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금 올리면? 재계 “고용 축소” 노동계 “내수 확대 일자리 늘어”

2015.03.16 21:41 입력 2015.03.16 22:09 수정

(3) 오해와 진실

▲ 미 경제학자 650명 이상 “영향 제한적” 지지 성명
국민경제 선순환 긍정적… 기업 생산성 제고 효과도
OECD 8위는 ‘착시 현상’ ‘복지’ 시장에 떠넘기기도

■ 최저임금 올리면 고용 줄어드나

경제계는 최저임금이 인상되면 일자리 감소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과도한 임금 상승은 해당 기업의 경쟁력 저하와 일자리 축소로 이어져 근로자 삶의 질을 저하시킬 수 있다”며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을 위해 임금 인상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실제로 감시·단속직 노동자인 아파트 경비원에 대해 최저임금제를 단계적으로 적용한 후 일부 지역에선 거꾸로 해고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아파트 경비원 해고는 특수한 사례일 뿐이며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 감소로 이어진다는 경제학 교과서는 수정돼야 한다는 반론과 연구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0년 발표한 ‘세계 임금 보고서’에서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실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며 2006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를 포함해 미국의 경제학자 650명 이상이 최저임금을 지지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던 사례를 소개했다. 1999년부터 최저임금제를 실시한 영국의 저임금위원회도 2008년 발표한 자료에서 “10년 전에 최저임금제가 도입됐을 때는 최저임금이 일자리를 줄이는 것으로 이어진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며 “하지만 지금까지 최저임금이 고용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책연구기관인 한국직업능력개발원도 “임금 인상을 통한 노동소득분배율의 상승이 내수 확대의 원천이 돼 경제 성장과 고용 증대로 이어진다”며 “내수 확대에는 고임금 계층보다 소비성향이 높은 저임금 계층의 임금 인상이 더 큰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저임금 노동자의 임금 인상이 내수 확대→경제성장의 선순환 구조로 이어져 궁극적으로 일자리를 확대한다는 것이다.

최저임금 수준 역시 고용 감소 효과를 따질 때 고려해야 할 요소다. 이상헌 ILO 부사무총장 정책특보는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맨 중앙에 있는 노동자의 임금)의 45~60% 정도로 유지되면 고용에 미치는 효과는 미미하다”고 설명했다.

아르바이트 청년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아르바이트 청년 노동자와 저임금 노동자들이 지난 12일 서울 정동 민주노총에서 ‘최저임금 1만원’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 김정근 기자

■ 영세·중소기업에 부담 주나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으로 일자리 감소와 함께 영세·중소기업이 받을 타격을 꼽는다. 경총은 “최근 14년간 최저임금이 연평균 8% 인상돼 영세·중소기업이 경영난을 겪고 있다”며 “최저임금의 주된 적용 대상인 영세·중소기업들은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고 밝혔다. 경총 관계자는 “영세·중소기업의 체감경기가 회복되지 못한 상황에서 무리한 고율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해 최저임금 미달 근로자가 209만명(미만율 11.4%)에 달하고 있다”며 “최저임금 인상 논의 자체가 무의미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전문가들도 최저임금 인상이 영세·중소기업의 경영난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지만 경제계가 최저임금 인상이 가져올 부정적 효과만 부각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상조 경제개혁연대 소장은 “저임금 노동자를 사용하는 영세·중소기업, 자영업자에게 최저임금 인상은 단기적으로 볼 때 가격 경쟁력을 낮추는 충격을 줄 수 있다”며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최저임금 인상은 소득 증가, 소비지출 증가, 국민경제 선순환이라는 긍정적 효과도 가져온다”고 말했다. 그는 “두 가지 측면이 모두 있어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동시에 단기적 충격에 따른 보완책을 어떻게 마련할지에 대한 논의를 진전시켜야 한다”고 설명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노동에만 의존하는 한계기업의 구조조정을 촉진시켜 되레 생산성을 높이는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울고 싶은 기업 뺨을 때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직률이 높은 영세·중소기업은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직률이 떨어지는 효과도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노동자의 숙련도가 높아져 생산성이 향상될 수 있다.

원청 대기업이 최저임금이 오른 만큼 하청과 재계약을 할 때 도급 단가를 인상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홍장표 부경대 교수는 “대기업들은 하청업체들과 재계약을 맺을 때 최저임금 인상분을 고려해주지 않고 하청업체 생산성 향상으로 해결하라고 하는 관행이 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은 생명줄이다]임금 올리면? 재계 “고용 축소” 노동계 “내수 확대 일자리 늘어”

■ 최저임금 통계의 착시

경영계는 최저임금의 수준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과 비교해 낮은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이다. 경총은 “1인당 국민총소득(GNI) 대비 한국의 최저임금은 OECD 회원국 중 중상위권”이라며 “한국의 시간당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은 49.7%로 OECD 중상위권”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자영업자 비중이 높은 그룹에 속한다. 임근 근로자에 비해 소득이 낮은 자영업자가 국민총소득을 집계할 때 포함되면 노동자들의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아 보이는 효과가 나타난다. 민주노총은 “한국의 최저임금은 5인 이상 사업장의 상용직 노동자 평균임금의 33% 수준”이라며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중이 29개 OECD 회원국 중 20위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고용노동부 는 상대적으로 임금이 높은 교원·공무원을 제외한 민간 부분만 집계하고, 가구에 직접 가서 임금을 물어보는 통계청 임금 자료도 수당·상여금 등을 고려하지 않고 답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임금보다 낮게 조사된다”며 “이런 데이터의 한계 때문에 최저임금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그릇된 결론이 나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 최저임금 올리자며 복지는 후퇴

최경환 경제부총리는 최근 내수 진작을 위해 최저임금을 빠르게 올려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경제수장이 소득주도 성장론에 직접 불을 지핀 것이다. 하지만 박근혜 정부는 2012년 대선 당시 내건 복지공약에서는 허물어진 것도 많다. 기초연금·초등돌봄교실·반값등록금이 모두 공약이 축소되거나 변질됐다.

가계를 꾸리는 소득이라면 대개는 월급으로 통칭되는 ‘시장임금’을 떠올린다. 가계를 지탱하는 또 다른 축은 ‘사회임금’이다. 국민연금·실업수당·건강보험급여·보육지원금·기초생활보장급여 등과 같이 사회보장을 통해 가계가 국가로부터 받는 소득이 바로 사회임금이다. 한국의 경우 시장임금과 사회임금이 모두 낮아 내수 진작을 위해선 두 가지를 같이 끌어올리는 전략을 쓸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정부가 현재 꺼내든 카드는 시장임금 인상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공동운영위원장은 “사회임금을 끌어올려야 할 정부가 자신의 책임은 뒤로 하고 시장에 그 부담을 떠넘기는 식”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지만 자신의 역할을 하면서 시장에 요구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시리즈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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