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호머 심슨의 저작권 이야기

2014.05.16 20:36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평범한 아빠, 불법 다운 해적서 할리우드 스타가 되다

만화영화 <심슨 가족>의 등장인물인 호머 심슨이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개봉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호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유와 나눔’을 실천했다고 기뻐했으나 곧 저작권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신세가 된다.

만화영화 <심슨 가족>의 등장인물인 호머 심슨이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집 뒷마당에서 개봉 영화를 상영하고 있다. 호머는 즐거워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공유와 나눔’을 실천했다고 기뻐했으나 곧 저작권법 위반으로 체포되는 신세가 된다.

(이 콩트는 만화영화 <심슨 가족> 시즌 25, 에피소드 9. ‘이 이야기를 훔쳐라(Steal This Episode)’를 바탕으로 창작했다.)

미국의 반문화 활동가 애비 호프먼은 1970년 <이 책을 훔쳐라(Steal This Book)>에서 청년들에게 자유롭게 세상을 버텨나가는 방법과 정부와 기업에 대항하는 갖가지 수단을 알려주었다. 해적판으로 찍은 이 책은 그 후 입소문으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이 책은 ‘살아남아라, 투쟁하라, 해방시켜라’(Survive!, Fight! and Liberate!)의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호머 심슨은 며칠 전 애비 호프먼의 이 책을 읽고 크게 감동하였다.

호머는 어제 저녁 가족과 함께 <트랜센던스>를 보러 극장에 갔다가 영화 상영 직전에 나오는 국가 연주와 상업 광고에 열을 받아 삼차원 영상 고글 장비를 부수고 항의하다 극장 기도에게 쫓겨났다. 집으로 돌아온 호머는 분을 가라앉히며 애비 호프먼의 <이 책을 훔쳐라>를 읽었다. 철 지난 책이지만 그 책은 호머에게 1960년대의 자유와 공동체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켰다. 이 책의 1부 ‘살아남아라’에서는 옷, 신발, 밥, 집 그리고 사랑까지도 돈 한 푼 없이 맨손으로 해결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8) 호머 심슨의 저작권 이야기

1. 아름다운 뒷마당 영화

이 책을 읽는 동안 호머는 점점 더 디지털 저작권에 대한 반감이 커졌다. 그는 어느새 빈집에 들어가 살기도 하고, 남이 버린 이불이나 집기를 가져다 쓰던 1960년대 히피의 자유와 나눔의 정신에 깊이 빠져들고 있었다. 물질도 이처럼 나누는데, 하물며 디지털 파일이야 아무리 복제한들 무엇이 문제인가. 호머는 아들 바트가 어제 극장에서 다 못 본 영화를 인터넷에서 다운로드받을 수 있다고 알려주자 주저 없이 해적 사이트에 접속해 토렌트 파일을 통해 영화 파일을 내려받았다.

그는 어제 자신이 다섯 명 표값을 지불하고도 영화를 끝까지 못 보고 강제로 쫓겨났으니 이 영화를 집에서 다시 보아도 별문제 없으리라 생각했다. 호머는 기왕 보는 거 동네 사람들과 함께 보면 더욱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색소폰을 불고 있던 딸 리사를 시켜 동네 사람들에게 <트랜센던스>를 집 뒷마당에서 오늘 저녁 상영하니 많이 모이라고 전했다. 저녁 무렵 동네 사람들이 하나둘씩 호머네 뒷마당에 모이기 시작했다. 동네 사람들은 오월의 시원한 야외에서 프로젝터를 통해 방영되는 인공지능 트랜센던스에 관한 영화를 무척이나 재미있게 보았다. 동네 사람들은 오랜만에 1960년대 유랑극단이 온 것처럼 박수도 치고 흥분하고 욕하고 노래하며 그야말로 쌍방향으로 영화를 즐겼다. 상업 극장이 아닌 호머네 뜰에서 공동체의 체험을 나눈 동네 사람들은 뒷마당을 나서며 연신 그에게 고마움과 경의를 표했다. 호머는 기분이 매우 좋아졌다. 아카시아 꽃냄새가 살짝 코끝을 스쳐가는 오월 봄밤에 자신의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동네 사람들이 공유와 나눔의 행위를 실천했으니 스스로 대견하고 기쁘기 그지없었다.

