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박연…세계 유일의 한국전통 금박 기술

2017.12.19 18:16
엄민용 기자·윤진근 온라인기자

금박연 입구.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연 입구.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서울시는 종로·을지로에 있는 전통 점포 39곳을 ‘오래가게’로 추천하고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지도를 제작했다. 이를 위해 서울시는 전문가의 조언과 평가는 물론 여행전문가, 문화해설사, 외국인, 대학생 등의 현장방문 평가도 진행했다. 서울시가 ‘오래가게’를 추천한 것은 ‘도시 이면에 숨어 있는 오래된 가게의 매력과 이야기를 알려 색다른 서울관광 체험이 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에 경향신문은 이들 39곳의 ‘오래가게’를 찾아 가게들이 만들고 품고 키워 온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어봤다. 그 서른여섯 번째 가게는 ‘금박연’이다.

김기호 금박연 대표.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김기호 금박연 대표.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외국인도 내국인도 카메라를 들고 찾는 북촌 한옥마을에는 골목 곳곳에 전통문화를 계승하는 공방들이 많다. 그중에는 한눈에 척 봐도 뭔지 단박에 알 수 있는 것이 있고, 설명을 듣지 않고서는 뭐가 뭔지 모르는 것도 있다. 금을 옷에 새기는 ‘금박’은 후자에 속한다.

‘금박연’ 대표 김기호씨는 5대째의 전통을 잇고 있는 주인공이다. 조선시대 철종 때부터 5대에 걸쳐 가업이 이어지고 있다. 김 대표는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잇는 고리다.

2대 대표이자 김기호 대표의 증조부께서는 종로구 공평동에 집 겸 공방을 마련했다. 지금의 북촌에 온 지는 10년이 됐다. 10년 전에는 공방이 있지 않았지만, 이제는 근처에 공방도 많이 생겼고 연을 맺은 이들도 많다.

금박연에서 새기는 금박은 일상복이 아니라 예복으로, 금박이 가지고 있는 문양도 의미도 다양하다. 진흙 속에서 피어 생명력을 상징하는 연꽃, 장수를 뜻하는 모란을 비롯해 석류와 거북이 등의 문양도 있다. 한자 시구(詩句)나 좋은 문구를 새기기도 했다.

김기호 대표는 집안에서 대물림돼 온 목판들을 가지고 있다. 대대로 이어온 목판은 가보처럼 이어지고 있는데, 할머니 한 분은 목판을 지키기 위해 전란에도 피난을 가지 않고 집을 지키셨다고 한다. 여기에 김기호 대표가 도안한 것들을 더하고 있다.

가문에서는 조선 왕실 예복에 금박을 하는 일을 대대로 이어왔다. 조선왕실 소속 장인이었다. 당시 의궤(儀軌), 명성황후 국장 뒤의 의궤에서도 증조부님이자 2대째 장인인 김원순 선생의 이름을 찾을 수 있다.

김기호 대표가 금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김기호 대표가 금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초대 장인은 김완형 장인으로, 왕실 내수사에서 관리를 지냈다. 당시 ‘직금’이라고, 금실로 비단을 짜는 기술이 있다. 하지만 영조 때 비단 짜는 것을 불태우는 ‘직족’ 이후로 중국에서 제품을 수입했다. 이에 김완형 장인이 직금 대신 금박을 하자고 제언했고, 이후 금박 일에 관여하게 됐다.

금박은 직금과 다르다. 직금은 금실로 비단을 짜는 기술로, 중국에서 주로 사용하던 것이다. 반면 금박은 금을 직접 옷에 붙이는 기술이다. 증조부님은 의궤에 ‘금박’이 아닌 ‘부금’(付金)장으로 기록됐는데, 이 역시 “금을 붙인다”는 소리다.

금박연의 금박 기술은 독특하다. 다른 나라는 붓으로 그림을 그려 금가루를 뿌리거나 박을 붙이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김기호 대표는 ‘도장’을 사용한다. 나무로 만든 문양판에 풀로 탁본을 떠 옷에 찍는다. 이어 풀이 마르거나 굳기 전에 금박을 붙인다.

북촌 한옥마을 입구에 금박연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북촌 한옥마을 입구에 금박연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서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우리나라처럼 섬세하게 금을 옷에 붙일 수 있는 기술은 세계 어디에도 없다. 유럽 등에서 건축물이나 액자틀·가구·불상 등에 큰 문양을 금박하는 경우는 있지만, 김기호 대표 집안처럼 세밀한 금박이 가능한 기술은 없다. 즉 이 기술은 우리나라의 고유 기술이자 김기호 대표 집안의 기술이다.

