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끗한 정치 위해 만든 ‘오세훈법’이 쩐의 전쟁 부르는 아이러니

2018.08.11 06:00 입력 2018.08.11 06:01 수정

이상과 현실의 ‘괴리’

[커버스토리-정치를 가둔 정치자금법]깨끗한 정치 위해 만든 ‘오세훈법’이 쩐의 전쟁 부르는 아이러니

2004년 개정된 정치자금법(일명 오세훈법)은 돈을 적게 쓰는 정치를 표방했다. 법안의 뼈대는 법인 및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 중앙당의 후원회를 비롯한 정당 후원회 금지, 정치자금 기부의 실명제와 정당의 회계보고 절차 강화 등이다. 그러나 현행 정치자금법이 애초의 취지와는 달리 결과적으로 돈 있는 사람들만 정치를 할 수 있게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면서 정치자금법 개정의 목소리가 지속적으로 나왔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현행 정치자금법을 “줄 수 있는 사람을 최소화하고 받을 수 있는 기간을 최소화한 법”이라고 말하며 “정치자금의 유입·운영·사용 세 가지를 모두 규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뿐”이라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은 세 가지 중 정치자금 운영에 초점을 맞춥니다. 누구한테 걷었고 그다음에 어떻게 쓰였는지, 정보공개를 투명하게 강화하는 방향으로 갑니다. 소액 다수로 받았는지 아니면 단체에서 받았는지 고액후원자에게 후원을 받았는지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유권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입니다.” 정치자금의 유입과 사용을 묶어 규제하기보다 정보공개를 강화해 운영을 투명하게 하는 방향으로 개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 원외 지역위원장 후원금

지난달 23일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원외 시절 받았던 정치자금 4000만원이 비극의 발단이었다. 노 원내대표의 죽음으로 정치자금법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에 여론도 호응하고 있다. 지난달 27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전국 성인 501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원내·외 정치인을 차별하는 정치자금법 개정’에 응답자의 63.6%가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행 정치자금법에 따르면 현역 국회의원을 제외하고는 후원회를 개설해 후원금을 모금할 수 없다. 원외에서 활동하고 있는 지역위원장들은 선거기간에 예비후보로 등록해야 후원회 개설이 가능하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선거가 없는 해에 1억5000만원, 선거가 있는 해에 3억원을 모금할 수 있는 것에 견주어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지적이다. 이렇게 되면 현역 프리미엄에 도전하는 신인 정치인들은 현실적으로 ‘돈 있는 자산가’만 가능한 것으로 분석된다. 의원 1인당 평균 재산을 기준으로 하면 20대 국회의원 전원은 우리나라 상위 1%라는 보도는 이를 방증한다.

성중탁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논문 ‘한국의 정치자금법제 개선방안’(2015)에서 이같이 분석했다. “이른바 현직효과는 현직을 가진 후보자가 재출마할 경우 당선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것으로 선거에서의 당락을 설명하는 가장 강력한 변수로 증명돼 왔다. 비현직후보자의 경우 낮은 지명도와 정치자금 조달의 어려움이라는 불리한 상황에 처하게 되고 선거를 당장 치르기 위해 종잣돈이 필요하며 소수의 고액기부자에게 의존할 수밖에 없는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비현직후보자군 중 상대적으로 개인재산이 많은 후보자들이 선거에서 유리한 위치를 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

원외 지역위원장들은 법적·제도적 실체도 없다. 2004년 ‘오세훈법’이 추진되면서 지구당이 폐지됐고 이들은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사람이 됐다. 김일웅 정의당 서울 강북구 지역위원장은 “과거 지구당이 ‘돈 먹는 하마’라는 오명을 쓰고 폐지됐지만, 잘못 운영한 거대정당들의 문제였다. 제대로 운영된다면 지구당은 주민들이 일상적으로 민생을 상담하고 파산 등 생활의 문제들을 상담하는 곳”이라며 “지금은 적극적으로 만나고 싶어도 합법적인 통로 자체가 없다”고 말했다. 통로가 막혀 있다보니 원외 지역정치에는 ‘눈먼 돈’만 흐를 위험성도 높다.

