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은 창작보다 쉽고, 있어 보인다…상급심 판결은 하급심 비판인 셈인데 때론 ‘을’의 재반론이 상식에 더 가깝다

2018.07.29 21:25 입력 2018.07.29 21:28 수정

상급심의 권위

KTX 해고 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지난 5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김 대법원장 면담요청서 전달이 저지당하자 해고 승무원 등이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시위자들 뒤로 굳게 닫힌 대법정의 문, 그 위로 왼손에는 법전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이 보인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KTX 해고 승무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은 지난 5월29일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재판거래’ 의혹을 받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구속 수사, 김명수 대법원장과의 면담을 요청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은 김 대법원장 면담요청서 전달이 저지당하자 해고 승무원 등이 대법원 대법정 입구에서 시위를 하는 모습이다. 시위자들 뒤로 굳게 닫힌 대법정의 문, 그 위로 왼손에는 법전을, 오른손에는 저울을 든 ‘정의의 여신’ 디케 동상이 보인다.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작가는 영원한 을이다. 돈이 없어 을이 아니라, 타인의 심판을 받는 입장이기 때문에 그렇다. 작가가 창작자로서 세상에 내보낸 작품을 두고 사람들은 온갖 비평을 한다. 어차피 모두를 만족시킬 수 없는 법이고, 또 모두를 만족시키는 둥글둥글한 작품은 별 볼 일 없을 가능성이 높기도 하다. 그래서 밋밋한 서평들이 열거되는 것보단 호평도 열렬하고, 악평도 화끈한 쪽이 차라리 낫다. 개중에는 아예 터무니없는 비난도 있다. 그럴 때면 서평을 텍스트로 작가가 재반론을 한다면 양상이 어떨까 궁금해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정-반’이 아니라 ‘반-정’의 논리 전개라면 어떨까. 이런 가정을 어디서든 해본다면 재밌는 결과가 나올 것 같다. 오디션 참가자가 박진영의 심사를 평가한다면? ‘공기 반 소리 반이 뭡니까? 개인 취향을 강요하지 마세요.’ 변호사가 재판을 심판한다면? ‘판사님은 지금 막 소송법을 위반했습니다.’ 이런 가정은 판결에서도 마찬가지로 해볼 수 있다.

상급심 판결은 하급심 판결보다 권위 있어 보인다. 법제도상 상급심이니까 태생부터 더 위에 있기도 하고, 상급심이 더 경륜 많은 판사들로 구성되었다는 이유도 있을 것이다. 여기에 작은 이유를 보태자면, 판결문의 논리 구조도 그렇게 보이게끔 되어 있다. 상급심 판결문은 기본적으로는 ‘비판’이다. 하급심 판결문에서 판단한 쟁점을 조목조목 나열하면서 그게 타당한지 어떤지를 따지는 것이다. 원천적으로 창작보다는 비평이 쉽다. 그리고 비평하는 쪽이 더 위에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하급심 비평을 하는 판결문의 구조상 상급심의 논리가 더 권위 있어 ‘보인다’. 그런데 만약, 앞서 예를 든 것처럼 상급심 논리를 먼저 펼치고 그것을 비판하는 위치에 하급심 논리를 놓아본다면 어떨까? 견디지 못할 상급심 판결도 꽤 있을 것 같다. 그렇게 여겨지는 판결이 여기 하나 있다. ‘KTX 승무원 사건’ 대법원 판결이다.

KTX 승무원 근로자 확인 소송
‘코레일 근로계약’ 인정한 1·2심
뒤집은 ‘갑’ 대법 판결 따져보면

1. “승무원과 코레일 직원 업무, 구분”
안전 업무도 계약상 포함돼 ‘공통’

2. “회사 ‘철도유통’, 독립적 사업주체”
외주여도 100% 코레일의 자회사
직접 승무원 임금도 결정해 지급

3. “철도유통이 채용과 교육의 주체”
코레일이 채용 인원 수 조율하고
매뉴얼 제작·배포…직무 교육도

사건을 간략히 설명하면 이렇다. KTX 승무원들은 명목상으로는 철도공사(이하 ‘코레일’) 직원이 아니었다. ‘철도유통’이라는 회사의 직원이었다(이 사실을 듣고, 엉? 하고 놀라는 분도 있으리라. 어쩌면 그 놀라움이 상식일 것이다). 코레일은 객실승무원을 직접 고용하지 않고, 객실서비스를 따로 떼어 철도유통에 도급했다. 철도유통이 승무원을 뽑아 KTX 객실에 파견 근무시키는 형식을 취한 것이다. 승무원들과 코레일 측 사이에 여러 갈등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법적인 부분만을 언급해야 할 것 같다. 승무원들은 코레일을 상대로 자신들이 코레일 소속 근로자임을 확인해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실질적으로 보면 코레일에 고용된 거나 다름없다는 주장이었다. 코레일은 어디까지나 승무원들은 철도유통에 취업한 거라며 이를 거부했다. KTX 승무원들은 직원일까 외부용역일까.

