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도 법도 못 지켜준 여섯 살 인생

2018.05.07 20:55 입력 2018.05.07 21:04 수정

태완이 황산테러 사건

1999년 5월 발생한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은 충격적이다. 피해자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경찰은 초동수사에 실패했다. 전문가가 참여해 피해자의 진술을 들어야 했는데, 정작 진술을 받은 사람은 피해 아동의 가족이었다. 49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아이의 마지막 말은 “형아야, 엄마가 나만 로봇 신발 사준다 했는데, 사도 되나?”였다고 한다. 사진은 비에 젖은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소년상이다.

1999년 5월 발생한 대구 어린이 황산테러 사건은 충격적이다. 피해자는 고작 여섯 살이었다. 경찰은 초동수사에 실패했다. 전문가가 참여해 피해자의 진술을 들어야 했는데, 정작 진술을 받은 사람은 피해 아동의 가족이었다. 49일 동안 사경을 헤매다 사망한 아이의 마지막 말은 “형아야, 엄마가 나만 로봇 신발 사준다 했는데, 사도 되나?”였다고 한다. 사진은 비에 젖은 독일 프라이부르크의 소년상이다.

범죄를 많이 접하다보니 아무래도 무뎌진다. 신문 범죄 기사만으로도 머리가 하얘질 만큼 충격을 받던 청년기의 나는 이제 없다. 그럼에도 이런 사건들에는 아직 울컥한다. 아이를 상대로 한 범죄들이다.

1999년 5월 어느 날 아침 대구 효목동 골목길을 걸어가고 있던 여섯 살 태완이 곁에 돌연 검은 봉지를 든 괴한이 나타났다. 그는 뒤에서 태완이의 머리카락을 잡아당겨 입을 벌리게 한 뒤 봉지에 든 황산을 쏟아부었다. 황산은 눈과 입 속으로 들어가 실명케 하고 식도와 기도를 태웠다. 전신 45%에 화상을 입은 태완이는 사경을 헤매다 49일 만에 숨을 거뒀다.

괴한에 황산테러 당한 6세 아이
용의선상에 올랐던 치킨집 사장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

여섯 살 태완이가 성인 남자에게 무슨 잘못을 했을 것 같지는 않다. 태완이 부모에게 원한을 품은 사람의 소행으로 의심되는 상황이었다. 사건 며칠 전 동네 치킨집 아저씨 이한규(가명)가 태완이 모친에게 울며 무릎을 꿇고 돈을 빌리려다 그냥 돌아간 일이 있었다. 그 치킨집은 사건 현장인 골목 근처였다. 태완이는 사건이 있기 전 그 아저씨를 보았다고 했다. 사건 후에는 목소리도 들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한규가 우선 용의선상에 올랐다. 하지만 경찰은 혐의 이상의 증거를 찾지 못했고, 세월만 흘렀다.

유족들은 태완이가 병상에 있는 동안 녹음장비를 동원해 진술을 받았다. 그 뒤 이한규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유족들은 최후의 방편으로 법원에 재정신청을 했다. 검찰이 용의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린 경우, 그 처분에 반대하는 피해자 측에서 용의자를 기소해달라고 법원에 신청하는 제도다. 법원이 받아들이면 검찰의 의지와 무관하게 그 용의자는 기소되고, 형사재판이 시작된다. 이때가 공소시효 만료 나흘 전이었는데, 법원 결정이 나올 때까지는 공소시효가 중단되기 때문에 만약 법원이 언제든 인용만 해준다면 재판은 개시되는 거였다.

유족들이 의심한 이유는 세 가지였다. 현장에서 이한규를 보고 그의 목소리를 들었다는 태완이의 명확한 진술이 있었고, 이한규의 바지와 신발에서 황산반응이 나왔으며, 이한규의 진술에 모순이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결국 기각되고 말았다. 법원의 판단은 이렇다.

태완이는 가해자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라고 했다. 이한규가 그 골목으로 올라왔는가 하는 질문에는, 다른 아저씨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태완이의 이런 녹음 진술을 분석한 끝에 이한규를 범인으로 단정하지 못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태완이가 암시에 따라 진술하는 모습을 보였고, 질문이 자주 반복되었고, 시간 순서가 섞였다는 의견도 있었다. 법원도 이를 받아들여 태완이의 남겨진 진술은 이한규를 범인으로 확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 내렸다(경찰이 이한규를 상대로 거짓말탐지기 조사를 두 차례 했는데, 모두 진실 반응이었다).

