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검찰 정보·법원 이론 받아쓰기만 해선 안되는 이유

2018.12.21 16:48 입력 2018.12.21 20:49 수정
이범준 사법전문기자

64 파트 1·2감독 제제 다카히사 | 2016년 일본

지방경찰청 홍보관 미카미 요시노부(사토 고이치·왼쪽 사진 오른쪽)는 기자들에게 치이고 간부들에게 짓눌려 살고 있다. 그러다 14년 전 자신이 참여했다가 미제가 된 어린이 유괴 살인(오른쪽 사진)을 모방한 사건이 일어난다. 미카미는 뒤늦게 검찰 내부의 비리를 추적하고 그에게 불만을 쏟아내던 기자들도 범인을 뒤쫓는다.    홈초이스 제공

지방경찰청 홍보관 미카미 요시노부(사토 고이치·왼쪽 사진 오른쪽)는 기자들에게 치이고 간부들에게 짓눌려 살고 있다. 그러다 14년 전 자신이 참여했다가 미제가 된 어린이 유괴 살인(오른쪽 사진)을 모방한 사건이 일어난다. 미카미는 뒤늦게 검찰 내부의 비리를 추적하고 그에게 불만을 쏟아내던 기자들도 범인을 뒤쫓는다. 홈초이스 제공

기자들이 담당하는 분야를 신문사에서는 출입처라고 부른다. 대부분 출입처는 기자와 움직이는 방향이 같다. 다수의 지지와 구매로 작동하는 곳들이라 알려지기를 원한다. 대표적으로 입법부와 행정부, 대기업은 지지와 구매를 원하는 곳이다. 부정적으로 확산하는 여론만 막으면 되는 단순한 관계다. 언론의 영향력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이용하기만 하면 된다.

법조라고 묶여 불리는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조금 다르다. 긍정적인 여론이 나쁠 것은 없지만 수사의 전제는 밀행이고 재판의 핵심은 논리여야 한다. 수사과정을 알리는 것은 중대한 인권침해이고, 판결이 지지를 요구하면 기능을 상실한 것이다. 하지만 이들에게도 다수의 지지는 달콤한 유혹이고 그래서 언론과 이들의 관계는 복잡하다.

일본 지방도시에서 일어난
미제 어린이 유괴살인 사건
14년 후 서서히 드러나는
경찰의 부실 수사와 은폐

밝혀내려는 경찰 출입 기자
그리고 덮으려는 경찰 간부들
‘진실’을 둘러싼 줄다리기 속
민낯을 드러내는 언론과 경찰

입법부와 행정부, 대기업이 지지와 구매를 얻으려는 일은 정치나 경영으로 불리며 그 자체로 선(善)이다. 포퓰리즘이라는 단어도 있지만 민주주의의 부정적 속성을 포착한 표현에 불과하다. 이들 입법·행정·기업은 언론과 근본적으로 우호적인 관계다. 다수의 의지를 획득하고 대변하려 협력하고 경쟁한다. 하지만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은 반대다. 다수를 추종하는 순간 공동체에 불행이 시작된다. 검찰이 언론과 야합해 수사정보를 퍼뜨린 결과가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이고, 법원이 다수의 지지를 앞세워 내린 결정이 통합진보당 해산이다.

영화 <64>는 쇼와(昭和) 64년에 일어난 미제 어린이 유괴살인 사건에 관한 픽션이다. 쇼와는 일본의 최근 연호다. 쇼와 64년인 1989년은 헤이세이(平成) 1년이기도 하다. 쇼와는 1월7일까지이고 1월8일부터 헤이세이다. 죽어서는 쇼와로 불리는 히로히토 일왕이 이때 죽었다. 대부분 일본인은 1989년을 헤이세이 1년으로 기억한다. 쇼와 64년은 입에도 귀에도 어색한 단어다. 희미한 64라는 숫자이기에 영화는 ‘로쿠욘(육사)’이라고 불러 관객에게 기억시킨다.

지방경찰청 홍보관인 미카미 요시노부(사토 고이치)는 기자들에게 치이고 간부들에게 짓눌려 살고 있다. 딸은 집을 나가 연락이 두절된 상태다. 가출인지 실종인지도 불분명하다. (딸의 부재라는 점에서는 미카미도 유괴사건의 피해자다.) 공소시효 15년을 앞둔 헤이세이 14년(2002년) 어느 날, 1989년 어린이 유괴사건 유가족을 경찰청장이 방문하겠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어린이 유괴사건 수사팀 형사이던 미카미에게 14년 세월이 소환된다.

이 무렵 기자단과 홍보관은 어느 교통사고 가해자의 실명을 공개하지 않은 일로 갈등한다. 홍보관은 이번 사고는 가해자가 임신 8개월인 점을 고려해 익명으로 발표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자들은 언제부터 경찰이 그런 배려를 했느냐며 당장 이름을 내놓으라고 한다. 개인적으로는 실명 공개가 맞다고 생각하는 홍보관도 경찰 상부에 공개를 건의하지만 소용없다. 이에 기자들은 경찰청장 시찰 취재를 보이콧하겠다고 홍보관에게 선언하고, 경찰 간부들 역시 홍보관에게 경찰청장 취재나 성사시키라고 윽박지른다.

홍보관 미카미는 일단 유괴 후 살해된 아이의 아버지를 찾아간다. 경찰청장이 방문하면 사건해결에 도움이 될 것이라 말하지만 거절당한다. 설득할 방법을 궁리하며 주변을 조사하던 미카미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된다. 과학수사팀이 범인 전화를 녹음하지 못했고 이를 보고했지만, 자신들이 책임져야 할 것을 우려한 간부들이 보고를 묵살하고 이들을 조직에서 잘랐다.

