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영이 자매의 ‘7가지 죽을 죄’

2014.05.30 21:07 입력 2014.06.13 22:27 수정
백욱인 | 서울과학기술대 교수

속물과 잉여에게 다음을 금하노라

기독교 전통은 교만, 질투, 탐욕, 분노, 탐식, 음욕, 게으름을 일곱 가지 죄악으로 규정한다. 인터넷 세상의 잉여와 속물은 역설적으로 이 기독교 전통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게으를 수도, 분노할 수도, 교만할 수도 없는 무력한 존재들이다. 그림은 죄악을 재현한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의 ‘일곱 가지 대죄’.

기독교 전통은 교만, 질투, 탐욕, 분노, 탐식, 음욕, 게으름을 일곱 가지 죄악으로 규정한다. 인터넷 세상의 잉여와 속물은 역설적으로 이 기독교 전통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다. 게으를 수도, 분노할 수도, 교만할 수도 없는 무력한 존재들이다. 그림은 죄악을 재현한 히에로니무스 보슈(1450~1516)의 ‘일곱 가지 대죄’.

▲ 나태…알바로 정권 비판 글에 악성 댓글 달다 잠들다 / 가족들 “어서 일어나 일해”
교만…팟캐스트서 나체춤 추다 풍기문란죄로 철창행 / 부자들 “교만은 우리 것”
분노…속옷 벗기고 모욕감 준 경찰에 항의하다 재구금 / “참아야 살아 남는다”
식탐…다이어트 강요당하는 포르노 스타 / “아, 살맛 안 나는 세상”
정욕…호색한 양산하는 인터넷 포르노 / “주님, 사랑 없는 욕정을 구원하소서”
탐욕… 자살하려던 청소노동자를 살리다 / “돈을 위해선 인정사정 보지마”
시기… 실리콘밸리 사람들의 행복이 부러워 / “그들이 원하는 인생을 포기해”

(※이 글은 1933년에 초연된 베르톨트 브레히트의 풍자무용 <소시민의 일곱 가지 죽을 죄>를 바탕으로 창작한 것임.)

등장인물

영이1: 가수(각 장면의 노래를 담당)
영이2: 댄서(각 장면의 연기·춤 담당)
가족: 아버지, 어머니, 두 남동생
포르노 배우, 감독, 촬영 스태프들
회사 매니저
경찰들
행인들
자살하는 노동자들

이 이야기는 가난한 속물과 잉여 자매의 인터넷 세상 여행기이다. 속물인 영이1은 잉여 영이2와 쌍둥이 자매지간이다. 영이1은 가수고 영이2는 댄서다. 영이1은 매니저이고 영이2는 예술가다. 또한 영이1은 장사꾼이고 영이2는 상품이다. 영이1이 뚜쟁이가 되면 영이2는 창녀가 된다. 둘이 합치면 “속물-잉여”다. 그들은 돈을 벌어 가족을 먹여 살려야 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두 남동생은 대한민국에 살고 있었다. 부모 나이 60이 다 되어 어렵사리 아파트를 하나 분양받았다. 쌍둥이 자매는 남은 불입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났다. 7년 안에 성공하면 집으로 돌아가기로 약속하면서 멀고 험한 길을 나섰다. 영이 자매는 일곱 가지 죄를 범하지 않고 잘 피해 갈 수 있을까? 그들이 죄악을 저지를 때마다 가족들은 평수가 넓은 아파트로 옮겨갈 수 있다. 죄악 없이 하루도 보내기 힘든 인터넷 세상이지만 이 세상의 디지털 귀족들은 고상하게 죄악을 빠져 나간다. 가난한 잉여들과 속물만이 매일매일 죽을 죄를 저지른다.

프롤로그

영이1의 노래

우리는 대한민국에서 왔어요.
언제가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거예요.
서울에는 한강이 흐르지요.

우리는 행복을 찾기 위해 한 달 전에 그곳을 떠났어요.
7년이면 해낼 수 있을 거예요.
그러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가요.
6년이면 더 좋고요.

부모와 남동생이 기다리고 있어요.
돈을 벌어 보내야 해요.
아파트를 샀거든요.

내 동생 잉여 영이는 예뻐요.
난 현실적이죠.
내 동생 영이는 살짝 돌았어요.
하지만 난 머리가 좋죠.
원래 우리는 둘이 아니라
하나예요.

