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이냐, 증오냐’ 의사의 아내 살해 동기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죄인가

2018.04.22 21:47 입력 2018.04.22 21:49 수정

동기의 무게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주사기에 근육이완제를 넣어 부인을 살해한 의사에게 ‘징역 35년’이 선고됐다. 니코틴 주입으로 살해한 다른 사건에 대해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형량을 판단할 때 주요하게 보는 것은 범행 동기로 ‘오로지 돈’ 때문에 부인을 살해했다면, 주사기 살인사건도 무기징역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밀라노 묘지에 있는 여인상이다.

두 차례의 시도 끝에 주사기에 근육이완제를 넣어 부인을 살해한 의사에게 ‘징역 35년’이 선고됐다. 니코틴 주입으로 살해한 다른 사건에 대해 법원은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가 형량을 판단할 때 주요하게 보는 것은 범행 동기로 ‘오로지 돈’ 때문에 부인을 살해했다면, 주사기 살인사건도 무기징역이 선고될 가능성이 높다. 사진은 밀라노 묘지에 있는 여인상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났다. 피고인에 대한 1심 재판에서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고, 재판부는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2심 재판에서 검찰은 다시 사형을 구형했지만, 항소심은 징역 35년을 유지했다.

‘사람을 죽였으면 무기징역쯤은 기본으로 가겠지’ 하는 사람들의 오해와 달리, 살인이라고 해도 형이 무작정 높지만은 않다. 우발적 살인이면 징역 12~13년 정도가 기준이 된다. 관례에 비추어봤을 때 이 사건은 꽤 중한 형을 받은 셈이다. 독자들은 과연 어떻게 보실 것인지. 사건의 내막은 이렇다.

의사인 이대우(가명)와 아내 오수빈(가명)은 40대 중반의 부부였다. 2017년 3월11일 충남 당진시 소재 이들의 주택에서 119신고가 들어왔다. 오수빈이 호흡마비를 일으켰다는 거였다. 구급대가 출동하니 이대우가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었다. 아내는 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심정지로 사망했다. 병원에서도 병사로 판정을 했고, 아내는 화장됐다.

그런데 수상한 정황들이 발견됐다. 이대우가 자신의 병원 직원 명의로 다량의 수면제를 구입한 사실이 드러났고, 아내가 죽던 날에는 병원에서 약물을 희석해 주사기에 넣어두는 장면이 CCTV에 포착된 것이다. 경찰 수사가 압박해오던 어느 날 아침, 이대우는 병원에서 자신의 팔에 주사를 놓은 후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버렸다. 경찰이 추적에 나섰고, 영동고속도로 강릉휴게소에서 차 안에 잠들어 있던 이대우를 발견했다. 자살하려 했던 듯, 차량 조수석에는 번개탄이 놓여 있었다. 이대우는 살인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의사가 의술로 살인했는데
수면제·근육이완제 이용해
2번의 시도 끝에 아내 살해

구체적인 혐의는 이렇다. 이대우는 직원 명의로 약국에서 수면제인 아티반을 다량 사 모았다. 또 근육이완제인 베카론을 병원 명의로 구입했다. 아티반은 부숴 가루로 만들고, 베카론 분말은 식염수에 희석해 주사기에 넣어두었다. 이렇게 준비한 주사기를 가방에 넣어두고 다니며 기회를 엿보았다. 그러던 중 사건 당일 밤 10시30분 오수빈에게 아티반 가루를 물에 타 마시게 해 재우고, 베카론 주사기를 꺼내 아내의 팔에 주사했다. 그러고는 밖으로 나가 외출한 것처럼 하고는 30분 뒤에 돌아왔다. 그 직후 자신이 직접 119에 신고했고, 119대원이 출동했을 때는 아내에게 심폐소생술을 하는 척 연기를 했다. 결국 오수빈은 심정지로 사망했다.

베카론은 미국에서 사형집행에 쓰이는 약물이기도 하다. 근육을 이완시키는 효능이 있어 심장근육도 정지시킨다. 그래서 베카론이 주사되면 마치 목을 졸린 것처럼 숨을 쉴 수 없게 되고, 시간이 경과하면 심장이 정지한다. 병원 또한 오수빈을 병사로 처리했다. 여기서 의문이 들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전문가인 병원 측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병사로 처리를 해버렸을까.

실은 이전에 똑같은 사건이 한 번 더 있었다. 이대우는 넉 달 전에 이미 아내 살인을 시도했던 것이다. 방법도 완전히 같았다. 아티반 가루와 베카론 주사기를 준비해두었다가 아내에게 주사해 심정지를 일으켰다. 119가 출동했을 때 이날도 이대우는 심폐소생술을 시행하고 있었다. 넉 달이라는 시간을 건너 똑같은 상황의 재연이다. 다만 그때는 조금 빨리 심폐소생 조치가 이루어져 오수빈이 살아났다는 점만이 달랐다.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돈이냐, 증오냐’ 의사의 아내 살해 동기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죄인가

베카론은 4, 5시간 후면 분해되고 흔적이 남지 않는 약물이다. 그래서 병원도 의심을 품지 못했고, 그게 사건의 구멍이 되어 버렸다. 병원 입장에선 넉 달 전에 심정지로 실려 온 환자가 또 심정지로 오니까 그 병력이 도졌다고 판단해버린 거였다. 그 넉 달 전의 심정지 역시 남편이 꾸민 짓이었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하마터면 덮일 뻔했다.

