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가난한 늙은이가, 이사 걱정·건강 걱정 않으니 이게 어디야”

2016.11.11 20:42 입력 2016.11.11 20:47 수정

신내의료안심주택

지난달 30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신내의료안심주택에서 두 할머니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이곳은 원래 유휴지였으나 지난해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2개동이 들어섰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지난달 30일 서울 중랑구 신내동 신내의료안심주택에서 두 할머니가 손을 잡고 걸어가고 있다. 이곳은 원래 유휴지였으나 지난해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2개동이 들어섰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휴일인 지난달 30일 오후 서울지하철 6호선 종점인 봉화산역 3번 출구로 나와 5분쯤 걷다 보니 도로 옆으로 새로 지은 오피스텔 같은 건물이 눈에 띄었다. 바로 길 건너에는 서울시에서 운영하는 서울의료원이 자리 잡고 있었다. 주변에 경찰서와 소방서, 요양원이 보였다. 봉화산이 올려다 보이는 동네는 조용했다.

중랑구 신내동 314-25번지. 유휴지였던 이곳 1만3099㎡ 부지에는 지난해 ‘신내의료안심주택’이라는 이름의 맞춤형 공공임대주택 222가구가 지하 1층·지상 7층 규모 2개동으로 지어졌다. 저소득 독거노인이나 거동이 불편해 휠체어를 이용하는 노약자, 당뇨·고혈압 등을 앓는 만성질환자 등 의료취약계층이 모여산다.

이곳 입주자들은 평균 나이가 70대에 이를 정도로 고령자가 많다. SH공사와 서울의료원, 자치구, 경찰서, 소방서, 보건소, 요양원, 복지관 등 관계기관들이 연계해 복합적인 의료복지를 제공하는 첫 공공임대주택이다.

단지 안으로 들어서자 응급차량·장애인·여성 전용 주차장이 1층에 마련돼 있었다. 일반 차량들은 지하주차장에 세워야 한다. 이날 만난 주민 이정 할머니(73)는 이웃인 장옥순 할머니(75)와 근처 공원으로 산책을 다녀오는 길이었다.

신내의료안심주택 옥상 텃밭.  강윤중 기자

신내의료안심주택 옥상 텃밭. 강윤중 기자

올해 3월과 지난해 11월 각각 의료안심주택에 입주한 두 할머니는 옥상 텃밭을 가꾸다가 우연히 만나 친해졌다. “대화를 나눌 사람이 없었는데 이 이는 말이 통하더라고.” 이 할머니는 텃밭에서 이미 고추를 한 번 길러 따고, 지금은 시금치를 심어뒀다. 옥상에는 이른 추위에도 심어둔 작물을 살피려는 할머니들이 여럿 올라와 있었다. 무, 파, 배추, 방울토마토, 가지 등 여러 작물이 수확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 할머니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35년 동안 근처인 중랑구 묵동 단칸방 연립주택에 세 들어 살았다. 할머니가 수십년 동안 모시고 단둘이 지내온 친정어머니는 취재 1주 전 세상을 떠났다.

직전에 살던 집에서는 주인이 형편을 많이 봐줘 11년간 살 수 있었지만, 2년마다 세를 올려줘야 한다는 걱정은 피해갈 수 없었다. “매일 집세, 생활비 계산만 하고 살았다”고 했다. 먹고살기 위해 젊은 사람들 하는 일까지 안 해본 일이 없지만 5년 전 어머니의 몸이 안 좋아지면서 병간호 때문에 일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어머니를 병원에 모시고 다니는 것도 버거운 일이었다.

지난해 동주민센터 소개로 의료안심주택을 알게 된 후 이 할머니는 망설임 없이 입주신청을 했다. 29㎡짜리 2인용 원룸(130가구)으로 들어오면서 집 때문에 드는 돈도 줄었을 뿐 아니라 2년마다 이사를 가야 하나 하는 걱정도 하지 않게 됐다.

2인용은 전세보증금 1400만원에 월세 19만원이 기본이며 독거인용 원룸(18㎡·92가구)은 보증금 910만원에 월세 12만원이다. 이 할머니는 전액 전세 전환이 가능해 전에 살던 집의 전세보증금과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전세로 들어왔다.

“여기 오니까 관리비 12만원 딱 그것만 나가잖아. 그래서 좋지.” 무엇보다 어머니와 수시로 드나들어야 했던 병원이 가까운 게 이 할머니는 마음에 들었다.

장 할머니는 목돈이 없어 월세를 19만원씩 내고 있긴 하지만 18년 전 중풍에 걸린 뒤 매달 병원을 찾아 검진받아야 하는 남편과 둘 다 이곳이 마음에 든다고 했다. 3년 전 사기를 당하면서 오갈 데가 없어 딸 가족과 지하 단칸방에 세 들어 살 때를 얘기하면서 할머니는 눈물을 흘렸다.

지금은 병이 많이 호전된 할아버지는 여든 나이에도 아직까지 동작구 사당동에서 주차장 관리 일을 한다. “일을 이제 그만했으면 좋겠는데 할 수 있을 때까지는 하겠다고… 날도 추운데 너무 가슴이 아파.” 장 할머니도 2년 전 자궁경부암에 걸린 뒤 정기적으로 병원을 찾아 약을 처방받는다.

