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원공방…구릿빛으로 빛나는 ‘인사동의 보석’

2017.12.10 13:55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스물아홉번째 가게는 ‘아원공방’이다.

인사동 아원공방

인사동 아원공방

인사동은 광복 이후부터 고서점, 골동품점, 화랑, 공예품점 등이 자리잡기 시작했다. 문화예술인들이 드나들면서 전통과 문화가 함께 숨쉬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1988년 전통문화의 거리로 지정되면서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다.

인사동길을 걷다보면 대형 기념품점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저마다 자기들을 봐 달라는 듯 형형색색 옷을 입고 있다. 도자기·목공품·금속공예품 등 다양한 소재의 제품들이 매대에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발길을 돌려 가까이 가면 조악한 상품들이 적지 않다. 한국적인 정서를 담은 듯하지만 자세히 보면 국적불명의 제품들이 부지기수다.

인사동의 정체성을 말해 주는 조그마한 공방들은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일부러 숨은 듯한 느낌을 주기도 한다. ‘아원공방’도 그렇다. 쌈지길 옆 전통공방과 화랑들이 모여 있는 단층 건물 한쪽에 아원공방이 자리하고 있다. 아원공방 앞에는 버드나무가 있어 간판도 찾기 어렵다. 목공예를 하는 거안과 나란히 자리하고 있는 아원공방은 금속공예 공방이다.

아원공방 노인아 작가(왼쪽)와 노인정씨.

아원공방 노인아 작가(왼쪽)와 노인정씨.

아원공방은 1983년 인사동에 첫 매장을 열었다. 2평 남짓한 매장이었다. 전통 탈을 만드는 공방인 ‘탈방’ 자리가 아원공방이 처음 자리잡은 곳이다. 아원공방은 그곳에서 1년6개월 정도 운영했다. 그 뒤 인사동 선화랑 옆에서 1년6개월 정도 있었다. 이후 수도약국 옆에 조그마한 가게를 얻어 공방을 이어갔다. 하지만 건물이 헐리면서 인사동을 떠나야 할 때 문화예술인들이 ‘작은 가게 살리기 운동’을 펼쳐 인사동에서 다시 가게를 할 수 있었다.

아원공방의 ‘우산나무촛대’

아원공방의 ‘우산나무촛대’

다른 ‘작은 가게’들과 지금의 자리에 터를 잡았다. 8평 규모의 인사동 아원공방에는 동을 소재로 한 촛대, 꽃병, 목걸이 등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금속 생활공예품들은 기품이 있다. 유려한 곡선이 특징이다. 단순한 장식품들이 아닌 실생활에 쓰이는 제품들이다. 이 제품들은 모두 금속공예가 노인아 작가의 작품이다.

“어려서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어요. 직장 다니면서 취미로 그림을 그렸죠. 우연히 명동성당 앞에서 금속공예 전시회를 봤어요. 그때 동으로 만든 제품들이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특히 동의 색에 완전히 빠져들었죠. 그 길로 한 달 동안 금속공예를 배웠습니다. 이후에는 혼자 여러 가지 만들었죠. 자꾸 만들다 보니 팔고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사동을 자주 다니면서 지금의 ‘탈방’ 가게를 눈여겨봤습니다. 저 정도 규모면 해볼 수 있겠다고 생각했죠. 그 당시는 ‘다암’이라는 차도구를 파는 가게였습니다. 어느 날 스님 한 분이 ‘다암이 이사 가는데 그 자리에 가게를 열 생각이 없느냐’고 물어 보길래 바로 계약했죠. 직장 다니던 동생에게 운영을 맡길 생각이었습니다.”

인사동에 자리잡은 초창기 아원공방

인사동에 자리잡은 초창기 아원공방

노인아 작가의 동생 노인정씨는 언니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였다. 책 한 권 사서 읽어보고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가게 운영을 시작했다. 노인아 작가는 면목동 작업실에서 동을 자르고 구부리고 펴는 판금기법으로 촛대와 꽃병을 만들었다. 당시에는 금속공예가 흔하지 않은 시기였다.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의 노인정씨는 문화예술인들과 교류하며 가게를 안정적으로 운영했다.