이한규의 바지 무릎과 끝단, 왼쪽 오금 부위에서 다량의 황산반응이 나오기는 했다. 그런데, 이한규는 태완이가 테러를 당한 직후에 태완이를 안고서 택시를 타고 병원으로 옮겼다. 택시 안에서 태완이를 무릎에 눕혀 놓고 있었고, 내린 후에는 안고서 병원으로 뛰어갔다. 그 과정에서 태완이에게서 황산이 바지에 옮겨 묻을 수 있다고 봤다. 바지 오금 부위에 황산이 묻은 건 이상하지만, 이한규가 태완이한테 황산을 뿌렸다고 해도 역시 그쪽에 묻을 가능성은 낮다.

이한규는 당시에 슬리퍼를 신었다고 했지만, 유족들은 가죽신발을 신고 있었다고 해 진술이 갈렸다. 그런데 가죽신발에서 황산이 검출되었다. 혹시 범행 당시 신은 신발을 숨기려 했던 게 아닐까, 의심 가는 대목이다. 하지만 법원은 태완이를 택시에 태워 옮기다가 묻었을 수 있다고 보았다. 경찰은 황산이 묻은 옷과 이 가죽신발을 같은 증거물 상자에 보관했는데, 국과수는 그때 신발에 황산이 묻었을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이한규는 가게에 있다가 태완이의 비명을 듣고 가보았다고 했지만, 대학에서 실험해보니 가게에서는 ‘범행 현장’의 비명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경찰이 태완이가 ‘발견된 현장’을 기준으로 실험해보니 이한규의 치킨집에서 비명이 들렸다. 또 이한규가 걸어온 방향이 치킨집 쪽이 아니었다는 증언이 있었지만, 법원은 이를 추측성 답변에 불과하며, 가게를 나와서 곡선 형태로 걸어갔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고 판단했다.

그 밖에 당시 태완이 친구가 있었고, 골목길을 태완이보다 앞서 걸었던 학습지교사 여성도 있었지만, 결국 범행을 직접 목격한 진술은 나오지 않았다. 재정신청에서 법원의 잣대는 내사나 입건보다 훨씬 엄격하다. 이 사람한테 유죄 판결을 내릴 만큼 뚜렷한 증거가 있는가 하는 기준으로 본다. 유족 입장에선 다를 것이다. 그 사람에게 혐의가 있으면 일단 기소해주길 원한다. 이 시각에서라면 의혹은 여전히 있다. 전문가들은 태완이 말의 신빙성이 높다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했다. 범인의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해서 ‘모른다’고 했는지 몰라도, 사건 직전 골목에서 이한규를 보았고, 사건 직후 목소리를 들었다는 분명한 진술이 있었다. 그렇다면 가게에 있다가 비명을 듣고 나왔다는 이한규의 말과는 상충된다. 또, 경찰 실험 결과 치킨집에서 비명소리가 들린다고 했는데, 그건 태완이를 ‘발견한 장소’ 기준이었다. ‘범행 장소’는 더 멀었고, 거기서 내지른 비명은 들리지 않았다. 두 장소는 꽤 거리가 있다. 태완이는 범행을 당할 때 비명을 질렀겠지만 발견 장소로 엉금엉금 기어와 그저 울고 있었다는 증언이 있었다. 그렇다면 ‘범행을 당할 때 내질렀을 비명’을, 들리지 않는 치킨집에서 들었다는 진술은 의문이다.

유족들, 공소시효 만료 나흘 전
법원에 재정신청했으나 기각
보름 후 살인죄 공소시효 폐지
정작 태완이는 법 혜택 보지 못해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대구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피해아동의 어머니가 대구지검 앞에서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사건을 계기로 2015년 7월 살인죄의 공소시효가 폐지됐다.