먼저 건너뛰어 대법원 판결을 보자. 결론적으로 승무원들을 코레일의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았다. 첫째 근거는 승무원들의 일이 코레일 직원의 일과 구분되어 있다는 거였다. 무슨 말인가 하면, 승무원들이 코레일 직원과 뒤섞여서 업무를 같이했다면 코레일의 근로자로 보기 쉬워진다. 그렇지 않고 승무원들의 업무가 분리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코레일이 철도유통 회사에 그 일만 따로 떼 도급을 준 것일 뿐이라는 말이 성립 가능하다. 코레일의 주장이 그랬다. KTX 운행에는 ‘안전업무’와 ‘승객서비스업무’가 있는데, 코레일의 열차팀장이 안전업무를 전담했고, 승무원들은 객실서비스업무만 담당했다. 객실서비스 부문만을 떼어 철도유통에 도급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일종의 아웃소싱이란 거다. 대법원은 이 주장을 받아들였다. 코레일 직원과 승무원들은 업무 영역이 똑 떨어지게 구분되어 있었다고 봤다.

과연 KTX 안에서 코레일 직원과 승무원들의 업무가 물과 기름처럼 구분될 수 있을까? 여기서 하급심은 대법원의 논리를 이렇게 비판한다(앞서 말했듯, 가상의 편집이다). 당시 노동부는 승무원 업무가 성격상 파견 대상이 아니고 도급도 안된다고 밝혔다. 그런데도 코레일은 이런 식의 세팅을 진행했다는 문제점이 우선 있다. 그리고 당초 계약상 승무원들이 객실서비스 전반뿐 아니라 안전업무도 하도록 되어 있었다. 안전장치 점검이나 비상사태 대응 같은 업무가 평가항목에 들어가 있기도 했다. 코레일 측 열차팀장과 공통된 업무도 많다. 이런 점들을 보면 코레일 직원과 승무원들은 ‘네 일, 내 일’ 구분하는 사이가 아니라 상호협력해서 업무를 수행하는 관계라고 봐야 한다. 이 말은 설득력이 있다. 일반적인 안전 문제가 발생하여 승객이 승무원에게 도움을 요청했을 때, 승무원이 그건 우리 업무가 아니라며 ‘노’라고 할 수 있을까. 코레일은 KTX를 그렇게 운행하려고 했던 걸까. 승무원이 안전업무를 외면해 트러블이 생길 때 코레일은 아마 승무원에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 하지만 근로자로 인정하지 않으면서 그런다면 모순이다.

사실 업무가 구분되든 아니든 어쩌면 그게 본질적인 요소는 아니다. 모든 조직은 분업체계를 갖추고 있다. 그중 일부를 떼어 도급했다고 해서 무조건 고용이 아니라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여기서 그다음으로, 더 중요한 문제가 떠오른다. 과연 승무원을 고용한 철도유통을 독립된 업체로 볼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그렇지 않고 철도유통이 코레일의 사업부서의 하나 정도로 평가된다면 승무원은 실질적으로 코레일과 직접 근로계약을 한 거라고 볼 여지가 커진다. 대법원은 이 두 번째 쟁점에서도 코레일 쪽이었다. 철도유통을 독자적인 사업주체로 인정했다. 철도유통은 승무원 관리본부를 따로 설치하고 사무실을 코레일로부터 임차하였으며, 승무원 제복과 가방을 직접 구입해 배부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반면 하급심은 이렇게 비판한다. 철도유통 자체가 코레일의 100% 자회사인데 무슨 소리냐. 게다가 임원진은 전부 코레일 출신이다. 코레일이 직접 승무원의 임금 항목과 액수를 결정해서 지급했다. 심지어 코레일이 철도유통의 일반관리비나 이윤까지 산정했는데, 그게 독립적인 사업체인가? 철도유통은 승무원들을 위한 별도의 시설과 장비조차 없었다. 코레일이 필요한 시설과 장비를 철도유통에 무료로 빌려주었을 뿐이다. 결국 코레일은 자신의 시설, 장비를 이용해 승무원들을 근무시킨 셈이다. 이런 사정을 감안하면 철도유통은 사업주로서 독자성이 있다고 보기 어렵다. 철도유통은 실질적으로는 코레일의 고용계약을 대리한 정도에 불과하다는 판단이다. 어느 쪽이 설득력이 있는지, 독자들이 판단하시기 바란다.

대법원은 셋째로, 철도유통이 승무원을 채용하고 교육하는 주체였다고 판단했다. 철도유통은 자체적으로 마련한 운용지침에 따라 승무원의 채용·승진·직급체계를 결정했다. 직접 교육 및 근무평가를 실시했다. 코레일 직원이 채용 면접관으로 참여하거나, 승무원이 코레일의 위탁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것만으로 철도유통이 채용 및 교육의 주체라는 점을 부인할 수는 없다. 코레일의 열차팀장이 승무원의 업무를 점검하지만 이는 업무상 감독이 아니라 계약에 따른 절차에 불과하다. 승무원의 출근시간이나 승무시간·배치순서도 철도유통이 결정했다. 코레일이 ‘승무원 매뉴얼’을 만들었지만 이는 그저 업무의 표준을 제시한 것뿐이다.