그런데 동네 사람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가자 잠자리에 들려던 부인 마지는 남편 호머의 행위가 왠지 찜찜하게 느껴졌다. 그녀는 인터넷에서 영화를 다운로드받는 행위는 저작권법에 위배된다고 숱하게 들어왔다. 더구나 이 영화는 지금 극장에서 상영되는 최신작이지 않은가. 게다가 호머 혼자 골방에서 본 것도 아니고 동네 사람들을 모두 불러다가 공개 상영을 하지 않았나. 마지는 대학 시절에 한국산 비디오를 볼 때 시작마다 되풀이되던 ‘호환, 마마보다 더 무서운 것은 불법 비디오’라는 문구를 머릿속에서 떨쳐낼 수 없었다. 그뿐 아니라 미국산 비디오 영화 시작 전 자막으로 뜨던 FBI의 무서운 경고도 자꾸 떠올라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저작권이 있는 영상물을 불법으로 복제, 배포, 소매, 방송, 스트리밍 및 다운로드, 공개 전시하면 연방 법률에 의해 강력한 민형사상의 처벌을 받을 수 있습니다. 저작권 침해 범죄는 FBI가 담당하며 최대 5년의 징역이나 25만달러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습니다(미국 법 17편. 제 501, 506, 508조).” 영화 한 편 보다가 FBI의 수사 대상이 된다니 이해하기 힘든 일이었지만 어쨌든 ‘겁나게’ 무서웠다.

특히 한국 비디오 경고문의 마지막 대사,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남편 호머의 인생이 다운로드한 이 한 편의 영화 상영으로 완전히 무너질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치자 마지는 떨리는 손으로 FBI 저작권 관할 부서에 전화를 걸었다. 마지는 몰려오는 두려움을 억지로 참으면서 남편의 아름다운 뒷마당 영화 상영을 저작권 범죄 담당 부서 요원에게 일러바쳤다. 담당 여직원은 집 주소와 위치, 호머의 인상착의를 확인했다. 마지는 오로지 “이 불법 비디오가 호머의 인생을 파괴할 수 있다”는 한 가지만 생각했다. 그녀는 더 큰 불행이 닥쳐 심슨 가정이 박살나기 전에 사태를 이쯤에서 수습하고 싶었다.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8) 호머 심슨의 저작권 이야기

2. 스웨덴 해적당

10여분이나 지났을까. 갑자기 사방이 소란해지면서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중무장한 기동경찰이 집을 에워싸고 FBI 특공대 요원들이 마당 안으로 뛰어들어왔다. 확성기에서는 많이 듣던 낯익은 경고가 방송되었다. “옛날 어른들에게는 호환, 마마, 전쟁 등이 가장 무서운 재앙이었으나 현대의 어른들은 무분별한 불량 불법 비디오를 시청함으로써 비행 중년이 되는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게 됩니다. 우수한 영상매체인 인터넷 비디오를 바르게 선택, 활용해 맑고 고운 심성을 가꿔 우리 모두가 바른 길잡이가 되어야겠습니다. 아, 아. 아, 아.” 뒷마당에 도착한 연방 저작권 수호 특공대장이 메가폰으로 경고했다. “너희들은 완전히 포위되었다. 저작권법을 우습게 보고 불법으로 영화를 상영한 악성 저작권 범죄자 호머 심슨은 들어라. 당신은 미국 법 17편 저작권법을 위반하였다. 아, 아. 꼼짝 말고 이리 나와라.” 무장한 요원들은 담을 넘어 도망가는 호머를 현장에서 체포했다. 호머는 누가 그 아름다웠던 뒷마당 극장을 FBI에 밀고했는지 알 도리가 없었다. 특공대장은 호머를 째려보고 비뚤어진 입을 씰룩이며 말했다. “돈 안 내고 다운로드받은 영화 보면 감옥에 간다는 걸 몰랐느냐?” 호머는 속절없이 체포돼 호송되었다.

