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이용원…이발소의, 서울의 역사가 머물러 있는 곳

2017.12.17 16:05
엄민용 기자·윤진근 온라인기자

문화이용원 전경.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문화이용원 전경.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서른네 번째 가게는 ‘문화이용원’이다.

지덕용 문화이용원 대표.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문화이용원 대표.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혜화동로터리에서 혜화동우체국을 낀 골목으로 150여m쯤 가며 이따금 남성들만 드나드는 낡은 건물이 있다. 그 흔한 빨강·파랑·하양의 ‘이발소 간판’도 없지만, 이곳은 엄연히 78년째 한자리를 지키고 있는 이발소다. 이름하여 ‘문화이용원’!

벽돌 바닥, 목욕탕에서 보던 ‘이발소’ 의자, 벽 한쪽을 장식한 타일과 나무못으로 박음질한 금고. ‘문화이용원’이 문을 열 때부터 자리를 지켜온 물건들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문화이용원을 62년째 지키고 있는 지덕용 대표(80)는 말없이 손님의 머리카락을 다듬고 있었다. 이어 손에 흰 ‘크림’을 묻히고는 손님의 옆머리와 뒷머리, 수염, 눈썹에 골고루 발랐다. 그런 다음 작은 면도날을 사용해 정성스레 면도하기 시작했다.

지 대표는 면도를 마친 손님을 세숫대야 위에 엎드리게 하고는 머리를 감겼다. 손님은 “어푸어푸” 소리가 나게 세수를 하고는 “이발소에 오면 이게 코스”라며 웃음지었다.

지 대표는 6세 때 청주에서 서울로 이사와 줄곧 혜화동에서만 지냈고, 대부분의 시간을 문화이용원과 함께했다. 지 대표는 이 일대의 2대·3대째 주민들을 손님으로 받을 만큼 혜화동 토박이가 됐다.

전문가 노형석씨는 문화이용원을 가리켜 ‘서울 생활사를 재발견할 수 있는 장소’이자 ‘사회문화계 명소들의 단골집’이라고 했다.

지덕용 대표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대표가 손님의 머리를 손질하고 있다.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대표가 오래전 손님에게서 선물받은 미용기기를 보고 있다.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

지덕용 대표가 오래전 손님에게서 선물받은 미용기기를 보고 있다.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

실제로 지 대표는 이용원을 운영하며 저명한 이들의 머리를 만졌다. 혜화동은 학자 또는 정치인 등이 모여 살던 지역으로, 역사학자 고 이병도 박사와 고 최재희 박사 그리고 고 조동화 박사 등 1세대 학자들이 모두 이곳을 찾았다. 기미독립선언서에 서명했던 민족대표 33인 중 마지막 생존자였던 고 이갑성 광복회장도 지 대표에게 머리 손질을 맡겼다.

지 대표는 이회창·이수성·김상엽 전 국무총리 등 정계 인사들의 머리카락도 책임졌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많이도 싸웠지. 재미나게 싸웠어. 이명박 전 대통령은 시장 때 산행도 많이 하고 그랬어.”

지 대표는 몸과 손이 움직이는 데까지 이 직업을 버리지 말자는 심정으로, 올해로 62년째 이용원을 지켜왔다. 손님들은 지 대표를 찾고, 지 대표는 단골들을 살갑게 맞는다.

“손님이 안 오면 ‘오실 때가 됐는데, 이사라도 가셨나’ ‘어디 편찮으신가’ 하고 기다리게 돼. 걱정도 되고. 그러다 오랜만에 들르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지.”

손님의 머리를 감겨 주는 곳. 미용실의 ‘샴푸실’에 해당한다.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손님의 머리를 감겨 주는 곳. 미용실의 ‘샴푸실’에 해당한다.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대표가 예전에 사용하던 미용도구들.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대표가 예전에 사용하던 미용도구들.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대표가 갓 이사를 왔을 무렵, 전쟁을 치르던 당시에는 북한군에게도, 국군에게도 밥을 얻어먹었다. 북한군·국군·미군 모두 그들 중에는 나쁜 사람도 있고 좋은 사람도 있고 했다. 현재 아남아파트가 들어선 자리는 옛 여의전(여자의과대학 전문병원)이었다. 지 대표가 어린 시절 병원에 누룽지나 잔반을 얻어먹으러 가면 총을 쏘거나 돌을 던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조금 후에 잔반을 주겠노라며 타일러 돌려보내는 이들도 있었다.

