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 무상급식

2015.12.15 22:40 입력 2015.12.15 22:45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보수 “저소득층만” 진보 “눈칫밥 낙인”…정쟁 도구 된 ‘복지 화두’

2007년 대통령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당선된 동력 중의 하나는 ‘경제 살리기’라는 슬로건이다. 보수세력의 경제 살리기는 대중의 관심을 모으는 데 성공했다.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에서 연이어 패배한 진보세력에게 새로운 시대정신을 제공한 것은 2010년 무상급식 논쟁과 이와 연관된 복지국가 담론이었다.

우리 사회에서 복지국가론이 본격적으로 논의된 것은 일자리 창출을 중시한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 복지정책을 통해서였다. 생산적 복지 담론은 인적 자원에 대한 적극적 투자를 강조한 노무현 정부의 사회투자 국가론으로 이어졌다. 생산적 복지론과 사회투자 국가론이 영국 블레어 정부와 독일 슈뢰더 정부의 ‘제3의 길’ 노선에서 기본 아이디어를 가져왔다면, 전통적 복지국가 강화와 새로운 복지국가 구축을 동시에 강조한 이들은 진보적 싱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였다. 이성재(변호사·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 이상이(제주대 교수·의학), 이태수(꽃동네대 교수·경제학) 등이 주도한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보편 복지를 주창하고, 시대정신으로서의 복지국가를 제시함으로써 지식사회는 물론 정치사회에서 큰 관심을 모았다.

2010년 3월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각계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출범식을 갖고 친환경 무상급식 선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11년 1월10일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청별관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를 제안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2010년 3월16일 서울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각계 시민단체가 참여한 ‘친환경 무상급식 풀뿌리 국민연대’가 출범식을 갖고 친환경 무상급식 선언을 하고 있다. 오른쪽 사진은 2011년 1월10일 당시 오세훈 서울시장이 서울 서소문동 서울시청별관에서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를 제안하는 장면. 경향신문 자료사진

선진국의 경험을 돌아보면 경제적 산업화와 정치적 민주화에 이은 사회적 복지국가의 등장은 일련의 역사적 진행 과정이었다. 우리 사회에서도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점증해온 사회 양극화는 그 해소를 위한 복지국가 구축을 새로운 국가적 과제로 부상시켰고, 복지국가소사이어티의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이러한 흐름에 능동적으로 대응한 담론이었다. 2010년 무상급식 논쟁을 통해 촉발된 복지국가 논쟁은 2012년 대선에서 보수적 복지국가론과 진보적 복지국가론 간의 치열한 경쟁으로 나타났다.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 논쟁

복지국가론이 사회적인 영향력을 획득한 데에는 무상급식 논쟁이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09년 당선된 김상곤 경기도 교육감이 무상급식 확대 정책을 추진하자 경기도 도의회는 교육청이 편성한 무상급식 예산을 삭감했는데, 이로부터 무상급식 문제가 새로운 논쟁의 이슈로 떠올랐다. 이 연장선에서 무상급식은 2010년 지방선거의 핵심 쟁점이 됐고, 이른바 ‘식판 전쟁’, ‘밥의 정치’가 우리 사회와 정치를 뒤흔들었다.

무상급식 논쟁에는 ‘보편복지 대 선별복지’라는 대립이 담겨 있었다. 보수세력이 저소득층에게만 지급하는 선별복지로서의 급식안을 제시했다면, 진보세력은 모든 학생에게 지급하는 보편복지로서의 급식안을 제안했다. 보수세력은 보편복지로서의 무상급식에 대해 ‘부자 급식’, ‘좌파 포퓰리즘’이라고 비판한 반면, 진보세력은 저소득층 무료급식이 학생들에게 눈칫밥이라는 ‘낙인효과’를 가져와 인권 및 교육권의 침해가 심각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열띤 논쟁 끝에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상대적으로 선전해 무상급식 정책은 탄력을 받았다. 당시 여론이 무상급식에 우호적이었던 까닭은 2040세대가 5060세대와는 달리 정부 복지정책의 필요성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2040세대 다수는 국민이 정부에 봉사하는 만큼 정부 역시 국민의 사회·경제적 삶의 향상에 기여해야 한다고 보았다. 이들은 헌법 제31조 ‘의무교육은 무상으로 한다’는 조항을 주목하고, 학생이 아침에 교문을 들어서 오후에 학교를 떠날 때까지 그 모든 게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다고 생각했다.

당시 대외적 환경도 무상급식 정책에 우호적이었다. 2008년 미국 대선에서 승리한 오바마 정부는 의료개혁을 추진했고, 2009년 일본 총선에서 승리한 민주당 정부는 아동수당을 실시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 발전모델에 대한 회의가 지구적으로 확산하는 과정에서 우리 사회에서도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과 같은 토건국가 정책에 실망했던 국민들이 무상급식과 같은 복지정책에 대한 관심을 자연스럽게 갖게 됐다.