그러나 그를 실은 호송차가 사고로 전복된 틈을 타 호머는 과감하게 탈출을 감행했다. 만신창이가 되어 겨우 집으로 돌아온 호머는 자신의 가족들을 데리고 해적당의 나라 스웨덴 대사관으로 대피했다. 스웨덴 대사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대사가 알려주는 해적당 강령은 호머가 볼 때도 무척 매력적이었다. “우리 해적당은 변화된 인터넷 시대에 맞춰 저작권법을 완전히 고치려 합니다. 저작권자와 이용자 간의 새로운 관계를 통해 지식의 자유로운 교환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해적당은 디지털 저작물에 이용자가 자유롭게 접근하고 그를 서로 나눠야 한다고 믿습니다. 우리 해적당은 예술가들과 교류하면서 창작을 북돋을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해적당은 개인 용도로 이루어지는 파일 복사와 공유를 범죄시하는 행위 자체가 오히려 범죄임을 선언합니다. 해적당은 저작권 보호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려고 합니다. 모든 인터넷 이용자는 지식에 자유롭게 접근해야 합니다. 인터넷 세상에서 저작권이 사라질 때 지식의 세계가 만개하게 될 겁니다.”

마침 대사관을 방문 중이던 스웨덴 해적당의 창시자 릭 폴크빈지는 기본소득과 저작권 제도 개혁이 왜 한 덩어리로 추진되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설명해주었다. 그는 잉여들의 활동을 무상으로 수취해 돈을 벌어들이는 SNS 플랫폼 업체들은 잉여들의 기본 생활을 위한 수입을 지원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들이 공짜로 이용자 활동 결과물을 수취해 이윤을 남겼으니 최소한 그들이 공짜로 가져간 수익의 일부는 사회로 돌려주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인터넷 세상을 헤매는 잉여들은 저작물을 훔쳐 공유하는 해적이고, 거대 플랫폼 업체들은 잉여들의 활동을 훔쳐 독점하는 도적이라고 주장했다. 공유하는 해적과 독점하는 도적 중 당신은 누구의 편에 설 것인가? 그는 해적과 도적은 적절한 선에서 타협해 생활에 필요한 기본소득을 사회적으로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인터넷 세상의 잉여들이 사기꾼 멘토에게 기대거나 엉터리 힐링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고 당부했다. “우리 시대의 인터넷 잉여들은 스스로 정치 일선에 뛰어들어 그들의 생활상의 요구를 지원하고 주장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합니다. 잉여는 잉여 스스로의 힘으로 서야 합니다.” 호머는 그의 말에 큰 감동을 받았다. 호머는 40여년 전 애비 호프먼의 “이 책을 훔쳐라”가 오늘날 해적당에서 실현되고 있음을 보았다. 역사는 그렇게 이어지고 있었다.

스웨덴 대사관에서 며칠을 보낸 어느 날 호머는 우연히 자신의 부인 마지가 자기를 고발한 사실을 듣고 아연실색했다. 갑자기 인생도 사랑도 가족도 저작권도 모든 것이 혐오스러워졌다. 그는 스스로 대사관을 나와 정문 앞에 대치하고 있던 저작권 특공대원에게 투항했다. 그는 저작권 범죄자 전용 수용소로 보내졌고 마침내 그의 재판날이 다가왔다.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8) 호머 심슨의 저작권 이야기

3. 호머의 법정 최후 진술

법정에서는 미국영화협회(MPAA) 회장 크리스 도드가 증인으로 나서 호머를 적나라하게 비난하기 시작했다. “지난 4월26일은 ‘세계 지적재산권의 날’이었습니다. 마침 세계지적재산권기구(WIPO)는 올해의 슬로건을 ‘영화: 전 지구적 열정(Movies: A Global Passion)’으로 정했습니다. 영화는 전 지구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정열의 산물입니다. 지적재산권이 없다면 그런 열정은 더 이상 지속될 수 없습니다. 호머는 모든 창작자의 공적입니다. 그는 극장에서 상영 중인 영화를 불법 다운로드해 동네 사람들에게 상연함으로써 영화업계의 이윤을 중간에서 가로챘으며 미래의 수익이 실현되는 길을 가로막았습니다. 이런 행위 때문에 우리는 매년 수십억달러의 손해를 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유튜브를 통해 저작물을 공유하거나 토렌트를 통해 불법으로 다운로드받으면서 우리 영화사업자들의 타오르는 정열에 물을 뿌리고 있습니다. 우리 제국의 엄정한 저작권법에 따라 그를 엄히 처벌해주시기 바랍니다. 영화는 미국 국내총생산의 5% 이상을 차지하는 핵심 산업입니다. IT 신경제보다 세 배나 더 빠른 속도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지요. 현재 영화 산업만이 유일하게 세계 모든 개별 국가와의 무역에서 흑자 수지를 보이고 있습니다. 호머 같은 해적을 응징하지 않으면 우리 영화 산업은 붕괴될 것이고, 그러면 미국 경제 또한 완전히 망가지게 될 겁니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지적재산권을 뒤흔든 저자를 응징해주세요.”

