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형 광장 둘레에 러시아·중국식 건물… 일제의 ‘침략 야욕’ 상징

2015.02.23 21:43 입력 2015.02.23 21:44 수정
김정훈·사진 김창길 기자

(8) 창원 진해구

▲ 진해우체국·수양회관·상가 등 각국 건축 양식 혼합 ‘계획 도시’
해군기지 안엔 사령부 청사 등 100년 훌쩍 넘긴 건물 ‘수두룩’

바다를 진압한다는 뜻을 가진 경남 창원시 진해(鎭海)구는 1912년 일본이 만든 한국 최초의 계획도시로 기록돼 있다. 일본은 인근 창원시 마산합포구 진전면에 있던 조선시대 진해현의 지명을 가져와 진해면으로 개명했다. 조선총독부 통계에 따르면 일제강점기 당시 이곳엔 일본인이 한국인보다 3배 이상 많이 살았다. 한국인들은 당시 신도시에서 쫓겨나 외곽 지역인 경화동 등으로 이주해야 했다.

일본은 거제 장목면 송진포에 있던 일본 해군 진해방비대도 진해면으로 옮겨왔다. 1914년에는 진해만 요새사령부가 마산에서 진해로 옮겼고, 1916년에는 현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자리에 일본 해군사령부 격인 진해요항부를 설치했다.

일본은 청일전쟁과 러일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진해 제황산 정상에 러일전쟁 승전기념탑과 노획물 전시창고를 지었다.

중앙동 중원광장과 광장 남동쪽에 있는 진해우체국(오른쪽). 일본은 중원광장을 중심으로 진해 도시를 설계했으며 광장에는 당시 들판에서 일을 하던 농민들의 휴식 공간인 팽나무가 있었다. 진해우체국은 러시아풍의 근대건물로 1912년 지어졌다. 이미지 크게 보기

중앙동 중원광장과 광장 남동쪽에 있는 진해우체국(오른쪽). 일본은 중원광장을 중심으로 진해 도시를 설계했으며 광장에는 당시 들판에서 일을 하던 농민들의 휴식 공간인 팽나무가 있었다. 진해우체국은 러시아풍의 근대건물로 1912년 지어졌다.

중앙동 중원광장 서쪽에 있는 중국풍의 수양회관. 일제강점기에 수양회관은 일본 군인이 드나드는 요정으로 사용됐다.

중앙동 중원광장 서쪽에 있는 중국풍의 수양회관. 일제강점기에 수양회관은 일본 군인이 드나드는 요정으로 사용됐다.

■ 진해, 일본이 만든 최초의 계획도시

제황산 입구에서 서쪽으로 바라보면 중원광장이 있다. 일제는 도시를 설계하면서 벌판 한가운데 있던 당산나무인 팽나무(포구나무)를 중심으로 가운데를 둥글게 두고 방사동심원형의 여덟 갈래의 시가지를 만들었다. 일제는 중원광장에 은행 등 상업시설을 배치했다. 중원광장 여덟 꼭짓점에 점령한 나라별 건축양식의 건물을 세우려 했지만 패전으로 러시아·중국풍의 건물만이 자리하고 있다.

러시아풍의 건물 중 하나가 중원광장의 남동쪽 모퉁이에 있는 진해우체국(사적 제291호)이다. 진해우체국은 러시아풍의 근대건물로 지붕에는 반원형 채광창을 뒀다. 진해우체국 뒤편 블록에는 일본장옥과 일본 해군병원장 관사가 있다. 장옥은 1층 상점, 2층 주거를 목적으로 한 건물이다. 당시 장옥 건너편에는 진해면사무소가 자리하고 있어 공무원을 상대로 한 상점이 나란히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해군병원장 관사는 순수한 일본식 건물이다. 일제강점기 진해요항부 산하 해군병원 원장 사택으로 사용했다. 군인들의 사택인 관사는 군부대 가까이에 있었으나 병원장 사택만은 시내의 민간주택 사이에 지었다. 현재 곰탕집으로 사용되고 있지만 등록문화재 제193호로 지정돼 옛 모습이 원형에 가깝게 보존돼 있다.

