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의 사랑5

"누난 내 여자니까"

2012.09.01 14:00

이승기가 누난 내 여자라고 외칠 때부터였을까. 사람들 사이에서 (여자)연상(남자)연하 커플은 조금 더 특별한 무엇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말에는 시큰둥하던 친구들이 그 남자친구가 '연하'라는 사실에는 감탄사를 외치며 유독 다양한 반응을 보이는 것만 봐도 그렇다. 언제,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육하원칙을 따져가며 묻는 친구부터 갑자기 나를 능력 있는 여자로 보는 친구까지. 정말 그들에게는 뭔가 특별한 것이 있는걸까?

이제는 그러려니 넘기게 되었지만 한 때 나는 주변의 이런 반응들이 적잖게 당혹스러웠다. '어떻게 꼬셨냐'는 시답잖은 질문부터 수없이 들었던 '능력 좋다'는 얘기들. 그들이 이렇게 유별난 반응을 하는 이유는 대개가 생각하는 연애의 정석(연상남+연하녀)에서 내가 조금 비켜나 있기 때문일까. 혹은 그의 주변에 있는 더 어린(예쁘고 매력적일 것이라는 가정이 포함된)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내가 그를 쟁취했기 때문일까. 물론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질문공세를 하기는커녕 아, 그래? 가 반응의 전부인 경우도 있다. 대부분 나의 연애사를 꿰뚫고 있는 몇몇 절친들. 그러나 절친들을 제외한 그 외 다수에 의해 연하남과 사귀는 나의 연애는 실제보다 더 가슴 설레는, 드라마틱한 연애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은 피곤한 연애가 되기도 한다.

[20대의 사랑5] "누난 내 여자니까"

연하?? 왜 만나?

남자친구를 '왜' 만나냐니. 배고플 때 왜 밥을 먹냐는 질문만큼 황당하게 들리겠다만, 이 질문을 풀어 해석해 보자면 왜 하필 연하남이냐, 연하남이 가지는 매력이 뭐냐? 정도 되겠다.
첫째, 귀여운 외모에 둘째, 스위트하고 모성애를 자극하며 셋째, 나의 피곤함을 단번에 풀어줄 애교 필살기를 지녔기 때문! 수많은 연상연하 커플들 중 이런 대답을 하는 그녀가 몇이나 될까. 물론 혹자는 정말 사람들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연하와의 연애를 하고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내 주변의 그녀들만 봐도 해당사항 없음에 마구 동그라미를 칠 것 같다. 그렇다면 그녀들은 왜 어린 그를 만나는 걸까.

3살 연하의 남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직장인 A양(26)은 계산없이 나를 사랑해주는 그의 순수함에 반했다고 한다. 소개팅에서 자신의 연봉부터 묻던 재고, 따지고, 주판을 두드리기에 바쁜 그 녀석들과는 다른 그와의 연애에서 ‘본연의 나’를 찾는 것 같단다. 나의 경우에는 조금 다르다. 엄격한 아버지 덕에 나이 많은 남자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이 있었던 걸까. 연상의 그와의 연애는 항상 오래 가지 못했다. 물론 '연상이랑 안 맞으니까 연하'라는 대안적 개념은 아니다. 나는 그의 의외성에 호감을 가졌다. 생물학적 나이는 나보다 어리지만 정신적으로는 결코 어리지 않은 모습이라고나 할까. 밀당을 끔찍이 싫어하는 나의 성향에 잘 부합하는 솔직함도 한 몫을 했다.

사실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은 한두가지 이유로 설명될 수 없다. 그의 외모, 경제력, 지적 능력, 음악 취향이나 목소리 혹은 그냥 대화가 잘 통한다거나 나를 좋아해줘서. 많은 요소들이 '왜 내가 그를 사랑하는지'에 대한 이유가 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주변의 그녀들만 보더라도 그 이유라는 것은 상당히 주관적이다. A양이 말한 그녀의 순수한 남자친구가 내 눈에는 그저 세상물정 모르는 어린애로 보일 수도 있는 것이고, 나에게는 한없이 어른스러운 그가 다른 이에게는 장기간 연애하기에는 부적합한 존재로 보일 수도 있다. '제 눈에 안경'이라는 말이 괜히 있겠는가. 우리는 수많은, 다분히 주관적인 이유들로 그를 나의 연인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니까 그래서 왜, 어린 그를 만나느냐고? 글쎄, 중요한 것은 내가 어린 그와 사귀는 것은 '그가 연하이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사귀게 된 그가 연하일 뿐'이라는 사실 아닐까.

'어리다'는 것

정이현의 <달콤한 나의 도시>라는 책에는 연상녀 은수와 연하남 태오가 등장한다. 은수는 태오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그는 좋은 사람이다. 선량하고 다정하고 유순한 성품을 가졌으며 감탄할 만큼 아름다운 옆모습을 가졌다. 또한 자신이 택한 사랑에 대해 따뜻한 열정도 품고 있었다. 단점은 단 한가지뿐이다. 어리다는 것!'