우리 둘은 서로 영이라고 부르지요.
하나는 ‘속물’이고 하나는 ‘잉여’이지만
우리는 한마음이고 가난하고
돈도 같이 쓰며
서로서로 위해줘요.

1. 게으름

a)영이2는 인터넷에 사이트를 하나 개설하고 온라인으로 사진을 팔았다. 자신의 모습을 찍거나 거리 풍광을 찍은 사진을 팔려 했으나 아무도 사지 않았다. b)그래서 김연아처럼 유명한 선수 사진을 찍어 팔기로 작정했다. 파파라치 짓을 했다. c)그러나 고소를 당해 그 짓도 오래할 수 없었다. d)그러다 우연히 댓글 알바가 있어서 그 일을 시작했다. e)하루 종일 모니터를 보며 정권에 비판적인 글에 악성 댓글을 달다가 피로에 지쳐 엎어져 잠들었다. f)지친 영이2를 영이1이 다시 깨워 일로 내몰 수밖에 없었다. g)영이 자매는 한 시간도 게으름을 피울 수 없었다. 인터넷 세상에서는 부자 속물과 잉여들만 게을러도 살 수 있었다.

가족의 노래

우리 잉여 영이가 정신을 차리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 애는 늘 멋대로 놀고 게을러요.
방구석에서 종일 인터넷만 해요.

하지만 우리 속물 영이는
아주 똑똑한 아이예요.
선생님과 부모 말도 잘 듣고
세상물정에도 빤해요.
두 영이가 낯선 곳에서도
게으르지 말고 노력하기를
바랄 뿐이에요.

영이야,
게으름은 모든 죄악의 출발이란다.
그런데 이제 가난한 너희들은 게으를 수조차 없겠구나.

2. 교만

a)영이는 춤추기를 좋아했다. 인터넷에 팟캐스트를 열어 돈벌이를 구상했다. 영이는 최선을 다해 매일 하나씩 안무하여 방송했다. b)수많은 ‘좋아요’가 쏟아졌다. 실시간으로 사람들이 찬양의 글을 올렸다. c)자부심을 느낀 영이는 좀 더 대담하게 자신의 춤을 선보였다. d)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은 그게 춤이냐고 비아냥거리며 옷을 벗으라고 요구했다. 야한 춤을 추는 다른 팟캐스터는 금방 유명해졌다. e)영이도 할 수 없이 관객이 원하는 춤을 추게 되었다. 그녀의 옷들이 하나씩 벗겨나가자 사람들은 환호했다. f)영이는 춤에 대한 자부심도 자신에 대한 자긍심도 가질 수 없었다. g)그녀는 정신이 나가 옷을 다 벗고 낙담의 춤을 추었다. h)다음날 그녀는 온라인 풍기문란죄로 경찰에 잡혀갔다.

영이1의 노래

부자들이 노래하네.
가난한 것들이 미개하기까지 해.
춤을 추라니까 옷은 왜 벗어.
자부심도 없는가봐.
교만과 자부심은 우리만의 것.

영이는 댄서가 되려 했지.
진짜 멋들어진 춤을 추려 했어.
그러나 사람들은 낸 돈만큼
그녀의 벗은 몸을 보고 싶었던 거지.
그러니까 영이야
자부심은 부자에게나 허용된단다.
돈을 벌려면 네가 원하는 게 아니라
사람들이 네게 원하는 것을 해야 해.
알았지?

3. 분노

a)이틀간 구류를 살고 나온 영이는 자신의 속옷을 벗기고 모욕감을 준 경찰의 뻔뻔함에 항의하러 피켓을 들고 길거리에 나섰다. b)경찰들이 다시 그들을 둘러싸고 저년들을 잡으라고 소리치며 몰려들었다. c)영이는 다시 체포되어 경찰서 구치소에 갇힌다. d)잘못했다고 빌었다. 빌고 빌어 겨우 풀려났다. 영이는 분노도 마음대로 드러낼 수 없는 불쌍한 잉여가 되었다.

영이1의 노래

사과 받아야 할 사람들의 분노는
단죄되고
욕먹어야 할 자들이 거꾸로 분노하고 단죄하네.
불의에 저항하면 환영받지 못해요.
야비함에 화를 내면
사회에서 매장되어요.
비열함을 참지 못하는 사람을
이들은 참지 못해요.
그러니 우리는 무조건 잘못했다고
속죄해야 해요. 덕분에
불의를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나쁜 버릇을
고치게 되었어요.
조심해라 영이야
스스로를 다스려야지.
나도 알아, 언니.

