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냥공장 아동착취 고발…163년 지나도 노동 참극은 현재진행형

2018.12.22 06:00 입력 2018.12.23 10:07 수정
강진구 노동전문기자

안데르센 ‘성냥팔이 소녀’

19세기 영국의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공들(왼쪽)은 독성물질인 인에 중독돼 아래턱이 괴사하는 직업병에 시달렸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지난 13일 아들이 일하던 작업 현장을 방문해 동료들을 위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19세기 영국의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어린 여공들(왼쪽)은 독성물질인 인에 중독돼 아래턱이 괴사하는 직업병에 시달렸다. 최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산재로 사망한 김용균씨의 어머니가 지난 13일 아들이 일하던 작업 현장을 방문해 동료들을 위로하고 있다. 공공운수노조 제공

목숨값 대신 받아나온 성냥 팔다 얼어죽은 어린 노동자 이야기
백린 중독, 산재 파업으로 맞서자 가정집 위탁 ‘위험 외주화’
반도체 노동자 황유미·낙탄제거 작업 김용균…산재 사고 여전
영국 기업살인법처럼 산업안전보건법 개정해 자본 횡포 막아야

안데르센의 동화 <성냥팔이 소녀>(1845)는 단지 작가가 상상력에만 의존해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성냥팔이 소녀>는 19세기 초·중반 급속한 산업화 물결 속에 공장에서 일하다 쫓겨난 후 한 끼의 식사를 얻기 위해 거리를 헤매던 어린 산재 노동자들의 아픔이 녹아 있는 이야기다. ‘영국의 산업혁명’이라는 사이트의 ‘아동착취’ 자료실에는 당시 4~16세 소녀들이 성냥공장에서 새벽 6시부터 저녁 6시까지 하루 12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면서 어떤 대우를 받았는지 자세히 소개돼 있다.

소녀들은 공장에 출근하면 두 번의 짧은 휴식시간을 제외하고 작업 중에 동료들과 잡담을 하거나 바닥에 앉아서 쉴 수 없었다. 규칙을 위반하면 무거운 벌금이 매겨졌고, 매를 맞기도 했다. 조금이라도 지각을 하거나 감독관 허락 없이 화장실에 다녀오다 적발되면 벌금을 내야 했다. 이 때문에 벌금을 제하고 나면 한 푼의 임금도 받지 못해 빈손으로 집에 돌아가야 하는 소녀들도 있었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에는 공장이 아니라 길거리로 성냥을 팔러나온 한 소녀가 등장한다. 한 해가 저물어가는 추운 겨울날, 어머니의 슬리퍼를 신고 성냥을 팔러나온 어린 소녀는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던 두 대의 마차를 피하려다 신발을 잃어버린다. 추위에 검붉어진 맨발로 거리를 걷던 소녀의 낡은 앞치마에는 한 무더기의 성냥이 있었고, 어깨를 내리덮은 소녀의 금발 머리 위로 눈송이가 떨어졌다. 하지만 성냥을 하나도 팔지 못한 소녀는 아버지에게 매를 맞을 것이 두려워 집으로 돌아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집이라고 해봐야 짚과 넝마로 겨우 틈새를 메운 정도라 추위를 피할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소녀는 따뜻한 불빛이 새어나오는 부잣집 처마 밑에서 성냥불에 의지해 추위에 꽁꽁 언 손과 발을 녹이다 하늘나라에 있는 할머니의 품에 안겨 최후를 맞는다.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산업혁명 과정에서 어린이들까지 가혹한 노동착취 현장으로 내몰았던 자본주의의 냉혹함을 보여준다. 이 점에서 <성냥팔이 소녀>는 단순히 어린이들을 위한 동화를 넘어 성인들을 위한 고발문학이기도 하다. 1805년 가난한 구두공의 외아들로 태어난 안데르센 자신도 11세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후 먹고살기 위해 어린 시절 공장에서 밑바닥 생활을 해야 했다. 안데르센이 40세에 출판한 <성냥팔이 소녀>가 그의 유년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쓰인 자전적 동화로 얘기되는 이유다.

하지만 <성냥팔이 소녀>에는 당시 성냥공장에서의 아동착취 실태까지는 나타나 있지 않다. 짚과 넝마로 틈새를 메운 집에서 제대로 끼니를 이어가기도 힘든 형편에서 무슨 돈으로 한 무더기의 성냥을 살 수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그럴 돈이 있었다면 차라리 바로 먹을 것을 사는 게 상식이기 때문이다. 이 모든 궁금증은 당시 시대상을 알면 금방 풀린다.

