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뉴타운 신기루에 상처난 성곽 골목…‘뚝딱뚝딱’ 망치소리가 울렸다

2016.10.06 22:48 입력 2020.11.17 17:19 수정

달동네, 다시 짓는 집

최소한의 시설 개선과 마을공유공간을 확대해 살아가는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전경.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최소한의 시설 개선과 마을공유공간을 확대해 살아가는 서울 성북구 장수마을 전경.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서울 성북구 삼선동1가. 한양도성 성곽과 맞닿은 언덕배기에 우순자 할머니(77)의 빨간 벽돌집이 있다. 남편 이희옥 할아버지(83)와 36년째 이어온 보금자리다. 옥상에 3m가 훨씬 넘는 안테나가 불쑥 솟아 있어 ‘안테나 집’으로 불린다.

지난달 25일 초록색 대문을 열고 들어가니 2평 남짓한 마당이 나왔다. 1층에서 2층으로 이어지는 돌계단도 보였다. 마당 한쪽엔 화장실, 건너편엔 샤워실이 있다. 샤워실 옆쪽으로 셋방으로 통하는 문이 하나 더 있다. 가파른 계단을 올라가면 노부부가 사는 2층 안채가 있다. 방이 두개, 거실과 화장실이 있는 평범한 구조다. 현관 앞 화단에는 상추 따위를 심은 화분과 항아리 몇개가 줄지어 놓여 있다. 항아리 뚜껑에는 호박과 밤이 햇볕을 쬐고 있다.

2층에서 옥상으로 이어진 철제 사다리를 타고 오르니 지붕 텃밭이 있다. 대파가 빼곡하게, 족히 30단쯤 자라고 있다. 텃밭 뒤편은 성곽이 둘러서 있고, 앞쪽으론 마을 전체가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 좋은 집이다.

빨간 벽돌집이라곤 하지만 지금은 한쪽 외벽에만 옛 벽이 남아 있을 뿐이다. 다른 벽들은 새로 덧대 얼핏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보이지만, 노부부가 서울에 올라와 두 아들을 키우며 반평생을 보낸 50년 넘은 건물이다.

처음 집을 샀을 땐 화장실도 변변치 않았다. 다섯가구가 함께 살 때도 1층에 재래식 화장실 하나가 전부였다. 씻는 공간은 언감생심이었다. 힘든 서울살이에 싼 집을 찾아 흘러온 이들이 머물던 달동네. 이전 집주인은 집을 조각조각 나눠 세를 놓았다. 2층 가운데 작은 거실을 내고 나머지 공간은 3개의 방으로 나눴다. 각방에 조그마한 부엌이 딸린 셋방을 만든 것이다. “다들 부엌에서 대충 씻거나 2층 마당에서 씻었지.” 우 할머니가 말했다.

■노부부의 반평생이 담긴 집

1969년 경북 의성에서 무작정 3000원만 손에 들고 상경했던 이들 부부도 그런 집을 찾아 이 동네로 처음 들어왔다. 여덟살, 여섯살짜리 두 아들은 고향에 놔둔 채였다. 당시 전세 보증금이 8만원. 연탄불을 지펴도 겨울이면 칼바람이 들어오는 셋방이었다. 할머니는 신당동 기름집에서 참기름을 떼다 보따리를 이고 집집마다 돌아다니며 팔았다. 할아버지는 막노동을 했다. 서울살이 9년 만에 장만한 것이 이 2층집이다. 아이들은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고 결혼해 어느덧 중년이 됐다.

할아버지는 큰아들이 분가하자 2층 살림집에 방 하나를 터서 거실을 넓히고 목욕탕이 있는 화장실도 직접 만들었다. 셋방을 늘리려 여러개 있던 부엌들도 하나만 남기고 정리했다. 도배는 수시로 했다.

노부부가 오랜 세월 가꿔온 이 주택이 재개발 지역으로 묶이게 된 것은 2004년이었다. 서울 전역을 휩쓴 뉴타운 광풍이 성곽을 타고 안테나 집이 있는 장수마을까지 몰려왔다. 삼선동1가 330번지 일대 1만8414㎡ 대지. 167채 주택에 600여명이 살고 있던 이 동네가 ‘삼선4구역’이란 이름의 재개발예정구역으로 지정된 것이다. 금세 투기꾼이 몰렸고, 주인들은 집을 팔고 마을을 떠났다. 주택 10채 중 8채가 외지 집주인인 마을이 됐다. 주민들은 곧 떠날 생각에 집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았다. 골목에는 쓰레기가 넘쳐났고, 빈집도 늘어났다. 하지만 한양도성에 인접한 데다 경사가 심한 탓에 건설사들이 “사업성이 없다”며 외면하기 시작했고, 재개발 사업은 2013년 결국 없던 일이 됐다.

“원래 살던 주민들은 재개발예정구역이 해제되자 고장난 곳을 싹 고쳤어. 그런데 ‘딱지’(아파트 입주권)를 받으려고 집을 산 사람들은 세를 주고 집도 안 고치는 경우가 많아.”

노부부도 재개발 바람에 집을 팔까 생각한 적이 있다. 더 편한 곳에서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타운 신기루가 사라진 마을엔 낡고 방치된 집들만 남았다.

