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패전 직전 미군 상륙 대비 격납고·동굴진지 구축 ‘요새화’

2015.02.02 22:00 입력 2015.02.02 23:12 수정
박미라·사진 이준헌 기자

제주 대정읍

▲ 알뜨르 비행장 격납고 19기 보존… 태평양 전쟁의 상흔 그대로 간직
셋알오름 진지는 트럭 통행도 가능 “평화 되새기는 유산으로 활용을”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전투기를 격납하기 위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건설한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등록문화재 39호). 제주를 출격 기지로 건설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지상 건축물로, 당시 20기가 건설됐고 현재 19기가 보존돼 있다.

일제강점기 일본군이 전투기를 격납하기 위해 제주도민을 강제동원해 서귀포시 대정읍 일대에 건설한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등록문화재 39호). 제주를 출격 기지로 건설하려 했음을 보여주는 지상 건축물로, 당시 20기가 건설됐고 현재 19기가 보존돼 있다.

일본군은 1942년 미드웨이 해전에서 미군에 패배하면서 수세에 몰린다. 미군은 1944년 7월 사이판을 점령하고, 이듬해 필리핀마저 함락했다. 일본 본토는 연합군의 직접적인 상륙 공격 위협에 놓이게 된다. 일본군은 1945년 2월 미군의 상륙 공격으로부터 본토를 방어하기 위해 육·해군 결전 작전을 세우게 되고, 이를 ‘결호(決號)작전’이라 불렀다.

결호작전은 1호부터 7호까지 지역별로 구분했다. 작전지역 중 결1~6호는 일본 본토였으나 유일하게 일본 이외 지역으로 제주도가 ‘결7호 작전’에 포함됐다. 본토를 방어하기 위한 마지막 거점지로 제주가 선택된 것이다. 일본군은 미군이 규슈 방면으로 상륙해 침공할 경우 제주도를 본토 공격의 거점으로 삼을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했다.

일본은 결7호 작전을 위해 제58군 사령부를 제주에 주둔시켰다. 제주도 조사결과 1945년 3월 3000여명에 불과하던 제주 주둔 일본군은 결7호 작전을 위해 7만5000명까지 늘어났다. 일본군은 제주도 전역을 요새화했다. 그 중에서도 미군의 유력한 상륙지점인 서귀포시 대정읍 모슬포 일대에 집중적으로 군사시설을 구축했다. 대정읍 알뜨르 비행장 주변에는 태평양전쟁과 관련한 13개의 등록문화재 중 8개가 몰려 있다. 등록문화재 이외에도 60여개의 군사시설이 발견됐다. 70여년 전, 이곳은 ‘전쟁터’나 다름없었다.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일제 고사포진지(등록문화재 316호).

제주 모슬포 알뜨르 비행장 일제 고사포진지(등록문화재 316호).

■ 알뜨르 일대 군사시설, 일제 상흔 ‘생생’

“비행기 집은 공구리(콘크리트)로 했지. 쇠로 딱 짜서 공구리한 거거든…. 비행기 집 하나 만드는 데 확실치 않지만 수십명이 5일 걸릴 때도 있고 7~8일 걸릴 때도 있었어. 나무로 가다(틀)를 짜면 그 위에 쇠 얽는 것은 딴 사람들이 해…. 자갈 깨고 하는 일은 목괭이로 깨고 갱 구멍은 화약을 폭발시켜서 했지. 불을 붙이면 다 도망갔다 오지. 그거 잘못하다가 죽은 사람도 있어.” 제주도가 2012년 일제 군사시설 실태조사에서 채록한 주민 증언 중 일부다.

