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시리즈를 마치며

2015.12.29 20:58 입력 2015.12.29 21:13 수정
김호기 | 연세대 교수·사회학, 박태균 | 서울대 교수·국사학

“활기 잃은 지식사회, 새 논쟁 시작을” “논쟁에 ‘불가역적 해결’은 없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와 박태균 서울대 교수가 29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논쟁으로 읽는 70년’ 시리즈를 마치는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김호기 연세대 교수(왼쪽)와 박태균 서울대 교수가 29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서울역사박물관 앞에서 ‘논쟁으로 읽는 70년’ 시리즈를 마치는 소감을 얘기하고 있다.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 이후지적 비관주의 팽배…논쟁 ‘시들’…

한국 현대사는 논쟁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난해 말 경향신문으로부터 광복 70년 기획으로 ‘논쟁으로 읽는 현대사’를 박태균 교수와 함께 다뤄보는 것은 어떻겠냐는 제안을 받았다. 역할은 박 교수가 역사적 사건과 현상에 관한 논쟁을 집필하고, 나는 학술과 담론에 관한 논쟁을 쓰는 것으로 분담했다. 역사학과 사회학의 협업을 통해 논쟁을 중심으로 광복 이후 현대사를 성찰해 보자는 게 핵심 취지였다.

김호기 교수

김호기 교수

개별 주제들은 기획을 시작하기에 앞서 토론했던 내용에 따라 진행해 왔지만, 도중에 조정된 것도 있었다. 안타까운 것은 제한된 지면 때문에 다루지 못한 논쟁들이 있다는 점이다. 학술과 담론의 경우 내재적 발전론 논쟁, 아시아적 가치 논쟁, 포스트모더니즘 논쟁, 동성애 논쟁 등이 그것이다. 더불어 아쉬운 것은, 논쟁에 참여한 지식인들을 중심으로 다루게 됐고, 그 결과 묵묵히 자신의 연구를 수행해온 지식인들을 제대로 조명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돌아보면 학술과 담론 논쟁의 절정기는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였다. 산업화의 목표, 민주화의 방향, 우리 사회에 강제된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등에 대해 지식인들은 활기차게 논쟁을 벌였다. 그만큼 당시 한국사회와 지식사회는 살아 있었다. 어떤 논쟁이든 새로운 문제제기에 대한 도전과 사회발전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었다. 우려스러운 것은 최근 들어 이러한 논쟁의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포스트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각자도생(各自圖生)이 강화됨에 따라 사회 전체가 활기를 잃어 왔고, 불투명한 미래와 모호한 전망이라는 지적 비관주의가 의식적·무의식적으로 지식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게 나만의 느낌은 아닐 것이다.

논쟁이 시들해진 데에는 다른 요인들도 있다. 대학의 세계화가 강화되면서 적지 않은 논문들이 영어 등으로 쓰여 독자가 줄어들었고, 지식사회의 전문성이 증가해 시민사회와의 소통이 약화됐다는 게 또 다른 요인들이다. 더불어 정치사회는 물론 시민사회에서도 ‘두 국민 국가’가 공고화되면서 보수 대 진보 간의 논쟁이 과거처럼 큰 관심을 모으지 않고 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요인이다.

어느 사회든 논쟁이 중요한 까닭은 논쟁을 통해 쟁점을 분명히 하고 더 나은 해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사회는 본디 다양한 생각들을 가진 개인과 집단들로 이뤄져 있다. 논쟁은 자신의 의견을 돌아보게 할 뿐만 아니라 다른 이의 의견과의 차이를 인식하게 하고, 두 견해의 차이를 조정하게 한다. 진정한 민주주의와 사회통합은 문제가 무엇인지를 합리적으로 논구하고 상호 승인할 수 있는 해법을 도출하려는 실질적 소통을 성취함으로써 가능한 것이라면, 이때 논쟁은 실질적 소통으로서의 의미를 갖는다. 요컨대, 논쟁은 사회발전을 위한 중요한 조건의 하나인 셈이다.

현재 우리 사회는 광복 70년을 넘어 미래 30년을 열 수 있는 새로운 논쟁을 기다리고 있다. 산업화와 민주화를 넘어 무엇이 새로운 시대정신이 돼야 하는지, 저출산과 고령화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청년실업과 노후빈곤을 어떻게 풀 것인지, 사회갈등을 어떻게 해소할 것인지, 다문화사회의 도래에 주목해 민족주의를 어떻게 재구성할 것인지, 소수자의 인권을 어떻게 보장할 것인지, 그리고 한반도 평화와 동북아 번영을 어떻게 일굴 것인지를 포함해 치열하면서도 생산적인 논쟁을 기다리는 주제들은 허다하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지난 70년 동안 다양한 논쟁들이 우리 사회를 이끌어 왔듯, 새로운 논쟁들이 우리 미래를 활기차게 열어갈 수 있기를 소망한다. 타협이 필요한 것은 의당 타협해야 하되, 논쟁할 것은 이성적으로 그리고 치열하게 논쟁해야 한다. 논쟁하는 과정에서 차이를 승인하고, 차이를 승인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합의를 모색하는 것이야말로 우리 사회가 도달해야 할 성숙한 민주주의의 진면목일 것이다.