■무상급식 논쟁의 의의

무상급식이 다시 관심을 모은 것은 2011년 서울시 주민투표를 통해서였다. 지방선거 이후 무상급식 문제를 놓고 대립해온 오세훈 서울시장과 서울시 시의회 간의 갈등은 결국 무상급식에 대한 주민투표 실시로 이어졌고, 그 결과 오 시장이 사퇴했다. 이어진 보궐선거에서 민주당 박원순 시장이 당선됐다. 박 시장이 발의한 무상급식 조례안은 시의회의 동의를 거쳐 전면적으로 실시됐다. 이후 무상급식은 전국적으로 빠르게 자리 잡았다.

무상급식이 다시 한번 정치적 의제로 부상한 것은 2014년 홍준표 경상남도 지사가 무상급식 중단을 선언하면서부터였다. 경상남도 도의회는 무상급식 예산 지원의 중단을 결정함으로써 세 번째 무상급식 논쟁이 점화됐다. 그동안 여당과 야당의 입장은 변하지 않았는데, 여당인 새누리당은 무상급식을 선별 복지로 전환시키려고 한 반면,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은 보편복지로서의 무상급식을 주장했다.

급식이 교육의 한 과정이라고 한다면 무상급식은 보편복지에 속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하지만 동시에 무상급식·무상보육 등에서 어떤 복지를 우선시할 것인지는 해당 복지의 중요성과 정부의 재정 부담을 고려해 신중하게 결정해야 한다. 더불어 주목해야 할 것은, 보편복지와 선별복지가 대립하는 게 아니라 복지의 내용에 따라 달리 적용된다는 점이다. 교육·의료처럼 국민의 기본 욕구에 따른 것은 보편복지로, 그 외의 것들은 선별복지로 가는 게 올바른 복지국가의 방향이라 할 수 있다.

무상급식 논쟁에 담긴 중요한 정책적 함의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사회 양극화를 해소할 복지국가 구축을 어떻게 현실화할 수 있는지에 있었다. 어떤 복지정책이라 하더라도 그것을 제대로 추진하기 위해선 국가 발전전략에 영향을 미치는 구조적 강제와 경로의존성을 고려한 상태에서 정부의 전략적 선택을 극대화해야 한다. 이러한 전략적 선택에서 재정정책과 복지정책 간의 균형을 어떻게 이룰 것인지를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복지정책에서 정치적 리더십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더 많은 복지를 요구하는 복지의식의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발전국가에서 복지국가로의 전환은 시대사적 과제다. 세계화 진전과 양극화 심화라는 안팎의 조건을 고려할 때 우리 사회는 이중 과제를 안고 있다. 복지국가의 기틀을 세우는 전통적 복지의 구축과 비정규직·청년실업 등을 해결하는 적극적 복지의 강화가 그것이다. 이 점에서 어떤 복지국가를 이룰 것인지를 둘러싼 논쟁은 앞으로 더욱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전 국민이 수혜자이자 부담자…국가 주도적 시스템 구축 주장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역동적 복지국가론’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진보적 싱크탱크인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제시한 복지국가 담론이다. 2007년 <복지국가 혁명>을 출간해 자신의 존재를 알린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을 통해 복지국가의 시대사적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계몽을 주도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기본적인 문제의식은 국가적 수준에서 총체적 복지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있다. 총체적 복지시스템이란 저소득 계층 중심의 혜택과 지원을 제공하는 잔여적·선별적 복지가 아니라 중산층을 포함한 전체 국민이 복지의 주체, 즉 수혜자이자 부담자가 되는 보편적 국가복지 체계를 뜻한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사회복지 확대를 추구했지만 복지국가 전략을 모색한 것은 아니었다고 평가하고, 우리 사회가 복지국가로 전환할 수 있는 구조개혁을 적극 단행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서유럽의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에 잇닿아 있다.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큰 주목을 받았다. 미국발 금융위기는 당시까지 우리 사회에 유포돼 있던 “신자유주의에 대한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 근본적인 회의를 안겨줬고, 이러한 회의는 국가복지의 확대를 주장한 역동적 복지국가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을 높였다. 특히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제시한 보편적 복지 담론은, 무상급식 논쟁에서 볼 수 있듯, 이명박 정부의 선진화론에 맞설 수 있는 새로운 대항 담론의 구심을 이뤘다.

우리 사회에서 보수적 싱크탱크들은 활발한 활동을 벌여온 반면 진보적 싱크탱크들은 취약한 물적 토대로 인해 활동이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진보적 싱크탱크의 활동에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었고, 무엇보다 시대정신으로서의 복지국가를 부상시키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당시 보수세력에게 한반도선진화재단이 있었다면, 진보세력에겐 이에 맞설 수 있는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있던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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