이대우는 의대를 나와 청담동에서 성형외과를 열었었다. 그런데 문제가 좀 많았던 것 같다. 허위 입원확인서를 발급해 보험사기에 연루된 혐의로 벌금형을 받았고, 프로포폴 과다 투여로 환자를 사망케 해 또 벌금형을 받았다.

의료사고 때문에 적자가 누적된 탓에 이대우는 결국 병원을 폐업했고, 전처와 이혼하고 매달 양육비 800만원도 부담하게 되었다. 이후 다른 성형외과 페이닥터로 갔는데 여기서 또 사고를 냈다. 안면리프팅 과정에서 환자에게 상해를 입혀 벌금형을 받았고, 바로 사흘 후 안검하수 교정술 과정에서 프로포폴을 과다 투여해 환자를 숨지게 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대우는 2016년 1월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남편과 사별한 오수빈을 만나게 된다. 두 사람은 결혼했고, 10억원 가까운 재산을 보유하고 있던 오수빈은 당진에 내려가 병원을 차리자고 했다. 이대우도 동의하고 두 사람은 당진에서 성형외과를 개업했다. 오수빈이 임대차보증금과 인테리어비 등 개업비용의 대부분을 댔다. 우여곡절 끝에 2016년 9월경부터 병원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기 시작했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부부 간에 갈등이 있었다. 우선 고부갈등이 심해 시댁과 오수빈은 왕래가 완전히 끊어지기에 이르렀다. 이대우가 전처에게 지급하는 매달 800만원의 양육비와 면접 교섭도 갈등요인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 아이가 안 생기는 문제도 겹쳤다.

부부갈등이야 안 된 일이지만 흔하다. 그게 생사의 문제는 아니다. 안 맞으면 갈라서면 된다. 살인이라는 선택은 좀처럼 생각하기 힘들다. 남편은 왜 아내를 죽였을까. 검찰은 부부의 정서적 갈등이 이유가 아니라고 봤다.

이대우 입장에서는 이대로 이혼하면 병원에 투입된 아내의 돈이 빠져나가 병원 운영이 곤란해지는 상황이었다. 반면에 아내가 죽는다면 그 돈을 전부 상속받게 된다. 그렇다. 동기는 돈이었다. 감정이 아니라. 검찰의 견해는 그랬다. 동기의 불량함, 살인방법의 악성 등을 이유로 검사는 사형을 구형했다.

왜 무기징역 아닐까
1심·항소심 징역 35년 선고
법원 유기징역 상한은 30년
살인미수 등 고려 가중된 것

우선 1심 판결결과가 유죄였다는 점은 굳이 강조할 필요가 없을 듯하다. 본인의 자백에 다수의 물증이 있었고, 자신의 모친에게 보낸 문자에 아내를 죽였다는 말도 있었다. 유무죄 판단에 다툼이 있는 사건은 아니었다. 여기서 관심 있는 건 형량이다. 1심은 징역 35년을 선고했다.

‘징역 35년’에는 여러 가지 의견이 있을 수 있겠다. 일반론적으로 말하면, 꽤 무거운 형량이다. 살인은 사형, 무기 아니면 징역형인데. 사형은 사실상 폐지된 셈이다. 무기냐 유기징역형이냐인데, 일단 법원은 유기징역형을 택했다. 그 상한이 30년이고, 가중되면 45년까지 가능하다. 여기서 상한인 30년을 넘겨 35년으로 한 것은 살인행위 전에 살인미수가 있었고. 그 외에 다른 불량한 정상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선,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의술을 살인 도구로 이용했다는 점이 가장 비난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이전에도 의사가 살인사건으로 재판에 선 일이 있었지만, 만삭 의사부인 살인처럼 우발적으로 목을 조른다든가 하는 범행이었다. 치과의사 모녀살인사건도 무죄긴 했지만 혐의를 받은 내용은 역시 목을 졸랐다는 내용이었다.

말하자면 살인범(치과의사 모녀 사건은 제외)의 직업이 우연히 의사였을 뿐, 범행과 의술하고는 별 관련이 없었다. 그런데 이 사건은 성격이 다르다. 의사만이 구할 수 있는 약물을 이용해, 의사만이 할 수 있는 방법으로 사람을 죽였다. 비난 가능성이 더 높다. 또, 한번 살인하려 했다가 실패하고선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살인을 저지르고야 만 점도 악성이 높다.

문제는 범행 동기
아내 재산, 병원 개업에 ‘큰 몫’
돈 때문에 살해 가능성 불구
고부 갈등·전처 문제로 인한
부부간의 정서적 갈등도 존재

그렇다면 이렇게 좋지 못한 정상이 많고, 여론도 안 좋은 사건이었는데 왜 무기징역형을 택하지 않은 걸까. 그 이유는 동기에 있었다. 범행동기가 ‘오로지 돈’이라고 인정했다면 아마 무기징역형이 선고됐을 것이다. 이 점을 더 선명하게 하기 위해 유사한 사건을 잠시 들여다보자.

