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한 방울씩 백 번, 2주 숙성…기다림을 견뎌야 풍성해진다

2017.04.21 21:01 입력 2017.04.27 14:54 수정

나만의 향수 만들기

‘올팩션’은 향기를 맡고 느낌과 선호도를 기록하는 과정으로 향수 만들기의 핵심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클래스포트에서 지난 11일 열린 ‘취미잼잼’ 4월 원데이클래스 ‘나만의 향수 만들기’에서 참가자들이 향수의 원료가 되는 향을 시향하고 저마다 느낌을 적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올팩션’은 향기를 맡고 느낌과 선호도를 기록하는 과정으로 향수 만들기의 핵심이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클래스포트에서 지난 11일 열린 ‘취미잼잼’ 4월 원데이클래스 ‘나만의 향수 만들기’에서 참가자들이 향수의 원료가 되는 향을 시향하고 저마다 느낌을 적고 있다. 강윤중 기자 yaja@kyunghyang.com

때마침 가는 길에 벚꽃이 바람에 흩날렸다. 봄이면 ‘벚꽃 엔딩’만 가요 차트에 올라오는 게 아니다. 화장품 업체들은 ‘체리 블로섬’이라며 벚꽃향이 나는 향수를 내놓는다. 달콤함이 떠오르는 분홍 벚꽃향. 하지만 놀랍게도 실제 벚꽃에는 향기가 거의 나지 않는다고 한다. 아주 소수의 품종만이 향기를 낼 뿐이며, 벚꽃잎으로는 향수를 만들기 위한 농축액도 만들기 어렵다. 조향사들은 벚꽃이 아닌 합성원료를 이용해 벚꽃향을 만들어낸다. 그러니까 ‘벚꽃 향수’는 있어도 ‘벚꽃향’은 없는 셈이다.

경향신문 취미잼잼 4월 원데이클래스 ‘나만의 향수 만들기’ 수업을 들으러 가며 벚꽃과 벚꽃향의 상관관계에 대해 생각했다. 수업은 지난 11일 서울 강남구 역삼동 클래스포트에서 썸씽스켄티드의 박은미 강사가 진행했다.

“기성품 향수를 사용했는데 아쉬울 때가 있더라고요. 이런 향이 더 났으면 좋겠는데…하는 생각이 들곤 했는데, 향수에 대해 더 알고 싶어서 참가했습니다.” 강미정씨처럼 참가자 모두 기성품이 아닌 ‘특별한 향기’를 찾기 위해 왔다. 테이블에는 스무개가량의 향수 원액을 담은 작은 병들이 빼곡히 놓여 있었다. 이 향들이 ‘나만의 향수’를 만들기 위한 원료들이다.

[취미잼잼] (16) 한 방울씩 백 번, 2주 숙성…기다림을 견뎌야 풍성해진다

향수는 첫 향을 이루는 탑노트, 심장부라 할 수 있는 중심향인 미들노트, 묵직하게 잔향이 남는 라스트노트로 이뤄진다. 탑노트는 시트러스, 그린 계열의 향료가 많이 사용된다. 확산력은 좋지만 금방 날아가버린다. 미들노트는 플로럴 계열의 향이 주를 이룬다. 30분~1시간 사이에 잘 맡을 수 있는 향이다. 라스트노트는 머스크·우디 계열의 향료가 많이 쓰이는데 무겁고 입자가 커 오래 남아있는 향이다. 두 세시간이 지났을 때 가장 많이 느껴진다.

스무 개의 향들 가운데 탑노트 3개, 미들노트 3개, 라스트노트 3개 정도를 골라서 향을 만든다. 향을 맡고 ‘음 좋네’하고 한 번에 고르는 게 아니다. 향수 만들기의 핵심은 후각기관을 통해 향을 인지하는 ‘올팩션’(olfaction)이라 불리는 과정이다. 향을 맡고 떠오르는 느낌과 선호도를 적어서 기억하는 과정인데, 이를 통해 수많은 향을 헷갈리지 않고 마음에 드는 것을 골라 조향할 수 있다.

꼭 여러 향을 골라야 할까. 좋아하는 향만 100방울 모으면 어떨까. “장미향을 좋아하는 분이 있죠. 하지만 장미향만 들어간 향수는 진한 향이 나는 방향제와 다르지 않습니다. 향수는 향을 섞는 것이에요. 숲길을 걷는데 장미가 나왔다. 장미향이랑 나무향, 풀향을 섞으면 어떨까. 이런 상상을 하면서 조향을 하면 돼요. 단일 향을 쓸 때보다 여러 향을 최적으로 배합할 때 품질이 좋아집니다.” 박 강사의 말이다.

