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은 뒷전, 실적만 남는 학교평가

2013.07.01 21:26
지혜복 | 한강중 교사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의 정책이 학교를 더욱 힘들게 하고 있다. 수업은 뒷전이 되고, 실적을 위한 행정 처리에 학교가 하루 종일 바쁘고 부산하다. 문 교육감이 3년마다 하던 학교평가를 올해부터 매년 실시하고, 학교장경영능력평가를 학교평가로 대신하며, 학교평가 결과를 학교별 차등 성과급과 연계하겠다고 밝혔기 때문이다.

학교가 독서교육을 얼마나 잘했는가 평가한다면서 학생 1인당 도서대출 건수를 점수로 매긴다. 그러면 교사들은 학생들이 제대로 책을 읽지도 않았는데 또 다른 책을 대출하라고 독촉하게 된다. 학교평가 점수를 잘 받으려면 옆 학교보다 0.1점이라도 앞서려고 무한경쟁을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귀신처럼 눈치를 챈다. 학교에서는 책을 읽고 그 느낌을 발표하거나 공유하는 것보다 무조건 아무 책이나 많이 빌리는 것이 우대받는다는 사실을! 독후감 잘 쓴 아이에게 주던 상은 점점 줄어들고 책을 많이 빌려간 아이들에게 주는 상은 늘어났다. 다독상이다. 가장 나쁜 독서교육이 학교평가에서는 가장 좋은 방법이 된다.

[교단에서]교육은 뒷전, 실적만 남는 학교평가

단지 독서교육뿐만이 아니다. 서울시교육청의 42가지에 이르는 촘촘한 지표들이 학교의 정상적인 교육을 왜곡하고 있다. 수업 공개 항목의 경우 교사·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곳은 그나마 혁신학교들이다. 혁신학교에서는 특정 시기만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교사들이 수업을 상호 관찰하고 평가하면서 수업의 질을 높여나가고 있다. 학부모는 물론이고 외부 학교 교사들에게도 공개한다. 수업 공개 횟수는 교사 한 명당 1년에 한두 번, 학교 내 전체 횟수는 주 1회(연간 40회) 정도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일반학교는 수업공개의 날을 정해서 동시에 모든 교사들의 수업을 공개한다. 학부모들은 주로 자기 아이 교실의 복도에서 잠시 아이가 조는지 아닌지만 보고 지나쳐갈 뿐이다. 수업을 보고 교사와 학생의 상호작용에 대해 관찰하고 의견을 제시하는 일은 거의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날 하루에 30학급×6교시=180회 수업공개라는 실적이 쌓이는 것이다. 실질적인 수업공개보다 겉핥기식 수업공개가 학교평가 점수를 얻기에는 더 좋은 방법이 된다.

학교별 특색 사업도 마찬가지다. 지역적 특색, 학교 구성원의 특색을 반영하는 우리 학교만의 사업을 위해 학생이나 학부모나 교사들의 의견을 모으지 않는다. 개수만 많으면 무엇이든 환영이기 때문에 이름붙이기 좋고 하기 쉬운 사업을 몇몇 사람이 정해버린다. “이런 형식적인 것을 왜 하느냐?”라고 물어보면, “학교평가에 들어간다”는 대답만 되돌아온다. 이렇게 실시하는 대표적인 특색 사업이 아침독서다. 교사는 도서대출카드에 등록하느라 독서지도는 뒷전이고, 학생들은 책 한 권 올려놓고서는 다른 숙제를 하거나 잡담하고 있으며, 교실 내 방송 스피커에서는 용의복장 단속을 엄격히 할 거라는 공지사항만 왕왕대는 것이 아침독서 풍경이다.

인성교육 분야는 어떤가. 학생들은 아무도 보지 않아도 교실 전체에 비디오 하나 틀어주면 실적이 되고, 진로교육 역시 비디오 한번 틀어주느냐, 여러 번 틀어주느냐는 것으로 실적이 쌓인다.

학생 동아리 수가 학교평가에 들어가게 되니 서류상에만 있는 동아리가 하루만에 5~6개씩 생긴다. 학교폭력 횟수가 많아지면 학교평가 점수가 낮아지니까, 웬만한 폭력 사건은 학교폭력대책위 등 정식 절차도 거치지 않고 유야무야 넘어가려 한다. 교원의 사기 진작이라는 지표는 교권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교사에게 대드는 학생에 대한 징계 횟수까지 실적이 될 수도 있다. 학부모를 대상으로 하는 연수 운영 시간이 학교평가에 들어가니까, 학부모가 원하든 말든 일단 연수를 만든 다음 학부모를 학급별로 할당해서 동원한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렇게 심각하지는 않았다. 어느 정도 교육적인 취지는 살리려고 노력했으며 이다지도 무리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다.

왜 이렇게 학교 현장이 변해가는 것일까. 위에서 지적한 왜곡된 교육활동들이 42가지 분야에서 매년 진행·점검되고 그 결과가 교장에 대한 평가와 교사들의 차등 성과급에 연결되기 때문에 교사들은 감히 ‘비교육적’이라는 문제제기조차 할 수 없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 문 교육감은 취임 초기에 행복교육을 표어로 내걸면서 교사들의 사기 진작과 업무 경감을 약속했다. 그러나 지금, 교사들은 ‘제발 우리 좀 내버려두라’고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교육은 뒷전이 되고, 실적만 남는 학교평가! 여기서 우리 아이들이 배우는 것은 겉치레와 포장 기술과 윗사람의 눈에 들기 위한 침묵, 그리고 눈치보기이다.

교육학자 출신인 문 교육감은 본인이 내건 행복교육이라는 이름 아래 벌어지고 있는 ‘잠재적 교육과정’이 얼마나 끔찍한 상태인지 깊이 살펴보아야 한다. 행복한 학교를 만들려면 학교평가를 학교의 자율적 진단활동으로 바꿔서 겉보기식 실적 쌓기로 변질된 학교를 바로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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