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소극적 회피마저 벌하면 표현의 자유 지나친 제약”

2020.07.16 21:00 입력 2020.07.16 22:26 수정

대법원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 무죄 취지 판단 근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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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제약 속 공방…TV토론회, 표현 명확성 한계 불가피
일방적 의도성 없는 한 허위사실 공표로 처벌할 수 없어

대법원이 16일 이재명 경기도지사(56)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를 무죄 취지로 판단한 것은 공직선거에 출마한 후보자가 TV 토론회에서 소극적으로 어떤 사실을 숨겼다는 것만으로 처벌하면 정치적 표현과 선거운동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약할 수 있다고 봤기 때문이다.

■후보자 공방에 사법잣대 부적절

대법원은 자질 검증을 위한 후보자들의 공방에 검찰·법원 등 사법기관이 개입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했다. 선거 때마다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며 후보자들 간 고소·고발이 난무하는 상황에서 이번 판결은 지난 총선과 관련해 수사선상에 올라있는 의원들은 물론 향후 선거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1심에서 무죄, 2심에서 유죄로 갈린 이 지사 혐의는 이 지사가 2018년 TV 토론회에서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입원과 관련해 ‘관여한 적 없다’는 취지로 말해 허위사실을 공표했다는 내용이다. 문제는 이 지사는 ‘관여한 적 없다’는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한 것은 아니라는 데 있었다. 상대 후보자가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죠”라고 묻자 이 지사는 강제입원을 위한 절차에 일부 관여한 사실은 말하지 않은 채 “그런 일 없습니다”라고 답변했다. 2심은 적극적으로 허위사실을 말하지 않았더라도 소극적으로 숨기는 것만으로 유권자의 공정한 판단을 저해할 수 있다면 허위사실 공표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대법원은 이 지사의 발언은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고 했다. 대법원은 자유로운 의사표현과 활발한 토론이 보장되지 않으면 민주주의가 존재할 수 없고, 공적·정치적 관심사에 대한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최대한 보장돼야 한다고 했다. 특히 TV 토론회의 경우 질문과 답변, 주장과 반론에 의한 공방이 제한된 시간 내에 즉흥적·계속적으로 이뤄지기 때문에 표현의 명확성에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했다. 토론회에서의 후보자 발언에 엄격한 법적 책임을 부과하면 후보자는 활발한 토론을 하기 어렵고, 이는 치열한 공방과 후보자 검증의 위축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허위사실 공표죄 적용 신중해야

대법원은 허위사실 공표죄의 적용 범위를 넓히면 유권자의 판단이 아니라 사실상 사법기관에 의해 선거 결과가 좌우되는 점도 지적했다. 대법원은 “후보자 토론회 발언을 문제삼아 고소·고발이 이어지고, 이로 인해 수사권의 개입이 초래된다면 필연적으로 수사권 행사의 중립성에 대한 논란을 피할 수 없다”며 “선거 결과가 최종적으로 검찰과 법원의 사법적 판단에 좌우될 위험에 처해짐으로써 국민의 자유로운 의사로 대표자를 선출한다는 민주주의 이념이 훼손될 우려도 있다”고 했다. 따라서 후보자의 토론회 발언은 적극적이고 일방적으로 허위사실을 알리려는 의도를 갖고 공표한 게 아닌 이상 허위사실 공표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게 대법원 판단이다.

대법원은 이 지사 발언이 상대 후보자의 질문이나 의혹 제기에 답변하고 해명하는 과정에서 나온 것이고, 형 강제입원 절차 진행에 일부 관여한 게 법적으로 공개할 의무가 있는 사항도 아니었다고 봤다. 대법원은 “소극적으로 회피하거나 방어하는 답변 또는 일부 부정확하거나 다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는 표현을 넘어서서 곧바로 적극적으로 반대사실을 공표하였다거나 전체 진술을 허위라고 평가할 수 없다”며 “이 지사의 발언들을 적극적으로 허위의 반대사실을 공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평가하는 것은 형벌법규에 따른 책임의 명확성, 예측 가능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다”고 했다.

이 지사의 파기환송심 재판은 수원고등법원에서 진행된다. 대법원 판결은 기속력이 있기 때문에 파기환송심 재판부는 대법원 취지대로 무죄를 선고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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