서귀포시 대정읍 알뜨르 일대는 온통 밭이다. ‘알뜨르’는 제주어로 ‘아래 있는 넓은 들’이라는 뜻이다. 너른 밭과 밭 사이 이질적인 콘크리트 구조물이 눈에 띈다. 듬성듬성 있는 10여개의 구조물은 흡사 입을 벌리고 서 있는 거대한 두꺼비집 같다. 콘크리트 구조물의 명칭은 ‘남제주 비행기 격납고’(등록문화재 제39호)다. 폭 20m에 높이 4m, 길이 10m 정도다. 농가들은 격납고를 농기구, 비닐을 보관하는 장소로 활용하고 있다. 일본군은 1937년부터 비행기 격납고를 짓기 시작했다. 20기가 건설됐으며 현재 19기가 원형 그대로 보존돼 당시 상황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격납고는 비행장 부속 시설의 일부다. 주변에 비행장이 있었다는 의미다. 알뜨르 비행장은 1931년부터 중일전쟁에 대비해 일본 해군에 의해 건설되기 시작해 1937년 2차, 1944년 3차 확장이 이뤄졌다. 제주도 조사에서 알뜨르 비행장 건설에 하루 4500명의 노동자가 강제동원됐다는 증언도 나왔다.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등록문화재 313호).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에 소형 선박으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제주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등록문화재 313호). 일본군이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에 소형 선박으로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해 구축한 군사시설이다.

■ 올레 10코스에서 만나는 일제 잔재

올레 10코스는 화순금 모래해변에서 시작해 산방산, 송악산을 지나 대정읍 하모까지 이어진다. 송악산에서 시선을 끄는 것은 해안 절벽을 따라 파헤쳐진 동굴이다. 송악산 해안 일제 동굴진지(등록문화재 제313호)는 1945년 패전에 직면한 일본군이 만든 해상특공기지다. 해상으로 들어오는 연합군 함대를 소형 선박을 이용해 ‘자살 폭파 공격’을 하기 위한 것이다. 형태는 ‘一’자형, ‘H’자형, ‘ㄷ’자형 등 17곳이 만들어졌다. 가장 짧은 것은 6.15m, 긴 것은 57.32m에 이른다. 제주도는 직선형으로 이뤄진 11곳의 동굴 진지를 카이텐 어뢰정을 숨기기 위한 용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본군은 1945년 2월부터 조천읍 서우봉, 한경면 고산리 수월봉, 모슬포 송악산, 삼매봉, 성산일출봉 해안 등 5곳에 특공 소형선의 비밀기지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송악산 해안 동굴진지 건설에는 제주도민과 전남 지방 광산 노동자 등 육지 민간인이 동원된 것으로 알려졌다. 증언에 따르면 다이너마이트로 폭파하고 곡괭이로 다듬는 식으로 작업했다. 송악산에는 해안 동굴진지 이외에 송악산 외륜에 지네 모형을 한 13곳의 동굴진지(등록문화재 제317호)도 있다.

송악산에서 올레 10코스를 따라 북쪽으로 향하다보면 셋알오름이 나온다. 셋알오름 동굴진지는 알뜨르 비행장 확충 공사와 맞물려 1945년쯤 구축된 것으로 추정된다. 단일 동굴로는 가장 길고 크기 역시 트럭이 통행할 수 있는 정도로 대형이다. 미군의 공습이나 폭격으로부터 장병, 물자를 은폐하기 위한 용도로 건설됐다. 주민들은 해방 이후 축사, 저장고 등으로 이용했다. 현재는 6개의 입구가 훼손되면서 모두 폐쇄됐다. 제주 전역에는 오름을 비롯한 곳곳에 수백여개의 동굴진지가 벌집처럼 뚫려 있다.

제주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등록문화재 310호) 내부 모습.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부터 주요 군수물자를 감추기 위해 건설했다.

제주 셋알오름 일제 동굴진지(등록문화재 310호) 내부 모습. 태평양전쟁 말기 일본군이 연합군의 공중 폭격으로부터 주요 군수물자를 감추기 위해 건설했다.

셋알오름 정상에는 일본군이 만든 고사포 진지(등록문화재 제316호)가 있다. 원형의 콘크리트 구조물로, 당시 전략적으로 중요한 알뜨르 비행장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 발길을 다시 재촉하다보면 ‘알뜨르 비행장 일제 지하벙커’(등록문화재 제312호)에 다다른다. 지하벙커는 남북 방향으로 길이 30여m, 폭 20여m 규모의 반지하 상태의 콘크리트 구조물이다. 위쪽은 돌무더기를 쌓아 동산처럼 만들고 나무로 가렸다. 전문가들은 알뜨르 비행장에 주둔했던 비행대의 지휘소, 혹은 통신시설 용도로 추정하고 있다. 박찬식 제주문화유산연구원장(53)은 “대정 알뜨르 일대는 일제의 군사시설이 생생하게 남아 있는 지역”이라며 “평화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문화유산, 교육자료로 활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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