중원광장 서쪽에 있는 수양회관과 원해루는 1920년대에 세워졌다. 일명 ‘뾰족집’이라고 불리는 수양회관은 요정 등으로 쓰였던 3층 팔각 누각이다. 이름만 팔각정이지 실제는 육각정이다. 원래 중원광장을 중심으로 남과 북에 각각 설치됐지만 현재는 한 채만 남아 있다. 독특한 외관과 근대 상업시설의 형태를 잘 간직하고 있으나 외관은 일부가 훼손됐다. 수양회관은 현재 식당으로 사용되고 있다.

수양회관 길 건너편에는 원해루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음식점으로 사용됐으며, 한국전쟁 때 유엔군 포로였던 당시 20대 중공군 출신 장현철씨가 1950년대 초 영해루라는 중국음식점을 개업했다. 이후 현재 주인이 상호를 원해루로 바꿨다. 원해루는 1949년 8월 이승만 대통령과 대만 장제스 총통이 회담을 마치고 식사를 했던 곳으로도 유명하다. 지붕 장식이 눈여겨 볼 만한데 태양 안에서 산다는 세 발 달린 상상의 까마귀인 삼족오(三足烏)가 그려져 있다. 원해루는 영화 <장군의 아들>을 촬영한 곳이기도 하다.

근화동에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상가 건물인 장옥. 장옥 건너편에는 진해면사무소가 있어 공무원을 상대로 한 상점이 많았다.

근화동에 있는 전형적인 일본식 상가 건물인 장옥. 장옥 건너편에는 진해면사무소가 있어 공무원을 상대로 한 상점이 많았다.

■ 국가기록원, 중앙동 일대를 제7호 기록마을로 등재

중원광장 동쪽 모퉁이에 있는 상가 건물에는 지역화가 유택렬(1924~1999)이 고전 음악다방 ‘칼맨’을 인수해 1962년부터 2008년까지 운영한 ‘흑백다방’도 있다. 이중섭·윤이상·조두남·유치환·김춘수·전혁림 등 지역 문인들의 사랑방 노릇을 톡톡히 하던 곳이다. 지금은 다방 영업을 접고 간판 이름도 ‘시민 문화공간 흑백’으로 바꿨다. 간판에 적은 ‘since 1955’라는 문구가 지난 세월을 대변해주고 있다.

흑백다방에서 북쪽으로 걸어가면 진해역이 보인다. 일제는 군수물자를 원활하게 수송하기 위해 진해항을 잇는 진해선을 건설했다. 진해역사는 1926년 11월 진해선로에 1층 규모로 건립됐다. 진해선로의 마지막 역은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안에 있는 ‘통해역’이지만 일반인들에겐 진해역이 마지막 역이다. 근대문화유산 등록문화재 제192호로 지정됐다.

일반인들의 출입이 통제된 해군 진해기지사령부 안에도 100년 된 일제 건물이 있다. 르네상스식 건축공법을 차용한 러시아풍의 일본 해군 진해요항부 사령부 청사(현 진해기지사령부 청사)와 일본 해군요항부 병원 청사(현 진해기지사령부 근무지원부대 청사), 일본 해군방비대 청사(현 해군군수사령부 청사), 일본군통신대 청사(옛 이승만 대통령 별장)가 남아 있다. 창원시 군항문화탐방 프로그램에 신청하면 관람이 가능하다. 최학준 진해근대문화유산보전회 사무국장과 양영천 군항문화탐방사무소 팀장은 “지난해 국가기록원이 진해 중앙동 일대를 국가기록원 제7호 기록마을로 지정할 정도로 근대 기록물과 시설물이 많다”며 “미운 흔적이지만 보존을 통해 의미 있는 문화유산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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