조성대 한신대 교수는 2012년 발표한 논문 ‘한국의 현행 정치자금법의 쟁점과 대안’에서 “실제 민주통합당 서울시 ○○구 당원협의회위원장에 따르면 당원협의회 운영 경비가 월 600만~700만원이 소요된다고 한다. 원외 당원협의회 위원장의 경우 법외 조직인 관계로 중앙당의 공식적인 지원이 없는 상태에서 사비로 경비를 조달해야 하는 폐단이 발생한다. 그리고 당원협의회는 임의기구이므로 활동 내역과 회계 내역이 선관위의 감독 대상이 아니기에 탈법 혹은 편법적인 정당 활동을 양산할 위험을 내포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 공정성과 정치적 표현의 자유

정치자금법의 엄격한 규제는 돈의 부당한 영향력을 배제해 공정성을 강화할 수 있지만 한편으론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위축한다. 조성대 교수는 “정치자금을 기부하고 싶은데 해당 국회의원의 후원회 계좌에 1억5000만원 한도가 다 차서 정치자금을 기부할 수 없다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되는 것이다. 이걸 풀어버리면 사회적 통념상 돈선거가 되지 않느냐는 문제제기가 있다. 적절한 타협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규제는 풀되 강화해야 할 것은 정보공개 투명성이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에서 경남기업 임원들이 국회의원들에게 쪼개기 후원을 한 사실이 드러났듯 규제를 피한 편법적인 후원이 일어나는 것보다 투명성을 강화하는 방향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후원자 인적정보 공개 기준금액을 대폭 낮추고, 공개대상 정보 목록에 직업 외 소속을 표기하도록 하는 방안이 대표적이다. 현행 정치자금법은 연 300만원 이상을 고액기부자로 규정하고 있으며 그 이하는 기부자의 인적사항을 기재하지 않아도 된다. 또 300만원 이상 기부자라 할지라도 직업을 ‘회사원’ 등으로 모호하게 기입하는 경우가 많다. 투명성을 강화한다면 유권자들이 해당 정당, 정치인을 후원하는 이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고 이는 이들의 정치활동 방향을 판단하는 기준이 돼 유권자들의 판단 근거가 된다는 것이다.

후원금, 현역 의원만 모금 가능
선거 없는 해, 1억5천만원까지

“한도 찬 후원회 계좌엔 기부 불가
유권자들 ‘표현의 자유’ 침해해”
규제 풀고 인적정보 공개 확대 땐
후원 목록, 정치인 평가의 새 기준

국고보조금, 거대정당에만 유리
교섭단체 정당에 50% 균등 분할
나머지는 의석수 비례해 배분
군소정당들 재정 기반 취약해져

여론조사선 64%가 “개정 동의”
“정치자금의 유입·운영·사용
모두 규제하는 국가는 한국뿐
‘운영 투명화’에 초점 맞춰야”

법인 및 단체의 기부를 금지하는 것에 대해서도 논란이 있다. 2010년 발생한 ‘청목회 사건’은 청목회(청원경찰친목회)가 청원경찰법 개정을 위해 다수의 회원으로부터 10만원씩 회비를 걷은 후 이 중 2억7000만원을 33명의 국회의원에게 후원한 사건이다. 당시 청원경찰은 경찰공무원과 비슷한 업무를 하지만 상대적으로 열악한 처우를 끌어올리는 입법을 위해 후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통과된 법안은 청원경찰의 퇴직연령을 59세에서 60세로 높이고 급여를 5만원 인상하는 것을 뼈대로 한다. 정치자금법 위반으로 청목회 회장 등은 유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법적인 처벌과는 별개로 청목회 사건에 대해서는 사회적 약자들이 자신들의 권리에 접근하고 이득을 실현시키기 위해 정치인을 후원하는 것을 허용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여전히 법인 및 단체에 대한 규제를 완화할 경우 결국 규제가 완화된 시장에서 돈이 가장 힘을 얻게 된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오세훈법’이 시행되면서 시민들의 자발적인 소액기부가 늘고 금권선거의 분위기가 개선된 효과가 있었는데, 법인 및 단체의 기부를 다시 허용하면 기업들의 줄대기, 정경유착 등이 재연될 것이라는 우려가 있다.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차떼기’의 기억이 선명한 가운데 정치를 불신하는 국민정서상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국회 관계자가 개원식 리허설을 위해 본회의장 문을 열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으로 현행 정치자금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회가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를 시작할지 주목된다.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국회 개원을 하루 앞둔 지난 1일 국회 관계자가 개원식 리허설을 위해 본회의장 문을 열고 있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의 죽음으로 현행 정치자금법을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면서 국회가 정치자금법 개정 논의를 시작할지 주목된다. 박민규 기자 parkyu@kyunghyang.com

■ 거대정당에 유리한 제도

정치자금법의 국고보조금 제도는 거대정당에 유리하게 조성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정당의 수입은 크게 당비, 기탁금, 국고보조금 등으로 이루어지는데 수입원의 규모로 보면 국고보조금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국고보조금은 선거공영제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선거공영제는 공직선거운동을 선거관리기관이 주관하거나 정당후보자의 선거에 관한 경비 중 일부분을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가 부담하게 하는 제도다.