신내의료안심주택 내 침대 옆에 설치된 비상벨(원 내).  강윤중 기자

신내의료안심주택 내 침대 옆에 설치된 비상벨(원 내). 강윤중 기자

이 할머니 집은 겉보기엔 부엌과 화장실, 식탁, 침대, 베란다 등 여느 집과 다를 바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좀 더 안으로 들어가 자세히 살펴보자 몸이 불편한 사람들을 위한 꼼꼼한 배려가 엿보였다. 화장실 안과 침대 옆 벽면에는 줄을 당기면 경비실과 서울의료원으로 연결되는 비상벨이 설치돼 있었다. 혼자 사는 입주자가 위급할 때 사용할 수 있는 장치다. 화장실 변기 옆에 달린 비상전화기로 현관문을 열고 통화도 가능하다. 신발장 앞에는 허리를 구부리기 어려운 노인들을 위한 접이식 의자가 벽에 붙어 있었다. 현관문과 화장실에는 일정 시간이 지나도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관리사무소로 연결되는 센서가 달려 있다.

현관에는 의자가 설치돼 있다.  강윤중 기자

현관에는 의자가 설치돼 있다. 강윤중 기자

물론 거동이 불가능한 환자에게는 따로 간병인이 따라붙는다. 베란다 창문으로는 경춘선 신내역이 멀지 않은 위치에 보였다.

할머니들은 입주 후 벌써 세 분이 돌아가셨다고 했다. 구급차도 자주 출동한다. 그만큼 건강이 좋지 않은 입주민들이 많다는 의미다. 이 할머니는 “여기는 밤에도 수시로 경비원이 순찰을 돌고 비상벨이 울리면 올라가 봐야 한다”며 “우리야 고맙지만 고생을 참 많이 한다”고 말했다.

집 밖도 입주자 특성을 살려 설계됐다. 휠체어 이용자를 위한 대형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고, 이동하기 불편하지 않도록 단지 전체에 턱이 없다. 단지 밖으로 이동하기 편하게 담장도 설치하지 않았다. 엘리베이터 앞마다 앉아서 기다릴 수 있도록 나무의자가 놓여 있다. 복도에는 양옆으로 손잡이가 달려 있고, 복도와 현관문은 폭이 넓다. 단지 곳곳에 혈압계, 당뇨 측정기 같이 스스로 건강을 확인할 수 있는 기구와 구급품도 있다. 집이 넓지 않은 것을 고려해 곳곳에 사물함이 놓인 공용 창고와 손님이 오면 맞을 수 있는 응접실이 설치돼 있다. 사는 동이 다른 두 할머니는 건물을 연결하는 구름다리나 옥상을 이용해 서로의 집을 오간다.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수다 떨 수 있는 남녀로 구분된 노인정, 틈틈이 운동할 수 있는 탁구장도 있다. 이 할머니는 “몸이 불편한 사람들이 살기에 정말 시설이 잘돼 있다. 자전거 타고 다니기도 좋고, 산 밑이라 공기도 좋다”며 “아직은 몸이 크게 불편하지 않지만 나이가 더 들어도 여기서 살고 싶다”고 말했다.

시설뿐 아니라 건강관리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도 입주민을 위해 운영된다. 엘리베이터 게시판에는 이번주에 보건소에서 진행하는 ‘관절 튼튼’ 프로그램과 법률사무소에서 준비한 ‘법률상담’ 프로그램을 알리는 글이 붙어 있었다. 주로 경로당과 다목적홀에서 건강교실, 치매검사, 재활상담, 요가 등 몸에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과 노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평생교육, 문화예술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장 할머니는 매주 수요일 서울의료원 간호사들이 하는 방문검진에 대해 잘 알고 있으면서도 가본 적은 없다고 했다. “난 더 이따가 가려고. 아직은 나이든 티를 안 내고 싶어.”

이 할머니는 “사람들이 몸이 불편하고 어렵게 살다 보니 마음의 문을 쉽게 열지 않는다”고 했다. 실제로 2층 노인정에는 할아버지 서넛이 의자에 앉아 담소를 나누고 있었지만, 할머니들은 한 명도 없었다. 건물 안팎에서도 주민들을 마주치기가 쉽지 않았다. “다들 나와서 만날 사람이 없으니까 안에만 박혀 있는 거야. 동네가 너무 조용한 게 아쉬워.”

오랜 삶을 궁핍하게 살아온 주민들은 절약하는 생활이 몸에 ‘지독하게’ 박혀 있다. 이불 등 큰 세탁물을 빨기 위해 층마다 마련된 공용 세탁실에는 대형 세탁기가 있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관리비에 포함돼 나오는 공용 전기·수도요금이 아까워 그런다는 것이다. 장 할머니는 “밤에는 복도 센서등이 켜지지 않게 하려고 사람들이 벽에 붙어 사뿐히 걸어간다”고 했다.

할머니들은 이제 이런 이웃들과 함께하는 일을 만드는 게 목표다. 동네 청소도 하고, 음식도 만들어 주변에 나누면서 사는 의미를 찾아갔으면 하는 생각이다. 이 할머니는 다른 공공임대주택 주민들이 같이 화분을 설치해 단지 분위기도 환해지고, 길에 버리는 쓰레기도 줄어든 사례를 소개했다. “노인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해서 다른 사람들을 도우면 결국 자신을 위한 일 아니겠어. 봉사활동을 하면서 서로 친해지고, 시끌벅적해졌으면 좋겠어. 행복하게 살다 가야지. 얼마 남지도 않은 사람들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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