뒤이어 호머의 최후 진술이 이어졌다. “저들이 나를 자신들의 재산을 훔친 해적이라고 욕하지만 난 그냥 평범한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나는 인터넷 세상에서 동네 공동체를 회복하는 뒷마당 극장이라는 새로움을 창조했는데 내가 왜 저작권법으로 잡혀가야 하나요? 저작권법은 새로움을 창조하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해 만들어진 법 아닌가요? 나야말로 새로움의 창조자로 법의 보호를 받아야 하지 않습니까? 인터넷은 나눔과 공유의 철학을 바탕으로 출발했습니다. 우리의 선조 토머스 제퍼슨은 자신의 촛불을 다른 사람들에게 옮겨줌으로써 모두 나눔과 공생의 길을 걷자고 선포하지 않았습니까. 디지털 공유물은 인터넷 세상을 지탱하는 근간입니다. ‘지적 공유물(Intellectual Commons)’이 빈약한 곳은 공원도 없고 모든 산야가 온통 사유지에 대한 ‘접근 불가’ 팻말로 봉쇄된 삭막한 나라와 같습니다. 지적재산권의 과도한 욕심으로 물든 인터넷 세상에서 창의적인 지식이 싹틀 리 없습니다. 인터넷 세상이 온통 장사꾼의 시장터로 전락할 때 더 이상 우리에게 참다운 지식은 없습니다. 퍼블릭 도메인과 공유재의 범위를 확장해 나가고 배타적 저작권의 대상과 범위, 보장 기간을 제한해 자본이 아니라 창작자의 권리를 보장해야 합니다.” 평소 호머답지 않은 정연한 논리와 말솜씨에 많은 방청객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

[뒤집어 보는 인터넷세상](18) 호머 심슨의 저작권 이야기

4. 호머 이야기 영화와 저작권

계속 이어진 호머의 열정적이고 솔직한 진술은 그야말로 압권이었다. 부인에 대한 사랑과 가족애, 그리고 이웃에 대한 공유와 나눔의 정신, 위기에 대항하는 용기에 대한 진술이 사람들의 심금을 울렸다. 자동 마케팅 기계로 수지타산을 튕겨보던 영화계 관계자들이 갑자기 앞다투어 그에게 몰려와 호머의 실화를 영화로 만들겠다며 서로 계약하자고 아우성을 쳤다. 영화계는 호머에 대한 저작권 소송을 그 자리에서 바로 거둬들였다. 호머는 순식간에 할리우드의 새로운 스타로 떠올랐다. <스트리밍을 향한 진정한 용기> <저작권을 타고 넘은 사나이> <해적의 순정>을 위시해 10여편의 영화가 제작되었다. 호머는 그들 영화 스토리의 원저작권자로 가뿐하게 수억원을 벌었다.

호머의 인생은 정말로 한 편의 비디오 때문에 완전히 바뀌었다. 그는 이제 개봉 영화 이야기 주인공이며 시나리오 판권 주인이다. 전국에서 상영되기 시작한 영화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동네 사람들이 그의 이야기에 바탕을 둔 영화 <해적의 순정>을 호머네 뒷마당에서 함께 보면서 그의 성공을 축하하려고 모여들었다. 뒤뜰에 모인 동네 사람들이 영화를 상영하려 하자 호머는 갑자기 돌아버렸다. 그는 뒷벽에 걸쳐둔 프로젝터 스크린을 거칠게 뜯어내면서 큰소리로 그들을 나무랐다. “이런, 세상에! 파일 해적질은 도둑질이야! 당신들은 우리 가족의 입안에 들어온 돈을 다시 빼내가는 도둑놈들이라고. 전부 다 당신들 집으로 돌아가서 주무셔. 영화는 개봉관에서 보시라고.” 참으로 완전 저작권 같은 이야기가 호머의 입에서 흘러나온 것이다. 비록 지금은 온전히 ‘개’가 되었지만 선견지명으로 빛나던 한국 ‘문화부’의 이 말은 정말 명언이었다. “한 편의 비디오, 사람의 미래를 바꾸어 놓을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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