정말 그의 단점은 어리다는 것일까? 대개 드라마나 소설 속에 등장하는 연하남들의 공통점은 귀엽고, 모성애를 자극하지만 돈이 없고 어리광을 피우며 기댈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가끔 "연하 사귀려면 귀찮지 않냐"는 우려 섞인 질문을 받을 때면 어느 정도 그런 면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게 된다.

공교롭게도 나의 첫 남자친구는 나보다 한 살 어렸다. 고2말에 사귀었던 그와는 얼마 못가 헤어지게 되었다. 고작 한 살 차이밖에 안 나면서 그 당시에는 나도 그랬던 것 같다. "너는 왜 이렇게 어린거냐"고. 사실 그랬다. 나에게 한마디 상의도 없이 내가 다니던 독서실로 몇 달 치를 등록해서 날 곤혹스럽게 한다거나 모의고사 점수에 낙담해있는 나에게 롯데월드에 가자고 조르는 그의 언행은 헤어짐의 중대한 이유가 되었다.

경제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어린 그는 눈치를 봐야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한다. 직장인 A씨(26)는 "가끔 비싼 곳에 가서 기분을 내고 싶을 때가 있는데, 자존심이 센 그가 내가 사줄테니 먹으러 가자고 하면 기분 나빠할까봐, 그렇다고 그에게 내라고 하기엔 경제적으로 부담이 될까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때가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인데 누가 계산하는 것이 뭐가 그리 중요하냐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때로 계산이라는 것이 누군가의 '어려보이고 싶지 않은' 자존심을 대변하기도 하나보다.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한장면

드라마 '달콤한 나의 도시'의 한장면

사람들이 가장 손꼽는 연하남들의 '불편한 점'은 연상의 그들에 비해 부족한 경제력이다. 돈이야 있는 사람이 내면 된다지만 문제는 그의 자존심이 상한다는 데서 발생한다. 물론 모든 연하남들이 자존심을 중요시 여기는 것 같지는 않다. 생일이 되기 두 달 전부터 명품 시계를 사달라, 어디 지갑이 예쁘더라고 그녀에게 위시리스트를 내미는 연하남의 이야기도 주변의 지인을 통해 들었다. 어려보이고 싶지 않아서 식사 계산에 유달리 집착하는 그는 A양의 말대로 '귀엽게' 봐줄 수 있을 것 같다.

돈 한 푼 들고 나오지 않고 데이트 때마다 내가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소위 한쪽이 다른 쪽의 돈줄이 되는 관계는 당연히 있어선 안 된다. 만약 그것이 내가 '연상녀'이기 때문이라면 더더욱. 하지만 그런 것이 아니라면, 비싼 음식을 마음껏 먹지 못하면 어떠랴. 누가 조금 더 내고 덜 내면 어떠랴. 내가 그의 경제력을 보고 사귄 것이 아니라면 경제적 능력이 부족하더라도 잘 보이고자 하는 그의 마음을 읽어주는 것이 먼저 아니겠는가. 경제력이 앞으로 그와의 관계를 좌우할 만큼 중요한 것이었다면, 그를 탓할 것이 아니라 자신의 잘못된 선택을 탓하고 차후에 훌륭한 경제력을 지닌 사람을 만나면 해결될 일이다.

나잇값도, 사랑도 사람 나름

나는 앞서 말한 첫 남자친구와 고 3이 되어서 헤어졌다. 헤어진 그에게는 어리다는 말로 헤어짐의 모든 이유를 설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만날 때마다 모의고사 얘기를 늘어놓고, 핸드폰도 없어서 학교에서 잠깐 얼굴 보는 것이 전부였던 여자친구가 그라고 마냥 좋진 않았을 것이다. 가끔은 그 당시를 떠올리며 '혹시 그의 나이가 나보다 어렸기 때문에 그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기도 전에 '어리다"고 단정 지었던 것은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나로 하여금 다시 한 번 상대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자세를 가지게 만들었다.

나는 나이와 나잇값이 꼭 비례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보다 6살 많은 그와 사귀면서도 온종일 게임을 붙잡고 있는 남자친구 때문에 다투는 친구도 보았고 한 번 과제를 도와주니까 대놓고 다 해달라는 식으로 부탁을 해오던 선배도 보았다. 어린 그와 사귄다고 해서 모두가 그의 투정에 시달리는 것은 아니며 나이가 많은 그와 사귄다고 해서 모두가 기대고 의지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나이도 사람 나름'이라는 소리다.

마찬가지로 '사랑도 사람하기 나름' 아닐까. 어려보이고 싶지 않은 그의 자존심이 사랑스럽다는 그녀처럼, 연상연하 커플의 만남도 그들이 만들어가기 나름이다. 중요한 것은 그나 그녀의 나이가 아니라 그라는 사람과 그녀라는 사람이다. 그의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기도 전에 "어리다"고 단정 짓지 않는다면.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것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면. 미국의 천문학자 칼 세이건이 말한 "1조에 1조를 곱하고 다시 10억을 곱한 수 분의 1의 확률보다 더 작은 우연"으로 연인이 된 우리는 조금 더 특별해질 수 있지 않을까.

나하늘/인터넷 경향신문 인턴기자
(@YeSS_twit/웹場 baram.kh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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