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이젠 나 자신부터 위로해 주세요

2018.05.29 21:31 입력 2018.05.29 21:33 수정
석정호 | 연세대 강남세브란스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가족·친구 등에 폭력·괴롭힘 기억…어른 되면 분노·불안·우울의 근원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살펴본 뒤 ‘이제 그만 걱정하자’ 마음 습관을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김상민 기자

어린이에 대한 학대를 비롯한 다양한 형태의 괴롭힘은 인류 역사에 드물지 않게 반복되고 있다. 조선의 21대 왕 영조는 자신의 아들인 사도세자에게 어릴 적부터 가혹한 평가와 혹독한 가르침으로 스트레스를 주다가 결국에는 세자에게 정신건강의 문제가 생기자 그를 뒤주에 가두어 죽게 함으로써 아들과의 관계를 비극적으로 마무리한 아버지이다. 콩쥐팥쥐 이야기 속의 콩쥐 역시 계모로부터 심한 신체적, 정서적 학대를 당한다. 중세 로마시대에는 아이들이 약하고 악한 존재라면서 아이들에게 심한 체벌과 훈련을 강조하기도 하였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핵가족화된 가족 안에서 더욱 다양한 형태로 아이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신체학대, 정서학대, 방임과 같은 아동학대와 아동 성폭력은 말할 것도 없고, 하루가 멀다 하고 싸움을 하는 부모 아래에서 자라는 아이들도 말 못할 마음의 상처를 가슴 깊이 간직한 채 성장하게 된다.

우울증 환자의 성장 과정에 대한 면담을 하다보면 아버지의 주취 폭력과 이로 인해 힘들어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큰 환자들을 유난히도 자주 만나게 된다. 또 하나의 어린 시절 폭력피해 경험 중 흔한 것은 학창 시절 친구들에게 받은 마음의 상처다. 왕따·은따·이지메 등으로 불리는 선배·동료·친구들의 괴롭힘은 유년기와 사춘기에 걸쳐 잊지 못할 기억들로, 분노·불안·우울의 근원이 된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항상 행복하고 좋기만 한 사람은 드물 것이다. 나름대로의 어려움이나 힘든 기억들이 있겠지만 앞서 말한 것과 같이 가정 혹은 학교 등에서 크게 상처받았던 기억이 있다면 마음속 깊이 자리 잡고 있는 그 기억들은 나를 위축되고 힘들게 만들 수 있다.

어린 시절에 나를 보호해주는 대상과 안정된 애착을 형성하지 못한 사람은 상대가 나를 괴롭히지 않을까 걱정되어 좋은 관계를 맺을 기회를 회피해 버리기 쉽다. 다른 한편에서는 상대가 나를 떠나버릴까 두려워 상대에게 과도하게 집착하고 매달리면서 상대를 힘들게 하기도 한다. 나 자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만한 사람이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자기 자신을 미워하고, 누구에게도 사랑받을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 너무 외롭고 힘들게 느껴질 수 있다. 어떠한 좋은 일도 내게 일어날 리 없고, 따뜻한 사람도 내 곁에 있어줄 것 같지 않은 마음의 습관이 생긴다.

[지금! 괜찮으십니까](29)어린 시절 마음의 상처…이젠 나 자신부터 위로해 주세요

그렇다면 어떻게 어린 시절의 마음의 상처를 극복할 수 있을까? 우선 내 마음속에서 들려오는 마음의 소리에 나 스스로가 좀 더 귀 기울일 필요가 있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을 걱정하고 두려워하는지에 대해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 출발점이다. 이런 것을 살펴보는 일이 힘들어서 또는 그런 생각을 해보는 습관이 되어 있지 않아서 자세히 살펴보지도 않고 대충 덮어두고 묻어두며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과거의 기억 때문에 걱정하는 습관이 들어 있는 내 마음이 보인다면 ‘이제 그만 걱정하며 살자’고 내가 내 자신을 위로해줄 수 있어야 한다. 그때가 정말 무섭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때만큼 무섭고 두려운 상황이 아니라는 걸 나에게 반복해서 얘기해주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지금 하고 싶은 것, 작지만 나에게 확실하게 행복함과 편안함을 줄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바로 그 일을 실천하는 것이다. 내가 나를 진정으로 위로하고 사랑해줄 때 비로소 나에게 세상에서 줄 수 있는 사랑을 받을 수 있는 힘이 생긴다.

<중앙자살예방센터·한국자살예방협회 공동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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