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님은 왕’이라고요? 프랑스에선 어림없어요

2017.12.15 17:12 입력 2017.12.15 19:39 수정
필자 곽원철

곽원철의 ‘알프스 베베 레나’

인사 없이 불쑥 들어오는 손님 여기선 ‘무례한 사람’으로 낙인
갑을 관계 아닌 상호존중 관계
먼저 인사 건넨 고객에겐 친절

프랑스 식당의 서비스는 도도하기로 유명하다. 종업원은 손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법이 없다.  곽원철 제공

프랑스 식당의 서비스는 도도하기로 유명하다. 종업원은 손님에게 머리를 조아리는 법이 없다. 곽원철 제공

프랑스에서 가게에 들어갔는데 주인이나 점원이 다른 손님들, 즉 프랑스인들에게는 친절하게 대하면서 자기한테는 쌀쌀맞게 대했다고, 뭔가 차별을 당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자주는 아니지만 이따금씩 볼 수 있다. 이건 꼭 우리 한국인을 비롯한 아시안들에게 국한되는 얘기는 아니다. 지인이나 동료들 중 미국인을 비롯한 백인들 중에도 비슷한 경험을 토로하는 이를 본 적이 있다. 물론 주인이나 점원이 인종차별주의자인 경우도 있겠으나 (충분히 그럴 수 있지만, 프랑스에서 누군가를 ‘인종차별주의자’라고 칭하는 건 우리 생각보다 훨씬 모욕적인 욕이라는 건 알아 두도록 하자) 그보다는 자신이 가게에 들어설 때 인사를 했는지를 돌이켜 보는 게 어떨지 권하고 싶다.

프랑스에서 10년 가까이 살면서 익힌 나름 생활의 요령이랄까, 하는 것 중 하나는 인사법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다. 즉 옷집이건 카페건, 빵집이나 정육점이건 가게에 들어갈 때에는 그냥 쓱 들어가서 앉거나 물건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하거나 하지 말고, 먼저 점주 내지는 점장·점원으로 짐작되는 사람에게 눈을 맞추면서 ‘봉주르’ 하고 인사하는 편이 좋다는 것. 또한 나올 때에는, 물건을 꼭 사지 않더라도, 역시 주인에게 ‘오르부아르’ 내지는 ‘본 주르네’ 하고 인사를 하고 나오는 것이다. 내 돈 내고 물건 살 손님으로서 가게에 들어가는데 왜 예의에 신경 써야 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으나, 프랑스에서는 손님도 사람이고 상인·점원도 사람이다. 주인이 되었건, 점원이 되었건 가게를 지키고 있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사도 없이 남의 가게에 불쑥 들어오는 사람은 손님이기 이전에 일단 “무례한 사람”이다. 그리고 프랑스인들은 대체로 “무례한 사람”을 무척 싫어하고, 싫은 마음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거나 인색함이 없다. 더구나 이런 무례한 사람이 제멋대로 ‘남’의 물건을 만지고 훑어 보다가 인사도 없이 쓱 나가 버린다면? 좋은 대접 받기를 기대하기가 더 이상하지 않느냐는 것이 프랑스인들의 생각이다.

이렇듯 프랑스의 서비스 정신에서는 - 물론 ‘만약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이라는 가정이 필요하겠지만 - 상호 존중에 기반을 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가, 돈을 내는 손님과 그에 상응하는 서비스나 재화를 제공하는 사람, 즉 소위 말하는 ‘갑을’ 관계보다 우선한다.

프랑스에 사는 외국인들이 자주 쓰는 말 중에 “사 데팡”이라는 말이 있다. 영어로 직역하면 “it depends”이고, 굳이 우리말로 옮기자면 “그때그때 달라요” 정도의 뉘앙스다. 쓰임새가 광범위한 말이지만 많은 경우 같은 점포나 공공기관의 경우에도 담당자가 누구냐에 따라 서비스의 질이 들쭉날쭉한 것을 비꼬는 푸념인데, 이 역시 일방적인 갑을 관계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즉 상호작용이라는 틀을 적용하면 의미가 달라질 수 있다. 즉 ‘복불복’이 아닌 ‘역지사지’가 더 정확한 해석이라는 것이다.

