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측 ‘교섭창구 단일화’ 악용 노동권 후퇴

2012.07.01 21:43

복수노조 제도 도입 취지 왜곡

노동계 “법 개정” 정부 “안착”

복수노조와 복수노조 사업장 교섭창구단일화 제도가 1일로 시행 1년을 맞았다.

정부는 “산업현장에 복수노조가 성공적으로 안착하고 있다”고 평가했지만 노동계는 “노동기본권이 후퇴했다”고 맞서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복수노조 시행 1년간 824개의 노조가 새로 설립됐다고 밝혔다. 시행 초기에는 하루 평균 10개의 노조가 생길 정도로 노조 설립 신고가 급증했지만 올 들어서는 일평균 1.1개로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부는 “노조 설립 추세가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면서 “당초 우려했던 노조 난립이나 노조 설립 분규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사측 ‘교섭창구 단일화’ 악용 노동권 후퇴

기존의 민주노총이나 한국노총 산하 노조에서 따로 독립한 노조가 전체의 64.4%(542개)를 차지했다. 신설노조 중 85.6%(721개)는 상급단체를 정하지 않았다. 민주노총에 가입한 노조는 3.4%(29개), 한국노총은 10.6%(89개)에 그쳤다. 양대노총에서 분화해 나온 노조 중 대부분이 새로운 상급단체에는 가입하지 않은 셈이다.

노동계는 “회사가 세운 친기업 노조가 신설노조의 다수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실제 경북 구미의 KEC, 부산의 한진중공업, 충남 아산의 유성기업 등 장기간 노사갈등을 겪었던 사업장에 새로 세워진 기업별노조는 상급단체를 정하지 않은 미가입 노조다.

양대노총 위원장은 지난달 29일 기자회견을 갖고 “한국노총 산하 조직에 세워진 복수노조의 28.4%, 민주노총 산하에 만들어진 복수노조의 70%가 사용자가 개입해 설립한 노조”라고 밝혔다.

노동계는 복수노조의 제도적 문제점으로 교섭창구단일화를 꼽고 있다. 현행법상 복수노조 사업장은 1사1교섭 원칙에 따라 교섭창구를 단일화해야 한다. 민주노총 사업장의 97.8%, 한국노총 사업장의 97.1%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았다. 노동부는 “복수노조 사업장 중 97.3%에서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이행하며 제도가 빠르게 안착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반면 노동계는 사측이 교섭창구단일화를 악용해 ‘어용노조’를 지원하고, 정부는 사측의 부당 노동행위에 면죄부를 주고 있다고 밝혔다.

사용자는 복수의 노조가 존재할 경우 개별교섭을 할지, 아니면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거쳐 교섭대표노조(전체 조합원 수의 과반을 차지하는 노조)와 교섭을 할지를 결정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사용자가 지원하는 노조가 소수일 경우 개별교섭을 실시하고, 다수일 경우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밟고 있다고 노동계는 보고 있다.

이승철 민주노총 정책국장은 “복수노조의 취지가 노동자의 단결권을 보장하기 위한 것인데 교섭창구단일화로 인해 제도 도입의 취지를 살리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배동산 공공운수노조 정책국장은 “복수노조가 양날의 검이라면,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는 양날의 검을 휘두를 칼자루를 사측에 주는 제도”라고 말했다.

유성기업의 경우 기업노조가 신설된 직후 조합원 수가 금속노조 지회보다 적을 때는 개별교섭을 벌이다가, 노조 탄압으로 금속노조 지회가 소수가 되자 교섭창구를 단일화했다. 이 정책국장은 “사용자가 지지하는 노조만 살아남는 구조”라고 했다.

비정규직은 문제가 더 심각하다.

배 정책국장은 “전국 곳곳에 사업장이 나눠져 있는 용역업체의 경우 교섭을 하려면 전국에 산재한 다른 사업장 노조와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으라며 교섭을 회피한다”고 말했다. 또 비정규직은 재계약을 빌미로 노조 탈퇴를 종용받고 이를 거부할 경우 해고로 이어진다. 배 정책국장은 “비정규직은 노조 설립도 어려운 데다 세우더라도 소수노조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아 노조 유지도 어렵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복수노조 자체는 인정하되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폐지할 것을 요구했다. 개별교섭을 보장하고 교섭창구단일화 절차를 밟을지 여부도 자율에 맡기라는 것이다.

양대노총은 “복수노조 설립을 허용했으면 노조의 생명이라고 할 수 있는 단체교섭권과 단체행동권도 보장해야 한다”며 교섭창구단일화 제도를 폐지하는 내용을 담은 노조법 재개정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은 19대 총선 공약으로 교섭창구단일화 제도 폐지를 내세웠다.

그러나 정부는 교섭에 필요한 비용과 시간을 줄이기 위해 교섭창구단일화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노동부 관계자는 “지난 4월 헌법재판소에서도 교섭창구단일화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며 “복수노조가 현장에 뿌리내리도록 사용자의 부당 노동행위를 근절하고 (교섭대표노조의) 공정대표의무 등에 대한 관리를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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