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돌아온 물떼새 서식지, 수장 위기…보 재가동 앞둔 금강 가보니

2024.05.02 16:06 입력 2024.05.02 16:15 수정

지역 환경단체들 “생태 학살”

급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 하중도에서 물떼새 번식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흰목물떼새  알이 자갈톱 사이에 놓여 있다. 이종섭 기자

급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 하중도에서 물떼새 번식지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발견된 흰목물떼새 알이 자갈톱 사이에 놓여 있다. 이종섭 기자

“저기 물떼새 우는 소리 들리죠. 저쪽으로 가보죠.”

지난달 29일 오전 세종시 세종동 합강공원 인근에서 고무보트에 오른 황성아 세종환경운동연합 대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물떼새 한 쌍이 잽싸게 물 위를 날아올랐다. 황 대표가 가리킨 방향을 따라 노를 저어 도착한 하중도(하천 중간에 퇴적물이 쌓여 생긴 섬)에는 너른 모래·자갈 톱이 펼쳐져 있었다.

“여기가 ‘핫스팟’이네요. 지금부터 천천히 움직이며 잘 살펴주세요.”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조심스럽게 하중도에 내린지 얼마 지나지 않아 탄성이 들려왔다. “여기 알이 있네요.”

동그랗게 자갈로 둘린 둥지 안에 3㎝ 정도 크기의 얼룩덜룩한 타원형 새알 하나가 놓여 있었다. 환경부가 멸종위기 야생생물 2급으로 지정한 흰목물떼새 알이다.

이경호 대전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합강습지는 하천 폭이 넓고 유속이 느려 모래톱과 자갈 톱이 발달해 있다”며 “물떼새들에게 최고의 서식처이자 번식처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 환경단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은 이날 물떼새 번식지 조사를 위해 금강을 찾았다. 물떼새는 주로 강가의 모래밭이나 자갈밭에서 번식한다. 물떼새 중에서도 희귀종에 속하는 흰목물떼새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위기종 적색목록(LC)으로 분류했다. 하천 준설 등으로 서식지를 잃어가면서 개체수가 점점 줄고 있기 때문이다.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 하중도에서 물떼새 번식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합강습지보호지역시민네트워크 회원들이 지난달 29일 세종시 합강공원 인근 하중도에서 물떼새 번식지를 조사하고 있다. 이종섭 기자

흰목물떼새가 합강 지역을 중심으로 금강에서 다시 발견된 건 최근의 일이다. 4대강 사업으로 합강습지 아래에 세종보가 설치된 후 모래톱 등이 사라지자 자취를 감췄던 흰목물떼새는 2018년 세종보 수문 개방으로 서식 공간이 회복되면서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

이 처장은 “세종보 상류 모래톱 2곳과 하중도 2곳에서만 물떼새 성체 28개체와 둥지 23개를 확인했고, 흰목물때세 알 2개와 꼬마물때세 알 1개도 발견했다”며 “곧 본격적인 산란기인데 세종보가 재가동되면 물떼새 둥지와 알은 모두 수장된다. 이는 생태학살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보 가동이 중단됐던 금강에서는 현재 보를 재가동할 준비가 한창이다. 합강습지에서 7㎞ 정도 떨어진 세종보에서는 이날도 보 수리에 동원된 굴삭기과 트럭들이 바삐 오갔다.

금강에는 4대강 사업으로 보 3개가 설치됐다. 2012년 6월 준공된 세종보는 2017년까지 가동되다 가동을 멈췄다. 이후 공주보와 백제보도 순차적으로 수문을 열면서 금강에는 보 가동 이후 사라졌던 생명체들이 되돌아왔다.

환경부 4대강 자연성회복을 위한 조사·평가단은 2021년 9월 보 개방 전후 4년간의 모니터링 결과를 바탕으로 생태계 건강성 개선을 확인했다는 자료를 내놨다. 물흐름이 다양해지고 강 주변에 모래와 자갈이 조성되는 등 하천 환경이 전반적으로 변화돼 세종·공주보 구간 생태계 건강성이 유의미하게 높아진 것이다.

특히 흰목물떼새는 금강의 생태적 건강성 회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지표종’ 중 하나다.

앞서 대통령 직속 국가물관리위원회는 환경부 자료를 토대로 2021년 1월 ‘금강·영산강 보 처리방안’을 마련해 세종·공주보 해체와 백제보 상시 개방을 결정했다. 그러나 위원회는 정권이 교체된 이후 스스로 이 결정을 뒤집었다. 보 해체의 경제성 분석이 불합리했고 관련 위원회가 불공정하게 구성됐다는 감사원 감사 결과를 토대로 지난해 8월 보 처리방안 결정을 취소했다.

세종시 금강 세종보에서 보 수문과 소수력발전시설 정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종섭 기자

세종시 금강 세종보에서 보 수문과 소수력발전시설 정비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종섭 기자

환경부는 올해 상반기 안에 세종보 수문과 소수력발전시설 정비를 마치고 보 가동을 정상화할 계획이다. 이르면 이달 중 정비 사업을 마치고 보가 재가동 돼 막힘 없이 흐르던 금강의 물길이 6년여 만에 다시 닫힐 것으로 보인다.

87개 시민·환경단체로 구성된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시민행동)’은 보 재가동을 막기 위해 지난달 30일부터 세종보 상류 힌두리대교 아래에서 무기한 천막농성에 들어갔다. 보가 재가동되면 강 수위가 높아져 수몰될 위험이 큰 지역이다.

임도훈 시민행동 간사는 “5월 중순 이후 보 재가동 가능성이 있다”며 “산란을 위해 터를 잡은 물떼새 둥지가 수몰되고 금강은 다시 녹조와 악취가 가득한 강이 될 것이 뻔하기 때문에 물이 차면 보트를 띄워서라도 농성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세종보 등의 재가동은 감사원 감사와 국가물관리위원회 결정에 따른 것으로 현재 보수 작업이 진행 중이며 정확한 운영 시점은 정해지지 않았다”며 “보수 작업이 끝나면 홍수 대응과 물 이용, 생태·환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보 운영 방향을 찾을 것”이라고 밝혔다.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금강 세종보 상류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보 해체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종섭 기자

‘보 철거를 위한 금강·낙동강·영산강 시민행동’이 지난달 30일 세종시 금강 세종보 상류에서 천막농성에 들어가기에 앞서 보 해체를 요구하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이종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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