4. 먹고 마시기

a)이제 영이는 새로 개업한 본격 성인 포르노 방송의 스타가 되었다. b)영이는 몰래 야참으로 라면을 끓여 먹다가 매니저에게 걸려 이틀 동안이나 굶어야 했다. 몸무게가 100g만 불어도 야단이다. 그녀는 마음대로 먹고 마실 수 없었다. c)그러나 인터넷의 식욕은 끝이 없다. 하드디스크가 터질 때까지 먹어치운다. 빅데이터는 잉여들의 활동과 시간을 실시간으로 먹어치운다. 그러나 잉여들은 항상 배고프다. d)그들은 활동의 대가를 받아 그것으로 음식을 사먹어야 하지만 돈 받을 곳이 없다.

가족의 노래

어제는 아이들과 ‘카톡’으로 만났어요.
아이들은 마음대로 먹지도 못한대요.
가난한 이들은 돈이 없어 못 먹어
자동으로 절제가 되지요.
불쌍한 우리 영이는
돈을 벌기 위해
돈이 있어도 마음대로 못 먹는답니다.

5. 정욕

a)인터넷의 꽃은 포르노라던데. b)인터넷의 신문 기사에도, 파일공유 사이트에도 온통 욕정을 부추기는 사진과 동영상이 떠다닌다. c)사람들은 분열증 환자가 된다. 정욕은 스스로를 사랑하지 못하는 사랑이다. d)인터넷 세상의 사람들은 도덕적 삶을 살고 싶어하는 호색한이다. 고귀하려 노력하지만 죄 많은 몸이 된다. e)디지털 포르노는 오늘도 천지 사방에서 춤춘다.

가족의 노래

주님, 우리 아이들을 살피시어
진정한 사랑을 통해
부귀로 가는 길을 알게 하시고
사랑 없는 정욕으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하소서!

6. 탐욕

a)포르노 출연으로 돈을 번 영이는 자신의 포르노 팟캐스팅 회사를 차리기 위해 인터넷 세상에서 제일 큰 온라인 서비스 회사를 방문하였다. b)이 회사는 오늘도 또 다른 회사를 사들였다. c)그날 회사에 근무하던 일용직 청소 노동자가 창문으로 몸을 던져 자살하였다. 그러나 회사는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한다. d)영이는 자살을 결심한 또 다른 노동자의 트위터 글을 보고, 막 목을 매려 하는 두 번째 노동자를 간신히 설득하여 살려내었다. e)인터넷에 흉흉한 소문이 떠돌고 사람들은 영이를 피하기 시작했다.

영이1의 노래

“돈벌어, 돈만 벌어
이것저것 인정사정 볼 것 없다.
돈만 벌어라”
빨리 빨리 세상의
비트를 긁어모으고
코찔찔이 아이들의 활동까지
전부 다 쓸어 담아
이 세상 모든 것을 다 쓸어 담아라.

한순간에 모든 것을 잃어버리는 탐욕
한 손으로 뭔가를 잡았을 때
다른 손은 내주어야 한다네.
주기 위해 받는 거지
받았으면 주어야 하지
준 만큼 받으시게.
그것이 인터넷의 법칙이라네.

7. 시기심

a)영이가 실리콘밸리의 도시를 지나간다. 영이는 그 거리의 사람들이 죽을 죄를 저지르는 현장을 바라본다. b)그녀는 그 거리에서 “나중된 자가 먼저 될 것이다”라는 테마의 춤을 춘다. c)세상 사람들은 게으르게 흐느적거리며 먹고 마시고 춤추고 뽐내고 타인에게 화를 내면서 서로를 시기한다. d)그녀는 비약의 춤을 춘다. 당당하게. e)다른 사람들은 비굴한 모습으로 골목 속으로 사라진다.

영이1의 노래

우리 여행의 마지막 도시는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였어요.
모든 일이 잘 풀려나갔어요.
그곳에 사는 행복한 사람들이
부러웠어요.
매일매일 게으름을 피우고
몸을 팔지도 않고
스스로 자만과 교만에 빠져도 아무 문제 없고,
다른 인간의 비열함에 불같이 화를 내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마시고
사랑하는 사람만 사랑하고
자신에게 필요한 일을 당당히 받아들이는 사람들을요.
그러나 영이야, 캘리포니아의 사람들이 원하는 인생을 포기해.
젊음을 낭비하지마. 결국
네가 승리할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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