올팩션을 하기 위해 시향지에 향료를 살짝 묻혀 코에 대고 어떤 향인지 맡아보았다. 처음에 맡은 향은 백합향이었다. 시향지를 코에 대면 만화 <신의 물방울>에서 와인을 맛본 주인공처럼 ‘화려한 꽃밭에 나비가 노닐고 따스한 햇살이 비추는…’과 같은 풍경이 펼쳐질 줄 알았다. 그런데 웬걸. ‘음 진한 화장품 냄새인데?’ 정도의 생각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아, 나의 후각과 표현력이 이렇게 빈약하다니.

강사가 탑노트로 쓰이는 버가못 향을 바른 종이를 내밀었다. “일단 시큼한 향이 먼저 올라와요. 과일향, 풀향, 상큼한 향이 먼저 올라오고…색으로 따지면 레몬, 라임색 같은 밝은색이 떠오르죠. 온도로 따지면 좀 시원한 편입니다.” 향을 색이나 온도로 표현하는 것도 가능했다.

강사의 말을 기억하면서 다시 시향해봤다. 처음엔 다 비슷한 것 같았지만, 계열이 다른 향들을 맡아보니 확연한 차이가 느껴졌다. 프리지어, 로즈 등 화려하고 달콤한 꽃향기도 좋았지만, 오렌지·자몽향과 같은 과일향도 상큼했다. 모스그린·그린티와 같은 가볍고 상쾌한 풀향도 곧 다가올 여름에 어울릴 것 같았다.

각 향의 성격을 가려내는 올팩션에 가장 많은 시간이 소요됐다. 참가자들은 한 방울 한 방울 정성스럽게 맡고 기록했다. 향에 대한 느낌도 저마다 달랐다. 방향제 같은 느낌에 ‘강하다’고 느꼈던 라벤더향을 다른 참가자는 ‘상냥함, 몽롱한 기분’이라고 적었다. 반면 ‘풀향, 상큼함’이라고 느낀 그린티향을 ‘쓰다, 한약 냄새’라고 적은 참가자도 있었다.

올팩션이 끝나면 선호도에 따라 탑노트, 미들노트, 라스트노트별로 3~4개씩의 향을 골랐다. 여기까지 하면 80%가 완성된 것이다. 내가 직접 고른 향을 비율에 맞춰 10방울 안팎씩 조그만 병에 담는다. 라스트노트-미들노트-탑노트 순으로 떨어뜨린다. 모두 100방울 정도다. 이들을 잘 섞어주면 향수 원액이 완성된다.

1차로 완성된 향에 뭔가 부족하거나 과하다는 느낌이 들면 강사의 조언에 따라 몇 가지 향을 첨가하게 된다. 향수에도 ‘마무리 구원투수’ 같은 존재가 있다. 바로 통카빈이다. 통카넛의 열매인 통카빈은 은은하면서도 오일리하고, 나무 같은 향이 난다. 단독으로 맡으면 그리 매력적이지 않지만, 마지막에 한 두 방울 넣어주면 향을 고급스럽게 만들어주는 효과가 있다. ‘2% 부족한 향’에 강사는 “통카빈을 넣어볼까요?”라는 말을 많이 했다. 박 강사는 “통카빈이 들어가면 묵직해지고 정리되는 느낌이 있다”고 말했다.

유일한 남성 참가자인 최형락씨는 ‘달달한 향의 표본’을 만들었다. 강사가 통카빈과 와일드진저·엠버를 추가할 것을 권했다. 두 향이 더해지자 달달함은 낮아지고 상쾌함과 시원함이 더해졌다.

다 만들어진 향수 원액은 알코올·정제수·보습성분으로 이뤄진 퍼퓸베이스에 넣고 잘 섞어준다. 이날 만든 향수는 향이 차지하는 비율이 15% 정도인 오드퍼퓸이었다. 처음에는 알코올 향이 강하니 2주 정도 알코올이 날아가는 시간이 필요하다. 눈에 띄는 곳에 두고 볼 때마다 흔들어주면 더 좋다.

‘나만의 향수’가 완성되자 참가자들은 라벨지에 직접 지은 이름을 써넣었다. 강미정씨는 ‘여름, 꽃 춤’이란 이름을 지었는데, 맡아보니 과연 시원하면서도 꽃향이 느껴졌다.

박 강사는 “조향을 해보고 그 향이 너무 마음에 들어서 똑같은 향을 만들려고 두 번 세 번 오는 분들도 있다”고 말했다. 좋아하는 향을 찾고, 최적의 비율을 찾아 직접 만든 나만의 고유한 향수. 2주의 ‘숙성 기간’이 지나야 비로소 만날 수 있다. 고운 향수병을 갖고 집으로 간 참가자들이 2주 만에 맡아보는 향은 아마 ‘기다림’이라는 향이 더해져 더 깊고 풍부할 것이다.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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