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하다 싶을 정도로 까다로운 일본 건축법…52년 된 이 건물, 수십번 지진에도 ‘튼튼’

2017.12.01 20:52 입력 2017.12.01 21:07 수정

박철현의 일기일회

4면이 아니라 2면만 트인 구식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 옥상까지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뻗어 있다. 무려 52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박철현씨 제공

4면이 아니라 2면만 트인 구식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진 건물. 옥상까지 철근콘크리트 기둥이 뻗어 있다. 무려 52년 전에 지어진 건물이다. 박철현씨 제공

“아니, 지진이 크게 났다는데 정말 괜찮아요?”

“우리는 괜찮다. 쪼매 흔들리고 말았데이.”

어머니와의 짧은 통화가 끝나고 마산은 별 피해가 없다는 말에 안도했다. 그런데 뭔가 역설적이다. 지금까지는, 아니 원래라면 반대가 정상이다. 여기 일본에서 큰 지진이 발생하면 항상 어머니가 전화를 걸어와 이런저런 걱정을 했다. 동일본대지진 때도 그랬고, 구마모토 지진 때도 걱정스러운 목소리가 한가득이었다. 후쿠시마는 그렇다 치더라도 구마모토와 도쿄는 무려 1200㎞나 떨어져 있지만, 어머니가 일본 지리까지 굳이 알 필요는 없으니 그때마다 “네, 네, 다들 괜찮아요”만 연발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번에는 상황이 거꾸로다. 일본 뉴스에서 크게 다루는 바람에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포항 지진 소식을 알게 됐고 바로 부모님 집에 전화를 했다. 1년 전 경주 지진 당시 마산도 꽤 흔들렸던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주 지진이 발생한 그 시각 나는 부산공항에 있었다. 리무진 버스 대합실 천장이 심하게 흔들렸고, 주위 사람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밖으로 뛰쳐나갔다. 그때 나는, 오랜 일본생활에서 비롯된 습관인지 경험인지 모르겠지만, 혼자 덩그러니 대합실에 남아 천장의 흔들리는 형광등을 물끄러미 쳐다보면서 “이 정도면 진도 3쯤 되겠네”라고 중얼거렸던 기억이 난다. (실제 부산공항은 진도 3이었다.)

이번에는 경주에서 그렇게 멀지 않은 포항에서 일어난 규모 5.4에 진도 5 이상의 지진이다. 당연히 마산도 흔들렸으려니 했는데, 의외로 어머니는 담담한 어투였다. 경주 지진의 경험이 좋은 쪽으로 작용한 예가 아닐까 싶다. 자연재해지만 일단 경험하면 초자연적 현상처럼 느껴지는 게 지진이다. 2011년 동일본대지진 때 바로 눈앞에서 20층짜리 고층건물이 좌우 2~3m씩 흔들리던, 그럼에도 무너지거나 갈라지지 않던 그 광경은 너무나 비현실적이었으니까. 이 초자연적 비현실성이 트라우마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학습효과로 작용할 때도 많다. 처음엔 놀라도 두번째부터는 마음의 준비도 하고, 개인이든 행정기관이든 대책을 마련한다.

그런데 일본 뉴스가 전하는 포항은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미디어 속성상 자극적인 화면을 뽑아 내보내긴 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화면 너머의 포항 길거리는 한글 간판만 제외한다면 일본이라 해도 아무 위화감이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아내와 아이들도 “한국도 지진이 저렇게 크게 나?”라며 놀라워했다. 또 그 뉴스화면은 경주 지진이 불과 1년 전에 있었는데, 지난 1년간 학습이 안됐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기도 했다.

지진은 화산과 마찬가지로 한번 일어나면 계속 일어난다. 뒤틀린 땅이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 위해, 혹은 완벽하게 뒤틀려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기 위해 끊임없이 일어난다. 활화산이 휴화산이 되기까지 수많은 세월이 지나야 하듯 지진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보통 한번 지진이 일어난 지역은 시간적 차이는 있을지언정 반드시 다시 발생한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구마모토 지진이 그것을 증명한다. 규슈 지역은 지난 10여년간 큰 지진이 없어 지진 안전지대에 들어가지 않았나라는 희망적 관측도 일부 존재했지만, 2016년 4월 규모 7.3, 진도 6이라는 유례없는 대지진으로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일본뿐 아니라, 중국 쓰촨성과 칠레가 그러하듯이 한번 큰 지진이 오면 요행 따위 버리고, 그냥 지진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게 빠르다.