국고보조금은 우선적으로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대해 50%를 균등하게 분할하고 교섭단체 구성 정당이 아닐 경우 5석 이상의 의석을 가진 정당에 5%, 의석이 없거나 5석 미만일 경우 2%씩 배분지급한 후 잔여분 중 50%를 국회의석을 가진 정당에 의석수에 비례해 배분지급한다. 그 잔여분은 득표율에 따라 배분지급된다. 그러나 국고보조금의 50%를 교섭단체를 구성하는 정당만이 균일하게 나누어 가질 수 있다는 조항이 소수정당을 차별하는 효과를 낳는다는 지적이 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1월 발행한 ‘19대 대선과 진보정당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에서 “국고보조금은 정당의 수입 내역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데 이를 교섭단체 위주로 배분하는 것은 군소정당의 재정적 기반을 취약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한다. 교섭단체에 배분되는 보조금의 비중을 낮추거나 득표율에 따라 배분비율을 상향조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 직업으로서의 정치

정치와 돈의 관계는 불법과 추문으로 이어져 왔다. 깨끗한 정치를 위해 돈의 흐름을 막았지만 이것이 유권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고 새로운 정치, 신인 정치인들의 등장에 장벽이 되고 있다. 노회찬 원내대표의 갑작스러운 죽음 이후 국회 정치개혁특별위원회에서는 정치자금법 개정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사회 통념에서 정치는 전문적인 영역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재력가들의 명예직이나 명망가들의 인생이모작의 대상처럼 여겨져 왔다. 막스 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재산이 없는 사람들도 정치를 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보수’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만약 우리가 정치 지망생이나 지도층 혹은 그의 추종자들을 비금권적인 방식으로 충원하고자 한다면 당연한 전제 조건은 이 지망생들이 정치활동을 통해 정기적으로 확실한 수입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정치는 명예직으로 수행될 수도 있다. 이럴 경우 정치는 흔히 말하듯 ‘남에게 의존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 즉 자산가나 특히 금리생활자에 의해 수행된다. 그러나 재산이 없는 사람들에게도 정치적 지도자층의 길을 열어주고자 한다면 이들은 보수를 받아야 한다.” 정치가 불법과 추문의 돈정치로 흐르지 않으면서 자산가들의 전유물이 되지 않도록 제도개선의 모색이 필요하다.

◆2002년 한나라당 ‘차떼기’ 계기, 법인 기부금지 등 자금 투명화 위해 도입

‘오세훈법’ 통과 과정


2002년 치러진 16대 대선에서 한나라당 이회창 후보가 선거운동에 필요한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LG, 삼성, SK, 현대차, 롯데 등 대기업으로부터 823억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났다. 한나라당에는 트럭으로 현금을 받았다는 뜻으로 ‘차떼기 정당’이라는 오명이 씌워졌다.

정치개혁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가 반영돼 2004년 3월12일 일명 ‘오세훈법’이라고 불리는 정치자금법이 개정됐다. 오세훈 당시 한나라당 의원이 발의한 법안이다.

법안의 핵심 내용은 법인 및 단체의 정치자금 기부 금지, 중앙당의 후원회를 비롯한 정당 후원회 금지, 정치자금 기부의 실명제와 정당의 회계보고 절차 강화 등이다. 개인의 정치자금 기부 상한선도 하향조정됐다. 국회의원 연간 후원금은 1억5000만원(선거가 있는 해엔 3억원)으로 제한됐고 개인이 국회의원 1인에 대해 연간 500만원까지 기부할 수 있다. 뭉칫돈을 묶어 돈정치를 차단하고 소액 다수 기부를 활성화해 정치자금을 투명하게 관리하자는 취지다.

오세훈법이 시행된 이후 정치자금 지출은 축소됐다는 분석이다. 중앙선관위에 의하면 오세훈법이 시행된 이후 치러진 17대 총선의 경우 평균 정치자금 수입은 1억3100만원이었고 지출은 1억1700만원으로 16대에 비해 4분의 1 정도가 감소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유권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하고 신인 정치인이나 소수정당이 경쟁력을 갖고 거대 정당과 경쟁하는 데 한계로 작용한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개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제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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