범인 목소리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피해자 아버지 스스로 유괴범을 쫓고 있었고 마침내 같은 목소리를 찾아낸다. 전화번호부의 모든 번호에 하나하나 전화를 거는 방법이었다. 제 스스로 범인을 찾아낸 그이기에 무능하고 부패한 경찰의 전시성 방문을 거부했다. 아버지가 찾은 범인의 이름은 경비원을 전전하는 과학수사팀 전직 경찰에게도 전해진다.

영화에서 주인공 미카미 홍보관은 관찰자이다. 기자들을 관찰하고 경찰조직을 관찰한다. 기자가 아니지만 경찰 핵심도 아니다. 기자들에게는 무능을 추궁당하고 간부에게는 기자 관리도 못한다고 질책을 당한다. (한국과 다르게 일본에서는 공보관이 출세 코스가 아니다. 원작소설 작가 요코야마 히데오는 지방지에서 기자생활을 10년 넘게 했다.) 간부들은 정보도 주지 않으면서 기자들을 설득하라고 한다. 답답해진 미카미는 경찰정보를 알아내려 기자들처럼 화장실에 숨기도 한다.

영화에서 기자들은 손에 들어오지 않는 존재다. 그럴듯하게 표현하면 타협하지 않는 존재이고 정확히는 성마르고 단순한 사람들이다. 깊이 생각하는 법이 없고 배려 같은 건 더욱 없다. 언론은 여론의 거울이다. 여론의 취향과 다른 언론은 존재하기 어렵다. 그런데 이렇게 단순한 언론이 영화에서는 진실을 드러낸다. 실명을 감춘 교통사고 가해자는 경찰 간부의 딸이었다.

검찰이든 법원이든 언론에 민감하다. 1982년 이철희·장영자 어음사기 사건 검찰백서에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사건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문의 무책임한 보도로 인한 국민의 의혹의 눈이었다. 수사팀들은 최선을 다했지만 신문보도의 영향으로 국민적 의혹은 좀처럼 가시지 아니했던 점을 생각하면 언론기관에 대한 홍보체제의 정립이 가장 중요하다.”

기자가 최근 인터뷰한 주자네 베어 독일 연방헌법재판관도 비슷하게 말했다. “여론이 헌법재판소의 나침반일 수는 없지만 매우 중요한 환경인 것은 사실입니다. 공공기관은 이런 상황에 적절히 대처해야 합니다. 헌재의 기본 역할은 좋은 법률가여야 하지만 여론과 미디어가 어떤 정보를 원하는지도 알아야 합니다.”

이철희·장영자 검찰 보고서의 핵심은 기자들은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오보를 낸다는 것이었고, 베어 재판관의 얘기도 기자들이 좀처럼 판결을 분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우리 언론은 수사기관을 감시하는 것은 고사하고 추종하고 애원한다. 누구를 소환했다거나 어디를 압수했다는 단편적인 수사중계에 단독이란 얄팍한 이름을 붙여 포털 사이트를 채운다.

서너 시간이면 알려질 일을 먼저 쓰겠다고 검사실 주변을 서성인다. 법원에 대해서도 다르지 않다. 권위에 굴복해 판결을 의심하지 않는다. 이상한 판결이 속출해도 법리라는 말에 고개를 끄덕인다. 블랙리스트를 작성하라는 지시에 항의해 판사가 사표를 냈는데도 1년 넘게 침묵하다가 수사가 시작되고서야 덤벼든다. 검찰을 추종하면서 나오는 기사들이다.

경찰청장 시찰을 앞두고 지방경찰청 관할에 유괴사건이 일어난다. 그런데 몸값을 담으라는 여행가방도, 요구하는 현금 액수도, 부모를 불러내는 장소도 64사건과 같다. 미카미는 14년 전의 누군가가 일을 벌이고 있음을 직감한다. 새로운 사건의 범인은 경비원을 전전하는 과학수사팀 전직 경찰이었다. 범행 대상은 14년 전 사건 범인의 딸이다.

쇼와 64년 유괴사건 피해자를 위해 스스로 사건 해결에 나선 것이다. 이렇게 쇼와 64년 유괴사건 범인이 드러나지만 경찰 상부는 그를 곧바로 풀어준다. 피해자 아버지가 기억한다는 목소리 말고는 증거가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10년 넘게 이어진 은폐공작이 드러날 것을 걱정해서였다.

결국 범인을 직접 잡겠다고 미카미가 나서고 14년 전 범인을 찾아가 진실을 말하라며 주먹을 휘두른다. 이를 목격한 기자가 홍보관이 폭행수사를 했다고 보도한다. 이 기사를 계기로 14년간 묻혀있던 사건 전모가 드러난다. 홍보관에서 물러난 미카미는 기자에게 말한다. “자네는 기자로서 할 일을 한 것이다. 그러면 됐다.” 기자는 별다른 대답 없이 돌아선다.

영화 속 기자는 무능하고 병든 경찰을 바꾸려 기사를 썼을까. 아니면 경찰이 피의자를 폭행했기에 기사를 썼을까. 짐작하건대 후자일 것이다. 아니 후자여야 한다. 수사기관과 사법기관은 여론에 구속되지 않아도 되는 특권이 있다. 이러한 지위를 수사기관과 재판기관은 교묘하게 이용한다.

여론의 비판은 짐짓 외면하다가도 예산과 자리가 걸린 일에는 여론을 이용한다. 수사도 재판도 마음대로 하고, 자기 자리도 스스로 개척한다. 검찰의 조각난 수사정보와 법원의 그럴듯한 이론에 굴복하는 순간 민주주의도 위태로워진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