산업안전근로감독관 출신의 강태선 아주대 교수는 “안데르센의 비극적 동화의 주인공은 당시 성냥공장에서 일하다 산재를 당하고 좇겨난 아이들”이라며 “아이들이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면 공장에서 돈 대신 성냥을 손에 쥐여 내쫓았다”고 말했다.

당시 성냥공장에서 어린 소녀들이 주로 처리한 일은 작은 막대기 끝을 유독성 물질인 하얀 색깔의 인(P) 화합물에 담갔다가 빼는 것이었다. 막대기 끝에 묻힌 화학물질이 마르면 적당한 크기로 썰어 성냥을 만들고 성냥갑에 담아 출하를 하는 식이었다. 공장 안에는 항상 유독가스가 가득할 수밖에 없었다. 환기도 안되는 밀폐된 공간에서 마스크 등 아무런 보호장비 없이 하루 12시간씩 무방비로 유해가스에 노출된 상태로 일을 한 결과는 참혹했다. 백린(白燐)은 뼈에 쉽게 침착되는 성질이 강해 성냥공장에서 오랜 기간 일하면 아래턱 부근에서 고약한 냄새와 함께 고름이 나오면서 뼈조직에 괴사가 일어난다. 결국 아래턱이 주저앉는 ‘인턱’(phossy jaw) 증상으로 얼굴이 흉측하게 변하면서 참혹한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공장 관리인들은 인턱 증상의 전조증세로 얼굴색이 까맣게 변하는 낌새가 보이는 공원이 발견되면 곧바로 해고했다. 흉측한 몰골로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을 다른 공원들이 알지 못하게 산재를 은폐한 것이다.

결국 안데르센의 ‘성냥팔이 소녀’는 인턱 증세가 나타나기 전 해고된 후 목숨값 대신 공장에서 받아온 성냥을 길거리에서 팔다가 얼어죽은 것이다. 그녀가 동사하지 않았다면 더 비참한 모습으로 최후를 맞을 수도 있었던 셈이다.

영국에서 백린 사용이 금지된 것은 1888년 7월2일 당시 최대 성냥공장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에서 어린 여공들이 일으킨 파업이 계기가 되었다. 한 사회운동가가 비인도적 노동 실태를 폭로하는 기사를 내보내자 공장 지배인이 여공들을 상대로 보도내용을 반박하는 확인서에 서명을 요구했다. 하지만 1400명의 여공들은 서명을 거부하고 집단파업에 돌입했다. 여공들은 런던 노동위원회와 의회를 움직인 끝에 2주 만에 사측으로부터 산업안전을 위한 몇 가지 의미 있는 조치들을 약속받고 파업을 종료했다. 이후 1891년 구세군재단에서 인체 유해성이 적은 ‘적린’(赤燐)을 사용한 성냥공장을 세워 직접 운영했다. 구세군이 백린 성냥 퇴출을 위해 발 벗고 나선 데는 배경이 있었다. 당시 성냥공장들이 인건비를 아끼기 위해 가내수공 방식으로 위험을 외주화하면서 집안의 어린이들까지 위험에 노출되기 시작한 것이다. 급기야 아이들 몇 명이 성냥을 통째로 삼켜 사망하는 사고가 잇달아 발생했다. 여론이 들끊기 시작했고, 의회는 1908년 백린 사용을 전면 금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1826년 마찰열을 이용해 불을 붙이는 성냥이 개발된 후 80여년 만에 백린 사용이 금지된 셈이다. 그사이 영국을 비롯한 유럽 전역의 성냥공장에서 일하던 수많은 어린 소녀들은 원인도 알지 못한 채 죽음을 맞이해야 했다.

실제로 2014년 영국 북동부 지역의 퀘이커교도 공동묘지에서는 인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청소년 유골이 다수 발견된 바 있다. 해당 지역은 19세기 백린을 사용하여 성냥을 만들던 공장이 밀집해 있던 곳이었다. 발굴 작업을 지휘한 영국 더럼대학 인류학과의 샬럿 로버츠 연구팀은 “밀폐된 공간에서 인에 오염된 공기를 장기간 흡입하면 나타날 수 있는 인턱 증상의 전형적인 특징이 유골에서 확인됐다”며 “발굴된 유골 주인들의 나이는 12~14세 사이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영국의 성냥공장에서 스틱 끝에 백린 성분을 입히는 일을 하다 인 중독으로 사망한 어린 여공은 삼성 반도체공장에서 웨이퍼를 화학약품에 담갔다 빼는 작업을 반복하다 백혈병으로 사망한 황유미씨를 떠올리게 한다. 고3 졸업반인 2003년 삼성전자에 입사한 황씨는 온몸에 멍이 들고 구토·피로·어지럼 증상을 호소하다 2년 만에 급성백혈병 판정을 받았다. 2007년 황씨가 세상을 떠나기 수개월 전 같은 라인에서 일하던 동료 한 명도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황씨의 아버지와 함께 반도체공장의 위험성을 세상에 알려나간 ‘반올림’은 비슷한 직업병 증상으로 사망한 노동자를 최소 118명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삼성전자는 최근 유족들에게 머리를 숙이기 전까지 “지난 10년간 2만7000명의 직원 중 백혈병 환자는 6명밖에 나오지 않았다. 이는 대한민국 백혈병 발병률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다”고 주장하며 책임을 부인해왔다.