꽃병

꽃병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가게를 운영해 본 적도 없는 제가 잘할 수 있을지 두려웠습니다. 언니가 만든 촛대와 꽃병은 그 당시로서는 새로운 제품이었습니다. 선이 예쁜 작품들이었죠. 인사동은 문화예술인들의 사랑방 같은 곳이었습니다. 다른 작가들의 전시회도 다니면서 인사를 나누곤 했죠. 그러면서 알게 된 다른 작가의 작품도 전시하고 판매하기도 했어요.”

삼청동의 ‘갤러리 아원’은 7년 전에 개원했다. 갤러리 아원은 지하 1층에 지상 3층짜리 건물이다. 지하는 노인아 작가의 작품과 아원공방의 주얼리, 다른 작가들의 작품이 상설 전시된 공간이다. 동으로 만든 새들이 나뭇가지에 앉아 지저귀고, 나비들은 춤을 춘다. 그 아래 살포시 앉은 촛불은 발그스레 빛나고 있다. 2층은 갤러리다. 사방이 흰 벽인 갤러리에는 다른 작가의 작품을 설치하는 작업이 한창이었다. 3층은 카페가 자리잡고 있다.

“아원공방의 시그니처 작품은 ‘우산나무촛대’입니다. 이 촛대가 아원공방을 지금까지 살게 한 작품입니다. ‘우산나무촛대’는 아들이 여섯 살 때 그린 그림으로 시작됐어요. 사각형 안에 나무를 그렸는데 정말 예쁘더라고요. 그대로 만들어 봤죠. 예쁜데 팔기에는 부족한 디자인이었어요. 제가 좀 더 살을 붙여 만든 제품이 ‘우산나무촛대’입니다. 4계절을 만들었어요. 2003년에 첫 제품이 나온 뒤 2000개까지 세어보다가 포기했습니다. (웃음) 처음에는 매일 만들었어요. ‘우산나무촛대’가 나오기 전에는 ‘링촛대’가 인기가 많았습니다. 새가 있는 제품도 잘 팔렸고요. 제가 만드는 모든 제품은 자연에서 영감을 얻습니다. 꽃, 새, 나무 등을 보며 아이디어를 얻어요.”

인사동 아원공방

인사동 아원공방

인사동 ‘작은 가게 살리기 운동’으로 지금까지 운영하는 가게도 있고, 지금은 없어진 가게도 있다. 수십 년 동안 인사동을 지켜온 동양다예, 고시계점 용정콜렉션, 송링당필방 등이 문을 닫았다. 지난달에는 차도구 전문점 다암도 문을 닫았다. 아원공방은 그나마 자리잡은 몇 안되는 공방이다. 아원공방·거안·탈방 등처럼 인사동의 정체성을 밝히는 작은 가게들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다.

한편 인사동 주변에는 전통의 향기가 가득한 북촌이 있다. 북촌은 서울에서 한옥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북인사동을 나와 안국역으로 방향을 잡고 헌법재판소를 지나면 북촌 입구가 나온다. 여기서부터는 골목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느릿느릿 양반걸음으로 걸어도 좋은 길이다. 경사진 골목길 따라 조선시대 서울 양반가의 기왓집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아무렇게나 찍어도 예쁜 사진을 건질 수 있는 곳. 북촌을 넘어 삼청동으로 오면 청와대길과 이어진다. 청와대 앞길이 시민들에게 개방되면서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았다. 경복궁 돌담길 따라 청와대 분수대를 지나면 본관을 볼 수 있다.

■아원공방은?

개업연도 : 1983년 / 주소 : 종로구 북촌로5가길 3 / 대표재화 금액 : 촛대 10만~10만원, 주얼리 4만~300만원 / 체험 요소 : 가끔 2층에서 전시가 열림 / 영업 시간 : 매일 오전 10시~오후 7시 / 주변 관광지 : 인사동 문화의 거리, 북촌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