그런데 이게 의외로 나쁘지 않다. 지진과 공존하다 보면, 필연적으로 그 사회가 보다 안전해진다는 것을 일본에 살면서 체감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선 건물이 튼튼하다. 지난 회에서 말했듯 나는 지금 도쿄 시내의 한 리모델링 공사현장 감독을 맡고 있는데 이 건물이 무려 1965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52년이나 된 건물이라 처음에는 당연히 해체해야 하나 싶었다. 그런데 강도검사를 해보니 건물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튼튼해 리모델링만 하기로 했다. 구식 필로티 공법으로 지어진 대지 30평, 연면적 110평짜리 4층 건물인데 몇 번 소유권이 이전되는 바람에 건축허가증이나 설계도면은 사라지고 없지만, 가로·세로 각각 80㎝ 굵기의 철근콘크리트 기둥 8개가 옥상까지 뻗어 올라가 건물 전체를 단단하게 지지하고 있다. 52년간 수십번의 크고 작은 지진을 경험했을 터인데 어떻게 저럴 수 있는지 신기할 정도다. (도쿄는 진도 6 이상의 대지진은 오지 않았지만 그래도 진도 4 정도의 지진은 자주 오는 편이고, 동일본대지진 때는 포항 지진에 맞먹는 진도 5가 관측되기도 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리모델링에 들어가기 앞서 ‘안전’을 위해 아스베스트(석면) 검사를 했다. 도로사용 허가를 받을 때는 관할 경찰서 입회하에 도로안전 지도요원 2명을 두어 통행인과 건물 근처를 지나가는 차량 안전에도 만전을 기했다. 다시 말하지만 건물 해체가 아니라 그냥 리모델링인데도 이런 행정절차를 밟아야 한다. 사전작업만 그런 게 아니다. 공사장 쓰레기를 치우려면 도쿄도가 허가한 산업폐기물 전문처리업자를 불러야 한다. 한번 업자를 부르면 대개의 경우 4t 트럭 2대 분의 쓰레기를 처리한다. 비용은 15만엔에서 20만엔(약 150만원에서 200만원). 지금까지 한 열 번 정도 불렀으니 쓰레기 치우는 데만 어마어마한 돈이 들어갔다.

4층 건물 리폼에도 신고할 건 다 해야 한다. 해당 관청에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나중에 인근 주민들이 소음 등으로 신고할 경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4층 건물 리폼에도 신고할 건 다 해야 한다. 해당 관청에 신고를 하지 않는 경우도 물론 있지만 나중에 인근 주민들이 소음 등으로 신고할 경우 호미로 막을 것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사태가 발생한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우리는 지금 대형맨션이나 아파트를 짓고 있는 게 아니다. 그냥 싸게 산 건물의 가치를 높이고 임대를 쉽게 놓기 위해 리모델링하고 있는 것뿐이다. 중소기업 소유의 고작 30평짜리 건물 내부 리폼을 하는데도 ‘안전’과 ‘환경’을 위해 이런저런 행정절차를 지키고, 비용을 쓰고 있다. 회사 대표는 산업폐기물 차가 올 때마다 “한국사람들은 우리가 쓰레기 치우는데 2000만원 썼다면 아무도 안 믿겠지? 하긴 나도 이거 낼 때마다 신기해 죽겠는데, 어떻게 믿겠냐. 야, 우리도 그냥 산폐업자나 할까? 껄껄껄”하고 자조할 정도니까. 하지만 이 모든 게 여기선 당연한 절차고 과정이다. 쓰레기를 산이나 공터에 몰래 버린다는 건 상상조차 못해봤고, 건물을 설계대로 안 짓는 건(부실시공) 말도 안 되는 소리다. 아니 그것보다 무서워서 못한다. 설계대로 안 짓다가 지진 나면 어떻게 하냐는 불안감이 은연중에 자리 잡고 있다. 건축에 관한 법률 및 행정지침은 정말 보수적이다. 하지만 역으로 생각해보면 이 보수적 입장이 사회 전체의 안전의식을 키운다.

