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2011.05.23 21:59 입력 2011.05.23 22:08 수정

조합주의 전통에 계급정당 부재… 복지의 제도화·정당정치 필수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으로 노동자, 기업, 지주계급 등이 결성한 ‘코포라시온’(조합주의 단체)이 강한 힘을 행사해온 나라다. 이들은 정부와 직접 협상하는 걸 선호했다. 이 같은 정치문화는 취약한 정당정치와 계급정당의 부재로 이어졌다. 계급정당이 뿌리내리지 못한 아르헨티나의 경험은 한국의 경우 복지의 틀을 새롭게 짤 때 유럽에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했던 역할을 누가 할 것인지에 대한 고민을 던져준다.

아르헨티나의 취약한 정당정치는 페론 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페론은 정당이라는 중간과정 없이 바로 대중에게 호소하는 것을 선호했다. 이로 인해 “페론 개인의 인기와 카리스마가 지배적이었고 페론주의 정당은 제대로 제도화돼 있지 않았다”(김달관 서울대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연구교수)는 것이다. 이념과 정책의 빈자리에 ‘카우디요’(보스)인 페론이 들어선 것이다. 한국외대 중남미연구소 손혜현 박사는 “비록 페론당이 노동자와 하류층을 대표하는 정당으로 기능했지만, 정작 페론은 페론당이 잘 확립된 당 관료제를 갖춘 제도화된 정당으로 발전해 노동운동이 정치세력화되는 걸 원치 않았다”고 말했다.

메넴의 집권기에 페론당은 전통적인 노조 중심 정당에서 비공식 지역 조직에 기반을 둔 후견주의(정치적 지지와 물질적 혜택을 맞바꾸는 것) 중심 정당으로 변했다. 메넴이 실시한 신자유주의 개혁으로 아르헨티나에선 실업자가 늘어났고 산업 노동자의 수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이에 따라 페론당의 중요한 정치적 동원세력이었던 CGT(노동자총연맹)의 영향력은 약해졌고, 노조로부터의 지지도 예전처럼 얻을 수 없게 됐다.

중년 남성 2명이 지난달 15일 오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촌 근처에서 폐지 등 재활용품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폐지를 줍는 모습은 아르헨티나에서 드물지 않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김지환 기자

중년 남성 2명이 지난달 15일 오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한인촌 근처에서 폐지 등 재활용품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 있다. 젊은 사람들이 폐지를 줍는 모습은 아르헨티나에서 드물지 않다. 부에노스아이레스 | 김지환 기자

하지만 페론주의 정당이 여전히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지역 정치조직이 있었다. 지속된 경제위기로 노동계급이 비공식 부문과 서비스 부문으로 쪼개졌지만 페론당의 지역 조직이 이들을 끌어안는 역할을 했다는 뜻이다. “실업자와 빈민으로 전락한 다수의 노동자들이 페론당에 남아 있었던 이유는 정치적 충성심 때문이 아니라 지역 ‘푼테로’(페론당의 지역 정치브로커)가 분배하는 음식, 약품, 공공 일자리 등이 필요했기 때문”(손혜현 박사)이었다.

이 같은 전략은 페론주의 정당의 지지층이 떨어져나가는 것을 막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이것은 하지만 계층적 갈등에 따라 정당이 만들어지는 것을 가로막았다. 후견주의는 제도화된 원칙과 절차에 따라 표를 받는 게 아니라 뒷구멍으로 혜택을 주는 걸 통해 정치권력을 유지하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문화로 인해 제도에 따른 보편적 복지 시스템이 자리를 잡지 못했다. 복지는 또 시민들의 권리가 아니라 정치권력이 나눠주는 ‘떡고물’이 됐다.

복지 논쟁이 한창인 한국 사회에선 ‘누가’ 제대로 된 복지국가를 만드는 역할을 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계속 나오고 있다.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낮을 뿐만 아니라 지역주의 정당의 잔재가 아직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는 아르헨티나와 마찬가지로 계급정당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한국 사회가 마주할 수밖에 없는 질문이기도 하다.

■ 특별취재팀 최민영·송윤경·유정인·김지환·박은하 기자
■ 블로그 welfarekorea.khan.kr
■ 이메일 min@khan.kr

< 취재지원 : 한국언론진흥재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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