지 대표는 ‘먹고살기 위해’ 이발 기술을 배웠다. 수습 시절에는 집을 근방에 두고도 이용원 안에서 간이침대를 놓고 잠을 청했다. 당시 문화이용원에 근무하는 8명의 선배들이 출근하기 전에 장작을 나르고 조개탄을 넣어 불을 때야 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3년간 도제식 수업을 받았다. 급여는 고사하고, 한 달에 용돈이라도 한 차례 받으면 좋은 일이었다.

지덕용 대표가 1961년 당시 요금표를 들어보이며 웃음을 짓고 있다.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지덕용 대표가 1961년 당시 요금표를 들어보이며 웃음을 짓고 있다.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1961년 군 전역과 동시에 정식 직원이 돼서야 급여를 받을 수 있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버텨온 지 대표는 이제 이 이발소의 3대째 주인이 돼 있다.

이곳은 전문가 이두현씨의 말처럼 ‘1960~1970년대 이용원의 풍경과 문화를 간직한 곳’이다. 지 대표가 꺼낸 물건들에서 이용원의 과거가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이용원 요금표에는 아이롱·도라이야 등 일본식 용어가 그대로 적혀 있었다. 4294년(1961년) 400환(40원)이던 이발 요금은 1965년 (당시 갑 기준) 90원을 거쳐 현재 1만2000원이 됐다. 손님이 일본에서 사다가 선물해 준 110V 이발 기계나 쉬이 녹이 스는 일도(一刀) 면도날 등에도 지 대표의 손때가 묻어 있다. 이들 물건은 모두 서울시박물관에 기증할 예정이다.

이처럼 오랜 시간 지켜온 문화이용원이지만, 앞으로 얼마나 이어갈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요즘은 아침 8시30분에 문을 열고 저녁 5시30분이면 문을 닫는다. 오랫동안 많은 손님을 받는 것이 이제는 힘에 부치기 때문이다.

후계자를 양성하는 것도 쉽지 않다. 앞으로는 이용원 운영으로 생계를 꾸려가기가 어려운 탓이다.

“나야 내 가게니까 아이 셋을 키워 냈지만, 남의 가게라면 지금도 그렇게는 못 하지. 그러니 이발소가 없어지는 거야.”

과거 혜화동과 명동 일대에는 이용원이 12곳이나 있었지만, 지금은 문화이용원만 남았다. 9명의 직원이 상주하던 문화이용원도 지금은 지 대표 혼자 지키고 있다.

“이제는 사라지는 직업이 돼 버렸어.”

지 대표의 이발 철학은 ‘손님 얼굴을 보고 어울리는 머리 모양을 만들어주자’이다. 머리 모양 하나로 인상이 바뀌기 마련이니, 가위 하나로 머리카락을 ‘조각’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이발사라면 이발 기술은 물론 면도, 빗질, 가마 타는 법, 두상 파악, 심지어 가위며 면도날 가는 법까지 알아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발사라면 모름지기 손님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머리를 알려줄 수 있어야 해. 나도 그 신념 하나로 여기까지 왔어.”

노이사발사의 주름진 손에는 손님의 멋을 살려 주고 손님의 격을 높여 주는 ‘정성’이 깊게 배어 있었다.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이화동 벽화마을의 풍경. 윤진근 온라인기자 yoon@kyunghyang.com

한편 문화이용원 근처에는 혜화동 명소가 많다. 또 조금 여유가 있는 발걸음이라면 인근 이화동의 벽화마을도 둘러볼 만하다. 낙산공원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벽화마을은 동그란 산책로를 형성하고 있다. 이곳의 가장 멋진 점은 동네 곳곳을 채운 벽화들이다. 박물관과 카페, 펍, 공방 등이 있어 여유를 즐기기 편하다.

■문화이용원은?

개업연도 : 1940년 / 주소 : 종로구 혜화로 5 / 대표재화 금액 : 이발 1만2000원 / 체험 요소 : 이발 체험 가능 / 영업 시간 : 오전 8시30분~오후 5시30분 / 주변 관광지 : 대학로, 이화 벽화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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