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납 계약 ‘갑’보다 ‘을’에만 조준… 이상한 방산비리 수사

2015.06.19 06:00

1100억원 군납 계약 방사청·하벨산은 뒷전

브로커 일광공영·하청업체 수사에만 집중

공군 훈련장비 납품비리가 적발됐지만 하청업체들만 집중 수사를 받고 계약 당사자들은 수사선상에서 멀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방위사업비리 정부합동수사단(단장 김기동 검사장)은 1100억원대의 공군 전자전훈련장비(EWTS) 납품비리 수사를 3개월째 이어가고 있다.

합수단은 이규태 일광그룹 회장을 구속기소하면서 ‘대어급’ 무기 브로커를 잡았다는 안팎의 평가를 받고 있다. 18일 현재 합수단은 이 회장 등 총 7명을 관련 비리로 구속했다. 나머지 6명 중 3명은 일광공영, 2명은 SK C&C 전·현직 임직원이다.

군 측에선 예비역 공군 중령 출신 방위사업청 직원 신모씨 1명만 배임과 허위공문서 작성 등의 혐의로 지난 5일 구속됐다.

군납 계약 ‘갑’보다 ‘을’에만 조준… 이상한 방산비리 수사

그런데 EWTS 납품 구조를 보면 주범은 수사망에서 빠져나갔다는 의문이 제기된다. 일광공영은 터키 하벨산의 국내 독점 에이전트이긴 하지만 납품 계약은 엄연히 하벨산과 방사청 사이에서 체결됐다. 이후 하벨산은 SK C&C와 일광공영에 하청을 줬다. 즉 ‘일광공영→SK C&C→하벨산→방사청’으로 납품되는 구조인 것이다. 합수단은 일광공영과 SK C&C가 하벨산과 방사청을 상대로 사기를 쳤다고 보고 있다. EWTS 핵심 장비를 국산화할 의사가 없음에도 신규 연구·개발할 것처럼 속였다는 것이다. 주요 소프트웨어를 해외에서 구입하고 프로그램 소스코드가 공군에 제공되지 않았다는 점이 근거다.

그러나 방사청과 하벨산이 이런 정황을 계약 체결 직후부터 이미 알고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납품 계약을 체결한 이듬해인 2010년 초 일광공영, SK C&C 등은 방사청을 대상으로 착수보고회를 열었는데 EWTS의 핵심 소프트웨어인 TOSS(채점장비)는 싱가포르 업체로부터, 다른 핵심인 SAS(신호분석장비)는 프랑스 업체로부터 구입하겠다고 설명했던 것이다. SK C&C 관계자와 방사청 직원들이 싱가포르와 프랑스에 함께 출장을 다녀오기도 했다. 하벨산과 방사청이 사기를 당한 것이 아니라 공모를 했다고 의심할 수 있는 대목이다.

합수단도 이런 정황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합수단은 이 회장 등을 기소하면서 “하벨산 측 담당자와 공모해 SK C&C가 EWTS 중요 구성 장비들을 신규 연구·개발해 납품하는 것처럼 가장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공모자로 지목한 하벨산에 대한 수사는 더딘 상황이다.

이러다보니 이 사건의 전체 구도가 방사청, 하벨산, 일광공영, SK C&C의 공모가 아니라 일광공영과 SK C&C의 사기 쪽에 머무르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EWTS 사건은 계속 수사 중이고 하벨산 관계자는 국내에 없어서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국산 무기의 주요 수입국인 터키와의 관계에 대한 고려가 작용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선임연구위원은 “검찰 수사가 무리하게 진행되면 한국이 터키와 기존에 체결한 무기수출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합수단은 해상작전헬기 와일드캣(AW-159) 도입 비리와 관련해 방산업체로부터 수억원을 받은 혐의로 김양 전 국가보훈처장(62)을 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처장은 과거 유럽 방산업체에서 10여년간 근무한 적이 있어 관련 업계에 상당한 인맥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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