이 부분에서는 결론만 있을 뿐 판단 근거조차 아예 제시되어 있지 않은 명제가 많아 놀라운데, 개인적인 감상은 제쳐두고 하급심의 비판을 우선 보자. 코레일은 승무원 채용부터 관여했다. 철도유통 측과 인원수를 조율했고, 직원이 면접관으로 참여했다. 승무원 교육도 그렇다. 코레일이 자료를 제작·배포했고, 직무교육도 수시로 실시했다. 코레일의 열차팀장이 승무원의 업무수행을 확인하고 평가했다. 반면에 철도유통 측 책임자는 KTX에 승차하지도 않았다. 코레일이 승무원에 대한 시정사항을 통보해 철도유통이 징계처분을 하고 코레일에 통보한 일도 있었다. 코레일이 작성한 ‘서비스 매뉴얼’에 승무원의 복장과 메이크업에 관한 세부사항이 명시되어 있기도 하다. 이런 점들을 모아보면 승무원에 대한 인사노무관리의 실제적인 주체는 코레일이라고 봐야 한다.

하급심 재판부 다섯 중 넷 ‘인정’
대법 “연구관들 포함 만장일치”
‘재판거래’ 판결 의혹 벗으려면
당시 연구관들 보고서 공개해야

하급심은 위의 세 가지 근거를 들어 묵시적으로 승무원들과 코레일 간에 근로계약이 존재한다고 인정했다. 반면에 대법원은 같은 근거를 들어 묵시적인 근로계약관계를 부정했다. 나아가 파견에도 해당하지 않는다고 했다(파견으로 인정되면 2년 후에 정식 고용해야 한다. 그 길도 막은 것이다). 논리 전개를 보면 ‘하급심 논리를 두고 그것을 나무라는 대법원 판단’의 그림보다, ‘대법원의 논리를 두고 그것을 나무라는 하급심 판단’으로 편집한 그림이 더 나아 보인다. 상식으로도 그렇지 않을까. 대한항공 스튜어디스를 직원이 아니라고 하면 직관적으로 이상한 기분이 들 것이다. 코레일 승무원은 다른가? 하긴 사업체마다 사정이 다르니, 객실서비스를 떼서 외주 줄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외주 회사가 100% 자회사라면? 승무원들한테 정식 고용을 할 것처럼 온갖 기대를 심어주었다면? 코레일은 경영상의 필요에서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경영의 관점과 법의 관점은 다르며, 재판은 후자에 따라야 한다. ‘어쨌든 고용계약은 다른 업체와 했으니까’라는 건 실질을 도외시한 형식논리처럼 보인다. 법 영역에는 딱 부러지는 기준을 제시할 수 없는 애매모호한 문제가 수없이 존재한다. 그것들에 관해 내린 대법원 판례를 관통하는 한 가지 원칙은, ‘사정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서 실질을 보라’는 것이다. 이 사건에서도 그렇게 했는가?

대법원은 ‘재판거래’ 대상으로 이 판결이 주목을 받자, 해명을 했다. 해당 재판부 전원은 물론 재판연구관들이 머리를 맞댄 집단지성의 결과물이라는 것이었다. 재판거래는 내가 판단할 일이 아니다. 다만 밝힌 내용은 다소 놀랍다. KTX 승무원 소송은 두 건이었고, 그중 1심 두 재판부와 2심 한 재판부가 고용관계를 인정했다. 그리고 2007년에 있었던 별도의 업무방해 형사재판에서도 판사는 근로관계를 인정했다. 하급심 다섯 재판부 중 도합 네 재판부가 대법원과 의견이 달랐는데, 대법원 안에서는 왜 집단지성으로 의견이 일치했을까? 이런 사안이라면 차라리 의견이 갈리는 게 더 자연스럽다. 거짓 해명을 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신뢰를 위해 당시 재판연구관들이 작성한 보고서를 공개했으면 싶다. 하급심 판결에 비해, 그리고 3년이라는 심리기간에 비해 대법원 판결문은 맥이 풀릴 만큼 짧다. 재판연구관은 대법관이 방향을 지시한 대로 보고서를 썼을 수도 있으니 의미가 적다. 그래도 연구관 보고서를 읽어보면 판결문에 드러나지 않은 어떤 숙고, 빙산의 거대한 아래쪽이 보이지 않을까. 혹은 그렇지 않거나.

■필자 도진기

[도진기 변호사의 판결의 재구성]비평은 창작보다 쉽고, 있어 보인다…상급심 판결은 하급심 비판인 셈인데 때론 ‘을’의 재반론이 상식에 더 가깝다

1994년 사법시험에 합격해 법관이 되었고, 2010년 단편소설 ‘선택’으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미스터리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작가로 데뷔했다. 이후 8년 동안 주중에는 판사로, 주말에는 소설을 쓰는 작가로 살면서 10여권의 책을 썼다. 2017년 2월 공직을 떠나 변호사가 됐다. 작품으로는 <정신자살> <악마는 법정에 서지 않는다> <순서의 문제> <모래 바람> 등이 있고, 2014년 <유다의 별>로 한국추리작가협회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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