은 의도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그들은 항상 외양과 결과만 본다. 세상 물정 모르는 어린아이 둘이 주변 어른들의 사악함을 보고 순진하게도 자신들은 그리 되지 말자고 “사악하지 말자”를 창업 표어로 내걸었다. 하지만 그건 이제 웃기는 얘기가 되어버렸다. 그들이 사악하지 않고 어떻게 그 거대한 왕국을 유지할 수 있겠는가? 나는 일찍이 사악함이 군주의 기본 덕목이요 자세라고 말했다. 검색 엔진이 나름 괜찮았기에 망정이지 “사악하지 말자”라는 표어를 진정으로 실천했더라면 오늘의 구글 왕국은 일찌감치 지도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구글의 프라이버시 경시에 대해 이용자들의 공분이 몰아치자 슈미트는 솔직하게 구글이 검색 결과를 일정 기간 보유하고 있으며 미국의 애국법이 요구하는 한 그 정보를 제출해야 한다고 밝혔다. 디지털 군주들은 이런 사악함을 배워 익혀야 한다. 그래서 국가안보국(NSA)의 첩보 활동에 대한 질타가 이어질 때 슈미트처럼 이렇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항상 스파이가 존재했고 이미 여러 해 동안 감시가 진행되었다. 나는 정부를 비판하지 않겠다. 감시는 사회의 본성이다.” 이처럼 모순적인 말을 던지면서 이용자의 신뢰를 앞으로 얻고 뒤로는 이용자 활동의 결과물을 무상으로 수취할 줄 알아야 한다. 이것이 짐승처럼 행동하는 수법을 통해 여우의 간교함과 사자의 힘을 섞어 이용하는 군주의 재주이다. 디지털 왕국에서 “사악하지 말자”는 망하자는 이야기다. 슈미트는 어떤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 슬로건은 가장 어리석은 것으로 보였습니다. 왜냐하면 성경 말고 사악함에 관한 책은 이 세상에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용자는 사악한 생물이라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니 군주도 그 약속에 얽매이기만 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한 이유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약속을 지킬 수도 없고 지켜서도 안 된다.(112쪽)” “악덕이 왕국을 지키는 데 필요하다면 그 때문에 비난받는 것에 움츠러들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모든 것을 신중하게 고려할 때 얼핏 유덕한 것으로 보이는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파멸을 초래하는 반면, 일견 악덕으로 보이는 다른 일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의 입장을 강화시키고 번영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103쪽)” 이것이 내가 구글 왕국의 지도자들에게 주는 마지막 조언이다.

그런데 유독 눈에 드러나지 않는 군주가 하나 있다. 페이스북의 저커버그이다. 그는 군주라기보다 아직도 풋내를 못 벗은 대학생 같다. 용병을 쓰지 않으면서 이용자를 시민군으로 활용하는 페이스북 이용자 공화국이 날로 확장하고 있다. 아직 왕정의 틀을 벗지 못하는 다른 디지털 왕국에 비해 이들이 급격한 성장세를 보이는 이유는 군주국에서 공화국으로 전환하는 놀라운 속도 때문이다. 급성장하고 있는 이들 신흥 공화국에 대한 분석을 미처 다하지 못하고 끝냄을 용서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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