어쨌든 이 정도로는 유죄 가능성이 거의 없다. 결국 재정신청이 기각되었고, 대법원에서 2015년 7월10일 재항고를 기각함으로써 확정되었다. 그 나흘 후 공소시효가 끝났다. 그 보름 뒤, 2015년 7월31일 살인죄의 공소시효를 폐지하는 소위 ‘태완이법’이 시행됐다. 이 법은 태완이에 대한 끔찍한 황산테러 사건에 대한 사람들의 분노가 낳은 법이다. 이런 범죄에도 공소시효를 둬야 하나, 하는 거였다. 이 법 시행 이후 미제사건의 재수사가 대대적으로 이루어져 드들강 여고생 살인사건이 16년 만에 해결되는 등 성과를 올렸다. 하지만 정작 태완이는 자신의 이름을 딴 이 법의 혜택을 보지 못했다. 아쉬운 것은, 태완이법이 보름만 더 일찍 시행됐다면 태완이 사건은 계속 수사할 수 있었다. 아니면, 대법원 결정이 보름만 더 늦게 났더라면 역시 그럴 수 있었다. 태완이 파일은 영구미제로 분류되었다. 어딘가에서 먼지를 뒤집어쓰며 서서히 잊혀져갈 것이다.

초동수사 중요한 ‘아날로그 범죄’
증거수집 부족…진술에만 의존
경찰 안이하지 않았나 아쉬움 남아

어쩌면 태완이 사건은 지금 와서 재수사를 한대도, 범인을 색출하기가 거의 불가능해져 버렸는지 모른다. 폐쇄회로(CC)TV 자료가 있는 것도 아니고, DNA, 지문, 통화기록, 디지털 증거도 없다. 남은 것은 서서히 바래져가는 사람들의 기억뿐. 이런 ‘아날로그 범죄’야말로 초동수사가 성패를 좌우하는 것인데, 경찰이 너무 안이했던 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움이 깊게 든다.

우선, 아동 진술의 문제를 들 수 있다. 이 사건은 태완이 본인의 진술이 가장 중요한 증거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여섯 살이라는 나이가 문제다. 당연히 인지기능은 성인과 다르다. 8세 이하 아동은 현실과 상상의 경계가 매우 취약하고 쉽게 흐려진다. 예를 들어 얼굴 인식의 경우 5세 아동은 약 40%의 정확성을 보이는데, 이는 단순한 추측보다 조금 나은 정도라고 한다. 아이는 암시성도 높고, 많이 긴장하며, 기억도 부정확하다. 벌 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으로 진술이 왜곡되기도 한다. 그래서 아동 면담에 필요한 지침이 프로토콜화되어 있고, 아동 진술을 분석할 때에도 이것이 활용된다(유도신문이 아니라 자유회상을 이끌어내는 방식이다). 판례상 진술의 신빙성을 판단하는 나이 기준은 없다. 4, 5세 아동의 증언을 믿은 경우도 있다. 하지만 전문가의 참여 없는 아동 진술은 자주 배척된다.

태완이 사건에서는 초기부터 전문가가 참여해 태완이의 진술을 들었어야 한다. 그런 시스템이 미비했다면 경찰이라도 나서서 했어야 한다. 그런데 정작 태완이 진술을 받은 사람은 경찰이 아니라 가족들이었다. 경찰은 왜 최우선으로 태완이 진술을 듣지 않았을까? 아이 진술이 뻔하지 뭐, 하는 선입견이었을까. 그렇다면 다른 수사를 완벽하게 수행했어야 하는데, 이것도 불만이다.

당시 황산은 쉽게 살 수 있었다. 구매자의 인적 사항도 필요 없었다. 그래도, 대구라는 그리 크지 않은 지역에서 황산을 파는 가게를 상대로 전수조사를 할 수는 있지 않았을까(범행 양상을 보면 교묘한 계획을 짠 것 같진 않다. 이런 범인이 타 지역까지 가서 황산을 구입하지는 않았을 것 같다). 만약 이한규가 범인이라면, 그가 태완이 부모한테 돈을 빌리지 못해 앙심을 품은 게 3, 4일 전이니 그 며칠 사이에 황산을 구입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기간도 짧게 특정된다. 화공약품 가게를 상대로 이한규의 얼굴 확인이라도 해볼 수 있다.

