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님은 왜 안 들으시죠?” 사건은 많고 판사는 너무 적으니까

2018.06.17 21:38 입력 2018.06.17 21:40 수정

재판의 품격

판사가 충분한 심리 재판시간을 확보해야만 좋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판사 개인의 성실성에만 기대어서는 안되고, 제도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법적 분쟁은 증가하고 있는데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사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은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판사가 충분한 심리 재판시간을 확보해야만 좋은 판결을 내릴 수 있다. 판사 개인의 성실성에만 기대어서는 안되고, 제도적으로 안착시켜야 한다. 법적 분쟁은 증가하고 있는데 사법부가 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 사법부를 불신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진은 JTBC 드라마 <미스 함무라비>의 한 장면.

화난 듯 거친 말투가 법정을 압도했다. 그 주인공은 판사였다. 검사는 오히려 온화했다. 법정 안의 공기가 얼어붙었다. 형사법정의 피고인들은 안 그래도 위축되어 있다. 느낌이 좋지 않았다. 증거로 녹취파일을 틀 때도,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재판을 빨리 끝내고 싶어 하는 역력한 기색. 성추행 무고로 피고인석에 선 60세 여성은 이 실리 없는 재판에서 그저 억울함을 풀고 싶었다. 결과는 항소기각. 여성은 피를 토하는 심정이었지만, 판결문에는 별다른 이유가 없었다. “판사님은 왜 안 들으시죠?” 여성은 원망의 한마디를 남겼다.

이 판결의 결론을 비난하는 것은 아니다. 해당 판사가 유독 게으르거나 문제 있는 것도 아니다. ‘절차상 아주 잘한’ 재판은 아닐지언정, 이것이 법원의 현실이다. ‘속도전.’ 그것을 명징하게 보여주는 한 예에 불과하다.

법조계에 떠도는 오래된 속언 중에 ‘형사사건 증거 제1호는 공소장이다’라는 말이 있다. 판사들의 유죄 편견을 비꼬는 말이지만, 그만큼 재판의 실질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현실의 반영이기도 하다. 형사항소심도 비슷하다. 1심 판단을 일일이 깊이 있게 심리하려면 버틸 수 없다. 1심을 깨고 무죄판결을 쓰려면 단순 항소기각 사건 20건을 포기해야 한다. 반면에 1심대로 유지하면서 간단히 항소기각만 해도 기본은 된다. 유혹이 생길 수밖에 없다. 상고심도 다르지 않다. 변호사들은 실낱같은 기대로 상고이유서를 써 보지만, 늘 결과는 같다. 대법원을 원망하기도 그런 게, 매사 실질 심리가 불가능한 업무량을 알기 때문이다.

법원의 문제라 하면, 비리나 뇌물 같은 것들을 지적한다. 부패로 공격하는 쪽이 더 와 닿고, 기분도 풀린다. 하지만 그런 이례적인 일탈 행위는 절대 다수의 법관들과는 관계없다. 물론 극히 일부의 비리일지라도 당연히 발본해서 고쳐야 하지만, 보통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더 광범위한 문제점이 있다. 판사 수의 부족이다.

인구 5000만명에 판사는 2700명
판사 1명이 1만8500명 재판 담당
독일의 4~5배, 미국의 2배 수준

판사 1인당 사건 수는 연간 600건
야근·주말근무로도 시간은 부족
사건 ‘해결’ 대신 ‘처리’에 급급

다른 나라와 비교해보면 명백해진다. 독일은 인구 8000만명에 판사는 약 2만명, 프랑스는 인구 6000만명에 판사 약 8000명, 미국은 인구 3억3000만명에 판사 약 3만5000명인데 반해, 한국은 인구 5000만명에 판사 2700명에 불과하다. 인구수 대비로 보면 독일은 판사 1명당 4000명, 프랑스는 판사 1명당 7500명, 미국은 판사 1명당 9500명인데 반해, 한국은 판사 1명당 1만8500명의 재판을 담당하는 꼴이다. 판사 1인당 사건 수 기준으로 보아도 상황은 비슷하다. 판사 1인당 독일은 연간 210건, 일본은 350건인데 반해, 한국은 600건이다. 이 통계는 흩어진 자료들을 모아본 거라 수치가 다소 부정확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판사 수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사실은 분명해 보인다.

희한한 부분은, 우리는 독일법을 일본을 통해 들여왔는데, 정작 판사 수는 독일에 비해 터무니없이 스코어 차가 난다는 점이다. 일본이 판사 숫자에 굉장히 짠데, 아마도 직수입처인 일본의 제도를 들여오면서 법원의 규모도 비슷하게 가져온 게 아닌가 싶다. 하지만 인구 비례 소송 건수가 우리 쪽이 압도적으로 많은 탓에, 판사 1인당 기준으로 하면 위에서 보듯 우리가 또 일본의 두 배다. 결국 졸이고 졸인 간장국물 같은 판사 인원을 보유하게 되었다.