물론 일본도 완벽하지는 않다. 2015년 10월 아사히카세이(旭化成)의 계열사 아사히카세이건재가 가나가와현 요코하마시에 대형 분양아파트를 건축하면서 철근기둥을 설계대로 하지 않았다가 아파트가 기울어진 사실이 발각되어 언론의 엄청난 뭇매를 맞은 사례도 있다. 당시 아사히카세이건재의 대표이사, 부사장 등 임원진이 연일 사죄 기자회견을 열었다. 스스로 제3자 감사위원회를 만들어 3000여건에 달하는 공사 데이터를 전수조사한 후 266건의 위조 데이터가 있었음을 발표하면서 한번 더 고개를 숙였다. 아사히카세이는 당시보단 좀 나아졌지만, 여전히 과거의 명성을 되찾지 못하고 있다. 안전에 관한 어떤 건수가 터졌을 때, 일본 언론은 정말 지독할 정도로 뭇매를 퍼붓는다. 그리고 걸린 기업도 실수를 즉시 인정하고 발 빠르게 대처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먼저 언론이다. 이번 포항 지진 관련기사 중에 유독 눈에 띄는 게 한국도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기사다. 그런데 이런 기사를 경주 지진 때도 본 것 같다. 엿가락처럼 휘어진 필로티 공법 주택을 지적하며 부실시공을 거론하는데 1년 전에도 필로티는 아니지만 부실시공을 지적하는 기사를 읽은 기억이 난다. 무슨 데자뷰도 아니고 이것 참 뭐라 말해야 할지.

행정기관도 마찬가지다. 지진 안전지대가 아니라면 아무리 소규모 건축물이라 하더라도 관리 감독을 철저히 해야 한다. 발품을 파는 수밖에 없다. 관계법령이나 행정지침은 분명히 보수적으로 잘 만들어져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끊임없이 순찰해서 건축법, 소방법, 환경법을 잘 지키고 있는지 감시해야 한다. 지진이 일어났고 앞으로도 계속 일어날 것이기에 더 그래야만 한다. 일본은 적어도 수백년 동안 큰 지진이 발생한 덕분에 세계적으로 톱클래스의 건축기술을 보유한 나라가 됐다. 지진 덕분에 지역공동체가 활성화된 측면도 있다. 불가항력의 자연재해가 닥쳤을 때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서로 의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축기술도 세계적 수준이다. 하지만 설계대로 짓지 않는 경우가 많다. 앞으론 지진 때문에라도 반드시 지켜야 한다. 지금까지 공동체 의식은커녕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랐다. 하지만 이젠 알아야 한다. 대피소에 피난해서 서로서로 도와야 모두가 살 수 있다.

일부 몰상식한 종교인이나 정치인의 말과는 달리 지진은 하나님의 보복이나 재앙도 아니고 현 정부에 대한 심판도 아니다. 오히려 안전한 사회를 만들어 가기 위한 인간의 굳건한 연대와 믿음을 시험해보는 계기가 아닐까 한다. 그리고 언제나 그래왔듯 답을 찾으면 된다.

▶필자 박철현

[다른 삶]과하다 싶을 정도로 까다로운 일본 건축법…52년 된 이 건물, 수십번 지진에도 ‘튼튼’


2001년 도일. 한국에선 영화연출을 공부했지만 일본에선 오마이뉴스재팬, JP뉴스 등에서 기자로 10년간 일했다. 도쿄 우에노에서 바를 운영하기도 했다. 일본인 아내와의 러브스토리 <일본여친에게 프러포즈 받다>를 출간해 화제를 모았고, <일본 제국은 왜 실패했는가>와 <인터넷 동반자살>을 번역했다. 1976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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