처음엔 얼굴색이 검게 변하면서 이빨이 흔들리고 머리카락이 빠지다가 나중에는 아래턱이 녹아내리는 괴사 증세로 사망하는 수많은 여공들을 보고도 언론보도를 부인하기 급급했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 성냥공장을 연상시키는 대목이다.

이에 앞서 1988년 7월에는 온도계 제조공장에서 일하던 16세 문송면이 수은 중독이라는 직업병을 세상에 알리고 사망했다. 하지만 문송면이 사망하기 불과 2주 전까지만 해도 회사는 물론 노동부는 그의 질병이 직업병임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문송면의 죽음은 이황화탄소 중독으로 ‘전신마비’ ‘언어장애’ 등의 증상에 시달리던 원진레이온 노동자 915명(230명 사망)이 직업병으로 인정을 받는 계기가 되었다. 문송면과 원진레이온 노동자들의 희생은 1990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문송면이 사망한 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제2, 제3의 문송면은 끊이지 않고 있다. 특히 원청 대기업들은 골치 아프거나 위험한 공정을 영세 제조업체에 떠넘기면서 산업안전보건법상 사용자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 흡사 여공들의 집단파업을 계기로 영국 성냥공장들이 스틱 끝에 백린을 묻히는 작업을 일반 가정집에 위탁하는 방법으로 위험을 외주화한 것과 같은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최근 각종 사업장에서 산재사망 사고는 노조 조직률이 낮고 위험관리 통제 능력도 떨어지는 하청업체 노동자들에게 집중되고 있다. 2015년에는 삼성전자·LG전자 스마트폰을 만드는 3차 하청업체에서 일하던 20~30대 파견노동자 6명이 메탄올 중독으로 시력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에탄올의 반값도 안되는 메탄올을 세척제로 사용하면서 발생한 원시적 재해였다. 죽음의 공장을 운영했던 브라이언트 앤드 메이가 인체 유해성 면에서 비교적 안전한 ‘적린’ 대신에 맹독성물질인 ‘백린’으로 성냥을 만든 것도 훨씬 가격이 쌌기 때문이다. 결국 시대와 국가를 막론하고 규제받지 않는 자본에 노동자는 소모품으로 여겨질 뿐이다. 영국이 1970년 기업살인법을 제정해 치솟는 산재사망률을 잡았듯이 일하다가 죽는 노동자가 나오면 회사가 망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제도나 기업문화가 바뀌지 않는 한 ‘성냥팔이 소녀’의 비극은 끝나기 어렵다.

지난 2월 정부에서 만든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이 과도한 영업활동 침해라는 재계의 반발에 부딪혀 1년 가까이 표류하는 사이 우리는 또 한 명의 문송면을 보내야 했다.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석탄연료를 투입하는 업무를 하던 하청업체 노동자 24세 김용균씨의 죽음은 100년 전 성냥공장의 비극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현재 진행형임을 보여준다.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쓴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동화 <성냥팔이 소녀>를 쓴 작가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안데르센 동화에서 성냥팔이 소녀는 마지막으로 갖고 있던 성냥개비로 주변을 환하게 밝힌 뒤 할머니를 만나 미소를 머금은 채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캄캄한 작업현장에서 낙탄 제거 작업을 하다 고속의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순식간에 절명한 김씨에게는 마지막으로 어머니의 얼굴을 떠올릴 잠깐의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시신도 너무 처참하게 훼손돼 정년을 얼마 남겨놓지 않은 한 동료 직원은 “어린 것들 대신에 내가 제일 먼저 시신을 발견해서 다행”이라고 했다. ‘대한민국을 저주한다’는 김씨의 어머니나 동료들에게는 그나마 온전한 시신으로 발견된 성냥팔이 소녀의 최후가 부럽게까지 느껴질 만한다. 저물어가는 2018년, 한국의 노동현실은 누군가에겐 163년 전 안데르센의 동화보다 더 잔혹하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추천 이슈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