아무튼 그간의 재판 경험상 사건 부담이 이 정도에 달하면 사건의 ‘해결’이 아니라 ‘처리’에 가깝다. 우리나라는 인적 자원의 처절한 부족을 판사 개인의 성실성에 기대고 있다. 그 간격을 메우느라 어떤 판사들은 야근과 주말 근무를 한다. 하지만 이런 대책은 위태롭다. ‘판사라면 그 정도는 봉사하는 마음으로라도 일해야 하지 않나’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판사의 고생을 걱정하려는 게 아니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경우에 피해는 고스란히 사건 당사자에게 돌아간다는 데에 있다. 2700명 판사 모두가 그만큼 성실하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그랬으면 좋겠지만, 당위와 현실은 다르다. 좀 덜 일하는 판사들이 반드시 있다. 판사들이 나빠서가 아니라, 인간 사회 어디에나 개미가 있으면 베짱이도 있는 법이다. 또, 판사 개개인이 열심히 일한다고 하여도 절대적인 시간 부족으로 사건당 할애하는 시간이 필연적으로 적을 수밖에 없다. 그 물리적인 제약은 재판의 질 저하로 이어진다. 그리고 역시 손해는 재판 당사자들이 받는다.

어차피 결론 타당성 검증 못하니
위에선 ‘사건 빨리 떼는 판사’ 선호
재판의 질이 저하돼도 남들은 몰라

재판이란 묘한 존재여서 결론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가 없다는 함정이 있다. 사법부가 사회 시스템상 최종 판단자인데, 누가 또 그 판결을 평가한단 말인가? 항소심이 있지만, 거기서 뒤집어진다고 하여 1심이 잘못했다는 이야기가 성립되지 않는 게 재판이다. 한편으로 법원행정처 및 고위층에서는 사건을 빨리, 많이 떼라고 독촉하며 인사카드를 흔들고 있다. ‘어차피 결과가 옳은지 그른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 무작정 사건이나 많이 떼자’는 유혹이 판사의 마음속에 내려앉을 여지가 있다. 솔직히, 사건이 늘어나도 마음먹기에 따라서 판사들한테는 아무 상관없다. 한정된 근무시간을 사건 수로 나누어 시간 할당해 그 정도 깊이로만 사건 검토하고 판결하면 그만이다. 재판의 질이 저하되지만, 일반 회사업무와 달리 재판은 표 나지 않는다. 인사권자가 좋아하는 ‘좋은 판사’는, 올바른 결론을 내리는 판사가 아니라(결론을 잘 냈는지 알 수가 없으니) 사건을 빨리 떼는 판사가 된다(이건 눈에 확 보인다). 후자 쪽으로 기울고 싶은 유인이 생긴다. 좋은 결론인지 아닌지 측정할 수 없는 판결의 특성상, 이런 내적 인과관계로 인해 재판이 얄팍해져도 아무도 알 수 없고 문제의식을 갖지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결론이나 절차는 그저 그렇고, 단지 사건이 빨리 끝났다는 것에만 만족해야 하는 재판이 탄생할 수 있게 된다. 이것은 비극이다. 시민들의 생활에 비할 바 없이 영향이 큰 부분인데도, 무형의 손실이기에 계측이 안되고, 겉으로 드러나지 않는다.

다시 말하지만 판사 개인의 성실성에만 기대선 안된다. 제도화해야 한다. 충분한 재판시간을 확보하여야 하고, 그러기 위해 판사 수를 늘리는 것만이 근본적인 해결이다. 이것이 판사로서 20년을 근무한 내가 일선에서, 야전에서 가진 문제의식이다. 동료 판사들도 대부분 공감했다.

단순하지만 직접적인 해결책은
대중과 무관한 상고법원제가 아닌
1·2심 판사의 ‘대량’ 증원뿐이다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것은 재판의 품질 향상을 위한 제안뿐만은 아니다. 그것과 함께, 그 대책으로 제시된 상고법원제에 관해서다. 아무래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문제 인식은 재판 일선의 판사들과는 좀 달랐던 것 같다. 그는 ‘상고법원 설치를 통한 사건 적체 해소’의 기치를 내걸고 일대 숙원사업으로 추진했다. 판사들은 뜨악했다. 찬성, 불찬성을 떠나 대다수의 첫 반응은 ‘대체 이게 뭐지?’ 하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법원행정처가 나서서 이 미지의 물건에 관한 홍보활동을 판사들을 상대로 벌여야 할 정도였다. 판사들도 잘 모르는 사업을 양 전 대법원장은 자신의 대표 업적으로 삼겠다고 나선 것이다. 지금은 언론 보도로 많이 알려졌는데, 그 요체는 ‘대법원의 사건 부담을 줄이기 위해 대법원 아래 상고법원을 별도로 설치하자’는 것이다. 직관적으로 여러 가지 의문이 솟구친다. 우선 대법원의 사건 적체만이, 그것이 가장 문제인가? 시민들에게 더 중요한 건 사실심인 1, 2심 재판이다. 앞서 사례로 든 재판 같은 모습이 없도록 바라고 있다.