검은 봉지에 황산을 담았다는 사실에 주목하면 범인의 소재가 한정될 수도 있을 것 같다. 이 봉지를 들고 택시나 버스를 타지는 않았을 것 같다. 골목인 범행 현장에 자기 차를 몰고 왔다고 보기도 어렵다. 걸었을 가능성이 높은데, 황산 냄새가 든 봉지를 들고 먼 길을 걷기는 힘들고, 사람들 눈에도 띈다. 그렇다면 범인의 아지트는 가까운 곳에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황산의 보관 문제를 봐도 그렇다. 일단 냄새가 심하고, 의심받을 수 있으니 가족과 사는 집에 두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가게 같은 곳에 숨겨두지 않았을까? 범행시간이 오전 11시였던 걸로 보아 직장인이 아니라 자영업자나 무직일 거라는 추정이 가능한데, 이 점과도 부합한다. 황산을 가지고 나올 때 혼자였을 테고, 그 무렵 남자가 혼자 있다가 나설 거면 집이 아니라 자신의 가게일 가능성이 높다. 황산을 뿌린 직후 아이의 비명이 있었고,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범인은 급하게 도주했을 텐데, 목격자는 없었다. 범행 후 바로 모습을 감출 수 있었다면 근처에 자기 가게를 둔 사람일 거라는 추측이 더 짙어진다. 대부분의 황산테러 사건은 범인이 바로 밝혀진다. 황산을 들고 다녔기에 목격도 쉽다. 그런 의미에서 범인이 증발해버린 이 사건은 범인이 몸을 숨기기 쉬운 은신처가 근처에 있었을 높은 개연성을 시사한다. 이 모든 사건의 양상이 마치 자북을 가리키는 나침반처럼 일제히 범인이 인근 거주자인 점을 가리키고 있다. 그렇다면 동네 주민이나 접점이 있는 이웃 남자들로 대상을 일단 한정하고, 황산 판매처를 돌며 그 사진들이나마 확인해봤어야 하지 않을까.

황산에만 집중할 일도 아니다. 검은 봉지는 수사했을까. 범인은 황산이 묻은 봉지를 어딘가에 버리거나 은닉했을 것이다. 황산을 보관해두었던 용기도 있었을 것이다. 검은 봉지는 나중에 나온 진술이니 사건 직후엔 조사하기 어려웠다 치더라도, 황산을 담았던 용기가 당연히 있을 걸 전제하고 수색해봤어야 한다. 경찰은 동네를 뒤져 황산이 묻은 용기를 찾아보았을까. 아니면 이한규에게 의혹이 있었으니 그의 가게만이라도 압수수색했다면 어땠을까. 그가 범인이라면 테러 직후 가게로 돌아갔다가 비명을 듣고 나오는 연기를 했다는 얘기가 된다. 그 직후 아이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갔으니 검은 봉지를 처리할 수 있는 장소나 기회는 극히 제한적이다. 황산 용기든 봉지든 반드시 범행 직후 한동안 남아 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제때에 치킨 가게나 인근을 수색했더라면, 황산이 묻은 증거물 용기나 봉지를 확보했거나, 아니면 전혀 종적이 없어 이한규가 범인이기 힘들다는 점을 조기에 확인했거나 할 수 있었다.

판결문이나 기사, 자료를 보면 진술에만 의존한 수사였던 것 같다. 정신이상자나 목격자를 찾는 데 주력하고 있다는 당시 기사도 있다. 처음엔 살인이 아니라 겨우 상해치사죄를 적용하기도 했다. 이만큼 여론의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사건이 될 줄은 경찰도 몰랐던 것 같다. 할 수 있는데 덜한 느낌이다.

이한규도 오랜 기간 의심받으며 고통받았을 것이다. 초기에 더 성의 있게 수사했다면, 범인을 잡지 못한다 해도, 적어도 이한규가 아니라는 점만 확인했어도 많은 이들의 괴로움을 덜 수 있지 않았을까.

사고를 겪지 않았다면 지금쯤 빛나는 20대를 보내고 있을 태완이는 여섯 살에 멈춘 사진 속에서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웃고 있다. 아이는 어려서 황산이 뭔지도 몰랐고, 그저 뜨거운 물을 뒤집어쓴 걸로 알고 죽었다. “형아야, 엄마가 나만 로봇 신발 사준다 했는데, 사도 되나?” 병상에서 태완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었다.

■필자 도진기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경찰도 법도 못 지켜준 여섯 살 인생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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