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분단체제 - 한국사회 70년 지배한 분단체제

2015.03.31 22:15 입력 2015.04.20 21:58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시민사회 안에 분단 의식 심어 선거 때만 되면 북풍·남남갈등… ‘분단체제 논쟁’ 현재도 진행형

[광복 70주년 특별기획 - 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1) 분단체제 - 한국사회 70년 지배한 분단체제

광복 70년의 우리 현대사에서는 숱한 학술적 논쟁이 진행됐다. 인문학이든 사회과학이든 어떤 논쟁이라 하더라도 현실과 무관한 논쟁은 없다. 지난 70년간의 학술적 논쟁 가운데 첫 번째로 검토해보려는 것은 ‘분단체제 논쟁’이다. 1990년대 중반 백낙청과 손호철이 주도한 이 논쟁을 가장 앞서 살펴보려는 이유는 간단명료하다. 1945년 8월15일 일본 식민지배로부터 광복을 이루자마자 한반도는 분단됐다. 70년간 분단 상태가 한국 사회 전반에 미쳐온 영향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 분단의 특수성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광복 70년의 우리 역사와 사회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다. 분단체제 논쟁이 갖는 의미는 여기에 있다.

논쟁은 이렇게 진행됐다. 영문학자 백낙청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 초반까지 분단이 한반도에 미치는 영향에 주목해 그것을 분단체제로 개념화했다. 이에 정치학자 손호철이 1994년 계간지 ‘창작과 비평’에 게재한 ‘분단체제론에 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통해 비판을 가하자, 백낙청이 반비판으로 대응(‘분단시대의 최근 정세와 분단체제론’)하고, 다시 손호철이 재비판으로 응답(‘분단체제론 재고’)한 것이 논쟁의 줄거리를 이룬다.

1945년 12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신탁통치 절대반대’ 현수막을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1945년 12월 서울운동장에서 열린 신탁통치 반대 국민대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신탁통치 절대반대’ 현수막을 들고 시위에 나서고 있다.

■ 백낙청-손호철, 분단체제 논쟁

백낙청이 제시한 분단체제론의 핵심적 내용은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분단된 남북한의 관계는 한반도 전체 및 남과 북 각각의 역사와 현실을 효과적으로 설명할 수 있다. 둘째, 분단체제는 월러스틴이 말한 근대 세계체제의 하위 체제로, 자본주의 세계경제와 한국 사회라는 국민국가 사이에 존재하는, 동아시아 지역에 위치한 특이한 존재로 볼 수 있다. 이런 역사적 현실에 주목해 백낙청은 한국 사회운동이 다른 나라 사회운동과 구별되는 분단체제 변혁운동이라는 중대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주장한다.

분단체제론에 대해 손호철의 비판은 이론적 차원을 주목할 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분단체제는 세계체제와 같은 자기 완결성과 내적 노동분업을 갖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엄격한 의미의 체제로 파악하기 어렵다. 둘째, 분단모순이 민족·계급·진영 모순과 비교할 때 불명확한 개념이고, 분단모순을 한국 사회의 주모순으로 볼 경우 계급모순과 민족모순을 소홀히 하는 문제를 안게 된다. 이런 비판에 대해 백낙청은 분단이 갖는 특수성과 국민국가적 관점의 한계를 다시 한번 강조하고, 이런 반비판에 대해 손호철은 분단 변수를 과도하게 중시하는 것에 우려를 표명한다.

1990년대 초반이라는 당대의 시점에서 볼 때 분단체제 논쟁은 이론적이자 실천적 논쟁이었다. 이론적 쟁점의 핵심은 분단이 갖는 특수성을 세계체제와 한국 사회 사이에 중범위적 분석 단위를 설정하는 것의 타당성에 있다면, 실천적 쟁점의 핵심은 노동·시민운동으로 대표되는 사회운동에서 통일운동이 갖는 위상에 대한 평가에 놓여 있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통일운동의 위상에 관한 논의는 논쟁 이후 남북정상회담과 북핵 실험 등으로 빛이 바랬지만, 분단에 대한 체제론적 이론화는 여전히 주목할 만하다.

위부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현대 한국정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위부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 손호철 서강대 교수와 <현대 한국정치>, 강만길 고려대 명예교수와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 분단체제가 빚은 남남갈등

학계에서 분단과 한국 사회의 관계는 역사학자 강만길의 오랜 관심사였다. 강만길에 따르면, 해방 이후 한국 사회는 분단시대를 맞이했다. 그는 기념비적 저작인 <분단시대의 역사인식>(1978)에서 분단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정확하게 이야기해야만 통일을 지향할 역사인식을 가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강만길은 역사학이 분단시대 극복에 기여하는 세 가지 길이 존재한다고 역설한다. 분단시대를 외면할 게 아니라 현실로 직시하고 대결해야 하며, 분단시대를 철저히 객관화하고 비판해야 하며, 분단시대를 반드시 극복해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백낙청의 분단체제론은 이러한 강만길 연구의 연장선상에서 이뤄진 것이다. 강만길은 광복 이후 현대사의 새로운 시대구분을 시도한다면, 백낙청은 세계사회적 차원과 국민국가적 차원 사이의 새로운 분석 단위를 설정함으로써 분단시대를 이론적으로 정교화한 셈이다.