금박에는 ‘아교’와 ‘어교’를 썼다. 아교는 “짐승의 가죽, 힘줄, 뼈 따위를 진하게 고아서 굳힌 끈끈한 것”으로 ‘갖풀’로도 불리고, 어교는 “민어의 부레를 끓여서 만든 풀”로 ‘부레풀’이라고도 한다. 모두 물에 넣으면 녹는다. 이 때문에 출토된 금박유물을 세척한답시고 물에 넣었다가 유실된 경우도 있다. 그래서 물을 쓰지 못한다.

금박연에서 개발한 금박두루주머니.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연에서 개발한 금박두루주머니.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연에서 개발한 명함집.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연에서 개발한 명함집.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을 새긴 의상.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을 새긴 의상.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작업 중인 김기호 대표의 손.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작업 중인 김기호 대표의 손.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김기호 대표 가문은 우리나라에서 전통 방식을 하는 유일한 집안이다. 평상복으로 사용하지 않는 예복, 그것도 왕실의 예복이었기 때문에 다른 지방에서는 금박을 하지 않았으며, 따라서 다른 장인이 존재할 수 없었다. 현재도 4대 대표인 김덕환 대표만 무형문화재로 지정돼 있다.

김기호 대표의 현재 과제는 금박에 대한 수요를 높이는 것이다. 현재 금박연에서는 기존처럼 의복에 금박을 하는 일에 더해 관광문화상품 개발, 교육, 체험 등에 신경 쓰고 있다. 그중 첫 손가락에 꼽는 것이 체험 행사다. 현재 금박연을 방문하면 누구나 금박을 붙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바느질을 하는 분들은 이곳에서 직접 금박을 하기도 한다. 의류 전시를 하는 분이나 의상실 등에서도 많이 찾는다.

하지만 금박연은 현재의 체험 외에 다른 활용 방안을 찾고 있다. 제품 판매도 그중 하나다. 넥타이·명함집·필함 등을 개발해 이곳 공방과 한국문화재재단을 통해 인천국제공항에서 판매하고 있다.

금박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금박 작업에 사용하는 도구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김기호 대표는 “현대인들이 쓸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며 “장인이라면 ‘만드는 것’ 자체에 집중하는 것이 맞는다”고 말했다. 실생활에 접목할 수 있는 물품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금박연은 지금까지 50종 이상의 물품들을 개발했다. 디자이너나 가구 제작자와 협업해 찻상도 만들었고 브로치·스카프도 있다. 예부터 써오던 두루주머니도 있다. 현재 한국문화재재단, 한국공예 디자인문화진흥원(KCDF)에 소속된 공방이며 디자이너 등과 협업하고 있다. 이 밖에 시연이나 전승활동도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이렇듯 금박연은 조선시대부터 5대를 이어온 기술을 잘 전승하는 것과 오늘날 실생활에 접목하는 것 모두에 집중하고 있다. 유럽의 의류나 잡화 업체처럼 수백 년을 이어가는 것이 김기호 대표의 목표다.

북촌전통공예체험관. 인근 공방 장인들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전시실·체험실 등으로 나뉘어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북촌전통공예체험관. 인근 공방 장인들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전시실·체험실 등으로 나뉘어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북촌전통공예체험관. 인근 공방 장인들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전시실·체험실 등으로 나뉘어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북촌전통공예체험관. 인근 공방 장인들이 번갈아가며 자리를 지킨다. 전시실·체험실 등으로 나뉘어 있다. / 윤진근 온라인 기자 yoon@kyunghyang.com

한편 한옥마을에서 금박연으로 올라오는 골목 곳곳에는 공방이 많다. 각자 전통 기술을 간직하고 이어온 공방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북촌 전통공방협의회가 만들어질 정도다. 이런 골목에서 들를 만한 곳 중 하나가 북촌전통공예체험관이다. 근처 공방을 운영하는 이들이 모여 체험관을 지킨다. 이곳을 방문하면 각자의 공방에서 계승해 온 전통문화를 체험할 수 있다.

■금박연은?

개업연도 : 1856년 / 주소 : 종로구 북촌로 12길 24-12 / 대표재화 금액 : 간단한 관광용품 2만~3만원, 전통금박공예용품 10만원부터 / 체험 요소 : 전통 금박문양 체험 가능(예약필요, 1만3000~6만원), 공예품 구매 / 영업 시간 : 매일 오전 9시~오후 6시(일요일 휴무) / 주변 관광지 : 북촌 한옥마을, 창덕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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