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

2015.11.03 20:58 입력 2015.11.03 21:13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빈곤층 자립 지원 ‘한국판 제3의 길’…“신자유주의” “사회연대 강화”

산업화 시대와 민주화 시대에 우리 정치를 대표하는 정치가를 꼽으라면 박정희,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을 먼저 떠올리게 된다. 박정희가 산업화 시대를 주도해 왔다면, 김영삼·김대중·노무현은 민주화 시대를 이끌어 왔다. 이 가운데 김영삼과 김대중은 정치적 동지이자 라이벌이었다. 1980년대 전반기 군부독재에 맞서 함께 싸웠지만, 1987년 민주화 시대가 열린 후 정치적 경쟁을 벌였고, 1993년과 1998년에 각각 대통령에 취임했다.

1993년 집권한 김영삼 정부는 빛과 그늘이 뚜렷했다. 금융실명제 실시, 군부의 정치개입 차단 등의 업적이 있었지만, 무리한 개방과 세계화 정책은 1997년 외환위기를 낳게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60년대에 열린 산업화 시대 이후 최대의 경제위기라 할 수 있는 외환위기 속에 1998년 출범했다. 이런 위기에 대응해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국가 비전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이었다. 경제적 차원의 시장경제와 정치적 차원의 민주주의에 이어 1999년 김대중 정부가 내건 사회적 차원의 국가 비전이 ‘생산적 복지’였다.

김대중 대통령(가운데)이 2002년 3월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며 생산적 복지정책을 구체화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김대중 대통령(가운데)이 2002년 3월 서울 세종로 정부청사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하며 생산적 복지정책을 구체화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사회민주주의와 신자유주의 절충

김대중 정부가 제시한 생산적 복지의 핵심 아이디어는 극빈층에게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자립·자조·자활을 지원해 개인의 창의성을 발휘하게 하며, 결과적으로 국민 전체의 생산성과 복지를 동시에 향상시키도록 하는 데 있었다.

생산적 복지는 세 가지 주요 정책으로 구체화됐다. 첫째, 정부는 모든 국민이 빈곤선 이하에서 생활하지 않게 하기 위해 2000년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을 제정했다. 둘째, 사회보험제도를 확충하고 내실화해 국민을 질병·노령·재해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제도적으로 보호하고자 했다. 셋째, 저소득층을 포함한 사회 취약계층의 자활을 돕기 위해 다양한 취업 방안들을 마련했다. 이 생산적 복지는 1990년대 후반 당시 영국과 독일이 채택한 ‘제3의 길’ 노선을 발전적으로 수용한 정책이었다. 이혜경(연세대 교수·사회복지학)이 지적했듯이 제3의 길은 복지 확대를 주장하는 사회민주주의 노선과 복지 축소를 주장하는 신자유주의 노선을 절충적으로 통합하려는 전략이었다. 시장과 복지의 상호보완성에 대한 통합적 사고가 생산적 복지의 철학적 기반을 이뤘다.

생산적 복지로 대표되는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을 어떻게 볼 것인지를 놓고 학계 안에서 진행된 논쟁을 담은 저작이 김연명(중앙대 교수·사회복지학)이 편집한 <한국 복지국가 성격 논쟁 1>(2002)이었다. 이 책은 김대중 정부 사회정책의 성격을 다각도로 조명한 선구적인 저작이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3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시민단체 회원들이 2013년 12월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개악 저지를 위한 촛불시위를 하고 있다.

생산적 복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한 이들은 정무권(연세대 교수·정치학)과 조영훈(동의대 교수·사회복지학)이었다. 두 사람은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을 신자유주의적 개혁으로 봤다. 특히 조영훈은 근로연계 복지로서의 조건부수급제도, 민간부문의 역할 강화를 통한 복지 다원주의 등을 주목할 때 김대중 정부 복지정책의 성격을 신자유주의적 복지국가로 파악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연명과 남찬섭(동아대 교수·사회복지학)은 이의를 제기했다. 김연명은 통합주의 의료보험, 전 국민 연금제도 등 김대중 정부 복지정책의 특징이 사회 연대를 강화하고 지위 차별을 축소시키려는 데 있다고 봤다. 그는 이러한 노선이 국가책임주의를 강화하려는 혼합모형의 성격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한편 남찬섭은 김대중 정부의 복지정책이 보수주의적 복지체제에서 나타나는 제도적 특징을 보이고 있다는 견해를 내놓았다.

이렇게 서로 다른 주장을 놓고 토론 참여자들 사이에 다시 한 번 논쟁이 점화됐다. 이 책 3부에서 이들은 상대방 주장에 대한 비판적 논점을 분명히 하고, 앞서 제시한 자신의 견해를 옹호했다. 논쟁에 뒤늦게 참여한 김영범(한림대 교수·사회학)은 여러 지표들을 지켜볼 때 한국 복지국가가 미성숙돼 있음을 강조했고, 논쟁을 전체적으로 조망한 이혜경은 이 논쟁에 큰 영향을 미친 에스핑 안데르센의 복지국가론 이외에 앤서니 기든스의 ‘제3의 길’, 밥 제솝의 ‘슘페터주의적 근로국가론’, 닐 길버트의 ‘능력부여 국가론’에 주목할 것을 제안했다.