다른 예를 프랑스인들의 줄서기 문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이 사람들은 줄을 서서 차례를 기다리며 서비스를 받는 데 익숙하다. 이때 원칙은 ‘현재 서비스를 받고 있는 사람에게 집중한다’는 것이다. 때로 특정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너무 길어져 뒤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이 답답할 법한 상황이 되더라도, 그저 묵묵히 기다리는 것이 미덕이며, 이에 불만을 제기하는 사람은 무례한 사람으로 간주되어 눈총을 받기 십상이다. 엊그제 아내가 딸 레나의 옷가지를 사러 갔을 때의 일이다. 계산대에서 점원이 고객 카드를 통해 이제 곧 레나 돌이 다가온다는 것을 알고는, 부탁도 하지 않았는데 선물 포장을 해 준다고 법석을 떨었다. 줄이 길어지는 상황에 미안해진 아내가 안절부절못하자, 뒤에서 기다리던 사람들이 오히려 걱정하지 말라며, 미소와 함께 아기의 첫 생일을 축하한다는 말을 건네는 것이 아닌가. 지난번에 한국에 들어갔을 때 증명서를 떼러 동주민센터에 갔을 때의 경험과 묘하게 대비된다. 담당직원은 내 앞에서 기다리던 분의 업무 처리가 다 끝나지 않았는데도 뒤에 서 있던 나의 용무까지 물어봐서 당황했다. 물론 두세 가지 일을 동시에 그것도 실수 없이 효과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은 감탄할 만하나, 서비스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대화 또는 교류로 생각하는 프랑스식 사고로는 이런 식의 일처리는 먼저 서비스를 받던 사람을 무시하는 것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프랑스 카페의 가격표. “커피 한잔” 7유로, “커피 한잔 부탁해요”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부탁해요” 1.4유로.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친밀한 상호작용이 필요함을 뜻한다. 이미지 크게 보기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된 프랑스 카페의 가격표. “커피 한잔” 7유로, “커피 한잔 부탁해요” 4.25유로, “안녕하세요, 커피 한잔 부탁해요” 1.4유로. 손님과 종업원 사이에 친밀한 상호작용이 필요함을 뜻한다.

상대방 배려가 몸에 벤 사회
직원들 퇴근 시간 가까워 오면 기다리던 고객들도 돌려보내

또한 프랑스에서는, 직원들 퇴근 시간이 가까워 오면 기다리던 고객들을 돌려보내는 건 물론이거니와 이미 창구에서 서비스를 받고 있던 고객도 중단하고 내일 다시 오라고 하는 것이 예사라고들 한다. 글쎄 그런 경우도 많이 있겠지만 이 역시 ‘사 데팡’이다. 나의 경험을 말하자면, 유학 생활 초기에 그날 중으로 반드시 처리해야 할 은행 업무가 있어 어쩔 수 없이 폐점 시간에 임박해 은행을 찾은 적이 있다.

담당 직원에게 사정을 얘기하고 미안해했더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키며 업무 시간을 넘어서까지 꼼꼼히 내 업무를 처리해준 것은 물론이거니와, 정문 셔터가 내려져 있으니 따라오라며 직원들이 이용하는 뒷문으로 직접 나를 안내해서 내보내 준 적도 있다. 말 그대로 빈털터리 외국인 유학생 신분이었던 내가 그들에게 중요한 고객일 리가 없었음에도 이런 친절을 경험한 것은, 물론 내가 운이 좋아서 예외적으로 친절한 직원을 만났던 것일 수도 있다. (이런 경험을 프랑스에 있는 다른 외국인들에게 얘기해 주면 다들 믿기지 않아 한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내가 (한국에서 흔히들 그렇게 하듯) ‘나는 고객이고 당신은 직원이니 퇴근 시간이 언제든 간에 내가 요구하는 이 업무를 처리해 주는 게 당연하다’는 태도를 보였어도 그가 그렇게 친절하게 대해 줬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하는 것이다.

기왕에 프랑스인들의 서비스 정신을 변호하기로 작정했으니 한발짝 더 나가 보기로 하자. 이 나라를 찾는 많은 외국인들이 공통적으로 투덜대는 것 중 하나는, 이건 한국인들보다는 오히려 미국인들을 비롯한 비유럽인들, 아니 어쩌면 같은 유럽인들조차 프랑스인에게 공통으로 갖고 있는 느낌일 수 있는데, 프랑스 식당의 서비스는 왜 그리 거만하고 도도하냐는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격식을 갖춘 프랑스 식당에서 복잡하기 짝이 없는 메뉴를 어렵게 해독하여 음식을 주문하려 하면, 담당 서빙이 주제 넘게 참견하며 손님을 가르치려 들지 않나, 주문한 음식이 나오면 꼿꼿하게 서서 손님들을 내려다보며 (절대 고개를 조아리는 법이 없다) 이 음식이 어떤 과정을 거쳐 당신들의 상찬을 기다리게 되었는지를, 심지어 주방장의 철학과 오늘 어떤 기분인지까지를 들먹여 가며, 장황하게 설명하고는 한다. 이는 고급 식당으로 갈수록 더 심해진다. 나는 이런 ‘도도한 서비스’를 조금 다르게 해석하는데, 나를 낮춤으로써 상대방을 높이는 것이 아닌, 나를 높임으로써 오히려 상대방을 더욱 높이는 서비스라고나 할까. (‘도도함’과 ‘불친절’은 엄연히 다르다. 도도하면서도 친절한 서비스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불친절하면서 도도하기까지 하면 그건 그냥 싸가지가 없는 거다. 물론 프랑스에도 이런 ‘불친절하기만 한’ 식당들도 적지 않다) 언뜻 이해가 안 간다면, “당신들은 돈 내고 매상 올려 주는 손님들이고 우리는 돈 받고 일하는 직원들이니 속으로는 피곤하고 짜증나는 경우가 있다 하더라도 겉으로는 웃으며 최선을 다한 친절로 모시겠습니다”라는 태도와, “당신들을 서빙하고 있는 나는 단순히 주문을 전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주방장의 요리 철학을 당신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는 데 자부심을 갖고 있습니다”라는 태도를 비교해 보면 어떨까.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후자의 경우를 훨씬 더 대접받는다고 생각할 것이다.