한·일 위안부 ‘정치적 합의’ 속 논쟁 해결 진정성 있는지 의문

‘논쟁으로 읽는 70년’ 연재를 마치며 마지막 원고를 준비하는 와중에 한국과 일본 정부가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합의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위안부 문제는 징용 보상, 영토 문제와 함께 오랜 기간 한국과 일본 정부 사이에서 논쟁이 돼 왔던 사안이다. ‘논쟁으로 읽는 70년’ 시리즈가 한국 내에서의 논쟁에 국한되었기 때문에 국가 간 논쟁을 다루지 못했지만, 위안부 문제를 둘러싼 논쟁은 어떤 주제 못지않게 중요하다.

박태균 교수

박태균 교수

위안부 문제는 국가 간 문제일 뿐만 아니라 사회 내부의 문제를 보여주는 것이기도 했다. 이를 바라보는 일본 사회의 시각과 한국 사회의 시각에도 문제가 적지 않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누구에 의해 어떻게 끌려갔고, 어떠한 대우를 받았는가는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위안부가 1990년대 이후에서야 과거사 문제의 중심에 떠올랐다는 사실 역시 한·일 양국 사회의 현실을 보여주는 것이며, 이 문제를 정치적으로 합의했다는 것 자체가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을 해결하고자 하는 진정성이 있었는가에 대해 의구심이 들게 한다.

논쟁은 있어야 한다. 논쟁이 없는 사회는 발전이 없다. 어떠한 논쟁에도 끝은 없다. 논쟁을 하면서 사실을 확인하고, 이를 통해 논쟁이 계속되어야 할 부분과 그렇지 않은 부분으로 구분하면서 한 차원 높은 수준의 논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한다. 그 과정에서 사회적 수준이 한 차원 높게 발전하며, 한 차원 높은 사회적 조건 속에서 더욱 진화된 논쟁이 전개되는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어떠한 논쟁도 불가역적(不可逆的·돌이킬 수 없음) 해결은 없다. 1965년 한일협정 당시 1945년 이전 한·일 간의 협정이 언제부터 무효였는가를 합의하지 못하자 ‘이미 무효’라고 해놓고, 한·일 양국 정부가 서로 다르게 해석했기 때문에 지금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는 것처럼. 끝난 것 같았던 논쟁도 새로운 조건 속에서 다시 진행되곤 한다. 논쟁은 끊임없이 진화해 나갈 따름이다. 한·일 정부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양국 시민사회의 서로 다른 해석이 존재할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또 다른 차원의 논쟁을 만들어낼 게 분명하다. 정부의 발표대로 위안부 문제가 ‘최종 타결’되었다면, 이번 합의로 ‘제국의 위안부’를 둘러싼 논쟁도 자동적으로 해결되어야 하는 것인가?

지난 70년간 진행된 주요한 논쟁들을 다루었지만, 실상 그 어떤 주제도 논쟁에 마침표를 찍은 경우는 없다. 단지 일정한 단계에서 논쟁이 멈추어져 있을 뿐이다. 어느 특정한 순간 과거에 멈추어졌던 논쟁은 또다시 시작될 것이다. 국정교과서 논쟁은 이미 다시 시작된 논쟁이 되었으며, 베트남전 참전 문제는 파병 당시에는 논쟁이 되지 않았지만, 이후 지속적으로 논쟁이 진행됐고, 미래에도 ‘태풍의 눈’이 될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진심어린’ 사과를 했다고 하는데, 한국 정부는 베트남에 대해 어떻게 할 것인가? 한국군의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역시 머지않은 미래에 논쟁이 진행될 것이다.

물론 모든 논쟁이 긍정적으로만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어떤 논쟁은 사회발전은커녕 되레 한국 사회의 수준을 한 차원 낮추는 역할을 했다. 친일청산, 대선 후보 단일화 논쟁, 주사파 논쟁, 전시작전통제권 문제 등이 그랬다. 이러한 논쟁들은 그 성격이 정치적 목적에서 변질됐다는 공통점이 있다. 앞으로 한국 사회의 논쟁은 그 본질을 외면한 채 정치적 목적으로 진행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을 보여준다.

광복 이후 70년간 숱한 논쟁이 있었는데도 다루지 못한 주제가 적지 않았다. 특히 재벌과 노동조합에 대한 논쟁과 함께 금융실명제, 토지공개념, 중앙청 해체 문제 등 1990년대 중반의 주요 논쟁들을 다루지 못했다는 점이 아쉽다. 또 정치·경제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불량식품, 혼분식, 일본 대중문화 수입, 미스코리아 선발, 스크린쿼터제, 종교인 과세, 광우병 파동, 황우석 사건 등 문화와 생활 측면의 주제들을 다루지 못했다. 이런 주제들은 앞으로 30년 후 ‘논쟁으로 읽는 100년’을 쓰게 된다면 반드시 포함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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