제1권이 출간된 지 7년이 흐른 2009년 정무권은 <한국 복지국가 성격 논쟁 2>를 편집해 출간했다. 제2권은 제1권에서 다뤄진 복지 레짐의 이론적 토론, 복지제도와 사회영역의 관계, 한국 복지국가의 특성에 대한 다양한 시각과 분석을 담았다. 이상이(제주대 교수·예방의학), 문진영(서강대 교수·사회복지학), 신동면(경희대 교수·사회정책학), 안상훈(서울대 교수·사회복지학), 김원섭(고려대 교수·사회학), 양재진(연세대 교수·행정학) 등 사회정책 분야의 신진 학자들이 주요 필자들로 대거 참여했다.

■생산적 복지 논쟁의 의의와 과제

김대중 정부가 생산적 복지를 내세운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째,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4대 부문 구조조정이 가져오는 사회 양극화의 확대를 제어하기 위해선 복지정책의 강화가 필요했다. 둘째, 앞선 정부들과 달리 중도개혁 내지 중도진보 성향의 정부인 만큼 자신의 이념에 걸맞은 복지국가의 한국적 기틀을 마련하고자 했다.

나라에 따라 차이가 존재하지만 산업화에서 민주화로, 다시 복지국가로 나아가는 것은 서구사회의 역사 발전에서 관찰할 수 있는 대체적인 경향이다.

선진국으로 나아가려는 한국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점증하는 사회 양극화 속에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구축해야 하는 것은 시대사적 과제다.

무릇 새로운 시대는 과거의 시대 안에서 배태되는 법이다. 산업화 시대가 절정에 달했던 1970년대에 유신체제 반대 사회운동을 통해 민주화 시대가 배태됐듯, 민주화 시대가 절정을 이룬 2000년대에 들어와서 국민기초생활보장법 제정을 통해 복지국가 시대가 배태되고 있었다. 민주화 시대를 넘어 복지국가 시대로 나아가야 하는 게 시대적 흐름임에도 불구하고 복지국가 구축이 지체되고 있는 우리 사회 현실이 적잖이 안타깝다.



한·영·독 중도진보 세력의 지향점…2000년대 들어 퇴조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 기조에 큰 영향을 미친 외국 사회과학자로는 영국의 앤서니 기든스(사진)를 들 수 있다. 기든스는 프랑스의 미셸 푸코, 독일의 위르겐 하버마스, 미국의 이매뉴얼 월러스틴과 함께 20세기 후반을 대표해온 사회이론가다. 1990년대에 그는 전통적 사회민주주의와 새로운 신자유주의를 동시에 극복하려는 ‘제3의 길(The Third Way)’을 내걸어 세계적으로 큰 주목을 받았다. 1998년 책으로 출간된 <제3의 길>이 겨냥한 목표는 ‘사회민주주의의 갱신’이었다.

[광복 70주년 특별기획-김호기·박태균의 논쟁으로 읽는 70년] (31)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


제3의 길 노선의 기본 아이디어는 ‘혼합 경제’ ‘적극적 복지’ ‘사회투자 국가’ 등에 있었다. 특히 복지정책의 중심을 현금 급여와 서비스 제공을 중시하는 전통적 모델에서 교육개혁과 직업훈련을 중시하는 적극적 복지로 전환시켜야 한다는 그의 주장은 영국 블레어 정부와 독일 슈뢰더 정부의 사회정책에 큰 영향을 미쳤다. 시장경제와 민주주의의 병행발전, 그리고 생산적 복지를 내세운 김대중 정부의 노선도 이런 기든스의 제3의 길로부터 아이디어들을 가져왔다.

기든스의 제3의 길에 대해선 옹호와 비판이 공존했다. 세계화의 충격과 정보사회의 진전으로 인해 변화가 불가피한 상황에서 제3의 길이 사회민주주의의 새로운 가능성을 열었다는 게 옹호의 근거였다. 하지만 제3의 길이 신자유주의 정책들을 적지 않게 수용하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의 좌파’에 불과하다는 비판 또한 만만치 않았다. 주목할 것은 1990년대 중반 이후 서구사회에서 중도진보 세력이 정권 교체를 이루는 데 제3의 길 전략이 중요한 이론적·정책적 기반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2000년대 들어 영국과 독일에서 진보세력은 재집권에 실패했고, 제3의 길이 가졌던 영향력은 빛이 바랬다. 한국 사회에서도 노무현 정부 당시 집권당인 열린우리당 안에서 제3의 길에 대한 관심이 컸지만, 2010년 이후 경제민주화와 복지국가 담론이 부상하면서 그 관심은 시들해졌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로 촉발된 포스트 신자유주의로의 체제 전환에서 정치적으로 우위를 점할 것으로 예상돼온 서구사회 진보세력이 제3의 길에 필적할 담론을 제시하지 못한 채 선거에서 잇달아 패배한 것은 아이러니라면 아이러니다.

최근 들어 ‘포용적 번영’ 등 새로운 경제·사회 패러다임을 제시하고 있지만, 유권자들은 과거 제3의 길에 대해 보였던 뜨거운 반응만큼 그렇게 호의적이지 않다. 한국 사회 진보세력의 경우도 예외는 아닌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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