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첩가족’ 찍혀 퇴사했지만 ‘간첩조작’ 결론...대법 “가족 재산손해 배상”

2018.08.12 15:04 입력 2018.08.12 15:25 수정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를 그린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간첩조작 등 국가폭력의 트라우마로 인해 고통 받는 피해자를 그린 일러스트. 김상민 화백.

재심에서 무죄가 난 간첩 사건이 발생했을 당시 가족이 연루된 내용이 알려져 직장을 그만둘 수 밖에 없었던 이들에게 국가가 재산상 손해를 배상하라는 대법원 판단이 나왔다.

앞서 서울고등법원은 “연좌제가 금지되는 상황에서 불이익을 받았다 보기 어렵다”고 했지만 대법원은 “고정간첩 가족이라는 낙인으로 정상적 직업생활을 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했다.

대법원 2부(주심 조재연 대법관)는 정모씨와 이모씨 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심의 일부 판결을 파기하고 원고 승소 취지로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결했다고 12일 밝혔다.

나수연씨(90)와 나진씨(85) 남매는 1982년 7월 간첩 및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등으로 각각 징역 7년과 징역 15년을 확정 받았다. 당시 해당 사건은 ‘남매간첩단’ ‘고정간첩 검거’ 등의 제목으로 여러 언론에 보도됐다.

나수연씨의 아들 정씨와 사위 이씨는 판결이 확정된 이후인 그해 7월과 이듬해 2월 각각 대기업 ㄱ사와 ㄴ사에서 퇴사했다. 나씨가 ㄱ사와 ㄴ사의 거래처 명단을 입수해 국가기밀을 수집했다는 범죄사실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면서 정씨와 이씨가 회사로부터 퇴사 압박을 받은 데 따른 것이었다.

그러나 30여년이 지난 2014년 나씨 남매의 간첩사건은 조작된 것으로 판명됐다. 법원은 수사 과정에서 불법체포와 고문이 이뤄졌다는 사실을 인정해 나씨 남매에게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했다. 이후 정씨와 이씨는 “불법행위에 따른 간첩조작사건 때문에 사직하지 않았을 경우 회사에 계속 근무하며 얻었을 수입을 국가가 배상하라”고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정씨와 이씨가 가족이 연루된 간첩조작사건 때문에 사직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나 2심 재판부는 “국가가 정씨와 이씨의 사직에 관여했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며 국가가 재산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했다.

2심 재판부는 그러면서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해 불리한 처우를 받지 않는다’는 헌법상 연좌제 금지 조항을 근거로 들어 “국가의 불법행위로 인해 이들이 필연적으로 소속 회사에서 사직하고 이후 취업이 불가능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2심 재판부가 법리를 오해한 잘못이 있다며 재판을 다시 하라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남·북한이 여전히 대치하고 있는 사회 분위기에서, 정씨와 이씨가 고정간첩의 아들·사위라는 사실과 고정간첩에게 회사의 거래정보를 유출했다는 낙인 때문에 학력이나 경력에 걸맞는 직장에 취업해 정상적인 직업생활을 하는 것을 기대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법원은 “(간첩조작 사건과 관련한) 국가의 불법행위와 정씨·이씨의 사직에 따른 재산상 손해 사이에는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사직한 이후부터 노동이 가능한 시기까지의 수입을 산정해 손해배상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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