얼마 전 1심 판결이 있었던 소위 ‘니코틴 살인사건’은 치밀한 계획 아래 약물을 주입해 남편을 죽인 혐의로 재판받았다는 점에서 비교될 만하다. 2016년 4월22일 남양주시 도농동의 한 아파트에서 53세 남성이 딸과 아내와 함께 외식하고 돌아온 후 방에 들어가 자다가 그대로 사망했다. 부검한 결과, 놀랍게도 사인은 니코틴 중독이었다. 문제는 이 남성이 생전 담배를 피우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검출량이 1.95밀리그램이었데, 담배를 피우는 사람에게도 나오지 않을 정도의 양이었다. 게다가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다량으로 검출되었다. 경찰은 피해자의 아내와 내연남을 살인 공모 혐의로 체포했다.

남편과 아내는 사건 5년 전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만났다. 당시 남자는 독신이었고, 아내는 딸이 둘 있는 이혼녀였다. 남자는 알뜰히 저축해 아파트 두 채 등 8억원 정도의 재산을 모은 반면, 여자는 파산 상태였다. 경제적으로 심하게 쪼들리던 아내의 생활은 동거 후 활짝 피어났다. 쇼핑, 해외여행 등으로 남자의 돈을 펑펑 써댔고, 딸 한명은 호주로 어학연수를 보냈다. 반면에 남편은 천안 소재 회사 기숙사에서 내내 국수를 먹으며 지냈다. 주말에만 남양주로 와서 같이 지내는 사실혼 부부였다. 아내는 사건 1년 전 혼자 마카오로 여행 갔다가 현지에서 내연남을 만났다. 그는 빚만 1억원이 있을 뿐인 신용불량자였다. 두 사람은 별내면에 따로 아파트를 얻어 같이 지냈다. 아내는 주중에는 내연남과, 주말에는 남편과 지내는 이중생활을 해온 것이다. 그러던 중 아내가 남편 몰래 허위로 혼인신고를 했고, 그 두 달 후 남편이 죽었다.

재판에서는 유무죄가 극렬하게 다투어졌다. 주로 범행 방법, 즉 니코틴을 어떻게 주입했는가 하는 점이 쟁점이었다. 결국 유죄로 인정되었는데, 여기서 우리의 관심은 형량이다. 두 사람에게는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범행동기를 ‘오로지 돈’이라고 파악했고, 선처의 여지가 없다고 본 것이다.

혐의사실을 기준으로 보면(최종 재판에서 확정된다면), 두 사건은 마치 ‘악의 경쟁’을 벌이는 듯하다. 외견상으로 딱히 어느 쪽이 더 악하다고 말하기가 어려울 만하다. 범행 내용도 유사하다. 그런데 하나는 무기징역이 선고됐고, 다른 하나는 유기징역이었다.

피고인들의 운명을 가른 요소는 우선 자백 여부였을 것이다(의사는 자백했지만, 니코틴 혐의자들은 부인했다). 더하여 역시 범행동기가 관건이었다. 돈 때문에 죽인 것인가, 그렇지 않은가.

우호적 해석의 원칙 따른 재판부
돈과 증오, 모두 원인 가능성
피고인의 의도 가장 좋게 해석
가장 이익이 되는 쪽으로 판단

니코틴 사건과 달리 의사 살인 사건에서는 아내의 재산만을 목적으로 한 범행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재판부는 판단했다. 살해한 후 보름 만에 아내 명의의 부동산과 자동차 소유권을 자신 앞으로 이전했다는 점은 돈을 노린 것 같은 인상을 준다. 하지만 부부 간의 갈등과 증오심이 크게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대우를 무기징역의 구렁텅이에서 간신히 건져 올린 것은 ‘동기’라는 요소였다.

동기는 정황으로 추정되는 피고인의 내면이다. 단정하기란 쉽지 않다. 재판부는 동기 측면에서도 ‘불분명할 때는 피고인의 이익으로’라는 법원칙에 충실했던 것으로 보인다. 달리 말하면 ‘우호적 해석의 원칙’이 작용한 듯하다. 이건 법원칙은 아니고, 생활 원리라 할 만한데, ‘상대방의 의도를 가장 좋게 해석해보고, 그래도 여지가 없다면 그때 화를 내라’는 것이다. 이 재판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니었나 싶다. 돈과 증오, 양쪽으로 해석 가능하다면, 적어도 후자 쪽으로 해석 가능하다면, 피고인에게 이익이 되는 후자로 해석해준 셈이다.

물론 이 판결문의 형량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는 있다. 그렇지만 ‘사람을 죽였으니 대충 무기징역’ 하는 식의 일률적인 처리보다는 ‘악한 것’과 ‘정말 악한 것’을 가려내고 사건의 개별성을 반영하려는 양형에서의 고뇌는 전해지는 것 같다.

■필자 도진기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돈이냐, 증오냐’ 의사의 아내 살해 동기 어느 쪽이 더 무거운 죄인가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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