■고쳐서 쓰고, 사랑방 내고

우 할머니가 동네목수와 집을 어떻게 고쳤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우 할머니가 동네목수와 집을 어떻게 고쳤는지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곳 주민들은 개발 대신 스스로 집을 고쳐보기로 했다. 새로 짓기보다 형편에 맞춰 할 수 있는 만큼 수리해가며 사는 것이다. 50~60년이 넘은 집들은 비가 새고 곰팡이가 슬었다. 방수가 안된 기와지붕은 물이 새고 단열이 안돼 난방비도 많이 나왔다. 화려하고 완벽한 새집이 될 수는 없지만 바꿀 수 있는 것부터 하나씩 고쳐 나가기로 했다. 서울시와 성북구가 재개발 대신 마을재생을 택한 이 마을 주민들의 활동을 지원했다.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문, 세입자 출입구, 동네 사랑방으로 통하는 입구 등 대문이 3개인 우순자 할머니의 50년이 넘은 ‘안테나 집’.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문, 세입자 출입구, 동네 사랑방으로 통하는 입구 등 대문이 3개인 우순자 할머니의 50년이 넘은 ‘안테나 집’.

뜻이 모이자 솜씨 좋은 이웃들이 ‘동네목수’로 나섰다. 차가 못 들어가는 비좁은 골목을 손수레에 자재를 싣고 다니며 집을 고치고, 페인트칠을 했다. 노부부도 2년 전 동네목수들과 함께 집을 고쳤다. 오래된 집에 살면 여름에는 더위에, 겨울에는 추위에 시달린다. 한겨울엔 방 안에 둔 걸레가 꽁꽁 얼 지경이었다. 장마철엔 물이 빠지지 않고 방수도 되지 않아 장판 밑에 흥건한 물을 걸레로 훔쳐내야 했다.

사정을 아는 목수들은 벽에 단열재로 스티로폼을 채워넣고, 나무 외짝문을 갈았다. 창문도 이중창으로 바꿨다. 한결 살 만해졌다. 장마철이면 물이 차던 바닥은 뜯어내 도랑을 내고 자갈을 채웠다. 부엌의 싱크대는 노부부가 쓰기 편한 방식으로 개조했다. 동네목수에게 맡겨 이곳저곳을 고치는 데 든 수리비가 2000만원 정도다. 절반은 서울시가 지원해줘 1000만원 정도를 부담했다. 마을에서 50채가량의 집들을 이런 방식으로 조금씩 뜯어내고 다시 붙여가며 살 만한 집을 만들면서 대부분의 주민들은 떠나지 않고 그대로 장수마을에 남아 있다.

“사는 데 별로 불편할 것도 없어. 동네에 정도 많이 들었지. 바로 조금만 나가면 마을버스가 다니고 공기도 좋아. 죽을 때까지 여기 살아야지.”

우 할머니는 집을 고치면서 1층 한칸을 이웃들이 쓸 사랑방으로 내놨다. 같은 마을에서 40년 가까이 함께 부대끼며 지낸 이들, 재개발이 됐으면 뿔뿔이 흩어졌을 옆집과 앞집이 계속 함께 살게 되자 할머니는 같이 동네 살림을 꾸리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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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테나 집’은 그래서 대문이 3개다. 골목에서 집으로 들어오는 문과 세입자가 다니는 출입구, 나머지 하나는 ‘사랑방’으로 통하는 문이다. 사랑방이래 봤자 월세 주던 방을 조금 고쳐 쓰는 것이지만 우 할머니는 “젊었을 땐 일하느라 바빠서 모일 일이 없었는데 늙어서 일을 그만두니 자주 모이게 된다”고 했다. “전에는 노인들끼리 모일 데가 없었어. 집에 이 방을 만들고 나니 열댓명 모이는 거야.” 이곳에서 어르신들은 오다가다 막걸리 한잔 놓고 이야기를 나누거나 한지로 조명등을 만들어 내다 팔아 한달에 3만원 용돈도 번다.

살 만한 주택이 늘어나자 동네도 달라졌다. 주민들은 노인이 많은 동네 특성에 맞춰 집 앞 골목길도 걷기 좋게 고치고 벽에 그림도 그렸다. 집을 고치거나 새로 길을 낼 때 마을과 맞닿은 성곽과 어울리는지도 따져보게 됐다. 동네도 조금씩 살기 좋아졌다. 쓰레기도 일주일에 3번씩 수거해가고, 3년 전부터는 마을에 도시가스도 보급됐다. “가스가 들어오니 좋지요. 전에는 눈이 오면 석유 배달도 안됐어. 추위에 벌벌 떨고 있다가 구청에서 눈 좀 치워줘야 차가 들어왔지.”

이 할아버지는 그간 내버려뒀던 사랑방 옆 창고도 올해 동네목수들이 단열 처리를 했다고 했다. “집이 다 좋은데 계단이 가파르잖아. 이젠 오르내리기 힘들어. 집 고칠 때 계단도 같이 고쳐야 했는데, 근데 그때 돈이 없었어. 기회가 되면 또 고쳐야지.”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그렇게 하나씩 고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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