분단체제라는 중범위적 분석 단위의 설정은 논쟁에서 선명히 드러났듯 양면성을 갖는다. 한편에서 손호철이 지적하듯 분단체제는 노동 분업과 자기완결성이 부재하기 때문에 이론적 엄밀성이 취약한 개념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선 남북한 관계가 갖는 정치·사회적 상호 규정력을 생각하면 분단체제라는 개념에 담긴 분석적 설명력은 높은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시점에서 지난 70년을 돌아볼 때 분단이 미치는 영향력은 한국 사회의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에 대한 분석에서 매우 중대한 변수다. 분단모순, 다시 말해 분단 변수를 과장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분단이 미치는 영향력을 과소평가해서도 안된다. 선거 때만 되면 등장하는 북풍(北風) 논란, 분단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코리아 디스카운트’, 남북갈등에 짝하여 발생하는 ‘남남갈등’ 등과 같은 분단체제와 연관된 사건과 현상들은 한국 사회 전반을 규정하는 구조적 강제뿐만 아니라 냉전분단체제라는 경로의존성도 적절히 설명해주는 사례들이다. 남북관계는 외생 변수가 아니라 계급·지역·세대와 함께하는 사실상의 내생 변수로 볼 수 있다.

바로 이 점에서 분단체제는 여전히 유용한 개념이다. 광복 이후 남과 북이 벌인 자본주의와 사회주의라는 체제 경쟁과 민주화운동의 한 축을 이룬 통일운동은 분단체제와 긴밀히 연관돼 있다. 또 분단체제는 시민사회 안에서 분단의식을 주조해왔다. 탈냉전에 대응하는 이념적 통섭이 지구적으로 진행돼 왔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한국 사회에선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와 같은 말들이 적잖이 낯설다. 이는 분단 현실이 강제하는 자기검열이 시민 다수의 의식 및 무의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쳐왔기 때문이다.

분단체제가 가져온 가장 중요한 결과의 하나는 남남갈등이다. 북한체제와 대북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가를 놓고 진행돼온 남남갈등은 한국 사회 이념논쟁의 가장 뜨거운 지대를 이뤄왔다. 천안함 침몰, 서해 북방한계선(NLL) 논쟁, 대북전단 살포 등에 이르기까지 남북관계 쟁점은 불거지면 다른 모든 이슈들을 잠재우는 이념논쟁의 ‘블랙홀’이다. 북한을 적으로 보지 않는 이들은 ‘종북 좌파’로, 북한을 동반자로 보지 않는 이들은 ‘반공 우파’로 인식되는 상황이 바뀌지 않는 한 이 블랙홀에서 빠져나오기 어렵다.

광복 70년은 곧 분단 70년이다. 분단 상황에 대한 분석과 토론이 중요한 이유는 분단의 극복인 통일이 경제발전, 민주주의와 함께 한국 사회를 이끌어가는 시대정신이라는 데 있다. 보수세력이 ‘통일대박’을 제시한 까닭도, 진보세력이 ‘한반도 평화’를 강조한 까닭도 여기에 있다. 분단에 대한 다각적인 분석과 통일에 대한 적극적인 전망은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지식인들에게 부여된 가장 중대한 과제 중 하나이다.

▲ 분단 특성 인정한 ‘과정으로서의 통일론’ 대 1국가1체제 통합 ‘선진화 통일론’

1947년 미국과 소련 진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 위에 ‘38’이란 숫자를 표시하고 있는 미군 병사.

1947년 미국과 소련 진주군의 경계를 이루는 도로 위에 ‘38’이란 숫자를 표시하고 있는 미군 병사.

분단과 쌍을 이루는 주제인 통일에 관한 대표적인 연구로는 백낙청과 박세일의 저작이 주목된다. 먼저 백낙청은 <한반도식 통일, 현재진행형>(2006)에서 독자적인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을 체계화한다. 구체적으로 첫째 누구나 쉽게 동의할 수 있는 분단 극복이라는 대원칙에 합의하면서, 둘째 쌍방 정권이 결코 합의할 수 없고, 민중으로서는 지금 저들끼리 합의하는 게 달가울 바 없는 통일국가의 최종 형태나 주도층의 문제를 열어둔 채, 셋째 통일국가 형성의 잠정적이고 가장 초보적 형태에 동의하는 수순을 제안한다.

‘과정으로서의 통일론’은 흡수통일의 독일, 무력통일의 베트남, 담합통일의 예멘 사례와 다를 수밖에 없는 분단체제의 특수성을 고려한 한국적 해법으로 볼 수 있다.

한편 박세일이 <21세기 한반도의 꿈: 선진 통일 전략>(2013)에서 제시하는 통일론은 선진화 통일론이다. 선진화 통일론은 선진자유·자주공영·민주평화를 대원칙으로 삼는다. 구체적으로 그는 ‘1단계: 북한의 정상국가-남한의 통일국가 준비 단계, 2단계: 1국가 2체제의 남북통합-북한의 산업화, 3단계: 1국가 1체제의 남북통합-북한의 민주화, 4단계: 선진통일국가 단계-신동아시아 시대’의 전략을 제시한다. 선진화 통일론에서 특기할 만한 사항은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주변국을 상대로 한 적극적인 통일 외교를 강조한다는 점이다.

통일이 언제 이뤄질지 예단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통일이 우리 사회와 민족에게 부여된 중대한 역사적 과제임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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