결론은 차치하고라도 절차상 충분히 참여하고 변론할 기회를 가지고 싶어 한다. 거기에는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다. 그런데 현실은 절대 부족이다. 이런 현장의, 시민의 피부에 닿는 문제를 놔두고 ‘대법원의 부담을 줄이는 것’이 당대 사법부의 최고 의제여야 했을까? 설사 그 제도가 신설된들, 양 전 대법원장의 업적을 시민들이 치켜세우며 칭송했을까? 업적을 위해서라면 더 대중적인 어젠다를 들고 나왔어야 하지 않을까? 대중과 떨어질 바에야 시대의 유행을 뛰어넘는 비전을 보여주었어야 하는데 상고법원은 그만한 상품도 아닌 것 같다. 도대체 이런 걸 누가 알고 누가 관심 가진다고 사법부의 온 힘을 기울인단 말인가. 아무도 보아주지 않는 벽장 속 트로피다. 대중과 유리된, 낡은 감각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어쩌면 그것이 그가 몰락하게 된 근본 원인인지 모른다. 선민의식. 본인도 모르는 채 쌓아올린 그것. 양 전 대법원장은 너무 높은 곳에 있었던 것 같다. 구중궁궐에서 세상을 살폈고, 그의 세상은 대법원과 법원행정처가 전부였다. 창구에서 터져 나오는 불만에 관심이 없었고, 시민의 요구를 모르는 것은 물론, 일선 판사들의 정서와도 한참 동떨어졌다. 자신이 속한 대법원의 사건 적체만이 눈에 보였고, 그것을 해결하는 일에 골몰했다.

상고법원 추진 자체가 나쁜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관철하기 위한 방법에 큰 문제가 있었다는 게 드러났다. 그건 본인에게 재앙이 되었을 뿐 아니라, 사법부가 지축이 흔들릴 정도의 사태를 맞는 단초가 되었다. 욕심 없는 사람은 해코지하기 어렵다. 사람은 바라는 게 있을 때 약해진다. 그저 법과 원칙에 따른다는 당당함을 가졌더라면 법원은 어떤 바람에도 끄떡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상고법원이라는 업적에 욕심을 내면서 법원은 약점이 생겼다. 청와대, 언론, 검찰, 변협 등 온갖 파워들의 눈치를 보았다. 대책 문건도 만들었다. 이걸 작성한 판사들은 혜성처럼 등장한 상고법원제에 원래 찬성하는 신념을 가졌던 걸까. 아니면 영혼 없이, 최종 보스의 뜻에 따라 열심히 문건을 만들어 올린 걸까. (사족이지만, 이들의 대책 문건에는 출포판-출세를 포기한 판사-이 문제라며 논의한 대목도 있다. 출포판은 조직 상부의 눈치를 보지 않고 소신재판을 하는 장점이 있다. 고위직 눈에는 거슬리겠지만 판사들은 출포판 동료를 높이 평가한다. 그런 출포판이 문제라면, 판사는 출세를 지향해야 한다는 걸까? 궁금하다.)

처음으로 돌아가서, 사건 폭증과 재판의 퀄리티 문제는 상고법원 같은 제도적 대응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판사를 쥐어짜서 해결할 게 아니라 판사를 늘려야 한다. 찔끔찔끔 말고, 판도를 바꿀 만큼의 대량이어야 한다. ‘한정된 인원’이라는 틀 안에서 지지고 볶을 게 아니라 아예 틀을 깨야 한다. 단순하지만 가장 직접적인 해결책이다. 이 중차대한 문제가 표면화되기 어려운 구조상의 문제가 있다. 판사 부족과 재판의 숨은 질 저하를 가장 깊게 인식하는 사람은 판사다. 당사자는 모른다. 그런데 판사는 대놓고 말하기가 뭣하다. 그냥 이대로 지내도 큰 무리가 없는데, 괜히 사람 늘려달라는 말 꺼냈다가 ‘당신들만 편하자는 거냐?’는 오해를 사기 십상이다. 어쩌면 판사를 지내면서 현실을 잘 알고, 현재는 그만두어 오해를 살 일 없는 나 같은 사람이 그런 말을 하기에 적역일지 모른다. 그래서 썼다. 우리 경제는 당당히 OECD 국가의 일원이지만, 제도 인프라는 상대적으로 약한 것 같다. 특히 내가 아는 사법제도의 실질을 보면 그럭저럭 사건은 빨리 떼고 있지만 그 아래에서는 거대한 공룡 다리들 사이에 가녀린 학 다리로 끼어들어 와들와들 버티는 안쓰러운 모양새로 보인다.

■필자 도진기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판사님은 왜 안 들으시죠?” 사건은 많고 판사는 너무 적으니까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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