나를 높임으로써 상대방 높여 손님들 훨씬 대접받는다고 생각
고급 식당일 수록 서비스 ‘도도’

프랑스인들의 이런 성향을 드러내는 예화로 미국인 동료에게 들은 이야기가 있다. 파리의 은퇴한 갑부가 어느날 장난기가 발동하여, 매일 점심을 먹던 식당에 평상시와는 달리 허름한 행색에 지저분한 차림새를 한 채 들어가려 했다고 한다. 예상대로 입구에서 저지당하자 웃음을 터뜨리며 의기양양하게 “나야, 나”라고 자신의 신분을 밝혔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니저는 이 단골 손님의 입장을 거부했다. 당신이 누구건 간에 우리 식당에는 그런 차림으로 입장할 수 없으며, 이는 다른 손님들에 대한 예의이기도 하다는 것. 다른 문화권이었다면 겉모양으로 사람을 판단하려 한 그 식당과 매니저의 얄팍함을 비꼬는 것으로 결말지어졌을 이런 예화가, 프랑스인들에게는 식당과 고객 사이의 예의에 관한 문제로 받아들여진다. 사실 그 매니저는 갑부가 자신의 신분을 밝히기 전에도 이미 누구인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 매일 오는 단골 손님이 행색을 바꿨다고 알아보지 못할 리가 없지 않은가. 실화인지 알 수 없는 이 예화의 결말은 그 갑부가 다음날부터는 다시 평소대로 말끔하게 차려입고 그 식당에서 계속 점심을 먹었다는 것인데, 믿거나 말거나.

요새도 그렇게 하는지 모르겠는데 한때 우리나라에서 영업하는 미국계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종업원들이 손님과 눈높이를 맞춘다고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식탁에 바짝 붙어 주문을 받는 서비스를 매뉴얼화한 적이 있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이게 손님들에게 반응이 좋아서 미국 본사로 역수출했다는 자랑까지 곁들였던 것으로 기억되는데, 글쎄 미국에서의 반응은 어땠을지 모르겠으나 프랑스에서는 통할 것 같지 않다. 종업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지를 걱정하기 이전에, 먼저 손님들이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이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을 무렵, 아내에게 “프랑스에서는 ‘손님이 왕’이라는 말은 씨알도 안 먹히겠군”이라고 푸념한 적이 있다. 한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던 아내는 “손님이 왕이면 뭐해? 이 나라는 절대군주를 단두대에 보내 목을 친 역사를 갖고 있잖아. 왕 따위, 훗”이라고 되받았다. 과연 그러하다.

하지만 대한민국도, 절대왕정까지는 아니겠지만 뭔가 석연치 않은 이유로 권좌에 올라 기묘한 권력을 휘두르던 권력자를 시민들의 단결된 행동을 통해 평화적으로 끌어내려 민주적인 새 정부를 수립한, 어쩌면 프랑스혁명 이상으로 자랑스러운 역사를 이룩해 낸 바 있다. 프랑스인들이 혁명 이후 극심한 혼란의 과정을 거쳐 위계에 의한 어떤 권위도 인정되지 않는, 오로지 시민들 간의 상호 존중에 근간한 관계의 틀을 재정립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이러한 관계의 재정립이 다만 정치권과 국가 권력 체계뿐 아니라 시민들의 일상생활에까지 스며들기를 기대한다.

◆ 필자 곽원철
강원도에서 나고 자랐다. 서울에서 12년 남짓 직장 생활을 하다가 2009년 프랑스로 건너갔고, 우여곡절 끝에 프랑스 대기업의 그룹 전략개발실에서 근무하게 되어 지금까지 일하고 있다. 현재는 알프스 자락에 걸친 남프랑스의 산악도시 그르노블에서 아내와 갓 태어난 딸 레나와 함께 살면서 파리를 오가는 생활을 하고 있다. 살다 보니 어느 순간 ‘뭔가 남들과 다르게 하는 것’이 인생의 모토가 되어 버렸다.

[다른 삶] ‘손님은 왕’이라고요? 프랑스에선 어림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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