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갔어도 상황 못 바꿔”…시민들, 다시 ‘#무정부 상태’

2023.07.17 20:42 입력 2023.07.17 22:23 수정

호우 피해 때 ‘부재’ 관련 대통령실 해명…SNS엔 ‘성토’ 봇물

국가적 재난에 ‘무딘 감수성’ 비판…“이탈리아 총리는 왜 갔냐”

<b>멍하니…무사하지 못한 마음</b> 폭우 피해 지역인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의 한 주민이 17일 자택 인근 성동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논산 |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멍하니…무사하지 못한 마음 폭우 피해 지역인 충남 논산시 성동면 개척리의 한 주민이 17일 자택 인근 성동초등학교에 마련된 이재민 대피소에 머물고 있다. 논산 | 조태형 기자 phototom@kyunghyang.com

오송 지하차도 침수 참사 등 집중호우로 인한 인명피해가 전국에서 속출하자 대통령실의 안일한 대응과 인식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무정부 상태’란 해시태그가 다시 등장했다. 재난 상황이 벌어질 때마다 대통령의 부재가 반복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와중에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는 대통령실 관계자의 말이 불에 기름을 끼얹은 격이 됐다는 말이 나온다.

17일 오후 2시 기준 트위터에는 ‘무정부 상태’라는 단어가 1만회 이상 언급되며 ‘인명피해’ ‘명품쇼핑’ 등과 함께 실시간 트렌드에 올랐다. 전날 밤부터 수천회 이상 언급된 이 단어는 지난해 8월 수도권에서 대규모 호우 피해가 발생한 후에도 등장한 바 있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폭우 상황에서 중앙재난안전상황실을 찾지 않고 재택근무를 해 “서울이 물바다가 됐는데 대통령이 안 보인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날 새벽 유럽 순방을 마치고 귀국한 윤 대통령은 오전 경북 예천군 산사태 피해 현장을 방문했다. 이번 집중호우로 대규모 사상자가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시민들은 신속한 재난 대응을 약속한 윤 대통령의 발언이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직장인 김모씨(46)는 “대선 후보 때 산불 현장을 찾아서 ‘청와대에 있으면 헬기라도 타고 오겠다’고 말한 사람 어디 갔냐”며 “재난 때마다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정치를 너무 쉽게 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했다. 집중호우로 문화재가 침수되는 등 피해를 입은 충남 공주 지역에 사는 A씨는 “작년에 정부를 대표해서 사과한다면서 근본 대책을 세우겠다더니 한 게 뭐가 있냐”고 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홍수 위해 경고시스템 구축 등을 약속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을 수행한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지난 16일 폴란드 현지 브리핑에서 ‘국내에서 집중호우가 심각한 상황에서 우크라이나 방문 취소 등을 검토했냐’는 기자의 질문에 “대한민국 대통령이 당장 서울로 뛰어가도 상황을 크게 바꿀 수 없는 입장”이라고 했다. 김건희 여사가 리투아니아 명품 매장을 방문했다는 현지 보도에 이어 이 같은 발언까지 나오자 대통령실의 무딘 재난 감수성을 질타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이태원 핼러윈 참사 당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이 “경찰이나 소방 인력을 미리 배치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었던 것으로 파악한다”고 말한 것과 같은 태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누리꾼들은 지난 5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했던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가 자국에 홍수 피해가 발생하자 조기 귀국한 사례와 비교하기도 했다. 한 누리꾼은 “이탈리아 총리는 그럼 대홍수 상황을 바꿀 수 있어서 조기 귀국했겠냐”고 했다.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재난 상황에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하는 건 ‘각자도생의 사회’라는 점을 대통령실이 스스로 자백한 셈”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국민의 자유와 생명을 보호할 궁극적 책임을 지닌 국가의 수장이 재난 때마다 책임을 모면하기 위한 발언을 반복한다는 것은 국가가 없는 자연상태로의 회귀라고밖에 볼 수 없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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